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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

last modified: 2015-04-08 13:47:45 Contributors

WCW_Logo.jpg
[JPG image (Unknown)]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한 로고.
1999년부터 2001년에 WWF로
합병되기 전까지 사용한 로고.
2001년 WWE 인베이젼
시절에 쓰던 단체마크


NWA부터 내려오던 WCW의 월드 챔피언 벨트인 역사와 전통의 빅 골드 벨트 (Big Gold Belt).
이 디자인은 WWE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벨트로 쓰이기도 했다.

World Championship Wrestling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시작
2.2. WWF의 인수
2.3. NWA에 재인수
2.4. TBS의 인수
2.5. Monday Night War
2.6. 말기
2.7. 인수 이후
3. 프로그램 목록
4. PPV
5. 챔피언 타이틀 목록
5.1.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6. 평가
6.1. 장점
6.2. 문제점
7. 여담
8. WCW를 거친 레슬러들

1. 개요

미국프로레슬링 단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까지 WWF(현재의 WWE)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한때 시청률에서 WWF를 앞서기도 했다.

2. 역사

WCW의 탄생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2.1. 시작

본래 NWA 산하의 '조지아 챔피언쉽 프로레슬링(GCW)'이 애틀랜타의 ABC 계열 지역방송국 WXIA-TV[1]에서 방송하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테드 터너는 1976년부터 케이블TV TBS를 개국하면서 GCW를 전국 방송하기 시작했고, 1982년에 WCW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이 시기의 WCW는 GCW를 방송하는 TBS의 한 프로그램 타이틀이었을 뿐이었다.

2.2. WWF의 인수

한편 WWF(WWE)의 빈스 맥마흔은 방송의 전국 확대를 노리고 테드 터너와 TBS에서 WWF방송을 타진했지만, 테드 터너의 반대로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1984년 빈스 맥마흔은 우회적인 수단으로 진출을 시도하는데 GCW의 다른 대형 주주들과 접촉하여 GCW를 인수하고 토요일 저녁의 WCW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손에 넣었다. 1984년 7월 7일 빈스 맥마흔은 새로운 GCW의 소유자로서 WCW 방송에 등장했다.

하지만 갑자기 WWF 형식으로 바뀐 프로레슬링 방송은 기존 시청자들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TBS에 항의 전화와 투서가 밀려들어와 테드 터너는 분노하게 된다. 테드 터너는 다른 프로레슬링 프로모터들과 협력하여 일요일 밤 시간대에 '미드 사우스 레슬링'을, 토요일 아침 시간대에 '챔피언쉽 레슬링 프롬 조지아'를 배치하여 빈스 맥마흔이 점령한 월드 챔피언쉽 레슬링을 압박했다. 빈스 맥마흔은 테드 터너의 조치가 자신이 얻은 TBS에서 프로레슬링을 독점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분노했지만, 토요일 아침의 쇼마저 빈스 맥마흔의 월드 챔피언쉽 레슬링의 시청률을 능가하면서 빈스의 굴욕이 되어버렸다.(...)

2.3. NWA에 재인수

1985년 4월, 빈스는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GCW의 주식을 다시 매각했다. 애틀랜타를 본거지로 하던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가 GCW의 권리를 얻어 WCW가 본격출범하게 된다. 크로켓 프로모션은 NWA 플로리다 부문, 1987년에는 루이지애나의 UWF까지 인수했다. 짐 크로켓은 NWA의 회장직도 차지했다. 하지만 급격한 거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WWF의 맹렬한 공세에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의 경영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는 파산을 하고 말았다. WWF는 GCW에게 설욕을 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2.4. TBS의 인수

1988년 11월, 진정한 최종보스 드 터너가 직접 나섰다. TBS가 짐 크로켓 프로모션즈를 인수하여 WCW는 TBS산하의 프로레슬링 부문 자회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WCW는 하나의 TV쇼 프로그램 타이틀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때부터 WCW 자체가 회사명이 되고 독립 단체로 취급되어 NWA와 계약하고 NWA-WCW로 불리게 된다.

CNN의 설립자이자 방송재벌인 테드 터너 소유의 레슬링 단체가 된 만큼, 자금 사정은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프로레슬링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TBS 소속 고문 변호사들이 낙하산 인사 격으로 사장으로 올라오면서 초기에는 여러모로 삽질을 거듭하며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2.5. Monday Night War

1993년 WCW는 NWA에서 탈퇴했다. NWA의 독과점 체계는 이미 무너져버렸고, NWA계열 거물 프로모터들이 완전히 몰락한 상황이라 더 이상 NWA에 가맹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1994년 에릭 비숍이 부사장으로 발탁되면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WCW에서 사장은 TBS의 고문 변호사 격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부사장이 회사를 이끄는 톱이었다.

에릭 비숍은 방송국을 등에 엎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헐크 호건 등 WWF 소속 인기 프로레슬러를 차례차례 데려왔으며, 특히 1996년에는 에릭 비숍이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작인 nWo가 TV쇼에 등장. 상기한 대로 시청률 전쟁에서 WWF를 앞지르게 된다. 반대로 WWF는 모회사의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WCW에게 유명 선수를 닥치는 대로 빼앗기면서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다.[2] 거기다가 에릭 비숍은 시청자들이 RAW로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RAW의 결과를 스포일러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WWE와 좋게 끝난 선수들에게 WWE를 비난하라고 요구하면서 WWE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려고 했다[3]. 이 와중에 WWE의 메두사가 WCW로 옮겨오면서 WWE 벨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그먼트까지 나오게 된다[4]. 여하간 이런 전략을 쓴 탓에 에릭 비숍이 보기에 WWE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세이블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들이 스포일링해도 세이블을 보기 위해 남성 시청자들은 RAW를 볼 것이기 때문... 거기다가 스포일링 잘못해서 세이블이 뭔가 섹시한 세그먼트를 했다고 하면 더더욱 역효과일테니 다만 에릭 비숍의 발언이고 한 만큼 어느 정도 허풍을 감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1996년 WCW는 WWF를 시청률에서 앞서게 되며,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미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장식하게 된다. 오죽하면 당시 WCW와 WWF의 시청률 전쟁을 가리켜 Monday Night War라고 칭할 정도 였다. 그러나 '대등한 양강 구도'라고 하기에는 WCW의 기세가 압도적이었다. WCW가 WWF를 시청률에서 앞지른 기간이 1996년 6월 10일에서 1998년 4월 13일까지 거의 2년, 84주가 넘을 정도였다.

실질적으로 WCW 전성기에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내세운 WCW 앞에 WWF는 많이 밀리는 편이었으며 거의 '압살' 당할 지경의 위기였다. 헐크 호건 같이 WWF의 아이콘 급 유명 선수들을 닥치는대로 빼가는 판이었으니 WWF는 버틸 수가 없었다. 1997년에는 WWE의 심장이라 할 수 있던 브렛 하트마저 WCW에게 빼앗기게 된다.[5] 1994년의 WCW PPV 스타케이드 14는 66만건이 넘는 구매를 이룩했다. 대조적으로 당시 레슬매니아 13은 20~30만건으로 사상 최저건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만큼 nWo에 노골적으로 기대는 스토리라인[6]이 진행되면서, nWo와 관계없이 일본이나 멕시코 무대에서 성장해 WCW에 입성한 유망주 레슬러들[7] 기회를 주지 않았고 차츰 WCW만의 색깔을 잃기 시작했다. ECW가 하드코어함을 무기로 승부했다면, WCW는 WWF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빅맨 선호에, WWF에서 익히 봐왔던 레슬러들로만 계속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스 맥마흔의 눈물의 똥꼬쇼가 시작되었다.

WWE는 더 락, 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등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하였고, 빈스 맥마흔 회장까지 악덕 사장 기믹으로 쇼에 출연하여 눈물겨운 노력과 이전까지 프로레슬링에서 볼 수 없었던 과격한 연출을 동원한 결과 엄청난 화제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자세한 것은 애티튜드 시대 참조.

게다가, RAW의 결과를 포일링하는 부정행위가 오히려 WCW에게 결정타를 먹이기도 했다. 믹 폴리가 챔피언에 등극하자 WCW는 평소처럼 이를 스포일링하며 믹 폴리를 조롱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은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된 것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이때 0.6의 시청율이 RAW로 향했고 이후 WCW는 WWE의 시청율을 넘지 못했다.

WCW쇼는 이외에도 온갖 삽질을 반복했다. 사실 WWE의 스파이였던 헐크 호건 등이 백 스테이지 권력을 남용하며 현장에서는 갖은 병크가 터졌고, 시청자들이 TV쇼로서 보기에도 납득이 안 가는 '방송 사고' 수준의 사태가 빈발했던 것이다.

1999년 9월 10일 에릭 비숍은 실적 부진으로 해고당하고 말지만 그 이후로도 실적은 지지부진했고 2000년에 WCW는 다시 에릭 비숍을 불러온다.

2.6. 말기

WCW가 취한 마지막 선택은 적장 빈스 루소의 영입이었다. 빈스 루소는 1996년도부터 WWF의 각본을 맡아 애티튜드 시대를 이끌며 시청률 우위를 뒤집은 장본인이었지만, 그의 Crash TV[8]는 WWF 애티튜드 시절의 열화 카피에 불과했으며, 이를 뒤집기 위해 이비드 아켓이나 본인의 월드 챔피언 등극 등 파격적인 사건만 일으키다 각본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청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빈스 루소에 대한 자세한 글 루소 본인은 자기는 너무 늦게 들어왔기에 WCW의 몰락에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몰락을 가속화시킨 책임은 있을 것이다. 스테파니 맥맨은 인터뷰에서 빈스 루소의 아이디어는 빈스 맥맨이 조율을 해줘야 효과적인데, 빈스 맥맨 없이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9]

WCW의 래리 즈비스코(Larry Zbysko)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당시 에릭 비숍이 물러나고 회계사였던 빌 부쉬가 운영하게 된 시점이었는데, 이때 부쉬는 즈비스코에게 자신이 빈스 루소를 "훔쳐왔다"며 좋아했다고 한다[10]. 그러나 즈비스코는 부쉬에게 맥맨이 루소와 계약을 하지 않은건 루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소리 해줘야 했다[11].

빌 골드버그의 173연승 [12][13]과 같은 당시에는 참신했던 스토리를 통해 한 때 반등에도 성공했지만 결국 막장까지 치달은 백스테이지 암투와 각본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트리플 H, 더 락 트로이카 체제의 WWF에 밀려, 결국 2001년에 WWF에 흡수되었다.

WCW가 WWE에 매각될 당시 WCW의 적자가 큰 이유였지만 모기업인 타임워너가 IT 버블붕괴로 인해 재정상황이 안 좋아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각종 유형자산을 매각하면서 앞으로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WCW가 최우선 매각 대상이 된 것.

참고로 WCW 체제 내에서의 마지막 WCW 챔피언은 부커 T였으며, WCW가 WWF에 인수당하기 전 개최된 마지막 매치는 부커T와 스캇 스타이너 간의 챔피언쉽 매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WCW의 마지막 경기로 알고 있는 릭 플레어 vs 스팅의 경기가 열리는 날, WCW는 이미 WWF에 인수되어 있던 상태였기에 이날 쇼는 굳이 따지자면 WWE 관할 내에서 진행되었던 쇼이다. 물론 WCW 쇼의 마지막 경기는 맞다.

youtube(YaocHIpPLPo)

WCW의 마지막 먼데이 나이트로(2001.3.26) 부제는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

2.7. 인수 이후

WWE는 인수 이후 WCW 계열 레슬러들을 팀으로 묶어 대립 항쟁을 하는 등 어떻게든 브랜드 활용을 했으나 월요일 밤의 전쟁을 겪으며 매우 높은 충성도를 지니게 된 WWE 팬들이 WCW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고 WWE 수뇌부는 어떻게든 반응을 살려보려고 WCW 이전에 인수했던 ECW까지 각본에 투입하는 초강경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WCW는 각본상 절대 악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결국 서바이버 시리즈 2001을 끝으로 WCW는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3. 프로그램 목록

  • 새러데이 나잇 (1971~2000) - 원래는 GCW-WCW로 이어져 왔으나, 1992년부터 새러데이 나잇으로 바뀌었다.
  • 베스트 오브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1973~1987) - GCW의 경기를 다시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 매주 일요일마다 방영했다.
  • 월드와이드 (1975~2001)
  • 프로 (1985~1998)
  • 메인 이벤트 (1988~1998) - WWF의 새레데이 나잇 메인 이벤트에 대항하기 위한 프로그램.
  • 파워 아워 (1989~1994)
  •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 (1988~1997)
  • 먼데이 나이트로 (1995~2001)
  • 프라임 (1995~1997) - 미드카더들이 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 썬더 (1998~2001) - WWF 스맥다운과 대척점에 있었던 프로그램.

4. PPV

  • 스타케이드 (1983~2000) - WWF의 레슬매니아와 쌍벽을 겨루던 최대의 PPV.
  •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 (1985~1992, 1995~2000) - 해당 PPV는 WWE에서 2004년에 부활한 바 있다.
  • 벙크하우스 스탬피드 (1988)
  • 할로윈 해벅 (1989~2000)
  • 레슬 워 (1989~1992)
  • 치-타운 럼블 (1989)
  • 캐피탈 컴뱃 (1990)
  • 슈퍼브롤 (1991~2001)
  • WCW-신일본 슈퍼쇼 (1991~1993) - WCW와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교류전.
  • 비치 블라스트 (1992~1993)
  • 배틀볼 (1993)
  • 슬램보리 (1993~2000)
  • 폴 브롤 (1993~2000)
  • 배쉬 앳 더 비치 (1994~2000) - 헐크 호건의 배신과 nWo의 결성으로 유명한 PPV. WWF 썸머슬램과 동급이었다.
  • WCW-AAA 웬 월드 콜리드 (1994) - WCW와 멕시코 프로레슬링 단체 AAA와의 교류전.
  • 스프링 스탬피드 (1994, 1997~2000)
  • 월드 워 3 (1995~1998)
  • 콜리션 인 코리아 (1995) - 미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일하게 북한 평양에서 개최된 경기. 이 대회 역시 WCW와 신일본 간의 교류전이었다.
  • 언센서드 (1995~2000)
  • 호그 와일드 (1996) - 이 경기서 헐크 호건이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에 스프레이로 nWo를 새기는 악행을 이룩한다. 1년뒤에야 렉스 루거가 벨트를 탈환하는데 이 스프레이 흔적을 지우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 솔드 아웃 (1997~2000)
  • 로드 와일드 (1997~1999)
  • 메이헴 (1999~2000)
  • 뉴 블러드 라이징 (2000)
  • 밀레니엄 파이널 (2000)
  • 신(Sin) (2001)
  • 그리드 (2001)

5. 챔피언 타이틀 목록

  •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1~2001)
  • WCW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3~1994)
  •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 (1974~2000)
  •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 (1975~2001)
  •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975~2001)
  • WCW 월드 식스맨 태그팀 챔피언 (1991)
  •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986~1992)
  • WCW 크루져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2001)
  • WCW 크루져웨이트 챔피언 (1996~2001)
  • WCW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1~1992)
  • WCW 우먼스 챔피언 (1996~1997)
  • WCW 우먼스 크루져웨이트 챔피언 (1997)
  • WCW 하드코어 챔피언 (1999~2001)

5.1.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WCW도 WWE의 그랜드슬램처럼 메인 타이틀,세컨드 타이틀,서드 타이틀,태그팀 타이틀 4개의 벨트가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WWE의 그랜드슬램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WCW에서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쉽은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월챔,US,태그팀 타이틀 트리플 크라운만 인정되지만 트리플 크라운+TV타이틀을 딴 선수를 그랜드슬래머로 볼 수 있다.

6. 평가

6.1. 장점

WCW는 WWE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가지 발전을 선보였다. 테드 터너가 밀어주는 막강한 자금력이 투입되면서 WCW는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선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에피소드 시간을 두시간으로 늘린 것이었는데, 이는 한 위클리 쇼에 더 많은 레슬러들이 등장해 다양한 경기를 선보일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는 이게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한 해동안 방송하는 PPV 수도 과거의 WWE보다 많았으며 워 게임등의 독특한 기믹 매치,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활용[14], 나이트로에 이어 썬더라는 두번째 쇼를 방송[15][16], 그리고 매주마다 빅 매치급 경기[17]를 선보이는등 신선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에릭 비숍은 자신도 악덕 이사 기믹으로 등장했는데, 이는 몬트리온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마흔이 악덕 사장 기믹을 선보인 것을 앞섰다. 여기에 최고의 인기 스타들이었던 nWo는 그 전의 스테이블들과는 달리 정말로 단체를 장악하는 것 같아 보였기에 스토리 라인도 흥미있었다. 거기다가 녹화가 아닌 라이브쇼로 방송했으니 현장감도 뛰어났다. 테드 터너의 자금력에 에릭 비숍에 양아치공격적인 전략으로 WCW는 WWE를 앞서갔었다. 그 이외에도 파워 플랜트라는 신인 양성소를 만들기도 했다.[18][19]

6.2. 문제점

그러나 이런 장점들도 빛이 바랠 정도로 단점이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사로, 사장이 레슬링에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젊어서부터 레슬링 업계에서 일한 빈스 맥마흔과는 업계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보니 초기에는 영 삽질을 거듭했다. 결국 부사장 에릭 비숍이 실질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그런데 에릭 비숍은 nWo의 성공에 취해서 몇년간 nWo만 우려먹었는데, 첫등장 이후 nWo가 갈라지고 다시 붙고...이런 식으로 몇년을 끄니 처음에는 신선했을지라도 결국엔 지겨워지게 되었다. 에릭 비숍의 이런 인성은 당시 녹화 방송이던 RAW를 스포일링해서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 것을 막는 부정행위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을 비웃다가 오히려 시청율 관광을 당하는 인과응보로 이어진다. 거기다가 크루저웨이트의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에릭 비숍과 nWo 패거리는 그들을 들러리로만 보고 무시, 모욕했으며 크리스 제리코가 이런 대접을 못참고[20] WWE로 간 뒤[21] 래디컬즈[22]마저 건너가자 한창 WWE로 기울던 시청율이 더욱 넘어가기 시작한다. 케빈 내쉬등은 크루저웨이트를 난쟁이라 모욕하며 WWE로 가봤자 별 문제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크루저웨이트 경기들을 매우 즐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크루저웨이트 계통의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던 스타들을 보기 위해 WWE로 채널을 돌렸다. 거기다가 WWE보다 빅맨우대가 더욱 심했는데, 이쪽은 아예 케빈 내쉬와 스캇 홀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서[23] 후배 레슬러들이 푸쉬를 받기 힘들게 되어있었다. 아예 WCW는 베테랑과 그외가 쓰는 락커룸이 분리되어 있었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기껏 브렛 하트를 데려왔더니만 에릭 비숍은 그를 어떻게 써야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등[24], 인사권의 문제는 심각했다[25]. 베테랑들의 텃세, 인사권의 문제, 실질적인 총책임자였던 에릭 비숍의 만용 등의 문제가 있던 WCW는 이를 바짝 쫓아온 WWE가 애티튜드 시대를 시작하고, 믹 폴리가 WWE 챔피언이 된 것을 WCW에서 조롱했다가 0.6의 시청율이 WWE로 옮겨간 뒤는 다시 역전할 힘을 내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

더 멀리 갈것 없이 WCW에서 쓸모없다고 방출시키거나 잡지 않았던 인재들이 WWE로 간뒤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인물들중에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등이 있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면, 사내정치(친목질)이 심화되면서 망조를 탓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지나친 연예인 게스트 스타 남용에 미드카더들 푸대접, 한 명의 스타에만 매달리는 운영에 각본 조절권한에 의한 각본의 붕괴등도 큰 문제였다.

7. 여담

WCW를 멸망시킨 직후, 빈스는 여유를 찾았는지 또 한번 거대한 투자를 하는데 바로 XFL(...)

먼 훗날 헐크 호건에릭 비숍의 권력 행사 등의 전철을 TNA가 그대로 답습했고 똑같은 상황으로 망해가고 있다.

2013년에 WWE에서 DVD판매량 조사결과 1위는 레슬매니아29였으나 2~4위까지는 WCW의 베스트 DVD가 상당한 판매량을 올리고있다.인수되어 사라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워낙 좋은선수들이 거쳐간 단체라 아직까지도 팬들이 상당한듯.특히 WCW에서 큰인기를 누린 빌 골드버그의 DVD는 트리플 H의 DVD보다 2주 늦게 나왔음에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다시 복귀해야한다.

에디 게레로,크리스 제리코등이 대놓고 WCW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깔 정도로 베테랑들에 좌지우지되는 곳이었다. 덕분에 WCW라면 이를 가는 레슬러들도 꽤 있다. 브렛 하트크리스 벤와는 WCW를 보고 열정이 없는 곳이라고 깠으며 에디 게레로는 케빈 내쉬의 텃세덕에 그가 있을때가 가장 레슬링이 하기 싫었다고 얘기했다. 이때문인지 이들은 WCW 출신임에도 WWE에서 챔피언까지 오르는 등 이적생 푸시를 어느정도 받았다.

반면 이후 2003년부터 2004년에 이르는 시기, 더 락과 스톤콜드가 실질적인 커리어 은퇴를 하자 각본 컨트롤 권한을 가진 트리플 H는 에볼루션을 앞세워 스캇 스타이너부터 케빈 내시, 부커 T에 이르기까지 전술한 선수들과 달리 WCW에서 메인이벤터로 군림했던 선수들을 속된말로 아작내며 챔피언 장기집권을 이루어낸다.[26]끝판왕 빌 골드버그 상대로도 좀 털리긴 했지만 결국 온갖 비열한 수단으로 때려눕혀 타이틀을 뺏기까지 했다. WCW 출신 메인이벤터들을 때려눕힌 그의 행보는 비록 데뷔는 WCW에서 했지만 찬밥신세로 1년만에 방출됐던 앙금과, 그 시절 WWF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 WCW에 대한 작은 뒤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연장선인지 WCW가 망한지 10년도 지나 이제 마지막 WCW레전드로 남아있던 스팅이 WWE에 나타났을때 트리플 H와 대립하면서 HHH는 자신을 WWE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면서 WCW의 잔재인 스팅을 쓰러뜨리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국내에서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iTV를 통해 먼데이 나이트로를 방영한 적이 있다.

8. WCW를 거친 레슬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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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는 NBC 계열이다.
  • [2] 거기다 ECW역시 주요 선수들을 많이 뺏겼다. 폴 헤이먼은 아예 이를 갈정도. 근데 데려온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을 못해 ECW로 다시 가버린 선수도 많았다.
  • [3] 예로 렉스 루거. 루거는 자신은 WWE와 빈스 맥마흔과 좋은 관계였는데 그들을 비난하라고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지만 에릭 비숍은 그 쪽이 더 임팩트있는 데뷔를 만들것이라고 얘기했다
  • [4] 빈스 맥마흔이 몬트리올 스크류잡까지 하게 된 것은 이 사건을 보고 WCW가 브렛에게 비슷한 짓을 하게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있었다
  • [5] 이 과정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진다.
  • [6] nWo와 나머지간의 대립으로만 몇 년을 우려먹었다(...)
  • [7] 저 유명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나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와 같이 후일에 WWE 타이틀을 거머쥐며 천하를 호령했던 레슬러들이 WCW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 [8] 자극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DX의 생방송중 스트립쇼, 발 베니스의 성기 절단 사건, 마크 헨리매 영과의 섹스 스캔들 & 임신 각본등 섹스와 폭력, 범죄로 얼룩진 각본은 다 그가 기획한 각본이다.
  • [9] WWE 50에서
  • [10] 당시 루소는 WWF측과 계약도 안된 상태였다
  • [11] WWE 50의 월요일 밤의 전쟁: The End 챕터에서
  • [12] 패가 없었던건 맞는데, 문제는 뻥튀기 기록이라는것. 한주 사이에 10연승이 추가된 일도 있었다고.
  • [13] 케빈 내쉬에게 패하면서 연승행진이 끝났다. 그런데 내쉬가 승리한 이 경기도 깨끗하게 끝났다고 보기 힘든 게 심판이 한눈 파는 사이 스캇 홀에게 전기충격기 로 공격을 당했다.
  • [14] 특히 기이할 정도로 대단한 기량의 크루저웨이트 선수들이 한 시대에 활동했다.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크리스 제리코등이 전부 WCW 출신이다. 이 외에도 루챠계에서 손꼽을만한 루챠도르들이 많이 WCW를 거쳐갔다.
  • [15] 이에 맞서 WWE도 스맥다운을 시작하게 된다.
  • [16] 사실 이 시점에서 에릭 비숍은 나이트로와 썬더를 나누어 현재 WWE가 실시하는 브랜드 익스텐션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nWo 로스터와 나머지 로스터로 분리할 생각을 하고있었던것. 아무리 에릭 비숍이라도 nWo만 나오는 쇼는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고.
  • [17] 당시 WWE에선 위클리 쇼때는 메인 이벤터들이 자버만 상대할 뿐이었다. WCW에서 메인 이벤터들이 위클리 쇼에서도 서로 싸워댔다. 하지만 너무 자주 싸워대다보니 nWo처럼 신선함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 [18] 여기를 거쳐간 선수로 빌 골드버그, AJ 스타일스등이 있다. 의외로 밥 샙도 이곳에서 수련을 받았었다.
  • [19] 다만 여기서는 선수들에게 기술을 굉장히 과격하게 걸도록 가르쳤기에 부상자가 많이 나오고 출신 레슬러들이 동업자 정신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렛 하트역시 이런점을 깠다.
  • [20] 자서전인 라이언즈 테일을 보면 스캇 홀과 충돌한 얘기등이 자주 나온다.
  • [21] 거기다가 등장도 엄청나게 화려하게 등장하자 WCW에서 무시당하던 레슬러들이 자신들도 WWE로 가면 저런 대접을 받을 거라고 환상을 품게 되었다
  • [22]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새턴, 딘 말렝코의 4인조 팀으로 절친한 관계이기도 했다.
  • [23] 제리코의 자서전에 따르면 스캇 홀은 제리코 등에게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 보러 오는 거니까, 니들은 대충 해라"라고 모욕했다고. 그러나 현실은 크루저웨이트 보러 온 사람도 많았다.
  • [24] 처음 등장하고나서 브렛이 했던건 특별 심판이었다(...)
  • [25] 빈스 맥마흔은 브렛 하트를 두고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를 만들수 있으며 WCW가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건 자신에게 다행이었단 얘기를 했을 정도였다. 몬트리올 스크류잡까지할 정도로 걱정했는데 허탈했을지도
  • [26] 그렇다고 트리플 H에게 안 맞은 선수가 멀쩡했냐...하면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참조. 이쪽이 수백배는 더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