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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11

last modified: 2016-09-14 14:54:20 Contributors




이건 해군용 F-111B.

F-111 Aardvark(땅돼지) =아드바크
혹멧돼지와 친척??
대한민국에서 下川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Contents

1. 주요 제원
2. 개발 배경
2.1. 로버트 맥나마라의 중재
3. 성능 및 활약상
4. 파생기
5. 그 외


1. 주요 제원

2. 개발 배경

1964년 미 국방부의 TFX(Tactical Fighter Experimental) 사업을 통해 개발된 장거리 공격기.

원래는 미 공군미 해군이 같이 쓸 전투기로 개발될 예정이었지만, 해군형의 F-111B는 항공모함에서 쓰기에는 너무나 무거웠고 무게를 줄였더니 원래의 목표였던 공용 전투기라는 목표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심지어 부품 공용화율이 30% 미만이었다(...) 문제가 그것 하나 뿐이라면 어찌어찌 아쉬운대로 그냥 쓸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정비소요나 성능미달 등의 문제가 계속 이어져 결국 해군용은 취소되고 공군용만 생산되었다.[2] F-111B는 취소되었지만, 여전히 구 소련의 폭격기들로부터 항공모함 전단을 지킬 방공전투기가 필요했던 미 해군은 F-111을 위해 개발되었던 AN/AWG-9[3] 레이더와 AIM-54, 그리고 TF-30 엔진을 가지고 걸작 전투기인 F-14 톰캣을 개발하게 된다. 여기서 F-111B 대신 톰캣이 개발됬다는것에서 알 수 있듯이, F-111B는 F-111A과 달리 제공 전투기였다. 세부스펙 등에서 차이가 상당히 많이나서 위키피디아에선 아주 별도 항목이 존재한다. 톰캣에서 쓰인 공대공 레이더와 AIM-54 피닉스 미사일이 6개 장착됬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미 공군에 채택된 F-111은 엄밀히 말하자면 전투기보다는 공격기나 전술폭격기에 가까웠다. 탑재된 레이더는 지상 탐색만 가능하고 공대공 전투는 불가능했으며 공대공 무장도 자체 방어용 AIM-9를 장착하는 것이 다였다. 대신 가변익을 채택해 뛰어난 저공침투능력을 보여주었으며, 큰 덩치 덕에 긴 항속거리와 큰 무장탑재량을 가지고 있어 먼 거리까지 날아가 다량의 지상공격 무기를 적에게 안겨주고 돌아올 수 있었다. F-111은 F-15E가 개발되기 전까지, 서방 전투기들 중 무장탑재량이 가장 큰 전투기였다.

F-111은 공격기로서는 훌륭하지만 공중전 전투기로는 빵점인, 이름만 전투기이고 실제로는 장거리 공격기였다. 그러나 제공전투기를 트럭으로 쌓아두고 있던 미 공군은 딱히 F-111을 제공기로 쓸 필요가 없었으므로 F-111을 매우 잘 써먹었다.

2.1. 로버트 맥나마라의 중재

F-111은 초기 개발과정에서 후덜덜한 일화가 있다. 당시 개발사양을 정하는 과정에서 해군이 기존의 공군 제안에 대해 항공모함에서 쉽게 운용할 수 있게 기체 길이를 작게 조절해야 한다며 대립했다(공군은 90피트, 해군은 56피트 주장). 그런데, 이에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장관은...

(56 + 90) ÷ 2 = 73

...라는 중재(?)를 내려 기체의 크기를 73피트로 정하고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우와, 대인배...(…)

물론 맥나마라의 주먹구구에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당시 미 의회가 군 예산이 늘어나지 않길 바라던 터라 공군형과 해군형을 따로 만들 심산이었던 양 군에게 '서로 타협하지 않으면 둘 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내린 일종의 엄포였는데, 공군과 해군이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자 정말 배를 째버리게 된지라 저런 도 아닌 기체 길이가 나오게 된 것이다.

F-4를 도입한 미 공군이 끝까지 F-110 스펙터라면서 뻗대다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F-4 팬텀II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도 맥나마라 재직 시절의 에피소드다.[4]

3. 성능 및 활약상

F-111의 선회력은 폭격기 수준이었지만 가변익과 대추력 엔진 덕에 가감속 능력과 상승/강하능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당장 자기가 때릴 수 있는 거리까지만 쑥 들어가서 두들겨 패고 반격하기 전에 빠져나가는 놈을 뭔 수로 잡겠는가.



동시에 폭격기 수준의 탑재량과 초저공 침투능력 때문에 소련 쪽에서는 거의 사신처럼 여기던 항공기이기도 하다. 베트남전 당시 초 저고도로 레이더망을 피해 이동하여 원하는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식[5]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는데, 목표가 된 시설 쪽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기습공격을 당한 셈이다. 이런 능력은 1986년 리비아 공습 당시에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 때문에 당시 북베트남에서 F-111을 죽음의 휘파람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 시절 저공 침투시 고도는 그야말로 "나무 한그루 높이" 수준이었다 한다(...) 실제로 베트남전의 손실을 보면 중/고고도에서 격추된 F-111보다 저공침투 도중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에 의하여 손실된 F-111이 더 많았다.

베트남전에서의 F-111의 운용사례를 보자면, 철저한 야간저공침투로 진행되었다. 68년에는 '컴뱃 랜서'라는 프로젝트로 본토에서 몇 대를 차출시켜 북폭임무를 수행했다. 철저하게 단독 침투로 진행되었고 성과도 대단했으나 68년에는 기체의 피로골절에 따른 파괴로 추락사고가 두차례 일어났고 이로서 68년 작전은 중지되었다. 그러나 1972년 라인배커 작전이 시작되면서 F-111은 주력인 B-52 폭격기의 야간 대공습 수행 전 사전정지 작업을 수행했었다.

F-111은 야간 저공침투로 B-52에 위협이 되는 북베트남 공군의 주요 비행장을 폭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이 북베트남 공군의 비행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요격기의 출격을 막아주는 동안에 B-52가 무사히 폭격을 마치고 퇴각한다는 컨셉이었다.

물론, 이런 작전에도 불구하고 요격기가 이륙할 수는 있었지만 F-111의 폭격에 의한 비행장 마비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다만 야간저공침투 임무의 특성상 야간 착각에 따른 지면충돌 사고로 인한 손실이 있었고, 저공침투로 인해 대공사격 피해가 상당수 있었다. 다만, 손실에 비해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절대 손실 자체도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F-111의 현역기간 최대의 업적으로 분류될 만한 이벤트를 꼽자면 1986년 리비아 공습 '엘도라도' 작전과 1972년 하노이 북폭작전이 있다고 하겠다.

개발 당시 전투기들이 룩다운 슛다운 능력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공으로 침투해봤자 미그기에게 걸려 박살나기 좋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한발자국 더 앞서나가야 한다'라는 주장의 근거였을 뿐이며, 실제로 미국이 저공침투를 포기하게 된 것은 중동전쟁에서 구 소련제 쉴카맨패즈 미사일들이 저공비행하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면서 저공침투도 별로 안전하지 않음이 알려지게 되면서였다. 당시 이스라엘군 전투조종사들의 실력이나 전투수행능력은 지금도 그렇지만 미군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까지 평가받던 시절이라, 쉴카와 휴대용 방공미사일에 의한 피해자료는 미군에게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이후의 군용기 개발은 아예 스텔스기로 옮겨가게 된다.[6]


사진이 아니다. Dru Blair가 그린 그림이다.


당연히 저고도 침투는 상당히 오랫동안 효과적인 공격방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렇지 않다면 파나비어 토네이도Su-24는 나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 걸프전 당시 이라크 공군의 MiG-29에 포착된 F-111이 폭탄 버리고 날개 접고 초저고도로 내려가 도망치자 MiG-29가 추격을 포기했다고 한다.

한편, F-111은 세계 최초의 초음속용 터보팬 엔진인 TF-30을 채택한 덕에 덩치에 비해선 연비가 좋고, 그래서 항속거리도 굉장히 길다.

그러나 F-111은 가변익과 터보팬 엔진 같은, 설계당시에는 아직 기술적 안정화가 덜 되었던 기술을 사용한 덕분에 개발비도 많이 들었고 트러블도 많아 굉장히 개발/제작 운용이 까다로운 기종이 되어버렸다. 또 개발 당시 욕심을 부려가며 개발했던 전자장비도 트러블이 많았다. 이런 문제들을 수정하느라 생산도중에 설계가 대규모로 변경되기도 했다. 더불어 이러한 신기술을 사용한 F-111은, 생산비 만큼이나 유지/보수에도 많은 돈이 들었다. 이렇게 그렇잖아도 비싼 비행기는 돈먹는 하마가 돼버렸고 결국 대규모 배치에는 실패했다. 채용한 나라도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뿐이었다. 처음에는 영국도 채용하려고 했고, F-111의 채용을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하던 장거리 침투공격기 TSR-2 개발을 취소하기까지 했으나 F-111의 가격이 계속 올라 결국 TSR-2도, F-111도 도입하지 못했다. TSR-2의 시제기가 F-111을 능가하는 저공침투 성능을 보여주었던 점을 생각하면 아까운 일이다.[7]


단, 장거리 공격 임무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은 F-111을 애지중지했다. F/A-18로 같은 양의 폭탄을 실어나르려면 2개 편대에 공중급유기까지 붙여줘야 하지만 F-111이면 두 대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F-111C는 올림픽 등의 대형 행사에서 축하비행을 하며 불쇼[8] 선보이고 있다. 제작사에서도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권고했지만 워낙에 인기가 좋으니… 나라 자체가 워낙 심심한 나라라 이런 서비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미군 소속 F-111이 마지막으로 활약한 것은 걸프전이었다. 이때는 이미 F-111의 후계기인 F-15E가 미 공군에 배치된 상황이었으나, 당시 F-15E는 야간 지상공격 및 레이저 유도폭탄 조준을 위한 LANTIRN 포드의 수량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F-111F이 레이저 유도 포드인 페이브 택을 탑재하고 레이저 유도폭탄 배달에 나섰다. 이때 F-111F은 레이저 유도폭탄을 이용하여 기갑차량을 비롯한 지상 차량공격에서도 눈부신 전과를 보여줬으며, 매버릭 셔틀 노릇을 하던 A-10과 함께 이라크의 차량 대부분을 집어 삼켰다. 많은 무장을 탑재할수 있고 장시간의 체공능력이 좋은 기종이어서 주로 CAS 임무에 투입되어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사실 탱크킬러라는 말은 A-10 활약 이전에 F-111F의 별칭 중 하나였다.


또한 긴 항속거리와 넓은 내부공간과 두 명의 승무원이 탑승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EF-111 Raven이라는 전자전기로 개조되기도 했다.

EF-111는 무장능력은 많이 줄었지만 걸프전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해군의 EA-6B를 능가하는 세계 최강의 전자전기였다. 하지만 기령 문제 때문에 결국 1998년 전량퇴역했고, 미 공군은 해군과 해병대에게 전자전기를 빌려쓰는 처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놀랍게도 EF-111은 현대의 비전투/비무장 항공기 중 유일하게 격추전과가 있다. 미라주 F1에 쫒기던 EF-111이 가변익기의 특기중 하나인 초저공비행으로 회피하다가 뒤쫒던 미라주가 어이없는 기동에 실속에 빠져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당시 미라주 F1을 격추시킨 기체에는 킬마크(...)까지 붙었다. 흠좀무.

라이벌 기종으로는 소련 수호이Su-24 펜서가 있다. 이쪽도 장거리 저공침투 공격기인데, 가변익에다가 조종사 2명이 옆으로 나란히 앉는 좌석 배치까지 F-111과 똑같다. SU-24도 2008년에 저공 침투를 하다 격추당한다...

호주 공군도 F/A-18E/F를 도입하면서, F-111은 2010년 12월 3일에 화려한 마지막 불쇼 후 퇴역했다.

4. 파생기

  • F-111A: 미 공군이 채용한 최초의 양산형. AN/APQ-110 지형추적 레이더, AN/APG-113 공격 레이더, ALQ-20 항법 시스템을 갖췄다.
  • F-111B: AIM-54 피닉스 미사일과 AN/APG-9W 레이더를 장비한 미 해군 사양.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실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 F-111C: 호주 공군 사양. AN/APG-169 공격 레이더와 APG-171 지형추적 레이더, H423 링 자이로식 INS, GPS 수신기, 페이브택 FLIR/레이저 포드 등을 장착했다.
  • F-111D: A형의 개량형으로 신형 항전장비를 장착했다. 하지만 여기에 이런저런 말썽이 많아서 원래보다 한참 늦은 1974년이 되어서야 실전배치가 시작됐고 그 수도 96대에 불과하다.
  • F-111E: D형이 등장하기까지의 공백을 메꾸기위해 등장한 땜빵용 기체지만 신뢰성은 오히려 D형보다 훨씬 높아 인도시기가 더 빨랐다. 총 94대 생산.
  • F-111F: F-111의 최종양산형.
  • FB-111: 미 공군 전략공군사령부에 배치된 F-111의 핵공격용 사양. SRAM 핵미사일 4발로 무장하고 B-52가 소련 영내로 침입할 때 그 침입로 상에 있는 레이더 사이트/공군기지들을 선제 핵타격하여 침입로를 뚫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B-1 랜서의 등장과 냉전종식의 여파로 F-111G 사양으로 개수되어 전술임무에 투입되었다. 1993년에 퇴역해 봉인되자 호주 공군이 그 일부를 인수해 사용했다.
  • EF-111 레이븐: EB-66의 후속기로 등장한 전자전 사양기.

5. 그 외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20기의 F-111이 아이다호주에 있는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 대구 비행장으로 전진배치되었다. 이후 1989년에도 대구 비행장에 전진배치되었는데, 이를 뉴스로 방송하던 한국의 모 아나운서가 'F111기'라는 글씨를 흘려쓴 것을 착각해서 '하천기'(F111을 下川이라고 착각)라고 읽은 사례가 있었다.[9]

  • 소설 붉은 폭풍에서 맹활약한다. 소설 속의 비중만 보면 F-15보다도 더 클 정도다.

  • 지구의 모든 비행기를 대표해서 그 비행음이 녹음되어 보이저 탐사선의 레코드에 새턴 로켓의 발사음과 함께 실려있다.#

  • 호주 공군 F-111은 북한군 선박을 날려버린 적도 있다. 호주 근해에서 북한 선적의 선박을 압류했는데 정작 북한에서는 자기들은 관련없다면서 발뺌을 했다. 결국 처분은 호주 정부가 맡게 되었고 어차피 쓸모없으니 사격훈련에나 써먹자는 생각으로 처분, 폭탄을 투하해서 날려버렸다.


  • 1970년대 초반 FB-111은 실제 핵무기를 탑재한 작전시 핵섬광으로 인한 시력손상을 막기 위해 이런 물건을 조종사에게 지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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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격적인 전술폭격용 버전인 FB-111 한정
  • [2] 사실 F-111은 과거 미국 지도층의 잘못된 고정관념에 따라 설계된 전투기였다. 전투기 주제에 몸무게가 40톤이나 나갔으며 추력대 중량비는 0.7 수준에 선회능력은 전투기로써는 적절하지 못했다. 당시 다른 센츄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술 핵공격을 위한 전투기'란 쓰잘데기없는 패러다임(?)으로 인하여 덩치 완전 크고 항속거리 완전 길고 무장탑재량 완전 많고(...)라는 -무식한 구상으로 나온 대표적인 전투기가 F-111인 것이었다.
  • [3] 무려 400kg의 대형 레이더로, MiG-31의 자슬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투기에 실린 최대 크기의 레이더였다. 크기만큼이나 성능도 확실해서, 24개의 목표를 추적하고 6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었다.
  • [4] 맥나마라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군의 속사정을 통계와 수치분석으로 날카롭게 헤집어대기로 유명한, 뼛속부터 합리주의자인 인물이다. 포드 시절(국방부장관 부임 직전에 사장까지 지냈다) 자동차에 요즘 우리가 매는 형태의 안전벨트를 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국방부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는 세계은행 총재를 장기간 역임했다. (다만 세계은행 총재로 간 것은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책임을 지고 물러난 '좌천'에 가깝다.)
  • [5] 덩치가 워낙 커서 레이더에 쉽게 잡힐 것같지만, 산등성이에서 계곡 사이로 초고속 비행하는 비행기를 레이더로 잡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기타 이유로 포착당했다고 해도 상대가 대응하기 이전에 방향을 바꾸고 최고속도로 도망가기 시작하면 이걸 잡을만한 물건도 거의 없다.
  • [6] F-111이 개발될 당시 소련 공군과 방공군의 주력은 MiG-21과 Su-9 ~ Su-15 시리즈 정도였고, 이후 나온 MiG-25는 이착륙 제외하면 10000ft 이하로 내려올 일이 없었다. 소련 최초의 조기경보기 Tu-126도 제대로 된 저고도 탐지능력을 갖추는데는 실패한 상태였고, 애초에 룩다운/슛다운 능력 자체가 정확한 도플러 필터링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라 60~70년대 기술로 구현하기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제대로 이걸 완성시킨 건 F-15의 APG-63이 최초였다. 즉, 룩 다운 슛 다운 능력 때문에 구식화된 것은 아니고 대공 방공망 시스템의 발달로 저공침투 자체의 위험도가 올랐던 것이다.
  • [7] TSR-2의 모형사진이다.
  • [8] Dump and Burn이라고 한다. 두 개의 엔진 노즐 사이에서 연료를 약간 흘려(dump) 이 연료에 불이 붙으면(burn) 긴 불기둥이 기체 꼬리에 달린다.
  • [9] 출처 -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이계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