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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한국시리즈

last modified: 2015-04-05 09:19:08 Contributors

역대 KBO 한국시리즈
1990년
LG 트윈스
1991년
해태 타이거즈
1992년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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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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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Contents

1. 개요
2. 엔트리
3. 시리즈 전 상황
4. 경기 결과
4.1. 1차전(10/9, 광주) 무등산 폭격기
4.2. 2차전(10/10, 광주) 호랑이의 독수리 학살
4.3. 3차전(10/12, 대전) 완벽했던 송진우, 8회에 무너지다
4.4. 4차전(10/13, 대전) V6! 야구는 역시 8회부터!
5. 트리비아

1. 개요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4승 무패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콩그레의 전설은 계속 되었고.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

2. 엔트리


감독: 김영덕
코치: 김명성 이희수 함학수 송일섭
투수: 한용덕 한희민 송진우 이동석 진정필 김대중 장정순 김인권 김홍명
포수: 김상국 양용모
내야수: 정길 전대영 장종훈 강석천 황대연 조양근 지화동 김용선
외야수: 이정훈 이강돈 이중화 임주택 진상봉

3. 시리즈 전 상황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월부터 치고 나간 해태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618득점/409실점으로 피타고리안 승률을 이용해 기대승률을 따지면 역대 2위(.695)[1]로 91승을 거둔 00년의 현대보다 더 높았다.[2]저 공식이라면 해태는 91년에 88승을 거뒀어야 했다.(무승부를 0.5승으로 치고) 한마디로 더 많은 승수를 거둘 수 있었는데 크게 이기고 작게 지는 비경제적인 야구를 했다는 말

빙그레 역시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최고의 전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타선은 이 해 35홈런을 친 장종훈을 위시하여 여전히 강했지만, 마운드의 원투펀치인 이상군한희민이 그동안 무리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송진우한용덕이 등장해 메우고 있었지만, 마운드의 높이에서는 해태에 비해 분명 약했고, 여기세 PO에서 준PO에서 4경기나 치루면서 전력을 소모한 삼성 상대로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면서 앞선 1989년과는 달리 이 번 시리즈는 해태가 절대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대로 경기가 흘렀다.

4. 경기 결과

4.1. 1차전(10/9, 광주) 무등산 폭격기

1 2 3 4 5 6 7 8 9 R H E
빙그레 이글스 0 1 1 0 0 0 0 2 0 4 8 2
해태 타이거즈 0 3 1 0 0 2 0 3 X 9 6 0

해태는 선발로 선동열을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를 내세웠다. 한용덕을 가급적 선동열과 붙이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는데, 일단 2회초에 강정길의 홈런으로 먼저 앞서기는 했다. 허나 해태는 2회말에 바로 한대화의 홈런과 장채근의 적시타로 앞서 나갔고, 그 뒤로도 빙그레가 점수를 만회할 때마다 추가점을 내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사실 빙그레도 4회부터 나온 장정순의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그 장정순은 6회에 교체되었고, 그 때 여지없이 2점을 실점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그르쳤다.

빙그레의 타선은 나쁘지 않았다. 찬스도 잘 잡았고, 무엇보다 선동열 상대로 4점을 내면서 끈질기게 공략했다. 만일 정상적으로 한용덕이 나왔다면, 승부는 정말 알 수 없었던 일. 어쨌거나 해태는 마운드에서 선동열이 9이닝 4실점으로 완투하며 시리즈 첫 승을 따냈다.

4.2. 2차전(10/10, 광주) 호랑이의 독수리 학살

1 2 3 4 5 6 7 8 9 R H E
빙그레 이글스 1 1 0 0 0 0 0 0 0 2 7 3
해태 타이거즈 0 1 1 0 6 1 2 0 X 11 13 1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를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용덕을 내세웠다. 경기 초반 빙그레는 제구 난조를 보인 김정수를 공략하고, 이건열의 실책을 묶어 먼저 2점을 냈다. 하지만 해태는 곧바로 2회말 한 점을 만회한 후, 실책의 당사자인 이건열이 3회말 홈런으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운드도 2회부터 이강철로 교체하여 더이상 실점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3회와 4회, 이순철의 잇딴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승부는 5회말에 갈렸다. 2사 후에 이건열의 역전 홈런을 신호탄으로 제구가 흔들린 한용덕을 공략하면서 한용덕을 마운드에서 끌어 내린다. 후속 투수는 그 해 8승을 거둔 신인 김인권. 그러나 신인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여기서 해태는 한대화와 장채근의 연속 적시타를 묶어 대거 6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7회말과 8회말에도 점수를 추가하면서 빙그레를 대파하면서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4.3. 3차전(10/12, 대전) 완벽했던 송진우, 8회에 무너지다

1 2 3 4 5 6 7 8 9 R H E
해태 타이거즈 0 0 0 0 0 0 0 4 0 4 4 1
빙그레 이글스 0 1 0 0 0 0 0 0 0 1 8 0

홈으로 돌아온 빙그레는 송진우를 기용했고, 해태는 문희수을 내세웠다. 빙그레는 2회말 1점을 얻어 앞서갔고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이어갔다. 해태는 송진우에게 완전히 말리면서 경기 자체가 꼬였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2회 점수를 낸 후, 무사 1,3루 찬스와 3회 무사 1,2루의 찬스를 놓친 것이 뼈아파기는 했지만 송진우의 구위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경기 자체는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회 2아웃 이후 대타 정회열 타석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파울플라이를 놓친 것이 화근이 되었고, 2-2에서 회심의 공을 볼로 판정하면서 결국 정회열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퍼펙트가 깨진뒤 송진우는 홍현우에게 안타를 맞으며 노히트노런도 무산되었고 이어 장채근에게 역전 2타점 2루타, 윤재호에게 3루타를 허용하며 연속 3실점을 하고 강판된다. 그 후 구원등판한 장정순이 이건열에게 안타를 맞고 추가 1실점을 하여 결국 1:4로 빙그레가 패배하면서 빙그레는 1,2,3차전을 모두 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시리즈 스윕패에 1패만을 앞둔 절체절명 위기를 맞게 되었다.

4.4. 4차전(10/13, 대전) V6! 야구는 역시 8회부터!

1 2 3 4 5 6 7 8 9 R H E
해태 타이거즈 0 0 0 0 0 0 0 3 2 5 7 0
빙그레 이글스 1 0 0 1 0 0 0 2 0 4 8 1

빙그레는 한용덕을 이틀 쉬고 내보내는 도박을 걸었고, 이 도박은 7회까지는 먹혔다. 빙그레가 1회 이정훈의 홈런과 4회 연속 2루타로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빙그레는 한 끗이 부족했다. 8회초에 무사 1,2루 찬스를 잡은 해태는 보내기 번트가 아니라 강공을 선택했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대타 김태완의 동점 2루타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는 보내기 번트와 땅볼로 역전.

빙그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8회말 선동열 상대로 강석천이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승부를 다시 뒤집었다. 아웃카운트 3개만 잡으면 잠실로 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나온 한희민은 장채근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3루수 실책이 나오면서 1사 1,2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순철이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결국 9회초 다시 2실점하여 빙그레는 패배했다. 반대로 해태는 불리했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으면서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복귀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빙그레는 잡을 수 있었던, 아니 잡아야만 했던 경기를 또다시 최악의 역전패로 장식하면서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맞대결 3전 3패를 당했고, 안방에서 스윕패라는 치욕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5. 트리비아

  • 앞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무승부로 4차전이 치러졌다.[3] 플레이오프에서는 3승1패가 나왔다. 한국시리즈는 해태가 4차전만에 스윕하면서 포스트시즌 모든 시합이 4차전만에 끝났다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전년 시리즈에 이어 2년 연속 스윕으로 끝난 유일한 시리즈(!)

  • 포스트시즌 전체를 기준으로 잠실 야구장에서 단 한경기도 열리지 않은 처음이자 유일한 시리즈이다.[4][5]

  • 3차전 8회 2아웃 정회열 타석의 2-2에서 바깥쪽 직구에 대한 볼 판정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송진우 본인은 아직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본 기자들은 그 공은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공이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당시 주심인 이규석 씨는 아직도 그 공은 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3차전이 대역전패로 끝나자 그 공 하나로 경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대전의 일부 관중 + 잠실 경기 표를 미리 산 암표상이 합세해서 심판 숙소를 점거하고, 심판과 한 판 뜬 사건이 벌어졌다. 21세기인 지금이야 대전 호구보살팬으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당시만해도 마산아재, 대구아재, 도원아재, 광주아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깔있는 대전아재들이었다. 칰키워의 원조 사실 1980~90년대 야구팬들은 거의 이랬다. 어쨌든 결과는 의외로[6] 심판의 승리. 대신에 경찰에 가서 치료비는 다 물어줘야 했다고 한다.

  •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상대로 이 시리즈까지 세번 맞붙어서 0:3의 전적으로 처참히 발렸다.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이 늦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해태 때문이었다.(...)삼성도 마찬가지(...) 사실 해태가 너무 강했다. 하필 빙그레의 전성기가 해태의 최전성기와 일치했던 것이 컸다. 거기다 세번 맞붙으면서 시리즈 전적도 2:4(1988년), 1:4(1989년), 0:4(1991년)으로 계속 맞붙을수록 승수가 줄어들면서 더 호구잡혔다. 빙그레-한화팬이 삼성팬 못지 않게 해태-기아를 못잡아먹은 것도 다 이 탓인 듯.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 이후 빙그레-한화와 해태-기아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은 2013년을 기준으로 한차례도 없다.[7]2013년에 이 두 팀의 을 보면 참...

  • 별 것 아니지만, 우승 엠블럼에 오타가 있다(...). 'SERIES'가 'SERISE로 적혀져있고,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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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피타고리안 승률은 팀특점의 제곱 ÷ (팀득점의 제곱 + 팀실점의 제곱)으로 단순히 득점/실점을 따져 기대승률을 구하는 공식. 점수를 많이 이기고 적게 주는 팀이 높은 승률을 올리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기에 그팀이 전력에 비해 얼마나 좋은 승률을 올렸는지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 [2] 1위는 82년 삼성 라이온즈이며 당시는 한팀이 80게임만을 치뤘다.
  • [3] 두번째 오버시리즈는 2004년 한국시리즈, 준PO4차전은 2005년 5전 3선승제로 바뀌면서 나왔다.
  • [4] 서울 연고였던 OB, LG는 진작에 4강 탈락했고, 한국시리즈가 5차전까지 갔으면 잠실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었는데, 해태가 스윕으로 막은 것이다.서울 해태팬, 빙그레팬들은 그저 눈물만(...) 더불어 이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5차전 마저 잠실 중립경기가 있었는데 빙그레가 3승 1패로 이겨서 5차전이 치뤄지지 않았다.
  • [5] 한국시리즈 한정으로는 1987년 한국시리즈 이후 두 번째로 서울에서 단 한경기도 안열리고 끝난 시리즈이다. 이후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로 서울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고 끝났다.
  • [6] 사실 심판이 백이면 백 전직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예정된 참사(...)였다.
  • [7] 1994년, 2006년에 만난 적도 있긴 하나 둘 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준플레이오프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2:0으로 한화가 해태를 눌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2006년에는 2:1로 한화가 기아를 누르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사실 해태-KIA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어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상하게 단 한번도 승리를 못할 정도로 호구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