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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민

last modified: 2014-12-10 21:14:31 Contributors


이글스 초대 에이스 시절



이름 한희민(韓禧敏)
생년월일 1962년 7월 19일
출신지 충청북도 영동군[1]
학력 세광고 - 성균관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86년 빙그레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1986~1992)
삼성 라이온즈(1993)
쥔궈 베어스[2](1994~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1번(1993)
신경식(1991~1992) 한희민(1993) 정순(1995~1996)[3]

선동열? 한희민이 최고였다 - 장채근.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3. 은퇴 후
4. 이야깃거리
4.1. 콩라인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KBO 언더핸드 투수 계보의 첫 번째 선두주자

이상군과 더불어 초창기 빙그레 이글스를 지탱한 투수 여기서도 이상군에게 밀려서 2선발

빙그레 이글스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투수. 등번호는 13-21번.

대한민국 언더핸드 투수의 계보를 얘기하자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투수 중 하나로, 이 계보는 한희민 - 이강철[4] - 박충식 - 임창용으로 이어진다.

여담으로 개그 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서남용과 상당히 닮았다. LG 트윈스작은 이병규도 한희민의 외모와 비슷한 편.

2. 선수 생활

빙그레 이글스(1985년 창단)의 창단멤버로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우완 언더핸드 투수였으며 슬라이더와 싱커를 주무기로 많은 승수를 쌓아올렸다. 언더핸드 투수 중에서도 몸을 비틀어서 던지던 특이한 투구 폼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는 한다.

초기에 신생 팀이라서 암담했던 빙그레에서 에이스는 한희민과 이상군의 쌍두마차였다.

김영덕 감독의 기록조작의 대표적인 희생양 중 한명. 김영덕 감독의 송진우 다승왕 만들어주기에 의해 선발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5회 이유 없이 강판당해야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며, 이에 앞서 1990년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4:2로 앞서던 7회말 선발 한용덕이 선두 타자한테 솔로 홈런을 맞자 곧바로 구원 등판했지만 9회말 연속 솔로 홈런을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는데 말하자면 북일파 한용덕의 승리를 비북일파(세광고) 출신인 한희민이 날려먹은 꼴이 됐다.
그 충격 탓인지 개인적으로 100승을 목표로 하던 한희민은 이유없는 강판과 코치진의 차별 등으로 결국 1992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는 소동을 벌였고, 1993년 1월 25일 내야수 박철희를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됐다.[5]관련기사

삼성에서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중간계투 보직 변경에 불만을 품어 2군으로 강등된 후 퇴단하고 다음해 대만프로야구에 진출했다. 대한민국 선수 중 최초의 대만 프로야구 진출. 쥔궈 베어스(현 이다 라이노스)에 입단해[6][7]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2년 동안 꼴랑 6승 16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프로 입단을 타진했으나 실패하며 결국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간만에 매스컴을 탔는데, 고향 영동의 산으로 들어가서 도인이 되었다. 도인 같이 수염을 기르고 머리도 길러 꽁지머리로 묶고, 찻집을 운영하며 평소에 좋아하는 난초를 기르고 있었다.

2003년 초 한화 이글스가 투수 인스트럭터로 영입하며 하산했고, 2005년에는 KIA 타이거즈 2군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서정환 감독이 짤리면서 당연히(?) 같이 짤렸다. 이후 2년 동안 광주 동성고, 대구 경북고, 강릉영동대, 대전고 등에서 코치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산했다.관련기사 의외인 점은 고향 쪽이 아닌 광주 근처로 갔다. 그 곳에서 식당 하나를 차렸는데 손재주 하나는 뛰어났던지 시설 등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인심이 좋다고 한다. EBS방송에서 그의 오리식당이 방영된 적이 있다. 2011년 5월 대전일보 보도에 따르면 광산구의 저수지 근처 수위가 높아져 충청남도 계룡시 쪽으로 가게를 옮겨 운영하였다.

2014년 5월 28일 NC 다이노스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관중석에 모습을 보였다.
한희민.jpg
[JPG image (Unknown)]


2014년 6월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리틀 야구단 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운영하던 식당까지 접고 야구에 전념하고 있다.

4. 이야깃거리

  • 큰 키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농구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진학한 중학교에 농구부가 없고 야구부만 있어 야구를 시작해 야구선수가 되었다.

  • 그 특이한 투구폼 때문에 엉뚱하게도 마구마구슬러거에서는 나름대로 인기 있는 선발카드로 꼽힌다.

  • 대학 동기이기도 한 前 해태 타이거즈 포수 장채근과는 절친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장채근이 프로 입단 초기에 한희민이 있는 빙그레로 트레이드시켜달라고 했을 정도. 한희민이 KIA 코치로 입단해 이후 광주에 정착한 것도 장채근 때문.

  • 자가용에 경광등과 스피커를 달아 경찰차처럼 꾸미고 길가면서 경찰 흉내를 내는 기행을 펼쳤다고 한다. 이러다가 결국 불법 부착물 때문에 경찰에 걸려서 벌금을 물었다고.

4.1. 콩라인

우승 0회, 준우승 4회[8]완벽한 콩라인. 이 정도면 홍진호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홍진호가 테란맵으로 고비를 넘지 못한 듯이 한희민 역시 당대 최강 팀인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맞아 몇 번이나 무릎을 꿇어햐 했는데, 4번의 준우승 중 한 번은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했다.

선수 시절의 콩라인이었던 이정훈이나 성준의 경우 코치시절에 우승을 한 적은 있지만 한희민은 그런 거 없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빙그레 이글스 29 175⅓ 9 13 0 3.13 136 59 123
(3위)
1987 30 206
(4위)
13 8 4 2.36
(4위)
156 48 116
(3위)
1988 31 188
(2위)
16
(2위)
5 5 3.11 188 62 103
(3위)
1989 30 176⅔ 16
(3위)
4 6
(5위)
2.50
(5위)
130 61 74
1990 26 157 12 9 5 4.13 154 58 62
1991 27 115 8 6 1 3.83 111 46 55
1992 15 66⅔ 2 5 0 5.54 66 20 4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3 삼성 라이온즈 16 40 4 1 3 3.38 37 19 21
통산 204 1124⅔ 80 51 24 3.25 978 373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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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청주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동군 태생이다. 고등학교를 청주에서 보냈다.
  • [2] 현 이다 라이노스.
  • [3] 은퇴후 세한대 감독을 하고있다.
  • [4] 여담으로 이강철은 한희민을 피해 동국대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 [5] 한희민이 눈밖에 난 이유는 선수회 초대 총무를 역임하는 등 구단에 미움을 살 짓을 했기 때문이다. 까라면 까의 대표적인 희생양. 삼성은 한희민을 영입하기 위해 빙그레에게 현금 3,000만 원을 얹어 박철희를 트레이드했다.
  • [6] 당시 삼성과 쥔궈는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쥔궈 팀 사장이 한희민을 트레이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 [7] 다만 삼성을 빼고는 대만리그가 KBO와의 선수협정을 맺지 않아 다른팀과는 트레이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1994년 겨울에 OB 베어스장호연을 무상 트레이드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욕을 많이 먹었다.
  • [8] 1993년에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지만 한희민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