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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다우딩

last modified: 2015-09-21 19:49:2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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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h Caswall Tremenheere Dowding, 1st Baron Dowding GCB, GCVO, CMG
(1882-1970)
당신이 꼰대+영국인+군인을 생각했다면 떠올렸을 바로 그 얼굴! but 영국의 영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 전투기사령부[1] 사령관. 최종 계급은 대장.

독일공군 루프트바페의 공세를 막아내고 조국을 지켜냈고, 나아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역전시킨 전쟁 영웅.[2]

일단 인상부터가 참 꼬장꼬장하게 생겼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애증을 담아서(상층부는 애증, 부하들은 애정) 붙여준 별명이 고집쟁이 영감.[3] 1930년대 공군을 지배했던 폭격기 킹왕짱 사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인물로 전투기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상관인 공군참모총장 뉴월에게 전투기 사령부 조직을 강력히 건의, 초대 사령관에 취임하게 된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활약한 허리케인과 불멸의 스핏파이어 개발을 지시한 것도 이 사람의 공이 컸다. 이 영향으로 독일 공군의 전투기 배치 계획까지 늦어지는 결과를 빚었다.[4] 또한 영국 전역에 레이더 기지와 방공관제소도 설치해서 영국의 방공망을 만들어놓았다. 이게 별일 아닌 거 같지만, 당시 사람들은 막 개발된 레이더의 가치를 반신반의했다. 심지어 적외선이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하는 반론도 있었을지경. 결국 영국 해안가에 레이더 기지를 고집고집해서 세우고야 말았다.[5] 그리고 어느 정도 낭만에 죽고 살던 하늘의 사나이들을 중앙 통제 시스템으로 길들인 것도 그의 공로이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지상에서 브리핑한 후 하늘에서는 조종사들이 알아서 하는 식이었다. 그걸 다우딩이 바득바득 윗선에게 대들고 뜯어고쳐 현재같은 기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레이더 기지에서 적기 파악 -> 중앙 관제 시스템에서 실시간으로 적기 현황 파악 후 통신으로 전투 비행단에게 작전 지시 -> 조종사는 실행하는 효율적인 구조가 완성되었다.[6]

개전 후 프랑스가 그야말로 완벽하게 털리자 수상인 윈스턴 처칠 경에게 "이미 끝장난 프랑스에 지원군을 보낸다면 우리는 우리 하늘을 지킬 전투기가 바닥날겁니다"라는 서신을 보냈고, 이후에도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해군과 국방부의 압력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눈감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처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도 저렇게 버텼다는 게 대단하다.

또한 의회에서 산크리를 이유로 전투기 조종석에 설치하는 방호판을 도입하지 않으려하자 "시카고의 갱단들이 자기네들의 차에 방탄유리를 넣는 마당에 우리의 공군 조종사들이 돈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방호판을 못 가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하고 강하게 면박을 주면서 전투기에 방호판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부하들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고 부하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받았다.

결국 그의 선견지명은 제대로 들어맞아서 영국 왕립공군은 제3제국 루프트바페의 침략을 막아냈지만, 워낙 윗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렸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자 한직으로 좌천당했고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퇴역했다.[7]

다우딩의 해임과 말년

다우딩은 1940년 11월경에 전투기 사령관 자리에서 해임되는데, 이 시기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사실상 끝나고 대신 런던 및 영국 대도시들이 폭격받던 시기이다(London Blitz). 다우딩의 방어적 전투기 운용은 수적 열세 속에서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고 효과도 물론 뛰어났지만, 야간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고집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버티는 다우딩을 바라보는 윗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당시 영국 공군 내에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적 폭격 전술을 주장하는 멤버들이 많았는데 이는 초대 공군참모총장인 휴 트랜차드를 비롯한 다수의 공군 원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는 이른바 Big Wing Controversy를 일으키며 다우딩과 정면 대립하였다. 이 대립은 런던 폭격이라는 루프트바페의 실책으로 잠시 잦아들었지만, London Blitz 기간 중 재발하여 공군참모차장 토 더글러스, 트래퍼드 리맬러리, 폭격기 사령관 스 포털 등의 인물들과 대립하였다.

결국 다우딩을 적극 후원해준 뉴월 공군참모총장이 먼저 물러나고 포털이 후임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공군참모차장 숄토 더글라스가 휴 다우딩의 사령관직을, 리맬러리가 키스 파크의 제11그룹 지휘관직을 이어받게 된다. 이순신이 쫓겨나고 원균이 그 뒤를 이어받는 장면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영국의 이순신은 이미 전쟁을 다 이긴 상태에서 쫓겨났다는 점이며 공세로의 전환이 지지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우딩의 후임인 두 사람을 원균과 비교하는 것도 굉장한 실례다, 둘은 적절한 능력은 있었다.

원래 2차대전 전에 퇴역했어야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까지 치러 버린 노장이기도 했고, 영국 공군은 다우딩 반대파가 장악하고 있기도 해서 마땅하게 갈 자리가 없었다. 그나마 처칠의 배려로 미국에서의 항공기 조달 업무를 잠시 맡지만 결과는 신통찮았고, 영국 본토 항공전 후기 (Despatch)를 쓰는 것을 끝으로 1942년 퇴역. 처칠의 제안으로 1943년 Bently Priori 남작 작위를 받음. 참고로 Bently Priori는 영국 전투기 사령부가 위치한 지역.

전쟁 후에는 전사한 파일럿의 아내와 재혼, 영국 공군의 기념식에 간간히 참석하는 조용한 말년을 보냄. 1970년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치됨.


런던의 세인트 클레망트 교회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흥미롭게도 곁에는 2차대전 후반기 독일에 대한 전략폭격을 주도했던 아서 해리스의 동상도 함께 있다. 영국 공군의 칼과 방패

영화 《공군 대전략》에서는 명배우 런스 올리비에 경이 다우딩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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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외에 방공, 폭격, 해안방어 사령부 등이 존재하며, 각 사령부의 사령관들은 공군참모총장의 최고 지휘를 받는것과 동시에 각 사령부의 실질적 책임자이다. 그 중 전투기 사령부는 공대공 전투기들을 총괄했다.
  • [2]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소련군 대표가 독일군 룬트슈테트 원수를 향해 "독일이 전쟁에 패배한 가장 큰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그러나 룬트슈테트 원수는 "물론 쿠르스크나 스탈린그라드도 뼈아픈 패배였지만 영국을 무너뜨리지 못한 게 가장 큰 실책이었소. 만약 영국을 점령했다면 소련도 얼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미국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연합군 대표가 모두 모여있었기 때문에... 뒷일은 알아서 생각해보시라.
  • [3] 영어로 Stuffy. 답답+케케묵은+고지식+고집불통 노친네 쯤 되겠다 (...)
  • [4] 하리케인과 스핏파이어에 기관총 8정이 장비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독일 공군이 Bf-109의 무장을 강호하기 위해서 설계를 변경하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 [5] 당시 레이더란게 개발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도 파악이 힘들다거나 하는 문제점은 있었다만, 없는 것 보다는 약 천만배 정도 낫다.
  • [6] 이 중앙 관제 시스템은 당시 현역 조종사들에겐 굉장히 생소한 구조였으니 당연히 반발도 심했다. 게다가 여기서 조종사에게 지시하는 사람들은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젊은 여성들... 다우딩은 현역 조종사들을 이 중앙 센터에 일정 기간 로테이션으로 근무하게 시켜서 이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믿음직스러운지 몸으로 체험시켰다. 또한 독일군의 폭격에 건물이 무너지고 주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이 어린 여성들은 동요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내 다우딩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 [7] 결정적인 그의 실각요인은 독일군의 야간 폭격을 막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는 기술적으로 차근차근 해법을 제시했지만(당시 영국 기술로는 야간 폭격을 막기가 곤란했다) 큰 호응을 얻을 순 없었다. 그 외에도 그전부터 전술적인 부분에서 내부에서 반발이 많았고, 그 특유의 꼰대 기질때문에 남한테 아부하거나 좋은 말로 슬슬 넘어가지 않았기에 내부의 적들이 엄청 많았고, 반대 의견도 어느 정도는 이유가 있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