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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last modified: 2018-08-17 01:12:4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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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왕자의 난 때까지 옛 현대그룹의 본사였던 계동 사옥.[1]


위는 현재의 현대그룹이 사들여서 리모델링하고 2010년부터 본사로 쓰고 있는 연지동 사옥.[2]

긍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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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현대그룹
영문 / 한자 HYUNDAI[4] / 現代
설립일 1947년
설립자 정주영(1915 ~ 2001)
회장 현정은(현대엘리베이터 회장)
기업규모 중견기업[5]
지주사 현대엘리베이터주식회사
홈페이지 http://www.hyundaigroup.com/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자수성가형 재벌
2.2. 20세기 대한민국 최강 재벌
2.3. 왕자의 난, 공중분해
3. 기업 문화
4. 대북 사업
5. 기타
6. 범 현대그룹
6.1.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과 그들이 승계한 직계 기업집단
6.2. 정주영 회장의 동생/조카들이 분가한 방계 기업집단
6.3. 현재 한국산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가 관리 중인 기업과 매각된 기업
6.4. 관련단체


1. 개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들중 하나. 대규모기업집단. 창업주는 故 정주영 회장. 삼성그룹이 21세기 한국 최대 재벌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명실상부 20세기의 한국 재벌의 원탑이었다.[6] 물론 21세기에도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재벌 중 하나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같은 알짜 계열사들이 다 빠져나가서 그렇지[7]

2. 역사

2.1. 자수성가형 재벌

어깨를 나란히 하였던 경쟁 기업인 삼성그룹이 선조 때부터 지역에서 나름대로 재력을 축적하고 있던 상인 가문에서 출발한 데 반해, 현대그룹은 정주영 회장이 소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짓다가 부모님 몰래 소 판 돈 들고 가출하여 세운[8] 자수성가형 기업으로 유명하다.

해방전쟁을 겪으며 수없는 기업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현대는 건설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꾸준히 키워나갔고,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자동차조선업에 진입, 중화학 드라이브를 선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에 자리매김하였다. 현대가 없었으면 지금의 울산광역 현대시도 없었다.

2.2. 20세기 대한민국 최강 재벌

▲ 리즈시절이었던 1995년에 제작된 그룹 PR

21세기 이후로 한국의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규모에서나 영향력에서나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만, 중동 건설붐 이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최대의 기업집단은 현대그룹이었다. 현대가 재계 서열 1위였을 당시 삼성과의 격차는 21세기의 삼성과 현대의 격차보다 훨씬 컸다.

삼성과 현대의 관계는 1970년대까지는 우호적이었다. 유통(백화점), 식품, 전자, 무역, 화학 등 경공업이 주력 업종이었던 삼성과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이 주력 업종이었던 현대가 경쟁하는 분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9년 현대-중앙일보 매스컴 전쟁부터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980년대 이후 현대가 전자, 백화점, 석유화학에 진출하고 삼성이 중공업, 건설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진다. 두 그룹의 사업분야가 사실상 똑같아진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중앙일보를 견제한다고 문화일보를 만들기도 했다. 딱 하나, 자동차만 빼고...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매출액, 자산 등에서 밀리던 삼성이 그 차이를 뒤집기 위해서 반도체에서 거둔 수익으로 삼성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떠돌았다. '삼성이 하는건 현대도 다 하는데, 현대가 하는 것중에 삼성이 안하는 유일한 품목이 바로 자동차!'.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이미 삼성은 1960년대부터 계열사 총 자산에서 현대를 앞서고 있었고 오히려 2000년대에 현대가 이를 추월하였다가 정주영 사후 다시 탈환한 바 있다. 더군다나 삼성은 사카린 파동 이후 정치권 및 법조계 등 이른바 '삼성장학생'의 육성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기업 자체의 이미지와는 달리 삼성의 파워는 현대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주영 본인의 창당 및 정치권 입문을 본인의 성향뿐 아니라 이런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2.3. 왕자의 난, 공중분해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정치참여 실패, 그 뒤를 이은 IMF 사태를 전후하여 상당수 계열사가 재무위기에 처했다.[9] 2세 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소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창업주인 태조 정주영 회장의 타계를 계기로 완전히 분해되는 운명을 겪었다.[10]

사실 한국 재벌의 역사에서 이런 식으로 자식 세대에서 기업을 나눠가지는 '분봉' 관행은 딱히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삼성 역시 따지고보면 상속에 따라서 여러 그룹으로 분리된 것이나 다름 없다. 다만 현대그룹의 경우 분열과정이 워낙 극적이고 다툼이 많았으며, 한꺼번에 서너개의 그룹으로 분열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 서로를 인수하여 '현대그룹'을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 특이한 데가 있다. 제노바?

2010년 이후로도 자산기준 10대 기업집단에 현대자동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의 두 범현대가 기업집단이 올라 있는 점에서 과거 현대그룹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계열분리가 이루어진 이후 "현대그룹"이라고 하면 분리된 기업집단 가운데 5남 故 정몽헌 회장이 물려받아 현재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이끌고 있는 집단만을 이르는 말이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회장이 직접 지목한 후계자. 그 외 과거 현대그룹에 속했던 기업집단을 통칭 범(汎)현대그룹, 혹은 범현대가(家)로 부르며, 여기에는 정주영 회장 생전에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한 기업집단도 포함된다. 현재의 이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과는 달리 재계 순위 10위권 밖의 소그룹으로 축소되었다.

3. 기업 문화

창업자가 맨손으로 일으킨 자수성가형 기업인데다가 주력산업이 건설, 자동차, 조선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진취적, 모험적이면서도 거칠고 남성적인 기업문화로 이름이 높았다. 한국 경제의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을 상징하는 기업이라고 보면 맞다. 물론 부작용도 고스란히 안고 가긴 했으며, 그 일부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데...

또한 이런 특징 덕에 198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이 끓어오르던 시기 현대그룹 계열사는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었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정공 등 당시 울산에 자리잡고 있는 현대그룹 노동조합들은 말 그대로 노동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게차, 굴삭기를 앞세워 경찰과 구사대를 밀어내고 울산시내로 진출한 일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며, '골리앗 투쟁'으로 알려진 갠트리 크레인 위 고공농성도 유명. 사실상 현대그룹 노동조합들이 지금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복지수준이 말할 수 없이 향상된 지금의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손꼽히는 대형 노동조합이다.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 노동자같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훨씬 열악한 처우를 받는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협력은 아오안.[11]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는 어찌나 그 정도가 심했던지 민주노총으로부터 제명당하기까지 했다는데 애초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대표적인 무파업 노조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2].

이런 역사 덕에 범현대가 기업들은 노조 밀고 당기는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현대는 전반적으로 삼성에 비해 소프트 파워, 즉 언론계나 법조계, 시민사회 등에 개입하는 영향력이 부족한 편인데, 노조 관련 문제에 대한 노하우만은 삼성을 압도한다. 물론 그만큼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끝에 얻은 노하우다.[13] 규모가 큰 탓에 늘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

4. 대북 사업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고향이 휴전선 이북의 강원도 통천인 관계로, 정주영 회장 생전부터 대북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관련 기사 "소떼 방북"으로 유명한 1998년의 소떼 지원은 남북 모두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금강산/개성 관광 사업 등 남북간의 정치,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현대그룹이 기여한 바는 항목 하나로 정리하기 어려울만큼 지대하다. 정주영 회장이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제치고 故 정몽헌 前 현대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정몽구 회장이 대북사업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 사후 현대그룹이 산산조각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하면서 2010년 현재 현대아산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사업은 그야말로 좌초 위기에 빠져 있으며, 이는 정권이 교체된 2014년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이다. 규모는 다른 범현대가 그룹만 못해도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알짜 계열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현재의 현대그룹이 유일하게 안고 있는 폭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5. 기타

영문표기가 HYUNDAI인 이유는 당시 '대'자의 영문표기법이 'DAE'와 'DAI'의 혼용이었고 훗날 'DAE'로 통일 되었기때문이다. [14] [15]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 20대 부장, 30대 임원, 40대 사장, 50대 회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친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한 바 있다.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격 인물. 그러나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대선에 출마할 당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둘 사이는 갈라졌다.

범현대가 중 현대중공업이 멕시코 만 석유 유출사태에서 시추선을 잘못 만든 책임을 받아, 천문학적인 금액의 소송에 걸려 위기에 몰릴지 모른다고 한다. 아니 많든 적든 책임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소송에 걸리긴 했으나 크게 두들겨맞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석유시추선 정도 되면(일정 수준 이상의 선박들은) 단순히 조선소가 알아서 만들어 납품하는 게 아니라 선주측에서 별도로 감리/감독 인원을 파견한다(전문가 집단이 있다.). 조선소 측에서는 작 내내 작업 스케줄부터 작업 공정들의 적정성(용접은 규정에 맞게 제대로 했나, 볼트/너트는 규격에 맞는 걸 사용했는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항들을 점검받아야 한다. 각 단계별로 감독관이 Confirm하지 않으면 다음 일을 할 수가 없다! 선박을 인도받는다는 것은 선주 측에서도 '이 선박은 규정에 따라 요구사항에 맞게 건조되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각종 국제대회를 대한민국으로 끌어오게 하는 건 도가 텄다. 가까운 예시로 선대 정주영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일본은 80년대부터 준비한 것을 현대는 1990년에 "아 우리도 이제 월드컵 개최하자!!!" 이 말과 함께 한일 공동개최를 만들어 버렸다. 2002년 월드컵 개최지 발표할때 일본축구협회장이 넋이 나간 상태로 있었는데 정몽준이 억지로 손을 잡아서 같이 손을 올린거 보면 불쌍하게 느껴진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2012여수세계박람회까지 유치시켰다. 이를 보고 3부자가 3관왕트리플악셀 아니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고 하기도; 반면 라이벌 S모그룹은 2011년에서야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16]

또한 케이블방송 사업에도 진출했었다. 1990년대 중후반 당시 HBS(현대방송)와 음악채널(M21→KMTV)을 운영했음, 두 채널은 각각 따로따로 분리되었다. 이후 채널은 다시 한 가족이 되었다.

사족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퇴직금을 지급한 곳이 현대그룹이다. 2000년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의 퇴직금이 그것인데, 현대그룹 24개 계열사에서 총 217억이 지급되었다. ㅎㄷㄷ
그 이전의 기록은 1999년 당시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을 퇴임한 정세영이 지급받은 50억,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퇴임 시 LG화학에서 지급한 20억 등이다.
그러나 원래 재벌 총수들은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저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퇴직금의 지급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자금사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더군다나 이 퇴직금은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여억원을 지원받은 현대건설의 입장에선 더더욱 부담되는 일 이었고, 현대건설에선 내심 퇴직금 수령을 SKIP해 주시길 바랐으나 그런거 없엉. 그리고 이 퇴직금은 이후 현대그룹 계열분리 당시 현대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 있던 MH를 지원하기 위해 기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자금과 함께 현대자동차 주식의 매입에 사용되었으나,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모두 처분한 후 현대건설의 회사채 매입에 쓰였고, 회사채와 기타지분을 매각한 자금이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투입되어 현대건설 주식으로 바뀌었다. 이 주식은 정주영 회장의 별세 당시 현대건설에 증여되었고, 감자되었다.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

6. 범 현대그룹

아래 범현대가 일람은 우선 정주영 회장의 동생 대("영"자 돌림)에 분가한 기업과 아들 대("몽"자 돌림)에 분가한 기업으로 분리하였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수정바람. 현재 크게 보면 10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6.1.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과 그들이 승계한 직계 기업집단

순서는 출생순서.

안습

6.2. 정주영 회장의 동생/조카들이 분가한 방계 기업집단

6.3. 현재 한국산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가 관리 중인 기업과 매각된 기업

  • 구 현대전자[35]
    • 매그나칩반도체(구 현대전자의 비메모리반도체부문)
    • 하이디스(구 현대전자의 TFT LCD부문)[36]
    • 현대아이비티(구 현대전자의 모니터생산부문)[37]
    • 현대통신(구 현대전자의 홈오토메이션부문)
    • 현대멀티캡(구 현대전자의 완성PC생산업체)
    • 현대 유니콘스(현재 해체됨)[38]
  • 구 현대정유그룹[39]
    • 현대석유화학 (롯데대산유화, LG대산유화, 씨텍 3개사로 분할)
  • 현대투자신탁한화투자증권 [40]
  • 현대스위스저축은행[41]

6.4. 관련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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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사옥이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사옥 바로 옆에 대궐만하게 지어져서, 건축가들은 계동 사옥을 깐다고 한다.김수근이 무슨 건축계의 신이냐 신성한 선생님의 작품을 훼손하고 있다능! 참고로 계동 사옥이 지어지기 전에는 현대해상 사옥으로 불리는 광화문 사옥을 썼다. 현대건설이 이 사옥을 팔아서 현대해상이 매입하고 리모델링했는데, 리모델링 당시 상황이 명박산성 항목에 있다.(리모델링은 노무현 정부 때였던 2003년에 했다.)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참고로 이 사옥과 똑같이 생긴 호텔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 현대가 운영하는 호텔인데 현대에서 계동 사옥을 참조해 만든 호텔이다.
  • [2] 현대차그룹 사옥도 농협에서 사온 거긴 하다.
  • [3] 현대그룹 광고를 보면 2000년대 후반부터 긍정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 [4] 외국 일부에서는 휸다이 또는 현다이 하이운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혼다랑 비슷하게 보이려고 저렇게 지었다'는 낭설이 돌기도 하는데 전혀 사실무근. 저 때는 ㅐ의 공식표기가 AI였다. 근대까지만 해도 'ㅐ'는 'ㅏㅣ'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예로 대한제국의 공식명도 DAI HAN이었다. 애초 현대라는 상호를 단 건 자동차 사업 훨씬 전이므로 시대고증상으로도 헛소리.
  • [5] 2016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계열사 제외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자산총액이 2조 564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 [6] 사실 정주영 회장 사망 이후 아들들이 갈라먹기만 안했어도 여전히 1위였을 것이라는 평도 꽤 보이고 있다.
  • [7] 재벌 대부분의 경우에는 알짜회사이거나 회사의 모태가 된 회사가 오리지날 그룹에 남지만(삼성의 경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LG의 경우에는 LG화학, LG전자 등), 여기는 알짜회사를 중심으로 분가해 버린 특이한 케이스이다.(현대의 주력은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정도로 분류하기에)
  • [8] 돈벌겠다고 가출해서 대도시로 상경한게 총 4번이다. 처음 2번은 다시 돌아갔고, 3번째에 소판 돈 훔쳐서 서울 상경후 학원에 다니다가 다시 돌아간 후에 4번째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간다음 쌀집 배달꾼으로 취직한다.
  • [9] 당시 현대그룹은 주요계열사 중에 흑자를 내는 곳이 현대증권 뿐이었다. 반면 삼성은 캐쉬박스인 삼성전자의 수익과 삼성생명의 엄청난 자금력으로 자동차를 분리하는 선에서 그룹을 지켰다.
  • [10] 반면 이 시기 삼성은 삼성전자라는 괴물 계열사의 눈부신 성장에 힘입어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원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11] 현대차의 경우 같은 작업라인에서 일하는데도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가 두배까지 벌어진다. 정규직에게만 주어지는 각종 복지혜택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큰 차이. 그런데도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와 아무런 협력도 없고 오히려 견제에 급급하다. 사실 같은 회사인데 노조가 여러개라는 것부터가 에러다.
  • [12] 그리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한 점을 생각한다면...
  • [13] 때문에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에 향후 정식 노조가 설립될 경우, 노조와 협상해본 경험이 없는 삼성 경영진들이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러면 현대 쪽 노사담당을 돈 주고 데려오겠지
  • [14] 이건 발음상의 문제이다. 지금은 'ㅐ' 발음이 단모음이지만 100여년전만 해도 이중모음('아''이'를 따로 빨리 발음하는 것과 비슷)이였기 때문에 그런 발음의 흔적이 남은 예전 사람들이 'ㅐ'를 AI로 표기한 것. 당장 아펜젤러도 '배재'의 영문표기를 PAICHAI로 한 것을 보면 그시절의 발음이 그랬다고 볼 수밖에. 참고로 해태의 영문명도 HAITAI이다.
  • [15] 일본 그룹(특히 혼다)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다. 비슷하게 삼성(三星, 일본어로 훈독하면 미쓰호시)도 미쓰비시의 짝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저 루머일 가능성이 높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 [16] 그래도 이걸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특별사면해줬다고 먹을 욕은 좀 수그러진 듯..
  • [17] 2002년 현대H&S에서 백화점사업부분을 가지고 분사한 회사이다.
  • [18] 현대백화점을 분사시키기 전의 원래 현대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여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요즘은 정수기(...)로 많이 알려졌다.
  • [19]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개점시 한국무역협회와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그래서 사명도 한무쇼핑. 충청점 등 현대백화점의 일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 [20] 원래는 현대건설 계열사였다. 1999년에 계열 분리후 독립하였으나 경쟁 기업인 퍼니스측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 급히 현대백화점측에 SOS를 요청하여 2011년 11월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드림투어가 최대지분(23.07%)을 확보함으로써 현대백화점그룹에 편입되었다.
  • [21] 1988년 이후 2008년까지 울산 동구, 2008년 이후로 서울 동작(乙) 선거구 국회의원을 역임중인 7선 국회의원이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중이다. 2013년 현재 새누리당 소속이다. 의원 사무소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시장 출마 때문에 의원직은 사퇴했고, 선거에선 낙선하였다.
  • [22] 본래 한라그룹소속의 한라중공업이었다. 한라그룹 해체시 동반부도처리되어 자산을 가교회사인 RH중공업에 이관시킨후, 삼호중공업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위탁경영후 인수
  • [23] 정주영회장의 8남인 정몽일이 최대주주이나 현대중공업그룹소속
  • [24] 본래 현대백화점그룹소속이었으나 인수
  • [25] 정주영 회장이 요절한 다섯째 동생 정신영의 유복자 정몽혁에게 맡겼으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IMF 크리로 해체후 아부다비국영투자회자(IPIC)에게 넘어갔으나 결국 2009년 11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로 현대중공업으로 인도되었다.
  • [26] 울산 동구에 위치한 5개 학교(현대중학교, 현대고등학교, 현대청운중학교, 현대청운고등학교, 현대공업고등학교)를 보유한 재단. 울산의 5개 학교는 현대중공업그룹에서 관리함. 서울의 현대고등학교는 별도법인으로,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관리함.
  • [27] 신군부에게 현대양행의 중공업사업부(한국중공업 → 현 두산중공업)을 빼앗긴 것이 철천지한이되어 한국중공업 사옥이 보이는곳에 사무실을 마련하여 매일 내려다보았다고한다. IMF크리로 한라건설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정리되었다. 당시 재계순위 10위였으나 부채비율 1000%로 30대그룹 중에서도 최악이었다.한라중공업은 현대중공업에 넘어가 현대삼호중공업이 되었고, 김치냉장고인 딤채를 만들었던 만도기계(구 현대양행)의 공조사업부는 UBS컨소시업에 매각되어 위니아만도가 되었으나 먹튀논란에 시달리고있으며 만도기계의 자동차부품부문은 만도가 되어 범현대가의 지원하에 한라그룹에서 되찾아왔다.
  • [28] 정주영 회장의 셋째동생 정희영의 남편 故 김영주 회장 몫, 김영주 회장 사후 현재 장남인 김윤수가 회장.
  • [29] 김영주 前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의 차남 김근수가 회장.
  • [30] 포니정 정세영 회장 계열. 별명처럼 평생을 현대자동차에 바쳤으나 정주영 회장이 빼앗아서 정몽구 회장의 현대산업개발과 맞바꿔주고 독립시켰다.
  • [31] 오래된 현대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은 것.
  • [32] 각하의 자서전을 보면 아파트 시장이 커질거 같아서 진출은 해야 하는데 당시 현대 건설이 오일달러로 인해서 잘 나갈 시기라 '현대 건설이 집 장사를 할 수는 없다!'란 내부 의견이 많아서 따로 회사를 만든것이라 함.
  • [33] 원래 이 취소선 달린 대한축구협회는 정몽준 때문에 현대중공업 목록에 있었으나 협회장에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이 당선되면서 당연히 여기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룹 계열사라는 건 믿으면 바보겠지만 상당히 범현대가의 영향력이 강해왔던 건 사실이다.
  • [34] 정주영 회장의 막내동생 정상영 회장 계열. 조카인 정몽구 회장보다 나이가 두살 많다!!(요절한 정몽구 회장의 형인 정몽필과 동갑이다...) 건축자재를 만드는 구 금강스레트공업과 도료를 만드는 고려화학으로 시작했으며 이후 합병하여 KCC건설과 함께 KCC그룹을 이루고 있다. 범현대가의 주력인 건설, 자동차, 중공업 등에 사용되는 각종 건축자재와 도료납품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현기차 유리도 여기서 생산하고 있는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유일한 '영'자 항렬 어른이기때문에 집안관련문제에는 우선적으로 나서는 듯. 특히 조카며느리ㆍ형수 레이드는 이 양반이 주범
  • [35] 2001년 회사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 [36] 중국에 매각되어 쌍용차와 마찬가지로 기술만 유출되는 일을 겪음
  • [37] 현재 바이오 계열로 업종 변경
  • [38] 모기업인 하이닉스에 LG반도체를 합병시킨 이장석이 선수단을 인수하여 해체후 우리 히어로즈로 재창단했다.
  • [39] 다섯째 동생 정신영의 아들 정몽혁에게 맡겼으나 이후 그룹째 부도가 나게 된다. 이 중 현대오일뱅크만이 우여곡절을 거쳐 현대가로 돌아왔다.
  • [40] 미국 푸르덴셜그룹에 매각되어 푸르덴셜투자증권으로 변경, 이후 한화증권에 인수되어 한화투자증권으로 다시 변경
  • [41] 실제로 현대그룹과는 털끝만큼도 상관 없는 곳이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에서 이 곳에 소송을 내기도 했다. SBI저축은행으로 사명이 바뀐 현재에는 옛말이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