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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GP 사건

last modified: 2015-04-08 01:31:2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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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사건 개요
2. 상세
2.1. 원인
3. 사건의 여파
4. 이야기거리

1. 사건 개요

이른바 김일병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제28보병사단 530GP에서 김모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라는 게 군 수사당국의 공식적인 발표. 사건을 저지른 범인 김 일병은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2. 상세

사건 당일 전방 GP에선 사고 발생 당시 북한군의 공격으로 상황이 전파되기도 했지만 오래 안 가 정정되었다. 모 사단에서 당직 맡던 군필자의 말에 의하면 초기 상황연락 보고 받을 당시에는 영현백과 함께 태극기를 준비해달라는 최초 보고가 있었지만[1] 이내 정정되었다고 한다. 이는 전쟁이나 어떠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초반의 혼란스러운 상황 및 한정적인 정보수집 때문에 정확하지 못한 내용이 발표되는 것과 비슷하다.

2.1. 원인

원인은 내무부조리.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당시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상당한 기간 육군의 내무부조리는 심각했다. 구타는 일상일 정도로 구타나 얼차려를 안 받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GP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속된 내무부조리에 참지 못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선 김모 일병이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등 총으로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게임광이라서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개소리를 쳤지만, 조사 결과 사실 김일병이 플레이하던 게임은 아동용 메이플스토리니 말도 안 되는 소리.[2] 무슨 일만 일어났다 하면 게임 등의 콘텐츠부터 걸고 넘어졌던 언론의 오래된 악습이다.[3]

3. 사건의 여파

약간 과장되게 말해서 대한민국 육군의 병영 문화는 이 사건 이전과 이 사건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대한민국 전군은 발칵 뒤집혔고 특히 육군을 위주로 모든 부대에 걸쳐 부대 조사와 소원수리가 행해졌다. 육군 내 만연했던 구타, 갈굼, 내무부조리 등 병영의 악습들이 그럭저럭 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그나마 좋게 봐줄 만한 점이다. 특히 28사단은 전면적으로 해체되었다가 재편되는 굴욕을 당했다. 당시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사단장이 전부 옷을 벗었고 군단장에게 경고장이 발부되었다고 한다. 담당 병기 특기 부사관은 보병으로 아예 전과되었다. 이후 28사단은 내무부조리가 많이 사라진 걸로 알고 있지만, 2014년에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나면서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육군에게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내무부조리는 아주 몹쓸 문화로 찍혔다. 아무리 큰 사건이었고 사람이 죽어나갔다지만 보수적으로 유명한 군대에서 내무부조리가 신속하게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은 이 점도 크다.[4] 참고로 해군, 공군은 지원제며 여기에 합격하는 사병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사병들이 많으니 문제 생길 확률은 낮아지고, 육군은 무차별 징집(...)이고 인원수가 많다보니 당연히 그만큼 사고터질 확률도 높아지는 것일 뿐이다.

독일영화 엑스페리먼트를 보면 "폐쇄된 환경"에서 간수역할을 부여하자 일부 간수역할의 자들이 점차 자신의 가학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내무부조리가 심한 군의 특징은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당시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당시 논산훈련소장은 MBC기자에게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청탁요구까지 했을 정을 정도였지만 결국 폭로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대대적인 관리,감시가 이루어지고 이전보다는 좋아졌는데, 즉, 이런 가혹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감시시스템이 투명해지는 것만이 가혹행위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다.

지금은 언론의 많은 보도로 인해 많이 완화되었으나, 군대가 아니라 경찰 조직인 의경도 가혹행위가 매우 심했고, 심지어 구청과 시청에 복무하는 공익마저도 가혹행위 문제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또 이전에도 군대 괴담이나 몇 가지 확인되는 소스로 비슷한 사건(부대원이 불만을 갖고 있다가 부대 날려먹고 자폭)이 존재했으나 이전 사건들은 그대로 묻히고 개선의 여지조차 없었던 반면 이번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 참고로 이 사건은 2008년작 영화 <GP506>과 연관된 것처럼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감독은 공식적으로 관계 없다고 발언했다. 2012년에 나온 음모론. 그리고 2012년 5월 16일, 유족들의 동의하라는 명분하에 당시 상황을 찍은 영상이 유포되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재조사 방침은 없다고 입장을 내놓은 상황.

다만 그렇다고 해서 100% 제대로 된 개선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2008년 모 사단의 GP에서 황모 이병이 수류탄 사고를 일으키는 등[5] 사고는 계속 터졌으며 특히 해병대는 개선된 점이 거의 없어 2011년 한국군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되는 2011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4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의 진범 김모 상병도 현재 사형 선고를 받고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이도 많고 덥수룩 한 스타일의 병사가 지나가서 중사 쯤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김일병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4월, 똑같은 제28보병사단에서 의무대 후임병 폭행사망 사건이 터지면서 제28보병사단은 인권쓰레기 사단이라 불리게 되었다.

4. 이야기거리

사건 발생 초기 국방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망자 시신을 한 곳에 안치하지 않았다. 수도통합 병원, 국군 양주병원[6], 국군 일동병원(포천), 국군 벽제병원(고양) 등 4곳에 분산수용하여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봉쇄한 것이다.[7]

그러자 당시 국방부 장관인 윤광웅의 정책 보좌관이였던 정태용은 현안 업무를 조정하는 국방부 현안점검회의에서 "왜 시신을 한 곳에 안치해 합동분향소를 차리지 않느냐" 고 따졌다. 이에 인사복지 업무를 총괄하는 김승렬 차관보는 "군의 실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해야 말썽이 안 난다" 라고 답변했다. 이에 빡친 정보좌관은 "그게 말이 되느냐, 시신을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안치하고 합동분향소를 차려 유가족을 지원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결국 정 보좌관의 노력으로 시신들은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지고 합동분향소가 안치되었다. 또한 1953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해군 출신으로 장관에 오른 윤광웅 장관 등은 분향소의 유가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국방부 간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분향소에 조문 갔다가 수십 명의 군인과 유가족, 언론사 취재진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거센 항의를 받았다. 평상시에도 좌파정권에 투신한 좌파군인이라던지, 해군 출신이라며 국방부 내에 온갖 견제와 조롱을 받던 윤광웅 장관은 국방부 간부들에게 "그럴 줄 알았다" 며 또 다시 조롱 당했다.

그런데 이것이 사상 최초의 국방부장관의 조문이었다. 물론 조문 갈 일을 미리부터 예방하는 게 더욱 좋지만 '최초'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권위주의적이기만 했던 과거 대한민국군의 역사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육군의 행태를 보자면 일본군 전통을 답습해 군대에서 사람은 소모품이라는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17명의 우리 장병들이 전사하였지만 시신들을 분산 안치해 개별적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합동위령제는 아예 열지도 않았다. 합동분향소나 위령제가 없는데 대통령, 국방부장관 기타 등등이 올 일은 만무하다. 그리고 위의 사건 뿐만이 아니라 언제나 그랬다.

결국 이렇게 합동분향소가 차려지게 되어 유가족들이 뭉치게 되자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생방송으로 중계된 수사상황 발표에서도 유가족들이 집요하게 의문점을 물어보게 된 것이였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유가족들이 '우리 자식들은 북한군에 희생되었다' 고 음모론도 꾸미게 되고 언론에 철저히 공개된 덕분에 보수언론에서도 좌파정부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비록 합동분향소를 만들게 되어 유가족과 언론에 의해 국방부가 더 많은 질타를 받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국가와 군대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을 이제야 한 것이다.

또한 상당수의 보수언론은 이 사건이 좌파정부의 영향으로 군인들의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하였지만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똑같은 28사단에서 똑같이 8명이 사살당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자 바로 버로우했다.[8]

이 사건을 계기로 역대 총기난사 사건 등 국군의 주요 사고 사건들을 죽 정리한 2005년도 기사를 보면 먼 과거에도 이런 사건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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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는 북한군의 도발로 벌어진 국지전에서 전사했다는 뜻이다.
  • [2] 후일 원사운드TIG게이머 자녀 확인 방법이란 만화에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한다. 정상입니다.이란 컷을 넣어 제대로 깠다. 다만 알아들은 사람이 몇 없는듯...
  • [3] 사이버 지식 정보방을 제외하고는 보안상의 이유로 오락활동에 엄격히 제약을 받는다. 물론 게임같은 걸 하게 가만 놔두는 것도 아니고.
  • [4] 이때문에 니코니코 동화, 2ch 등에서는 한국군은 영원한 일본군의 후예라고 댓글을 남기며 마구 조롱한다. 하지만 자위대의 병영문화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며, 한국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병영부조리가 깽판을 치고 있다.
  • [5]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 [6] 양주시. 6군단 배속 28사단 지원 전방병원인 관계로 부상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 [7] 실제로 사건 당일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모인 국군 양주병원의 경우 비무장 단독군장 차림의 기간병들로 유가족들의 병원 본관동 진입시도를 봉쇄하기도 했다.
  • [8] 사실 28사단에서 소문처럼 떠돌던 이야기였다. 이 보도가 나오자 '진짜였어?' 하고 놀라워하는 예비역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