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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우스

last modified: 2014-11-06 06:32:21 Contributors


Flavius Honorius Augustus.

서로마 제국황제. 생몰년은 384. 9. 9 ~ 423. 8. 15, 재위기간은 393. 1. 13 ~ 423. 8. 15.

로마의 역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아르카디우스(동로마), 호노리우스(서로마) 테오도시우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서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호노리우스 콘스탄티우스 3세 발렌티니아누스 3세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Contents

1. 생애
1.1. 공동 즉위
1.2. 혼란한 재위기간
1.3. 취미
2. 변명

1. 생애

1.1. 공동 즉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공동황제가 되었는데 395년 아버지가 죽자 단독 황제가 되었고, 그의 형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1]

1.2. 혼란한 재위기간

그의 통치를 살펴보면 너무 안습이라서 할 말이 없다. 그의 치세 자체가 게르만족에게 당하는 관광의 연속이었다. 즉위 직후부터 시작된 반달, 알라니, 고트 및 수에비족의 연속된 침략으로 로마 제국의 국방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고, 409년에는 멀리 브리타니아에서 SOS 요청을 보냈는데도 군대가 없어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으니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통보까지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2][3]

이런 막장상황에서 그가 한 일은 없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환관들에게 휘둘렸다고는 하지만 커서도 개념없긴 마찬가지라 즉위 초기부터 자길 지켜주었던 장인이자 매형[4]스틸리코 장군을 408년에 쳐죽이고, 408년부터 410년까지 서고트의 대왕 알라리크로마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했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뻗대다가 결국 410년 로마가 관광당하는 꼴을 맞이해야 했다. 물론 자기는 그 동안 황궁이 있던 라벤나에 숨어있었는데, 여차하면 동로마로 도망치려고 했다고 한다. 역시 그 형에 그 동생.

이후 알라리크가 병으로 어이없이 죽고 나서 로마 재건에 다소나마 힘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통치에 관심없는 건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활약했던 휘하 장수였던 스탄티우스 3세에게 동생 갈라 플라키디아를 시집보내는 한편 공동 황제 자리까지 줘서 그에게 통치와 전쟁을 떠넘긴다. 이후 콘스탄티우스가 급사하자[5] 갈라 플라키디아와 그 자식들을 해치려 들었고 이에 경악한 갈라 플라키디아는 삼촌을 쏙 빼닯은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와 딸 호노리아를 데리고 동로마로 도망친다. 흠좀무 그 뒤 2년도 지나지 않아 이 집안의 유전병 비슷[6]한 감이 있는 부종으로 사망. 38세의 나이였다.

워낙 군주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데다 이미 몇차례에 걸친 내전으로 서로마 일대의 경제는 막장이고 군대는 와해되고 게르만족은 계속 내려와서 신나게 관광을 태우는 판이었으며 제대로 된 관료층도, 군대도 없었기 때문에[7] 그가 능력이 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1.3. 취미


닭 치는 호노리우스

취미가 을 기르는 것이었다고 한다(제정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 《눈 속의 독수리》에도 나온다). 그 중 가장 사랑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알라리크가 로마 성문을 뚫고 들어오자 전령이 로마가 작살났다고 전했다. 이에 호노리우스는 슬피 울며 '우리 닭 로마가 죽다니'라고 했다. 전령이 그게 아니라 도시 로마가 함락당했다고 설명하자, 호노리우스는 안색이 바뀌며 '뭐야 난 또 닭 이야기인줄 알았네'라며 안도했다는 참으로 찌질스러운 일화가 전해진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호노리우스라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던 데다가 로마 복구에는 적극적이었기 때문.
참으로 스러운 황제였다 어어 이거 위험한데[8]

2. 변명

하지만 호노리우스도 어느 정도는 억울한 소지가 있는 것이, 좋은 알맹이는 형 아르카디우스가 쏙 빼가고 자신에게는 폐허나 다름없는 서로마를 남겨주었으니[9] 이는 호노리우스가 아니라 호노리우스 할아버지라도 별 수 없었다.[10]

게다가 즉위 초부터 동로마와 서로마가 서로 으르렁대느라 국력을 모을 틈도 없었다. 게르만 출신의 무장들 간의 대립으로만 이야기되지만, 실제는 로마와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가톨릭 교회간의 주도권 다툼, 로마 원로원과 콘스탄티노플 원로원 간의 권위 다툼 등, 그야말로 서로마와 동로마를 양분하던 지배 세력간의 총체적 다툼이 그나마 강력했던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과 함께 일시에 터져나온 것.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무슨 악의 축처럼 묘사되었던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자마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스틸리코에게 호노리우스 뿐만 아니라 아르카디우스까지 맡겼다는 주장을 펼쳤으며[11] 로마 원로원의 실세로 역시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암브로시우스의 라이벌마냥 묘사되었던 심마쿠스도 스틸리코를 신나게 애널석킹하며 그를 지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 분열 현상이었던 것, 황제들의 권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호노리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찌질한 이미지는 그의 형 아르카디우스도 마찬가지였으며, 이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 가문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남자들의 찌질성(심슨 가문의 그것과 흡사한)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12] 반대로 이 가문의 여성들, 대표적으로 호노리우스의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나 아르카디우스의 딸 풀케리아[13]는 각기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와 남동생 테오도시우스 2세를 좌지우지하는 흑막이었고, 갈라 플라키디아의 딸인 호노리아는 좀 안 좋은 쪽으로 피가 뜨거웠는지 아틸라에게 '나랑 결혼하면 로마 반쪽이 오빠 꺼'라는 식으로 작업을 걸었다가 안그래도 털어먹으려 했던 차에 "옳다쿠나" 하고 명분까지 생겨버린 아틸라가 신나게 쳐들어와서(...)서로마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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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이 아르카디우스도 무능한 건 매한가지라, 훈족이 쳐들어오고 동고트족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그저 하는 일은 질질 짜면서 마누라 치마에 매달리는 것밖에 없었다고 대차게 까였다. 그가 호노리우스처럼 욕먹지 않는 건 빨리 죽은 점. 그리고 동로마는 서로마와 같은 굴욕을 당하지 않을 만큼 국력이 강한 점 덕택일 뿐이다. 만일 황제 자리를 서로 바꿔놓았다면 라벤나에서 닭을 키우면서 찌질대는 건 아르카디우스였을 것이다.
  • [2] 이후 브리타니아 주둔군은 반란을 일으켜 멋대로 황제를 추대한 다음 갈리아 지역으로 '철수' 해 버렸다. 참고로 서로마 제국은 멸망할 때까지 브리타니아 지역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적은 없다.
  • [3] 이외 현지에 잔류한 로마군과 켈트 출신 로마인들이 끈질기게 저항. 앵글로색슨의 정복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으며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이들 중 상당수가 빠져나가는 것도 막지 못했다.
  • [4] 테오도시우스 1세의 형인 대(大) 호노리우스는 두 딸만 남겨놓고 일찍 죽었는데, 테오도시우스 1세는 그 중 동생이던 세레나를 양녀로 맞이해서 당시 게르만 출신 무장들 중에서는 비교적 신뢰할 만했다는 스틸리코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스틸리코는 세레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을 차례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들 호노리우스에게 시집보낸다.
  • [5] 동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 급사했기 때문에 독살설도 있다.
  • [6] 테오도시우스 1세도 부종으로 사망했다.
  • [7] 동로마 제국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이것이다. 동로마 제국은 가장 상황이 안 좋을 시기에도 대규모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제적이되 유능한 관료 집단이 존재했다.
  • [8] 라고 래리 고닉이 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세계사라는 책에서 서술했다(...).그리고 이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다. 여기서는 형 아르카디아한테 대들다가 입닥치라는 형의 일갈에 충격을 먹어 진짜 닭을 치는 장면으로 나온다.
  • [9] 물론 테오도시우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원래는 내전으로 박살난 서로마 지역을 자기가 통치하면서 재건하려고 했는데 병으로 급사한 것이 탈이었다.
  • [10] 통치 초기 그나마 쓸만했던 스틸리코를 거듭 신임했던 것이나, 로마 재건에 힘쓴 면, 그리고 콘스탄티우스 장군을 발탁하는 것 등으로 보아 나름대로 노력하긴 했다는 평가도 있다.
  • [11] 역사가 조시무스의 기록에 따르면 테오도시우스 1세는 게르만의 침공에 맞서 계속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서로마 일대를 다스려야 했던 호노리우스만을 무장인 스틸리코에게 맡겼을 뿐,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던 동로마의 아르카디우스는 신뢰하던 재상 루피누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르카디우스는 이때 17세로 거의 성년에 근접한 나이였기 때문에 스틸리코가 섭정을 수행할 이유는 희박했다. 다만 조시무스는 엄청난 스틸리코 안티이기 때문에 가감할 필요는 있다.
  • [12] 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버지 테오도시우스 장군과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를 제외한 가문의 거의 모든 남자들이 찌질의 극을 달린다.
  • [13] 이 여인은 이후 40년 동안 사실상 동로마의 여황제로 군림하며 상당히 뛰어난 통치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