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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last modified: 2017-12-26 14:31:0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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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알려진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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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서지혜가 연기했다.

許黃玉

Contents

1. 소개
2. 설화
2.1. 수로왕와의 혼인
2.2. 파사석탑
3. 자손
4. 여담
4.1. 연구
4.2. 현재의 아유타야 라자와의 연결


1. 소개

'보주태후(普州太后)'라고 불린다.[1] 허왕후, 허황후라고도 불리며 대한민국의 성씨 중 하나인 허씨의 시조이다. 특이하게도 고향이 인도다. 국제결혼 허씨의 경우 특이하게도 이분이 대한민국 모든 허씨의 뿌리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김해 허씨, 양천 허씨, 하양 허씨, 태인 허씨 모두 뿌리가 이 사람이다.

생몰년도 33년 ~ 189년으로 156세까지 살았다 어? 참고로 남편이 되는 금관국김수로왕의 경우 계산하면 157세를 산 걸로 나오니 아마 고대인 특유의 신화적 과장법인듯. 참고로 수로왕의 경우 42년생으로 허황옥보다 연하다.

2. 설화

2.1. 수로왕와의 혼인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옥은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이다. 아유타국은 일단 갠지스 강 연안에 있었던 '아요디아(Ayodha)' 왕국으로 비정한다.

건무(建武) 24년 무신 7월 27일에 신하들이 김수로왕에게 왕비를 맞을 것을 알리자, 수로왕은 자신은 이미 왕비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며 유천간(留天干)에게 명하여 가벼운 배를 타고 망산도(望山島)로 나가게 하고, 신귀간(神鬼干)에게는 승점(乘岾)으로 가도록 했다. 유천간과 신귀간이 붉은 돛, 붉은 깃발을 단 배를 보고 알려오자 수로왕은 구간(九干)을 보내서 배를 맞아들이게 했다.

이 때 허황옥과 함께 온 잉신(媵臣) 두 사람의 이름은 신보(申輔)·조광(趙匡)이고, 그들의 아내 두 사람의 이름은 모정(慕貞)·모량(慕良)이며, 노비까지 합해서 일행은 20여 명이었다. 그리고 많은 금은보화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

신하들이 허황옥을 궁궐로 데려가려 하자 허황옥은 너희를 모르는데 어떻게 경솔하게 행동하냐며 거절했고, 이에 수로왕이 직접 나서서 장막을 쳐놓고 별궁을 차려 허황옥을 맞이하며, 그 부하들에게도 접대를 잘 해주도록 명령한다.

허황옥은 수로왕과 만나 자신의 이름과 16살이라는 나이를 밝히고, 가락국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한다.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가 꿈에서 황천(皇天)을 만났는데, 황천이 가락국이 왕 수로가 하늘이 내린 신령하고 성스러운 사람이며, 나라를 새로 다스리는데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서 배필을 삼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왕과 모후는 허황옥에게 배를 타고 떠나라고 하였고, 허황옥은 배를 타고 떠난 뒤 멀리서 증조(蒸棗)를, 하늘에서 반도(蟠桃)를 찾아 수로왕에게 도착했다는 것이다.[2]

수로왕은 사연을 듣자 아주 기뻐하며 자신은 이미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알고 있어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히고,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왔으니 아주 기쁘다고 하며 허황옥과 혼인을 하였다. 그리고 이틀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함께 지냈다.

수로왕은 뱃사공 15명에게 쌀 10석과 베 30필을 주고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왕후는 중궁에 거처하고, 잉신 내외와 사속들에게도 집을 나눠줬으며, 왕후가 가져온 재물은 창고에 넣어 왕후가 사재로 쓰도록 했다.

2.2. 파사석탑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조에 또 다른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설화에 따르면 금관성에 있는 호계사 파사석탑은 금관국이었을 때, 수로왕의 비 허황후가 야유타 국에서 싣고 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공주가 부모의 명령대로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가려다가 파도의 신이 노여워하여 가지 못하고 되돌아오자, 왕이 탑을 싣고 가라고 하여 파사석탑을 실었더니 무사히 바다를 건너 금관국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파사석탑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데 자연석으로 쌓은 탑이다.

3. 자손

김수로왕과 사이에서 열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두 명에게 허씨성을 주어 허씨성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첫 두 아들은 김해 허씨가 되었고 여기서 더 갈라져 나머지 본관들이 생긴식.

허씨성 가진 두 아들과 태자 거등왕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아들은 모두 스님이 되었다. 허황옥이 불교를 최초 전파했다는 떡밥은 여기서 시작된 듯.

4. 여담

4.1. 연구

현재로서는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설화적인 요소가 많고,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여, 허황옥 설화는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허황옥을 『승만경』의 승만부인과 연결짓는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아요다야에서 승만부인이 부처님을 영접하여 부처님에게 장차 보광여래(등불)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렸고, 허황옥은 승만부인의 화신적 존재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즉, 이 설화는 가야땅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는 불자들의 신앙심의 발로라는 것이다.[3]

4.2. 현재의 아유타야 라자와의 연결

인도 아유티아 왕국 출신이라고 하는데, 현재도 인도에 아유티아 왕족이 존재한다. 아유티아 라자의 궁전에 가면 허황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라자도 허황옥이 자기 집안 사람이 분명할 거라고 믿는다고. 근데 2000년 가깝게 지났는데 그 족보를 어찌 믿누? 그 때문에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에 김수로와 허황옥과 관련한 개막식 연출이 있었고, 이 라자 가문도 구경을 왔었다.

물론 아유타야 라자 가문 입장에서는 외국과 이런 식으로 '전설적인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기록이 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같은 가문 사람의 공주'가 외국에서 큰 규모를 가진 일족(김씨 허씨 등등을 합치면 굉장한 숫자)의 시조가 되었고, 허황옥을 기념하는 축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실리를 떠나서 감정적으로도 나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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