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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

last modified: 2015-03-09 02:54:37 Contributors


넥센 히어로즈 No.78
홍원기(洪源基)
생년월일 1973년 6월 5일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학력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고려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드래프트 1차 지명(한화 이글스)
소속팀 한화 이글스(1996~1999)
두산 베어스(1999~2005)
현대 유니콘스(2006~2007)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8번(2009~)
김정수(2008) 홍원기(2009~) 현직

2001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양대리그 홍원기(두산 베어스) 최동수(LG 트윈스)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황금학번 세대
5. 기타

1. 소개

前 프로야구 선수. 현 넥센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한화 이글스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박찬호, 손혁공주고등학교 동기생으로 고려대학교를 거쳐서, 1996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포지션인 3루수 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 이영우, 송지만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다.

1999시즌 도중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했고,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의 활약덕분에,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 2001년 준 PO MVP에 오르는 등,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뒤로도 준수한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2005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안경현-손시헌-김동주 라는 내야진이 있었고, 준수한 백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해서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았고, 하마트면 FA 미아가 될 뻔했다. 다행히 사인 &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갔고, 2년 더 뛴 후, 현대의 해체와 함께 은퇴하게된다.[1]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전력분석원을 거쳐서 2군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2011시즌을 앞두고 김성갑 1군 수비코치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자, 1군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4. 황금학번 세대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중 한명이다. 하지만 아마야구 시절의 기대에 비해선 프로야구에 들어와선 많이 꽃피우지 못한 선수.

5. 기타

선수시절때부터 별명이 원기옥이었다. 처음엔 이 별명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져서 홈런포 못날리면 욕먹을까봐 꺼림직스러웠지만, 세월이 지나고나서 예전부터 동료와 팬들과 오랫동안 정들었던 별명이었기에 익숙해졌다고한다. 이미 별명은 원기옥으로 아예 굳혀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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