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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 펑크

last modified: 2017-01-31 17:13:24 Contributors

이 항목은 본명인 필 브룩스라고 쳐도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츠 펑크, 필백수등으론 들어올 수 없다


It's clobberin' time![1]

프로레슬러 시절은 인디 프로레슬링의 황제에서 메이저 프로레슬링계의 황제로 성장한 선수. 하지만 업계의 정점에 있을떄 이때까지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떠나버린 인물.

WWE 소속 프로레슬러이자 UFC 소속의 격투가

Contents

1. 프로필
2. 레슬러로서의 활동
2.1. 데뷔 및 초기활동 (1999~2000)
2.2. IWA: Mid-South (2000~2005)
2.3. ROHTNA (2002~2005)
2.4. WWE에 입성하다
2.4.1. ECW에서의 활동 (2006~2008)
2.4.2. RAW로의 이적 (2008~2009)
2.4.3. 악역으로 자리를 잡다. (2009)
2.4.4. S.E.S. - Straight Edge Society (2010)
2.4.5. 다시 돌아온 RAW (2010)
2.4.6. New Nexus (2010 ~ 2011)
2.4.7. Voice of the Voiceless (2011)
2.4.8. Best In The World (2011 ~ 2012)
2.4.9. 434 Days WWE Champion (2012 ~ 2013)
2.4.10. I am THE ONE in TWENTY and ONE (2013)
2.4.11. 폴 헤이먼과의 대립 (2013)
2.4.12. Authority와의 대립 (2013 ~ 2014)
2.4.13. 갑작스런 탈단과 은퇴 (2014)
3. 은퇴 후 근황
4. 종합격투기
5. 에피소드와 기타사항

1. 프로필

2011~2012년의 모습[2] 2013년 6월 ~ 2014년 1월

본명 Phillip Jack "Phil" Brooks
별칭 Straight Edge Savior / Superstar
The Second City Saint / Savior
The Voice of The Voiceless
The Best in the World
생년월일 1978년 10월 26일
신장 180cm (5'11") [3]
체중 77kg (170 lbs)
출생지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피니쉬 무브 GTS[4]
아나콘다 바이스[5]
펩시 플런지[6]
테마곡 This Fire Burns[7] (2006~2011)
Cult of Personality[8] (2011~2014)
주요 커리어 WWE 챔피언 2회
월드 헤비급 챔피언 3회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WWE 월드 태그팀 챔피언
ECW 챔피언
머니 인 더 뱅크 우승 2회
ROH 월드 챔피언
ROH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2011년 WWE 슬래미 어워드 올해의 슈퍼스타
존 시나 CM 펑크 존 시나

거친 이미지의 프로레슬링과 어울리지 않게 술, 담배, 약물을 안한다는 Straight EDGE라는 기믹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하드코어 펑크 밴드 Minor Threat의 콘서트를 갔을 때 들은 노래 "Straight Edg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Straight Edge는 실제로 일상에서 알콜과 약물을 금하는 생활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며 실제 생활에서도 술, 담배, 약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2. 레슬러로서의 활동

2.1. 데뷔 및 초기활동 (1999~2000)

WWF 시절 로디 파이퍼가 자신의 토크 쇼인 파이퍼스 핏에서 지미 스누카에게 코코넛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봤을 때부터 프로레슬러를 꿈꾸었다. 90년대 중후반 백야드 프로레슬링 단체인 Lunatic Wrestling Federation에 입문하였는데 CM 베놈이란 링네님을 가진 친구(펑크와 달리 이 친구는 얼마안가 곧 그만두었다.)와 함께 결성했던 Chick Magnet이란 태그팀에서 CM을 따왔고 여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펑크를 더하여 CM Punk란 링네임을 만들어 사용했다.[9]

99년에 시카고에 위치한 레슬링 도장인 '스틸 도미니언'에서 정규 훈련을 받았는데 관장이었던 에이스 스틸에 따르면 관중들과의 커넥션은 뛰어나도 운동 신경이 정말 둔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도장에 들어와 절친이 된 콜트 카바나는 대학 풋볼 선수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추고 있어 둘이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고...

2.2. IWA: Mid-South (2000~2005)

IWA(Independent Wrestling Association): Mid-South란 단체에서 콜트 카바나, 크리스 히어로, AJ 스타일스, 에디 게레로 등과 대립하면서 탑랭커로 성장해나갔고 이 단체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과 헤비급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IWA-MS에서는 자신도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단체내에서 유일하게 데스 매치를 가지지 않은 선수 중 한명이다. IWA-MS는 CZW 못지않게 데스 매치로 유명한 단체인데, 이런 단체에서 CM 펑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결국 IWA-MS에서도 노멀 매치를 볼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이 때 크리스 히어로와의 55분 TLC 경기, 93분 3판2선승제 경기, 그리고 무승부로 끝난 몇 번의 60분 철인 경기를 했었다. 이쯤되면 인간이 아니다.

한 때 이안 루튼이 히어로 등을 푸대접하는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IWA 활동을 중단하고 2003년 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ROH에서 활동했지만 6월 복귀하여 2005년 WWE와 계약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그의 마지막 등장은 2005년 7월 2일 무승부로 끝난 딜리어스와 60분 철인경기였다.

2.3. ROHTNA (2002~2005)

처음에는 선역으로 ROH에 입성했으나 이내 빠르게 턴힐하여 레이븐과 여러차례 NO DQ 매치를 치르었다. 이 대립은 2003년까지 지속되며 올해의 탑 대립에 선정되기도 했다.[10] 한편 거의 동시에 TNA와도 계약하여 활동하였는데 이 때는 레이븐의 스테이블인 더 게더링의 멤버로 활동했다.

한편 ROH에서 콜트 카바나와 세컨드 시티 세인츠[11]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어 태그팀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당시 챔피언이었던 사모아 죠에게 도전하면서 본격적인 메인급으로 올라서는데 특히 2004년 사모아 조와 치뤘던 60분 철인매치는 각종 프로레슬링 관련 사이트에서 별점 5개를 아끼지 않은 명경기였으나, 정작 현지 ROH 팬들의 평가 자체는 극과 극이다.[12] [13][14]

사모아 조와의 대립은 당시 기울여져가던 ROH를 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ROH는 前 사장이였던 랍 페인스테인의 성추행 사건과 이것을 계기로 TNA의 눈빛으로 ROH의 메인 스타들 중 TNA를 병행하던 선수들을 TNA 전속으로 묶어버렸다. 당시 ROH의 각본진이였던 게이브 사폴스키마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회자했을 정도. 그리고 게이브 사폴스키는 당시 본인이 ROH의 에이스로 낙점지어놨던 AJ 스타일스의 대체자를 찾아야만 했고, 그렇게 당첨된게 브라이언 다니엘슨, 호미사이드와 당시 챔피언이던 사모아 조, 그리고 CM 펑크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사모아 조 vs CM 펑크의 경기가 열렸는데(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두 사람의 첫 경기인줄 알지만, 사모아 조 vs CM 펑크는 그 전에 ROH에서 열렸었다. ROH 챔피언쉽으로. 사모아 조의 무시무시한 드래곤 스크류 남발로 CM 펑크의 패배로 끝났었다.) 이 경기는 60분 시간초과 무승부로 끝났다. 게이브 사폴스키는 이 경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흥분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대립을 하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60분 철인매치까지 가졌으나 여기서도 승부를 보지 못하여, 결국 All Star Extravaganza II에서 노 타임 리밋으로 경기를 가졌는데, 여기서 사모아 조가 31분만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 흥행에서 열린 경기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5년 TNA 영국 투어에서는 사모아 조[15]와 근 30분에 달하는 시간의 엄청난 명경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만 TNA의 영국투어라기 보다는 당시 흥행은 TNA가 영국 단체와 합동 흥행을 가진 것이고, 흥행 명 자체도 TWC였다. 또한, CM 펑크가 TNA와 관계를 끝낸 것은 테디 하트와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였는데, 한 레스토랑에서 펑크가 테디 하트와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자[16] TNA는 두 사람을 징계해버렸고, 이것을 빌미로 펑크는 TNA에 다시는 출연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TNA에서 펑크의 ROH 출연을 막으려고 했기에 TNA를 그만뒀다고 한다.

메이저 단체로의 이적을 노리던 중 결국 2005년 6월 초에 WWE와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6월 18일 오스틴 에리스와 ROH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경기를 하기로 했는데 모두가 WWE행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별전이나 다름없었다...는 건 훼이크고 펑크가 이겨버렸다. 때문에 WWE에 계약한 다음에 ROH 챔피언에 등극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버렸다.(당시 에리스도 TNA와 계약.) 거기다가 한술 더 떠 경기 종료직후 타이틀을 들고 WWE로 가겠다, ROH 엿먹으라는 식의 프로모를 함으로써 완전히 악역전환. 이것을 빌미로 CM 펑크는 또 한번 초찌질악역으로(머리도 보라색으로 염색) 진짜 찌질하게 놀았다.[17] 제이 리썰과의 ROH 챔피언쉽에서 카키나 클러치를 쓰며 사모아 조를 도발하던 모습은 압권. 크리스토퍼 다니엘스와 60분 무승부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결국 다니엘스, 사모아 죠, 제임스 깁슨[18] 과의 4자간 경기에서 깁슨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후, 태그팀 파트너 콜트 카바나에게 져주면서 ROH를 떠났다.

2.4. WWE에 입성하다

2.4.1. ECW에서의 활동 (2006~2008)

2005년 WWE 산하단체인 OVW에 입성, 2006년 TV 챔피언 및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며 활약을 보여주던 펑크는 8월에 본격적으로 ECW 브랜드를 통해 WWE에 공식 데뷔한다.[19] 특이하게도 WWE 공식 데뷔는 8월 1일 ECW TV쇼에서 했는데, 이 날 열렸던 장소는 ECW의 본거지 해머스테인 볼룸이다.[20]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디 단체에서의 활동을 봐서 실력을 알고 있던 ECW 광팬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경기를 치뤘고, 스티브 리차드를 아나콘다 바이스로 탭아웃 시키면서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선역 이미지를 고수해오고 있던 CM 펑크는 뉴 브리드라는 신생 스테이블에 가입, ECW 원로들과 대립하며 악역이 되나 싶었지만 이는 사실 훼이크였고 선역으로 뉴 브리드의 레슬러들과 대립한다. 그러다가 상승세를 타면서 ECW 챔피언쉽을 노리는 위치까지 상승을 하게 되며 당시 ECW 챔피언 존 모리슨과 대립하게 된다. 번번히 기회를 잡는데까진 성공했으나 챔피언쉽 매치에서 패하며 중요한 순간을 넘지 못하던 펑크는 마침내 2007년 9월 ECW TV쇼에서 존 모리슨에게 ECW 타이틀을 따내며 WWE에서의 첫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2008년 1월 역시 ECW TV쇼에서 차보 게레로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르던 중 에지의 난입으로 ECW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21] 하지만 2달 후인 2008년 3월 개최된 레슬매니아 24의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언제든지 원하는 때 어떤 타이틀에건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대박 행운을 얻게 되었고, 2008년 6월 드래프트 로터리에 의해 RAW로 이적하게 된다.

2.4.2. RAW로의 이적 (2008~2009)

2008년 6월 30일 RAW에서는 스맥다운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RAW에 잠깐 들린 에지가 자신이 속한 스맥다운이 최고의 쇼라며 관중들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바티스타가 에지에게 스피어와 바티스타 밤을 날려 떡실신시킨다.[22]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펑크는 즉시 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을 사용,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경기를 시작했고 GTS로 에지를 확인사살하면서 월드 헤비웨잇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주워먹기로 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인지 선역 챔프로써의 이미지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팬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지 못했다. 결국 3개월만에 크리스 제리코에게 타이틀을 넘겨주는데 더 굴욕이었던건 경기를 가지지도 못하고 벨트를 내줬다.[23]

이후 코피 킹스턴과 함께 팀을 이뤄 월드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거나 윌리엄 리걸을 꺾고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오르는 등의 크고 작은 행보를 이어나갔으며 레슬매니아 25에서 또 다시 머니 인 더 뱅크를 따낸 뒤[24] 로스터 드래프트에서 1년만에 본인에겐 또 다른 새로운 브랜드 스맥다운으로 이적했다.

2.4.3. 악역으로 자리를 잡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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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광에 빛나는 챔피언 당시

스맥다운으로 이적한 펑크는 얼마 안 있어 방출당할 운명이었던 우마가의 잡질을 받으면서 성장했다.[25] 이 상황에서도 머니 인 더 뱅크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야유가 나오던 펑크. 그런데, 그 때문일까? 당시 선역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6월의 PPV인 익스트림 룰즈의 메인이벤트 경기인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경기가 끝난 상황에서 에지와의 래더 매치를 통해 힘겹게 타이틀을 따내고 기진맥진한 제프 하디에게 머니 인 더 뱅크를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매치가 열리게 되고 펑크는 GTS를 작렬해 경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제프가 2에서 벗어나자 분노한 표정으로 다시 GTS를 작렬해 3카운트를 따내면서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주워먹기로 통산 2회 월드 헤비웨잇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프와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맥다운에서 태그팀으로 경기를 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선의의 대립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1개월 후에 열린 PPV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제프 하디에게 타이틀을 내주자, 슬슬 악역전환의 조짐을 보이던 펑크는 7월 31일 스맥다운에서 존 모리슨과의 방어전을 치뤄낸 제프 하디를 축하해주는 척 하다가 무자비하게 공격하면서 본격적인 악역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2009년 8월 PPV 섬머슬램TLC 매치에서 제프 하디를 꺾으며 통산 3번째 월드 헤비웨잇 타이틀을 차지한다.

월드 헤비급 챔피언 벨트까지 다시 가져오자 두려울 것이 없어보였던 펑크는 섬머슬램 직후 열린 8월 28일 스맥다운에서 제프와 철창 경기로 방어전을 치뤘는데 이 경기에서 패자는 WWE를 떠난다는 조건까지 거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챔피언에게는 일종의 도박임에도 불구하고 펑크가 먼저 철창을 빠져나오면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여 대립 상대였던 제프를 WWE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제프를 WWE에서 내쫓는걸 확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기가 끝난 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제프를 펑크가 뒤에서 기습, 벨트로 공격하며 WWE에서 제프의 마지막을 쓰러진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것도 모자라 그 다음주 스맥다운에서 제프의 옷을 입고 나와 팬들을 낚은 뒤 마이크웍으로 관중들을 조롱해대는 펑크의 모습은 가히 2009년 최고의 악역연기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 기간 동안 스맥다운 내에서 제일 많은 야유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선역 메인이벤터로 자리 잡기를 실패한 걸 악역 메인이벤터 등극으로 만회한 듯한 모습이었다.

제프와의 대립이 끝난 뒤 써머슬램 2009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언더테이커와 타이틀을 놓고 대립하게 되는데 9월 PPV 브레이킹 포인트에서 가진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경기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 연상되는 장면을 통해 어거지로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을 방어하지만[26] 다음 PPV인 헬 인 어 셀에서 열린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경기에서 툼스톤을 맞으며 3카운트를 내줘 타이틀을 내줬다.

2.4.4. S.E.S. - Straight Edge Societ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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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CM 펑크의 WWE 커리어 최고의 흑역사 머리를 잃은 대신에 수염을 얻었다

테이커가 무서워서인지 몰라도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던 펑크는 자신의 Straight Edge 정신을 관중들에게 강조하기 시작한다.[27]
관중들이 들어먹지를 않자 아예 시범 케이스까지 보여주게 되는데 예전 제시와 함께 태그팀을 이뤄 얼빠진 캐릭터로 활동하던 페스투스를 마약에서 구원했단 명목 아래 데려와 루크 갤로우로 개명시켜 자신의 보디가드로 삼게 되었고 이후, 한 스맥다운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열렬한 빠순이 팬이라며 삭발까지 하는 투혼을 보인 세레나라는 여성까지 매니저로 동원한 S.E.S라는 그룹으로 결성하게 된다. S.E.S. 그룹 관련은 저 항목 참조.

WWE에서 출시한 CM 펑크의 DVD인 'Best In The World'에 따르면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이 언더테이커에게로 넘어가자 수뇌부들 및 각본진들이 체급이 작은 펑크가 테이커에게 도전한다는 그림을 영 탐탁치 않게 여기고 펑크를 위한 어떤 각본이나 계획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펑크가 직접 S.E.S 스테이블을 고안해냈고 흑역사라고는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나름 즐거웠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펑크와 마찬가지로 별 주어진 역할도 없이 붕뜬 상태가 된 루크 갤로우즈나 조이 머큐리가 나름 출연 시간을 할애받았으니 결과적으로 나쁘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S.E.S를 이끌면서 펑크는 어그로 본능을 완전히 폭발시킨다. 펑크는 사악함이 절정에 달해 관중들에게 정말 미움 받는 그런 스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수염과 머리를 길러 예수와 같은 모습을 하였다. 루크 갤로우즈의 이름은 루카 복음에서 따오고, 조이 머큐리의 링네임을 일부러 풀네임인 조세프 머큐리(예수의 아버지인 요셉과 같음)로 사용하게 한 것도 신성 모독을 통해 최대한 어그로를 끌려는 장치였던 것이다. 방송 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S.E.S는 당시 WWE에서 가장 미움 받던 스테이블이었고 하우스쇼 현장에서는 링 위로 물통과 쓰레기가 날아 들어오고 관중석 곳곳에서 '넌 악마야! (You're the devil!)'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한 번은 어느 하우스 쇼에서 어떤 할머니가 펑크에게 '넌 예수 그리스도가 아냐! 그 분이 될 수 없어!'라고 소리치자, 펑크는 그 관중에게 '당신을 용서하겠소'라고 대응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룹이 결성된 상황에서 딱히 이렇다 할 대립은 가지지 않은채 Straight Edge 정신을 따르겠다는 관중을 잡아다가 삭발시키는 행위만 반복하며 사이비 교주 S.E.S. 리더로서의 모습을 과시하며 2009년을 보냈다.

로얄럼블 2010에서 로얄럼블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데 경기 초반 마이크를 잡고 떠들며 상대를 제거시키는 MC 펑크의 모습을 보이며 뛰어난 예능감을 과시했으나 사위 트리플 H에게 맥 없이 제거되며 버로우를 타버리고 만다.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 (2010)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이 걸린 엘리미네이션 챔버 경기에 출전했으나 이 경기에서도 경기 중반 탈락. 이후, 바른 정신을 강조함에도 욕만 얻어먹는 자신과 달리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레이 미스테리오와 대립을 가지게 된다.

한 스맥다운 에피소드에선 레이가 본인의 가족들과 함께 딸의 생일 파티를 가지는 순간 S.E.S 멤버들과 난입해 공포의 생일파티 축하곡 을 부르며 분위기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레이의 뺨을 때리며 생일 파티를 망치는 만행을 벌이면서[28] 레이에게 신경전으로 도발을 걸게 되고, 결국 WWE 레슬매니아 XXVI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 경기를 가지게 된다. 이 경기에선 펑크가 승리할 경우 레이는 S.E.S에 가입하게 되는 조항이 걸렸는데 레이가 이기면서 일단 펑크의 계략은 무산되었다.

이 패배로 우울해진 펑크. 이 때문인지 몰라도 무모하게 입을 놀리게 되는데 레이에게 자신과 다시 재경기를 가짐을 신청하면서 만일 이번에도 펑크가 패할 경우 본인이 삭발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레이로선 잃을 것이 없던 입장이라 당연히 경기를 받아들였고, WWE 익스트림 룰즈 (2010) 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이 경기에서 의문의 S.E.S. 멤버가 등장해 레이를 방해하며 펑크가 승리하게 된다. 이로서 레슬매니아의 패배를 만회하고 기쁨을 만끽하는 펑크.

악역 전환 후 언제나 그랬지만 상승세의 분위기에서 도박을 거는 펑크는 레이와 다시 경기를 가질 것을 제안하고 지난 경기에서 자신이 이긴 걸 감안해 이번 경기에서 자신이 이길 경우 레이는 S.E.S.에 가입하는 조건을 넣자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레이도 레슬매니아 26에서 승리한 점을 들어 만일 펑크가 패할 경우엔 펑크가 삭발한단 조건도 같이 포함시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협상 끝에 확정지었다. 이 사람들이 하라는 레슬링은 안하고, 복불복만 하고 있네? 결국 WWE 오버 더 리미트 (2010)에서 CM 펑크 vs 레이 미스테리오의 3차전이 결정됐지만 CM 펑크는 패배해버렸고 되려 레이를 공격하다가 케인에게 떡실신당하고 양 손은 링 로프에 수갑에 결박해 버린 상태로 삭발을 당해버린다.(이때 케인은 언더테이커 식물인간 사건 때문에 그동안 테이커와 대립한 레슬러들 중 아무나 보이면 닥치는대로 공격해버리는 상태였다.)

어쨌든 경기 도중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삭발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이후로는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레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가면을 쓰고 활동 중이지만 이마저도 빅 쇼에 의해 벗겨지는 굴욕을 겪었다. 이를 복수하기 위해 S.E.S 멤버들을 총출동시켜 WWE 썸머슬램 (2010)에서 빅 쇼와 3:1 핸디캡 매치를 가지게 되었으나, 경기 막판 경기를 포기하고 링 밖으로 나온 사이 다른 두 명의 멤버가 빅 쇼에게 피니쉬를 얻어맞고 핀을 내줘 패했다.

이후, S.E.S.의 멤버이던 세레나의 해고와 조이 머큐리의 부상 등으로 하향세를 타버렸고, 루크 갤로우스는 아예 그룹 탈퇴를 선언해버렸다. 자신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열린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 (2010)에서는 혼자 등장해 빅 쇼와 4분 남짓한 경기를 가졌는데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이더니 겨우 숄더블록이랑 주먹 한방에 패해버렸다.

빅 쇼한테 연패한 이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뜬금없이 NXT 시즌 3에 특별 해설자로 등장해 막장 해설을 보이고 가기도 했다.(NXT 시즌 3 에피소드 항목 참고) 그럼에도 스맥다운에서 2009년에는 대등하게 싸웠던 상대 언더테이커에게 허무하게 2연패를 당했고, WWE 헬 인 어 셀 (2010)에 결장하며 2010년 처음으로 PPV에 출연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향세를 막지 못했다.

어쨌거나 WWE 내에서 펑크 커리어의 최대 흑역사일 뿐 아니라 WWE는 진짜로 어두웠던 가정사에서 나온 감동적인 기믹을 저따위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2.4.5. 다시 돌아온 RAW (2010)

2010년 10월 11일, RAW에서 스맥다운으로 이적한 에지와 1 대 1 트레이드되어 RAW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로서 스맥다운에 있던 S.E.S는 사실상 해체된 듯 보인다. 하여튼, 이적하자마자 가진 에반 본과의 "브래깅 라이츠 팀 RAW 선수 결정전 경기"에서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고, WWE 브래깅 라이츠 (2010)에서 열리는 7 대 7 태그팀 경기에서 팀 RAW 소속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어깨를 부상당한 에반 본을 심판들이 강제로 떼어낼 때까지 사실은 심판들도 얻어맞을까봐 쫄았지만 무참하게 공격하며 다시 상승세 사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엉덩이 부상으로 연말까지는 경기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RAW의 해설 팀에 합류했다. 어? 2010 슬래미 어워드에서 DESPICABLE ME AWARD(가장 비열한 사람)를 수상했는데 아주 해맑게 웃으며 기쁘게 받았다.

2.4.6. New Nexus (2010 ~ 2011)

WWE TLC (2010) 직후 RAW에서 존 시나를 공격. 다음날 스맥다운에서 다시 시나를 공격. 2010년 12월 27일 RAW에서도 넥서스에게 집단 공격 당해 기절한 존 시나에게 GTS를 작렬하며 도발을 했는데 이 장면 이후 놀랍게도 자신을 그렇게 구타하던 넥서스에 가입하면서 WWE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날 RAW에서 웨이드 바렛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이후 리더인 웨이드 바렛과 대립하다가 바렛을 엿먹이고 축출. 자신이 넥서스의 리더로 취임한다.

그런데 다음주 RAW에서 넥서스 멤버들의 정신력을 기른답시고 SM플레이몇가지 테스트를 시켰는데 저스틴 가브리엘과 히스 슬레이터는 못해먹겠다고 때려치고 스맥다운으로 가서 웨이드 바렛에게 붙어버렸다. CM펑크 이자식 이런식으로 자기 당한거를 복수하는거였나

비난하던 10살 팬과 대립(?)하며 아마 징계를 먹을듯 했으나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건 밑의 에피소드 항목 참조. WWE 로얄럼블 (2011)에서 뜬금없이 WWE 챔피언쉽 경기에 넥서스 멤버들과 난입해 랜디 오턴을 방해하며 미즈의 챔피언 방어를 직접적으로 도우며 랜디 오턴과의 대립을 암시했다. 참고로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오턴을 공격한 이유는 2008년 당시 오턴의 습격으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을 상실했던 원한으로 인한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2009년에는 사이좋게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같은 팀으로 싸워놓고

그리고 본인이 출전하는 로얄럼블 경기에서도 등장번호 1번으로 출전하여 넥서스의 특기인 다굴을 사용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링 위에 남으면서 중반전을 가히 슈퍼 넥서스 타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지배력을 발휘하여 7명이나 제거시키는 쾌거를 거두었으나, 22번으로 등장한 존 시나에 의해 부하들과 함께 순식간에 제거당하는 수모를 당했다.[29]2년 연속 맥맨 가문에게 아웃

WWE 엘리미네이션 챔버 (2011)에서는 원래 4번째 순서였는데 문에 걸려서 제대로 못나오는 사이 랜디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첫번째로 탈락했다. 하지만 여전히익명의 RAW 단장이 이러한 경기결과는 불공평하다며 다시 기회를 줘 마지막 순서까지 체력을 보존했다. 그 뒤로 끝내주는 예능감과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결국 마지막에 시나의 AA에 당하며 탈락했다.

이후 계속되는 랜디 오턴과의 대립으로 인해 WWE 레슬매니아 27에선 랜디와 1:1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넥서스 멤버들이 랜디의 펀트로 하나둘씩 나가떨어지며 진짜 1:1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랜디의 다리를 집중공격하며 선전했지만 뛰어내리면서 공격하다가 역으로 RKO에 당해 패배했다.

WWE 익스트림 룰즈 (2011)에서 다시 랜디 오턴과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로 재대결했는데 또 졌다.[30] 이쯤되면 WWE PPV패왕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후 오버 더 리미트에서 짭티스타메이슨 라이언을 데리고 빅 쇼&케인 콤비에게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패배. 2010년 이후 출전한 PPV에서 WWE 익스트림 룰즈 (2010)를 제외하면 모조리 지고 있던 상황이지만 캐피톨 퍼니시먼트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승리하면서 PPV 연패 행진을 끊고 그나마 체면을 세웠다.

2.4.7. Voice of the Voiceless (2011)

레이 미스테리오, 알베르토 델 리오와의 3자간 경기를 통해 2011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존 시나의 WWE 타이틀 도전자로 결정됐는데, 대놓고 자신의 계약 만료가 가까워진다며 WWE 챔피언이 된 채로 이 회사를 나가겠다고 어필해왔다. 그리고 6월 27일자 RAW에서 급기야 대형 사고를 치고마는데...

6월 27일자 RAW의 메인 이벤트 경기였던 존 시나와 R 트루스의 테이블 매치에 난입한 펑크는 시나가 테이블에 처박혀 패배하게끔 트루스에게 도움을 줬고, 경기가 끝난 뒤 엔트런스쪽에 마이크를 잡고 앉아 일장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빈스 일가를 모조리 까고, 신일본에 ROH 이야기까지 꺼내는 등 상당히 파격적인 마이크웍이었다. [31]


막바지에 마이크가 갑자기 꺼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RAW는 급마무리됐고, 바로 빈스 맥마흔이 CM 펑크에게 무기한 정직 처분을 내렸다는 소식이 떴다.

하지만 미리 녹화된 다음주 RAW에서 시나가 CM 펑크와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고집하자 빈스가 등장하여 "펑크가 타이틀을 들고 다른 단체로 가는게 두려워서 미리 제거했다. 그럼 펑크를 복직시켜줄테니 예정대로 펑크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뤄봐라. 대신 지면 넌 해고다."라고 밝혔다.

분명히 악역인데 뭔가 선역스러운 각본에다가 팬들과 공감하는 각본이라서 어째서인지 어디 사는 모 존나 쎈 양반보다 환호의 정도가 심하다. 머니 인 더 뱅크 전에 펼쳐진 RAW에서 빈스 맥맨은 펑크와의 재계약을 시도했지만 펑크는 빈스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콜트 카바나, 루크 갤로우스를 언급하는 등 대놓고 팬들이 WWE에 원하는 바를 제시하는 완전히 당돌한 캐릭터가 되었다.[32]

결국 7월 고향 시카고 머니 인 더 뱅크에서 시나와 벨트를 걸고 메인 이벤트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이때 펑크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수준의 환호를 받았으며, 반면 선역인 시나는 야유만 줄창 받았다. 이때 경기장 분위기가 어느정도였냐 하면 전설의 폭동피켓이 한 장도 아니고 여러장이나 등장했을 정도였다. <시나가 이기면 우리 폭동 일으킴> <펑크가 지면 우리 폭동 일으킴>(...) 이 폭동 피켓이 포착된 장면은 심지어 WWE 공홈에까지 올라왔다.

경기 막바지, 펑크의 GTS에 맞은 시나가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이런 시나를 다시 링 안으로 들여보내려던 찰나 빈스가 존 로리나이티스(쟈니 에이스)를 대동하고 등장한다. 펑크는 빈스에게 신경을 쓰다가 되살아난 시나의 STF에 걸려버리고 빈스와 로리나이티스는 레프리에게 경기를 종료시킬 것을 강요하며 시카고 스크류잡을 시도하려하지만 시나가 되려 STF를 풀고 링밖으로 내려가 링벨을 울리기 위해 달려오던 로리나이티스를 때려눕히고 빈스에게 경기방해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그 사이 회복한 펑크가 링 위로 돌아온 시나에게 기습적인 GTS를 날리며 충격의 WWE 챔피언 등극.[33]

잠시 넋이 나간 듯했던 빈스는 화를 내면서 당일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서 우승한 알베르토 델 리오를 급히 링으로 불러왔지만 링에 들어오자마자 펑크가 머리에 킥을 날려 때려눕혀버린 뒤 그 틈을 타서 WWE 타이틀을 들고 관중석을 통해 잽싸게 도망가버렸다. PPV가 끝난 뒤 펑크는 트위터에 이런 사진을 올렸다.

다음날 RAW에서 펑크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으며, 빈스는 새로운 WWE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토너먼트를 열었다. 한 편 그 시각 펑크는 WWE 타이틀 벨트를 들고 시카고 컵스[34]의 경기를 응원하러 갔는데 트위터를 통해 'WWE 챔피언이 여기 있는데 무슨 새 챔피언을 뽑아?'라는 글[35]을 올리고 야구장에서 타이틀 벨트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그리고 RAW가 끝난 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코믹콘의 마텔 WWE 부스에 난입해서 트리플 H가 보는 앞에서 일장 연설로 약을 올리거나 인디 단체의 흥행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의 활동을 보여주다가 7월 25일자 RAW에서 미즈와 레이 미스테리오의 챔피언 결정전 토너먼트 결승전이 확정되자 '둘 중 하나가 종이 챔피언이라고?' 라는 등 실시간으로 트윗을 날려대고 있었다.

2.4.8. Best In The World (2011 ~ 2012)

결국 결승전에서 승리한 레이 미스테리오가 챔피언에 오르지만 당일 메인이벤트에서 타이틀전을 치르게 된 시나가 레이를 2시간짜리 챔피언으로 만들어버리며 다시 WWE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 순간 펑크는 ROH 시절 테마곡으로 사용하던 'Cult of Personality'와 함께 등장, 서로 가지고 있는 WWE 타이틀을 들어올리며 말없이 대면했다.

그리고 결국 재계약해버렸다. 시나와 펑크가 각각 벨트를 가지고 있는 상황인지라 썸머슬램에서의 경기를 통해 진정한 WWE 챔피언을 가릴 예정.

그리고 섬머슬램 2011에서 존 시나에게 GTS를 날리며 핀폴승,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으나 소리없이 등장한 케빈 내쉬가 펑크에게 잭나이프 파워밤을 날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캐싱인 한 알베르토 델 리오에게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말았다.

케빈 내쉬는 펑크를 공격한건 트리플 H의 사주였다는 둥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여전히 펑크와 티격태격하고 있었으며 뒤이어 시나와의 도전자 결정전에서도 다시금 내쉬가 등장, 경기 막판에 펑크의 이목을 끌어 AA를 맞고 패배하게끔 만들었다.

끝내 트리플 H가 펑크와 내쉬의 경기를 부킹했고 이 와중에 펑크가 트리플 H에 대한 불신과 조롱의 뜻(덤으로 꽤 강도 높은 가족, 성적 모욕을 계속했다)을 내비치자 트리플 H는 펑크의 상대를 내쉬에서 자신으로 바꿔버린다.[36]

이후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트리플 H와의 NO DQ 대결을 펼치고 미즈알 트루스의 갑작스런 난입, 내쉬의 난입 등 개판 5분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37] 페디그리에 당하고 패배. 사실 페디그리만 해도 3번을 쳐맞았고, 내쉬의 잭나이프 파워 밤까지 맞았으며 그 전에 난입한 R 트루스와 미즈에게도 합체 피니시를 얻어맞았다. 피니시만 총 5번을 맞고 진 셈.

WWE 서바이버 시리즈 (2011)에서 알베르토 델 리오와 격돌, 접전 끝에 아나콘다 바이스로 탭을 받아내며 WWE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러한 하반기의 활약에 힘입어 2011년 슬래미 어워드에서 "Pipe Bomb" of the Year과 올해의 슈퍼스타상을 수상했다. 단 올해의 슈퍼스타상 전 경기에서 WWE TLC (2011)에서 열릴 타이틀 매치의 도전자인 미즈와 알베르토 델 리오의 공격에 떡실신당해 직접 받으러 나오지는 못했다.

TLC에서는 델 리오의 링 아나운서인 리카르도 로드리게스가 수갑을 채워버려 한번은 사다리, 두번째는 링 코너에 매달리는 꼴을 당했으나 두번 모두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전부터 RAW 단장 존 로리나이티스와 사이가 나빴는데, 2011년 마지막 RAW에서 건틀렛 매치 도중에 훼방을 받아 돌프 지글러에게 패하고, 그 다음 RAW의 타이틀 매치에서 또 방해 때문에 카운트 아웃으로 패해 속을 썩이는 중. WWE 로얄럼블 (2012)에서 로리나이티스가 특별 심판인 타이틀 매치를 가지게 되었다.

로얄럼블 당일, 로리나이티스는 자신 대신 그냥 심판을 링 위에 올려보냈다. 펑크는 돌프와의 공방 끝에 제압하는데 성공했는데 핀이나 서브미션을 성공했는데도 심판은 링 밖으로 나가떨어졌고 존로리는 계속 딴청을 피웠으나 결국은 승리했다. 그런데 막판에 카운트할 때 펑크의 승리를 확신한듯 존로리도 심판과 함께 3카운트를 세며 심판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는듯의 태도를 보였다.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도 챔피언 자격으로 방어전을 치루게 되었으나 역시나 승리해 벨트를 지켜 챔피언 자격으로 레슬매니아에 가게 되었다.

레슬매니아 28부터 크리스 제리코와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베스트 인 더 월드" 캐치프레이즈를 두고 대립하는 듯 하더니 제리코는 펑크의 스트레이트 엣지 스타일이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 마약중독자였던 여동생로부터 트라우마를 얻은 결과라며 정신공격을 진행했다. 결국 레슬매니아에서 펑크가 실격을 당하면 타이틀을 잃는다는 추가조항이 붙었으나 펑크는 도발을 끝까지 참아내고 아나콘다 바이스로 승리햇다. 경기 당시 제리코가 경기도중에 패드립을 여러 번 날렸는데 보는사람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더불어 경기가 끝난 후에 제리코가 펑크의 머리를 훈훈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 뒤 펑크의 고향 시카고에서 열린 익스트림 룰즈(이때 관중에 펑크의 여동생이 있었다)까지 깔끔하게 제리코를 꺾어버린 뒤에, 이제는 '비트 더 클락'매치로 타이틀 도전자가 된 대니얼 브라이언, 케인 등과 대립 형성 중.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들 위에는 광년 AJ 리가 있다 결국 이래저래 7월의 머니 인 더 뱅크 PPV까지는 타이틀을 지켜내는 데 성공.

2.4.9. 434 Days WWE Champion (2012 ~ 2013)

7월 23일자 RAW에서 머니 인 더 뱅크를 사용하고 캐싱인한 존 시나와의 타이틀 매치 도중, 난입한 더 락에게 GTS를 날리고(이때 더 락의 접수가 압권) 대립을 예고하며 턴힐의 복선을 깔았다!!![38] 덕분에 프갤은 잔치 분위기 팬들은 오랜만에 살아난 악역 카리스마에 환호하면서도, 결국 시네이션의 한끼 식사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중.

결국 8월 27일 RAW를 기점으로 완전히 턴힐해버렸다. 지난달의 1000회 기념 RAW에서 제리 롤러가 "펑크가 WWE 유니버스에게 등을 돌렸다"라고 한 것을 트집잡아, 제리 롤러에게 집요하게 시비를 걸며 철창매치에 블러드잡에 USB 엘보까지 선보이면서[39] 노인학대 버라이어티하게도 두들겨패더니,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9월 3일 RAW의 오프닝에서 제리 롤러를 다시 기습해서 끝내 들것 신세를 지게 만든다.[40][41] 그날 챔피언 vs 챔피언 컨셉트로 부킹한 쉐이머스와의 매치에서는 뜬금없이 평상복을 입고 나와서, 오늘은 노동절이니까 개인시간을 갖겠다는 이유로 경기를 거부하고는 자기 차를 타고 아예 경기장을 나가버린다. 그대로 쇼 마지막까지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 날 마지막 경기였던 알베르토 델 리오 vs 존 시나의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의 결정적인 순간에 난입해 존 시나에게 GTS를 먹여 자기 차 보닛에 내던지고 알베르토 델 리오의 승리를 돕는다. 그 때 펑크의 차 조수석에 폴 헤이먼이 타고 있는 것이 카메라에 비치며 완벽하게 턴힐 인증.

9월 10일 RAW에서는 놀랍게도 캐나다, 그것도 몬트리올에서 브렛 하트를 면전에서 대놓고 디스했다! 만약 19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 때 브렛의 상대가 숀 마이클스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자신은 브렛을 완벽하게 발랐을 것이고, 그러면 그 후에 펼쳐질 애티튜드 시대도 없었을 것이며, 자신은 스티브 오스틴, 더 락, 숀 마이클스보다 훨씬 위대하기에 결과적으로 지금의 WWE 역사 또한 전부 자신이 갈아치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후덜덜한 배짱을 보여줬다. 쇼 말미의 세그먼트에서도 브렛과 시나한테 계속 으르렁대다가 결국 브렛에게 죽빵 얻어맞고 깨갱 퇴장하는 쇼맨십을 보여주긴 했지만, 몬트리올 레슬링팬들에게 브렛 하트가 얼마나 상징적인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면 정말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수행할 엄두도 못 낼 각본을 훌륭하게 소화한 셈. 당연하겠지만 이 날 RAW에서는 펑크가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 근 1년 간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던 어마어마한 야유가 계획대로 튀어나왔다.

2012년 10월 9일 빈스 맥마흔 앞에서 관중을 폭행했다. 관중석에 들어간 사이 주변에서 해코지가 계속되자 참지 못한 펑크가 뒤에 있던 남자에게 폭력을 가한 것인데, 그는 실제로 펑크를 찝적거리진 않았다.[42] 만약 각본이 아니었다면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을 정도로 펑크의 잘못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하다고는 해도 프로레슬링은 어디까지나 스포츠, 그것도 격투기다. 워크시합을 뛴다고는하지만 프로레슬러의 신체능력은 일반인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며 그런 육체를 가진 레슬러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일반인에게(그것도 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WWE측에서는 'CM 펑크와 팬들 사이를 갈라놓을 안전요원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유감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CM 펑크가 악역 캐릭터를 맡았기에 팬들이 자신의 곁으로 온 그에게 도발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중에 일부는 펑크를 밀어대기 시작했고 한 명의 팬은 펑크의 옆구리와 등을 때렸다. 자사는 안전요원을 배치해 이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을 책임을 통감하며 CM 펑크는 이 사태에 대해 사과를 전한다'는 성명을 발표. 결국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일단 2012년 10월의 헬 인 어 셀과 11월의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1번 잇달아 타이틀을 수성했다. 전자는 심판을, 후자는 NXT 신인들을 매수한 비열한 승리이기는 했지만, 경기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두 경기에서 신인 라이백과 뻣뻣의 아이콘인 존 시나를 이끌고서도 경기 진행이 매끄러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펑크의 공. 카리스마 악역이 모자란 상황에서 WWE 챔프 디비전에서는 CM 펑크가, 월드헤비웨이트 디비전에서는 빅 쇼가 타이틀을 지키면서 제 몫을 해주는 것은 WWE의 큰 복이라고 할 수 있다....만 WWE TLC (2012)에는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결장했으며 라이백과의 타이틀전은 회복 이후 RAW에서 더 쉴드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버티긴 했는데...문제는 로얄럼블에서의 상대는 복선이 깔려있던 이 분 이제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어쨌든 꼼짝없이 로얄럼블 2013에서 붙어야 했고 쉴드의 난입으로 인해 빈스 맥맨 회장이 "쉴드가 난입한다면 펑크의 타이틀은 박탈된다" 라는 항을 집어넣는 사태도 벌어진다. 그리고 로얄럼블 당일 조명을 끄고 난입한 쉴드의 도움으로 타이틀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는 줄 알았는데 빈스 회장이 나와 타이틀을 박탈하겠다고 선언한다. 허나 더 락의 재경기 요청으로 타이틀 박탈은 없던게 되지만 그 즉시 재경기가 시작되어 스파인 버스터와 피플스 엘보우를 맞고 결국 타이틀을 뺏기며 총 434일간의 기나긴 WWE 챔피언 재위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43]

2.4.10. I am THE ONE in TWENTY and ONE (2013)

사실 434일이 너무 길다보니 펑크 한명이 다 해쳐먹는다는 불만이 터져나왔고 덕분에 당장 다시 챔피언을 딸 가능성은 0%에 수렴, 당연히 엘리미네이션 챔버에서도 더 락에게 지고, 레슬매니아에서 누구와 붙을지 혹시 쩌리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던 참에 2월 25일 RAW에서 시나를 상대로 레슬매니아급 명경기를 뽑아낸다! 펑크와 시나가 죽이 잘 맞긴 한 모양. 어쨋든 이 경기로 펑크는 WWE 챔피언쉽을 트리플 쓰렛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혹은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도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결국 3월 4일 RAW에서 언더테이커의 연승을 끊겠다고 선언하고 셰이머스, 랜디 오턴, 빅 쇼와의 4자간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레슬매니아 29에서 언더테이커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대립각본이 진행 중이던 3월 5일 폴 베어러가 사망하자 WWE는 유족들에게 허락을 받고 이를 각본에 이용하였다. 3월 11일 언더테이커가 폴을 추모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매주 납골단지를 가지고 놀면서 고인드립을 시전해버리고 이에 각본상 폴의 아들인 케인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4월 1일 RAW에서는 폴 헤이먼이 폴 베어러로 변장하고 가짜 드루이드를 대동한채 언더테이커 앞에 나타났다. 분노한 테이커는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드루이드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가짜 드루이드 틈에 섞여있던 펑크는 뒤에서 테이커를 기습해 쓰러뜨리고 납골단지의 골분까지 뿌려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대립각본은 재밌다는 평을 받았고 둘 다 경기력은 인정받는 선수들이기에 명경기가 예상되지만 이들이 2009년에 보여줬던 경기는 기대보다 낮았다는 평이 많아서 합을 얼마나 잘 맞추냐가 관건이 되었는데 다행히 PPV 당일 좋은 경기를 만들어냈다. 어느정도냐면 레슬매니아 29를 살린 유일한 경기라 평을 받을 정도다. 비록 많은이들의 예상대로 언더테이커의 연승은 이어지긴 했으나 경기를 펼친 두명다 찬사를 받아 마땅한 경기. 악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펑크의 경기운영과 언옹의 노련한 조율능력이 멋지게 어우러졌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경기중간에 펑크가 언옹에게 아나운서 테이블위로 플라잉 엘보드랍을 날렸으나 무너져야할 아나운서 테이블이 무너지지 않은 사고가 발생한것.기술을 당하는 언옹도 상당한 고통이었겠으나 시전한 펑크는 링안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부여잡고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다행히 잘 끝마쳤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팬들이 많다. 일단 레슬매니아 29 다음날 열린 RAW와 스맥다운 녹화에는 불참했고 섬머슬램까지 결장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황. 2년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레슬매니아 이후에 휴가를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상황이라 이 루머는 신빙성이 꽤나 높은 편.

2.4.11. 폴 헤이먼과의 대립 (2013)


레슬매니아 29 이후 한주 거르고 그 다음주 RAW에서의 세그먼트를 끝으로 한동안 여러 스포츠 경기장과 각종 행사에 연인 리타와 함께 나타나는 모습을 트위터로 인증하면서 휴식기간을 갖던 중, 6월의 PPV 페이백에서 크리스 제리코와의 경기를 통해 컴백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당일 고향팬들의 환호 속에 휴 잭맨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등장해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리고 컴백 후에는 폴 헤이먼에게 고객이 아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제안하는 등, 선역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다음 날 RAW에서 지글러를 무참히 짓밟고 턴힐한 알베르토 델 리오와 붙고 싶다고 말하여 결국 메인이벤트로 델 리오와의 경기를 가지게 되고 경기는 펑크의 카운트아웃 승리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곧이어 브록 레스너가 등장, 링을 배회하다 들어와 펑크와 대화를 하려는 듯 하더니 갑자기 F-5를 날려 펑크를 공격했다.

다음주 RAW에서 펑크는 폴 헤이먼에게 니가 시켰냐고 물었지만 폴 헤이먼은 자신도 몰랐다고 부인했고, 펑크도 일단 믿는 듯 했지만 WWE챔피언쉽 머니 인 더 뱅크 래더 매치에서 폴 헤이먼이 펑크를 배신하면서 모두 폴 헤이먼의 계략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다음날 RAW에서 폴 헤이먼은 CM 펑크는 자신과 함께였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차지했지만 건방지게도 그 점을 몰랐고, 더 큰 이유는 CM 펑크는 브록 레스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펑크를 배신했다고 밝혔다. 펑크는 복수를 선언하고 섬머슬램 2013에서 브록 레스너랑 맞붙고 싶다고 제안하는데 폴 헤이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섬머슬램에서 두 폴 헤이먼 가이가 맞붙게 되었고 펑크는 체격과 힘의 열세 속에서도 NO DQ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 사력을 다해 레스너를 궁지로 몰아넣고 아나콘다 바이스를 걸어 헤이먼의 팔을 부러뜨리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아쉽게 패하고 만다.

섬머슬램 이후에도 폴 헤이먼과의 대립이 계속되어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서는 폴 헤이먼과 커티스 액슬을 상대로 2대1 노 DQ 엘리미네이션 경기를 치뤘다. 커티스 액슬을 제거하고 폴 헤이먼을 한창 손봐주던 중 갑자기 난입한 라이백에 의해 폴 헤이먼에게 핀폴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폴 헤이먼 사단에 합류한 라이백과 1년만에 선악이 뒤바뀌어 다시 대립하게 됐다.

다음 배틀그라운드에서 라이백을 로우 블로우로 꺾고 헬인어셀 2013에서 폴 헤이먼과 라이백을 상대로 최종전을 가졌다. 폴 헤이먼은 2대1 경기임에도 경기 시작 전 헬인어셀 위로 올라가서 경기를 구경만 했는데 펑크는 라이백을 발라준 뒤 헬인어셀 위로 올라가 폴 헤이먼을 개박살내며 배신 당한지 3개월만에 복수를 성공시켰다.

2.4.12. Authority와의 대립 (2013 ~ 2014)

헬인어셀 다음날 난데없이 와이어트 패밀리의 습격을 받으며 와이어트 패밀리와의 대립을 시작. 대니얼 브라이언과 팀을 이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와이어트 패밀리를 상대해 승리를 거뒀다. 다음날 로우에서 2대3 핸디캡 매치를 가지게 되서 경기 전 Authority들을 참 창의적이라고 비꼬았는데 이게 Authority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경기 후 쉴드의 습격을 받았다. 결국 쉴드와 TLC에서 3대1 핸디캡 매치를 하게 되었는데, 경기 중 로만 레인즈가 딘 앰브로스에게 실수로 스피어를 날리는 바람에 간신히 승리하였다.

그렇게 쉴드와 대립을 이어나가던 도중 구원군으로 깜짝 등장한 뉴 에이지 아웃로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고, 그 뉴 에이지 아웃로스를 바로 다음주에 응징하지만 응징이 끝나고 등장한 케인배가 이번 2014 로얄럼블 매치 1번 출전자는 펑크가 될것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로얄럼블 당일 1번으로 등장해 초반에 케인을 탈락시키고 파이널 4까지 살아남는 저력을 보였으나 돌아간줄 알았던 케인의 방해로 우승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

2.4.13. 갑작스런 탈단과 은퇴 (2014)

그런데 로얄럼블 다음날 RAW가 방송되기 직전 갑작스럽게 빈스 맥맨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통보하고, 그 주의 로우와 스맥다운, 하우스 쇼까지 몽땅 불참해버렸다. 앞으로도 있을 이벤트에서도 펑크의 이름은 다 삭제가 된 상태에 평소부터 잔부상을 몸에 달고 있는 데다가 올해 7월달에 3년 계약이 끝이 나는 상황이라 펑크가 벌써 WWE와 계약을 해지한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돈 상황.

아직까지 WWE는 펑크의 탈단에 대해 공론화를 취하고 있지 않은 입장인데 그 이유론 빈스 맥맨 회장이 펑크를 굳게 신뢰하고 있고 원만하게 해결되리라 믿고 있는 것과, 펑크의 상품 판매율이 존 시나 다음가는 수입을 올리고 있어 이러한 상품판매수입을 섣부르게 끊고 싶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심지어는 이대로 펑크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계약만료일까지 공론화를 하고 싶지는 않을거란 예상이 지배적인데다, WWE의 2013년 4분기 주주총회때 빈스 맥맨 회장이 직접 펑크는 현재 휴가를 즐기고 있다고 발언을 하여 양측간 극단적인 상황까진 도달하진 않은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2014년 3월 3일 고향 시카고에서 열리는 RAW에서 컴백이 유력시되고 있다. 백스테이지에서 어떤 유력한 프로레슬러의 말에 의하면 이날 펑크는 100% 등장한다고 하며 그리고, 레슬매니아 30에서도 바티스타 vs 랜디 오턴의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 에 끼어들어 트리플 쓰렛 경기로 치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44] 하지만 당일 RAW에서는 펑크의 테마로 폴 헤이먼이 나타나서 어그로를 끌었을 뿐, 펑크는 테마만 한 번 나오고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낚시질에 낚인 레슬링 옵저버의 편집장 데이브 멜쳐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도 낚였어" 라며 자조적인 트윗을 남겼다.[45]

WWE 측에서도 이 탈단 사건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얼티밋 워리어가 회사와 화해하고 빈스 맥마흔의 방에 찾아가 대화를 나눈 장면에서, 벽에 걸린 WWE 로얄럼블 (2014)포스터에 펑크 얼굴에 노란색 포스트잇을 붙인 것이나,[46] WWE 레슬매니아 XXX에 쓰인 언더테이커의 연승 관련 영상에서도 CM 펑크의 이름과 얼굴은 교묘히 편집되어 화면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폴 헤이먼이 펑크에 대해 언급을 한 이후 바로 다음 주부터 펑크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한데 3월 10일자 RAW에서 엄청난 규모의 팬이 동원된 대니얼 브라이언의 링 점령(#OccupyRAW) 세그먼트 역시 "이 자리는 이제 네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함과 동시에 시카고 팬들의 #HijackRAW 운동을 조롱하기 위한 WWE의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3. 은퇴 후 근황

탈단 후 2014년 3월 16일에 평소 엄청난 팬임을 자처했던 워킹 데드와 관련된 토크쇼인 토킹 데드에 출연했지만 WWE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출연 시 사용했던 이름 역시 링 네임인 CM 펑크가 아닌 본명인 필 브룩스로 출연을 한 점도 있었고 거기다 3월 17일자 RAW에서 트리플 H대니얼 브라이언과의 세그먼트에서 "도중에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가 버린 녀석" 이라며 펑크를 대놓고 조롱했고,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 행진 영상에서도 펑크와 맞붙은 레슬매니아 29의 영상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WWE와 펑크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제는 아예 프로레슬링 쪽과는 인연을 끊은 것으로 보여진다. 고향 시카고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홈경기를 보러 가거나 시카고 인근 지역의 밴드 콘서트를 보러가는 등 이젠 일반인이라고 봐야 될 정도. 이번 탈단 사건때문에 한국 프로레슬링 팬들은 펑크가 본명인 필 브록스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본따 링네임 대신 필 브룩스, 혹은 필백수, 펑튀기, 펑레기 등등.. 안 좋은 별명으로 불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소식을 보면 WWE 측으로부터 관련상품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받고 있다고 한다. 오스틴이 2002년에 무단탈단을 했을때에 바로 해고가 되어 상품 로열티등을 하나도 지급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 일각에서는 아직 WWE가 펑크와의 일을 좋게 해결하기 위해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탈단한 뒤에도 가끔씩 경기가 재미없거나 팬들이 정말 싫어하는 선수가 나오거나, 혹은 그냥 분위기를 타거나(...) 하면 CM 펑크 챈트가 나온다.

2014년 5월 17일 시카고 컵스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에서 중계진에 합류해 해설하던 중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중계석 부스 옆에는 AJ 리도 동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6월 13일 AJ리와 혼인신고 및 결혼식을 올렸다. AJ 리의 임신 여부에 대해서는 서로 보도가 엇갈리고 있으나 하와이 신혼여행 도중 부인과 조깅하는 사진이 찍혔고 AJ가 6월 30일 RAW에서 무리없이 복귀하면서 오보 확정.

2014년 7월 14일 RAW에서 WWE 네트워크를 통해 2012년에 출시가 된 다큐멘터리 '베스트 인 더 월드' 가 방영된다는 광고가 나가며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으나... 15일자로 WWE 공식 홈페이지에 있었던 그의 프로필이 슈퍼스타에서 동창생으로 옮겨지며 공식적으로 WWE와 결별을 하게 되었다. 그 직후 팬들의 주도하에 트위터 상에 #ThankYouPunk라는 해쉬태그가 월드와이드 트렌드에 올라왔다. 이에 대해 펑크도 트위터에 그간의 성원과 지지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들에게 굴하며 살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47]

2014년 7월 21일 열리는 AP(얼터너티브 프레스) 뮤직 어워드의 레드 카펫 프리쇼에서 MC를 맡게 됐다.

2014년 9월 3일 그의 변호사가 WWE 측에 비디오게임 WWE 2K15의 로스터 출연과 관련해 이에 대한 초상권의 로얄티를 요구하는 22페이지의 장문편지를 보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펑크 측은 그가 계약위반이나 타사 이적이 아닌 공식은퇴를 했기 때문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10월 10일, 마블 코믹스와 손을 잡고 2015년 2월에 발매될 <토르>의 스토리를 집필하면서 코믹스 작가로 데뷔한다고 한다. 유명한 코믹스 팬으로 알려져있는 CM 펑크라고 하지만...

2014년 11월 27일, 자신의 절친인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인 아트 오브 레슬링에 출연해서 10개월만에 처음으로 탈단 사건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여기서 여러가지 논쟁 거리가 생겼는데, 우선 본인은 해고당한 상태라고 한다[48] 그것도 자기 결혼식 당일날에 해고 통보가 왔다고. 이외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겼다거나 스맥다운 녹화중에 대변을 지릴정도로 몸이 안좋았는데 처방은 겨우 항생제였다거나 하는 등 불만을 토해냈다. 특히 트리플 H를 공격했으며[49] 빈스 맥맨의 경우도 말을 번복하는 경우가 잦다며 비판했다. 그 외에도 라이백[50]와 크리스 제리코[51] 등을 공격했다.

이 팟캐스트로 인해 콜트 카바나는 WWE의 블랙리스트에 들어갔으며 격노한 트리플H와 달리 빈스 맥맨은 화는 냈으나 격노 수준까진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펑크의 팟캐스트는 백스테이지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와 사이가 안좋았던 인물들도 선수들의 권익을 대표해서 한마디 해줬다며 찬사를 보냈다고. 선수들의 희망은 펑크의 발언을 통해 WWE의 복지가 개선되는 것이라고 한다.[52]


2015년 2월 19일,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한 말의 영향인지 WWE 의료진에게 고소를 당했다. 그것도 콜트 카바나와 함께.



4. 종합격투기

12월 7일 UFC와 계약이 확정되었다. 2015년 가을에 옥타곤 데뷔가 예상되고 있다.

5. 에피소드와 기타사항

  • 여성 레슬러들을 여자친구로 자주 둔다. 인디 시절 WCW 출신의 대프니와 약혼까지 갔지만 트레이시 브룩스와 바람이 나는 망나니짓을 해 대프니는 잠시 레슬러 생활을 접기도 했었고, WWE 입성 후에는 마리아와 사귀었으나 펑크는 마리아가 멍청하다며, 마리아는 펑크가 잠자리에서 배려심이 없다며(...) 격렬하게 디스했고 이 싸움이 악명이 높아 WWE는 RAW에는 펑크, 스맥다운에는 마리아를 두는 식으로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이후 서로의 프로 레슬링 사랑에 반했다는 이유로 베스 피닉스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결별. 이후 매트 하디의 음해공작으로 리타와 교제 중이라는 루머가 떴는데 말이 씨가 됐다!

  • 리타와는 2009~10년 경부터 교제하다 2011년 경 헤어진 뒤 2012년 들어 다시 사귀기 시작해 지금까지 온듯. 2012년에는 WWE.com에서 둘의 커플화보를 업로드하며 아예 오피셜화시키기도. 둘은 컵 속에 잔디가 들어있는 커플문신을 갖고있고, 펑크의 오른팔 팔꿈치 근처에는 리타를 그린 문신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13년 10월 리타가 펑크의 아이를 가졌다는 루머가 떴다! 둘 모두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긴 한데, 임신에 대해 묻는 트위터 계정들을 모두 차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로의 이성 편력을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한 진짜 Rated R 커플이지만 둘의 케미스트리 양아치美 가 워낙 뛰어나 팬들은 하루 빨리 결혼하길 바라고 있다.

  • 리타의 임신설이 터지고 한달 뒤, AJ 리와의 염문설이 터졌다. 이쯤 되면 그냥 바티스타. 재밌는 것은 리타는 어릴 적부터 레슬링을 좋아한 AJ의 아이돌이라는 점. AJ가 꼬맹이던 시절 리타한테 싸인받고 찔찔 우는 동영상도 있다.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AJ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미 무늬가 그의 경기복에서 발견됬다던가, 공항에서 마중나오는 모습이 발견되었다던가 이런저런 사진들이 나오더니, 결국 열애를 인정했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흠좀무

  • 레슬링 덕후인데다, 근본이 백야드출신이라 그런지 WWE 바깥의 프로레슬링을 많이 배워 쓰고 그 스타일을 많이 따라하는 편.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레슬러는 피니쉬에서도 볼 수 있듯 프로레슬링 NOAHKENTA를 비롯한 일본 레슬링 쪽. 그렇다보니 프로레슬러로는 상당히 잡탕밥(...)스타일이고 사위님한테 근본 없는 길바닥 놈이라고 상당히 까였다. 그런데도 의외로 이런 잡탕밥 레슬러로써 자기 자부심이 상당한 편이라 그에게 영향을 줬던 미사와 미츠하루의 사고사 이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팔 밴드에 MISAWA라고 써놓고 경기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 KENTA는 WWE로와서 피니쉬도 잃어버리고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 트리플 H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는데, CM 펑크의 인디 시절 피니쉬 무브인 '펩시 플런지' 가 트리플 H의 페디그리랑 겹친다는 점, 펑크가 인디 단체 이곳저곳을 전전했다는 점이 주로 언급된다. [53] 펑크가 2014년 11월에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서로 인간적인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았다고 한다. 둘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늘 좋지 않은 기류가 흐르고, 트리플 H는 펑크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고. 펑크는 탈단하기로 한 날 로우 백스테이지에서 트리플 H에게 '2011년에 내가 당신을 이기는 것이 업계를 위해 옳은 일이었다. 난 당신이 내게 잡을 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한다.'고 말을 꺼낼정도. 그리고 CM 펑크는 결혼식 날에 방출을 통보 받았는데, 인사부를 총괄하는 인물이 트리플 H인만큼 두 사람의 악연이 이어진 것이라는 평가 또한 있다. 이후에 트리플 H는 2015년 2월 오스틴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회사 내부에서도 내가 펑크를 싫어한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퍼졌다. 펑크가 OVW에 있을 때부터 말이다. 하지만 난 그 친구가 메인 로스터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으니 다 지어낸 소리다. 펑크는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한 번은 펑크가 WWE를 그만두겠다고 난리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니까 태연하게 '아무 문제 없다'고 답하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말했다.

  • WWE 레슬러들 중 TNA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레슬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TNA 소속 시절 테디 하트와의 설전 때 TNA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해고만 통지하는 무책임적인 처사에 불만을 표현했던 것도 있고, 2008년 겨울 한 라디오 인터뷰에선 "TNA는 그저 WWE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단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근데 2009년 말부터 TNA가 WWE 출신의 레슬러들을 쏟아붓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영입하면서 TNA 팬들에게 "WWE 따라하기" 냐는 지탄을 받는 점을 볼 때 펑크의 시점이 맞았다는 분석이 많다. 심지어 2013년에는 TNAWWE처럼 전국 투어 형식으로 TV쇼를 운영하면서 경영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보면 펑크의 디스 그대로 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

  • 위와 연계된게 헐크 호건 디스. 2010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헐크 호건이 TNA에 들어옴으로서 TNA는 제 모습을 잃고 쓰러질 날이 멀지 않았다. 그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했다. 호건은 '그 녀석이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 나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매진시켰었다. 나는 선수로 계약을 맺은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랄 수 없으면 TNA를 돕는 역할에 만족할 것이다.' 라고 대답. 하지만 2011년에 헐크 호건이 스팅을 도와주는 영웅 역할을 맡았던 것을 생각하면 영... 임팩트 시청률을 하드캐리하며 많은 분량을 배정받던 넉아웃 디비전이 헐크 호건 영입 후 급격히 축소된 걸 생각하면 더더욱...

  • 2011년 1월 16일 하우스 쇼에서 마크 헨리를 이긴뒤 퇴장 중 맹렬히 비난하던 가족 팬과 시비가 붙어 심한 설전까지 갔다가 10살된 부부의 아이에게 내 뺨을 때려봐!라며 도발했고 놀랍게도 아이는 진짜로 뺨을 때렸다? 그러자 화난 펑크가 아이의 옷을 거칠게 잡으며 "어디 한번 또 때려봐!!"라고 소리치자 아이가 울었고, 격분한 아이의 아버지가 펑크에게 선빵을 날림으로써 둘은 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펑크는 눈이 가볍게 긁혔고 아이 아버지도 다쳤다고 하는데...주먹이 몇번 오고갈 새도 없이 안전 요원들이 둘을 말리고 펑크를 끌고갔다...

  • 에디 게레로를 상당히 존경한다. 2001년경 에디 게레로와 경기를 가진적이 있는데 에디가 펑크를 꽤나 칭찬해준적이 있다고. 그 후 CZW에 출전했을 당시 사장이자 선수인 존 잔딕이 경기가 구리다고 쿠사리를 줬는데, "난 에디 게레로에게도 인정받은 사람인데 니 따위가 뭐냐능?" 정도로 말하고 다시는 CZW에 출연을 하지 않았다. 2011년 8월 15일 RAW에서 케빈 내쉬와의 세그먼트 중 과거 WCW 시절 케빈 내쉬가 에디 게레로를 'Vanilla midget'이라고 비하[54]했던 것까지 끄집어내서 깠으니 말 다 했다. 참고 영상.

  • 그 이외에도 스티브 오스틴의 팬인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펑크가 오스틴과 사진 찍은 적이 몇 번 있고 'Pipe Bomb' 사건 때도 입고 있던 티셔츠가 오스틴의 티셔츠였고, 어느 하우스 쇼에서는 경기가 끝난후 오스틴 티셔츠를 입고 악역들을 스터너(...)로 털어버리고 음료수 쇼를 했다던가, 거기다 현재 테마곡인 'Cult of Personality'는 2009년 오스틴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당시 프로모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인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14년 현재 탈단 사건 이후 가장 현실적인 충고를 한게 오스틴이기도 하다. 오스틴도 빈스랑 싸우고 8개월 간 단체를 탈단한 적이 있다.
  • 미국의 가수 크리스 브라운과 트위터로 키배를 뜬 적이 있다.

  • 레슬러 생활을 오래하지 않을거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레슬링하는 것은 즐겁지만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2015년에 은퇴해 밀린 워킹 데드를 시청[55]할 거라는 루머가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펑크 트위터에 어떤 사람이 근육도 키우고 살도 찌우면 좀더 멋있어질 거 같다고 트윗을 날리자 펑크가 난 2년 뒤에 개돼지가 될테니 그 때 다시 찾아와라.(= 2년후에 은퇴하고 몸관리 안하고 존나 쳐먹고 다닐거임.)고 답했다. 그리고 이 발언은 1년이나 앞선 2014년 1월에 현실화되었다. 뭐 1년 후에 은퇴하고 1년 동안 살찌워서 개돼지가 될 작정인가 보지 하지만 또 뒤로 연장

  • 근력 운동을 하냐는 한 팬의 질문에 '한다. 다만 남들처럼 스테로이드를 하지 않을 뿐'(.......) 라고 답했다.

  • 프로레슬링 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 너드로 보인다. MLB 시카고 컵스의 광팬이며 적어도 1년에 5~6회 씩은 리글리 필드를 찾고 있다. 성공한 컶빠 경기장에 갈 때마다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리고, "컵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WWE 활동 중에도 컵스를 따라다니겠다."고 트윗한 바 있을 정도. 근데 컵스의 현재 상황을 보면 그저 눈물만 난다(...). 그 외에도 시카고를 연고로 하는 NBA시카고 불스NHL시카고 블랙호크스도 열심히 응원한다.[56] 유럽 축구도 보는 듯 한데, 한 팬이 "혹시 응원하는 유럽 축구 팀이 있어요?" 라고 묻자, "밀월 FC"이라고 답했다. 다만 위의 스포츠 팀들 경기에 비해선 많이 응원하지는 않는 듯. 영화 훌리건즈 보고 드립쳤다는 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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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펑크가 입장할 때 외치는 문구. 판타스틱 4더 씽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직역하자면 '때려눕힐 시간이다'
  • [2] 2012년 하반기에는 턴힐과 함께 삭발을 했다.
  • [3] http://en.wikipedia.org/wiki/CM_Punk#Mixed_martial_arts_career 참조.
  • [4] 일본의 프로레슬러인 KENTA가 쓰던 기술로 줄여서 GTS라고 부르며 KENTA가 사용하는 것은 Go To Sleep이 아닌 go 2 sleep(소문자)으로 표기
  • [5] ROH 활동 후반부터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실 원조 아나콘다 바이스가 아니라 아나콘다 초크와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였다. WWE에 데뷔 이후부터 제대로된 형태로 사용했다.(원조는 신일본의 텐잔 히로요시) WWE에서는 데뷔 초반에만 몇 번 쓰고 그 이후로는 쓰지 않았으나 언더테이커와의 타이틀전을 섭미션 매치로 치르게 됨에 따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 때문에 일부는 야매기술을 자기꺼처럼 썼다고 깠었다.
  • [6] 탑로프 페디그리. WWE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페디그리와 겹치는 것도 있지만 공중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니 부상 위험도 높아서 WWE에서 자연스레 봉인시켰다. 펑크가 일본 선수들 기술을 피니쉬로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다.
  • [7] 이 테마는 원래 2006년 저지먼트 데이의 테마곡으로 랜디 오턴이 펑크보다 먼저 사용한 적이 있다. 2006년 3월 3일 스맥다운에서 딱 한 번. 원래 Mercy Drive의 Burn in my light를 테마로 썼던 랜디 오턴은 자기 테마를 정말 싫어해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직접 음반가게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이 곡을 찾아 WWE에게 이걸로 써달라고 했다. 문제는 관객의 반응이 시망...그 다음주에 바로 Burn in my light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에 현재의 테마 Voices로 안착. 그리고 랜디가 버린 곡을 펑크가 사용하게 된다. WWE 측에서도 계약이 남았던 건지, 괜찮은 곡이라서 그런지 그대로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 [8] ROH 시절 사용하던 테마로 WWE로 이적하면서 This Fire Burns를 쓰다가 2011년 7월 25일자 RAW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존 시나의 경기가 끝난 후에 엉뚱한 음악이 나오자 당황해하던 팬들이 펑크가 나오자 환호하는 것이 포인트. ### 대중의 무지함과 이들을 주무르는 카리스마적 사회지도자에 대한 반발을 드러내는 가사 역시 안티 히어로 테제를 지향하는 CM 펑크의 정체성과 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이 곡의 원작자인 밴드 리빙 컬러(Living Colour)는 정말 보기 드문 흑인 메탈 밴드로 유명하다.
  • [9] 하지만 그 이후로 CM이 무엇의 약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Chicago Made, "Cookie Master", "Crooked Moonsault", "Chuck Mosley", "Charles Montgomery", "Charles Manson", "Crazy Mariachi" 등 다양한 대답을 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시카고 메이드로 통용되는 듯.
  • [10] 여기서 펑크는 레이븐에 약물중독자인 아버지의 이미지를 투영하여 대립하였다.
  • [11] 시카고의 성자들이라는 뜻. 세컨드 시티는 시카고의 별칭이다.
  • [12] 과대 평가 되었다는 반응 vs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경기. 사실 경기 자체는 화려함이라기 보다는 자극히 프로 레슬링의 정석에 맞쳐져있기에 괜히 기대했다고 보다가 '이게 무슨 명경기냐 !!!'라며 분노할 수도 있다.
  • [13] 하지만 이런 안좋은 반응은 나중에 이 경기의 명성을 듣고 결과를 알고 재시청한 탓으로 벌어지는 오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중요한 것은 당시 경기장 내의 관중들이 60분간 펼쳐진 정석적인 경기흐름에도 끊임없이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중에 보는 우리들이야 이 경기가 60분 무승부라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에 중간부분은 제끼고 본다든지 하겠지만 그때는 언제 어떤 식으로 경기가 끝날지가 불확실했고 바로 그런 긴장을 두 선수가 장내의 관객들에게 별다른 기슬없이도 60분 내내 멋지게 설득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 [14] 이에 힙입어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4년 올해의 경기 부문 3위에 선정되었다.
  • [15] ROH 시절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보여줬던 사모아 조와는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실제로 같이 룸메이트로 지낼 정도.
  • [16] 그 전부터 테디 하트는 남의 기술을 마음대로 쓰거나(대표적으로 AJ 스타일스의 스파이럴 탭을 허락없이 자기가 쓰기 시작했다.) 각본에 없는 기술을 사용하여(ROH에서 철창 위에서 슈팅스타 프레스를 날린 전적이 있는데, 이는 각본에 없는 사항이었고, 받아주는 선수도 상당히 고생했으며, 자신도 경기가 끝난 후 구토를 하였다.) 다른 인디 레슬러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 중 CM 펑크와 사이가 안좋았다. 2003년경 이 둘은 TNA와 계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던 CM 펑크는 테디 하트가 들어오자 미리 자리를 뜨던 중 테디 하트가 들어와 시비를 걸었다. 밖에 나가서도 테디가 계속 이죽거리자 펑크는 싸닥션과 니 리프트를 갈겼다. 이때 테디는 울면서 매달렸다고(...) 근처에 잠깐 나와있던 ECW 출신의 사부가 둘을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테디는 거의 죽었을 거라고 한다(...). 여기서 사부가 말리자 그때부터 테디는 펑크의 머리를 잡고 주먹을 날렸다고하며 나중에 징계가 내려지자 자기는 머리칼 잡은거 밖에 없다며 찌질함의 甲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 이후 둘 다 TNA를 나오게 되었다.
  • [17] 이때의 기믹이 사실 선악만 바뀌었을 뿐 2011-12년 CM펑크가 WWE에서 형성한 기믹의 원조이다. 타이틀을 들고 이적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또 바로 이 시즌에 펑크의 등장음악이 Living Colour의 Cult of Personality인데 이것도 WWE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 [18] 과거 WWE에서 활약했던 제이미 노블, 2009년 은퇴 후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 [19] 사실 TV상으로는 2006년 레슬매니아 22의 존 시나 등장 때 엑스트라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었다.
  • [20] 레슬링 팬들이 기억할만한 2005년과 2006년에 개최된 흥행인 ECW 원 나잇 스탠드 1, 2가 이 곳에서 열렸다. 여담이지만 시나, 오턴, 그리고 바티스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장소일 듯.
  • [21] 당시 에지는 스토리상 비키 게레로와 연인관계로 스맥다운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비키가 가족인 차보 게레로를 도와주라는 부탁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게 되었다.
  • [22] 전 날 PPV에서 월드 헤비급 챔피언쉽을 가졌는데, 바티스타가 사실상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에지 일당이 일부러 반칙을 저지르며 반칙승 처리가 나버렸다. 반칙 승으로는 타이틀 변경이 바뀌지 않는 단점을 에지가 악용한 것. 챔피언이 확정적이었던 상황에서 놓친 것도 아쉬운 점인데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RAW 이적이 결정되면서 에지에게 다시 도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렸다. 이 때문에 분풀이로 실컷 패버렸다.
  • [23] 챔피언쉽 경기를 가지기 전 백스테이지에서 랜디 오턴과 레거시의 기습 공격을 당했다. 코피 킹스턴이 도와주러 왔으나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큰 도움이 되긴 힘들었고, 결국 펑크는 오턴에게 사커킥까지 맞으면서 월드 챔피언쉽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 [24] 그런데 이 때 펑크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이미 지난 해 머니 인 더 뱅크를 따서 월드 챔피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했던 상황에서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 나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 때문인지 레슬매니아 25 머니 인 더 뱅크 경기가 끝날 무렵 관중석에서 야유를 보내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 [25] 여담으로 이 때 우마가의 거의 유일한 마이크 웍이 있다!
  • [26] 사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PPV도 맞았고, 그 다음 날 스맥다운의 각본 등으로 보았을 때 고의적으로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패러디 한 것 맞다. 대놓고 그렇게 갔었다. 때문에 아나콘다 바이스로 '패배'한 언더테이커의 서브미션 패배 기록은 아직도 '한 번도 없음'으로 나오는 것.
  • [27] 사실 제프와 대립하던 시기부터 이런 모습이 보이긴 했다. 유독 심해졌을 뿐.
  • [28] 이 세그먼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정말 오싹했다는 평이 많다. 방송 직후 이 세그먼트는 수많은 레슬링 커뮤니티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펑크는 이 연기에 힘입어 2010 슬래미 어워드에서 DESPICABLE ME AWARD를 수상한다.
  • [29] 허스키 해리스는 한 발 앞서 그레이트 칼리에게 탈락.
  • [30] 게다가 RAW 노트북단장이 조쉬 매튜스를 통해 경기 시작 전 넥서스는 CM 펑크 빼고 다 퇴장시켰다.
  • [31] 이 세그먼트 전에 각본진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펑크에게 대본이나 가이드 라인 같은 거 없이 자유롭게 마이크웍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즉, 마이크웍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펑크의 애드립이었고 그걸 토대로 분석해보면 이미 회사에 어느정도 불만이 있던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2014년 탈단 이후 콜트 카바나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이야기 한 결과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긴 했지만 모두 진심이었음이 밝혀졌다.
  • [32] 콜트 카바나는 데뷔 이전부터 친구 사이였고 ROH에서 세컨드 시티 세인츠라는 스테이블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며, 스카티 골드맨이라는 이름으로 WWE와 계약해 활동했다가 찬밥대우만 받고 방출당한 전력이 있다. 루크 갤로우스의 경우에도 같이 활동을 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았다는 코멘트를 한적이 있다.
  • [33] 레슬링 옵저버의 편집장이자 미국의 베테랑 평론가 데이브 멜처는 이 경기를 별점 5점의 최고의 경기로 평가했다. WWE에서는 97년 배드 블러드에서 벌어진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헬 인 어 셀이후 14년 만에 받은 5스타 경기이며, 펑크 본인에게는 2004년 ROH에서 사모아 죠와 가졌던 60분 아이언맨 매치 이후 2번째 만점경기였다. 또한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11년 올해의 경기 1위를 차지하였다.
  • [34] 이 외에도 NHL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 오프닝 세레머니에 등장한 적이 있다.
  • [35] 원문은 New champ? How can that be, when the champ is...here. 아시다시피 맨 끝은 존 시나의 캐치프레이즈.
  • [36] 원래 내쉬를 꺾은 뒤 트리플 H와 대면할 예정이었지만 내쉬의 몸상태로 경기를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변경되었다고 한다.
  • [37] 더불어 심판이 난입한 미즈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그것도 선수들이 하는 것 처럼,
  • [38] 경기가 개판오분전 DQ로 끝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존 시나는 머인뱅을 써서 캐싱인했는데도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 첫 번째 선수로 기록되었다. 지못미...
  • [39] PG등급에서 블러드잡은 금지다. 그런데 이 날 펑크의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이 방송된 8월 27일 RAW 직후 WWE는 펑크와 그의 블러드잡을 방치한 심판에게 벌금을 때렸는데, 심판 몫의 벌금까지 펑크가 쿨하게 다 내버렸다.
  • [40] 이 날 제리 롤러의 자리에는 더 미즈가 긴급투입되었는데, 중계라고 읽고 자기자랑이라고 쓰는 뻔뻔스러운 개드립 멘트들을 쉴새없이 날리며 깨알같은 예능감을 보여줬다. 가뜩이나 미즈빠인 마이클 콜과 미즈가 3시간 내내 중계석에 붙어있으니 그 결과는 혼돈의 카오스...
  • [41] 그런데 다음주에 제리 롤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바람에, 가장 최근까지 제리를 신나게 두들겨팼던 펑크는 뭔가 되게 찝찝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롤러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기 직전 가졌던 매치도 다름아닌 펑크 & 돌프 지글러와의 태그매치였다... 펑크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은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을 듯.
  • [42] 관중석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펑크 바로 옆에 있던 퍼니셔 티셔츠의 소년이 주범. 이 쪽은 펑크를 계단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까지 했다.
  • [43] 434일 집권은 1963년부터 이어져온 WWE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6번째로 긴 집권기간이다. 7위는 380일 집권한 존 시나
  • [44] 원래 이 경기는 랜디 오튼이 악역 바티스타가 선역으로 경기를 치룰 예정이었으나 바티스타가 로얄럼블을 우승한 이후 여론이 급격히 안 좋아져 결국 선역 선수 한 명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45] 다만 이걸 오히려 가짜 컴백 떡밥으로 최대한 기대감을 높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컴백시키려는 WWE의 계략이라는 설도 있다. 확실히 무단탈단한 선수의 등장 음악을 트는 건 WWE 입장에서는 손해 밖에 없는데 그걸 굳이 트는 이유랄 게 꼽자면 몇 개 없으며 위에서 말한 컴백 각본을 제외하고는 생방송임을 이용해서 WWE를 엿먹이려는 내부자의 배신 등 3류 음모론 정도말곤 없다.
  • [46] 여담이지만 크리스찬과의 드림매치 드립이 나왔다.(...) 파란 모자이크 VS 노란 포스트잇
  • [47] 마지막 문장을 두고 '헛소문에 휘둘리지 말라'는 해석이 돌아다니는데 남들에게 굴하지 말라는 쪽이 맞다.
  • [48] 자신이 러를 떠나버린 다음에 빈스 맥맨은 출장 정지를 내렸고, 출장 정지 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펑크가 먼저 연락을 몇 번 취했지만 제대로 된 응답을 받지 못했고, 결혼식을 앞두고 트리플 H가 '얘기할 준비가 됐느냐'는 문자를 보내서 펑크는 '난 언제든지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 신혼 여행 갔다 온 다음에 얘기하고 싶다. 근데 내 로얄티는 언제 줄 거냐?'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트리플 H는 CM 펑크의 결혼식날에 해고 통보를 내렸고, 해고되었기 때문에 로얄티를 지급받지 못할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물론 펑크 입장에서 해고 당했기 때문에 이전에 받아야 할 금액을 받지 못한다는 건 어처구니 없는 얘기였고, 결국에 소송전에서 승리하면서 그 돈을 받았다고 한다.
  • [49] 일례로 쉴드는 본래 자신의 아이디어였는데 이를 빼앗아갔다고 한다. 또한 2011년에 자신에게 트리플H가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 [50] 펑크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고. 문제의 장면 인터뷰에서 펑크는 라이백을 스테로이드 가이라고 조롱했다.
  • [51] 제리코가 한 인터뷰에서 '펑크가 요즘 연락을 해도 받질 않는다. 난 그가 WWE를 떠났든 말든 여전히 친구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는데, 펑크가 팟캐스트에서 자신은 WWE 관련 인물들과 아예 인연을 끊은 게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갖고 팟캐스트나 블로그에서 화제를 이끌어보려는 사람하고만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제리코는 이후에 펑크가 자신을 비판한 것이 아닐 거라고 해명했다.
  • [52] 하지만 선수들이 펑크에 대해 찬사를 보낸 부분은 권력자인 빈스와 트리플H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의료 체계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되어 보인다. 실제로 이미 최정상급의 연봉을 받고 있던 펑크가 본인의 위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던건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고, 트리플H와의 레매30 대결을 거부한 점에 대해선 "배부른 소리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라이백이 일부러 갈비뼈를 부러뜨렸다고 언급한 것 때문에 오히려 지지층을 더 잃어버렸다.
  • [53]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봤을 때 저 추측들은 다 신빙성이 떨어진다. 우선 펩시 플런지가 WWE에 와서 봉인되었다는 것은 펑크 본인이 '인터넷에서 지어낸 얘기다'라고 부정했으며 또한 트리플 H가 킬러 코왈스키 도장 출신의 정통파여서 인디 단체 출신의 펑크를 싫어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원래 펑크처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유명세를 얻어서 큰 단체로 오는 게 더 정통파에 가깝다. 빈스 맥맨이 전국구 레슬링 단체를 추구하면서 워낙에 많은 타레슬링 단체가 도태되었기 때문에 요즘은 저런 경우가 드물 뿐. 펑크 역시 에이스 스틸의 밑에서 정식으로 레슬링을 배운 바가 있으니 정식 레슬러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게다가 트리플 H가 NXT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인디 레슬러들을 영입한 것이, 트리플 H가 인디를 싫어한다는 것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
  • [54] 비단 에디 게레로뿐 아니라 크리스 벤와나 딘 말렝코, 크리스 제리코 같은 덩치 작은 선수들을 싸잡아 저렇게 부르며 깎아내렸다.
  • [55] 근데 진짜 워킹 데드빠인지 WWE탈단 이후 첫 스케줄이 워킹 데드가 끝나고 방송하는 토킹 데드라고(...) 홍보 문구도 워킹 데드의 슈퍼 팬인 필 브룩스, 일명 CM 펑크이다.
  • [56]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2013시즌에 우승하였을 때는 다리에 문신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