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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last modified: 2015-04-07 19:35:01 Contributors


하늘에서 폭격을 가하고있는 파키스탄 공군 JF-17.

爆擊
Bombardment, Air strike : bombardment에는 포격도 포함된다.

Contents

1. 개요
2. 항공기의 대지상 공격
3. 폭격의 방식
3.1. 수평폭격
3.2. 급강하 폭격
3.3. 로프트 폭격
3.4. 융단폭격
3.5. 정밀폭격
4. 폭격의 역사
4.1. 항공기와 폭탄의 발전
5. 관련 문서
5.1. 폭격과 인물
5.2. 유명한 피폭 장소/폭격 사건
5.3. 폭격의 매개체
5.4.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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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비행중인 비행기폭탄을 떨어뜨려 지상을 공격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일반인은 그냥 다 싸잡아서 포격도 폭격이라고 하는데 포격과는 다른 것이므로 절대 혼동하지 말자. 포격은 포병대포를 사용해서 포탄을 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 항공기의 대지상 공격

폭격은 항공기가 지상을 공격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비행기가 한 공격이라도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쏘거나 하는 건 '기총사격'혹은 '기총소사'등으로 묘사되며, 폭격이란 건 일단 폭탄이 떨어져 터지는 것을 의미한다.

3. 폭격의 방식

3.1. 수평폭격

그냥 표적을 향해 수평으로 날아가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 문제는 물리시간에 한 번 쯤은 예제 문제로 나왔을, '고도 얼마 비행기에서 짐을 떨어트리면 몇 미터 이동한 지점에 떨어지는가?'라는 것의 현실 버전 문제에 직면한다. 즉 폭탄을 떨어트린다고 투하한 지점 수직 아래로 떨어지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폭격기가 속도를 내며 전진하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떨어진 폭탄은 관성에 의해 포물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진다. 게다가 교과서의 예제 문제들과 달리 현실의 폭탄은 공기저항에 의해 단순 계산식보다 적은 거리를 이동한다. 결정적으로 떨어지는 동안 측풍등의 영향으로 인해서... 그래도 수평폭격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거의 최초의 폭격기들부터 현재까지 쓰고 있는 방식이다. 초반에는 조종사내지 폭격수의 에 의존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기계식 계산기를 이용하여 현재 폭격기의 고도, 속도 등을 종합하여 표적에 명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명중률은 시망이지만. 현재는 레이더나 기타 센서로 표적을 조준한 다음 폭격기를 해당방향으로 적절하게 비행만 시키면 컴퓨터가 알아서 폭탄 투하 시점을 계산, 자동으로 폭탄을 투하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하면 수평폭격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비유도 폭탄을 쓸 경우 측풍등의 영향은 여전히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현대전에서 수평폭격을 하는 경우는 저고도에서 폭격을 하는 경우나, 혹은 대형 폭격기로 밑에 설명될 융단폭격을 가하는 경우 뿐이다. 급강하 폭격에 비하면 대형 폭격기로도 쉽게 할 수 있는 폭격 방식이며, 위험한 적 대공포 근처에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어뢰를 투하할 때도 수평폭격방식을 쓰지만, 어뢰의 특성과 명중률 때문에 일반적인 수평폭격과는 좀 다르게 진행된다. 상세한 것은 뇌격기를 참고하라.

3.2. 급강하 폭격

대략 2000m 이상 고도까지 상승한 후 표적을 향해 일반적으로 45도에서 60도 정도의 각도로 급강하하면서 폭탄을 떨구는 폭격 방식. 보통 매우 낮은 고도까지 내려와서 폭격을 가한후, 지면에 충돌하지 않기 위해 다시 급상승을 해야 하므로 움직임이 둔한 대형 폭격기로는 어려운 폭격 방식이며, 소형 경폭격기나 전투기급의 전폭기, 혹은 급강하폭격기들이 쓰는 폭격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급강하를 하면서 표적을 조종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접근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폭격수가 없는 1인승 소형 항공기로도 폭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급강하를 하면 평소보다 속도가 더 붙는 만큼, 투하된 이후 폭탄 역시 속도가 더 붙은 상태로 표적에 도달하므로 측풍의 영향을 덜 발고 더 빨리 표적에 도달하여 명중률이 높아진다. 물론 무엇보다도 표적에 가까이 붙어서 투하하기에 명중률이 높아지지만...

대신 급강하 폭격을 할 수 있는 폭격기/전폭기들은 대체로 크기가 작으므로 한 번 급강하에 투하할 수 있는 폭탄의 양은 1발, 많아야 2, 3발 정도가 고작이므로 여러 표적을 공격할 때는 다수의 항공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급강하 폭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정확도가 높은 폭격방식이며, 2차세계대전에서 특히나 전차나 기갑병들의 밀집지역에 큰 효과를 누렸다. 태평양 전쟁에서도 전함이나 항공모함같은 군함의 가장 대표적인 약점인 갑판이나 함교, 함포 등에 폭탄을 명중시켜서 큰 피해를 입히고 운 좋으면 탄약고나 어뢰의 유폭등으로 해당 적 함을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어서 미드웨이 해전등에서 높은 전과를 이룩하기도 했다.

2차대전 중에는 이러한 급강하 폭격만 전문으로 하는 독일의 슈투카카나 미국의 SBD 돈틀리스, SB2C 헬다이버 같은 급강하폭격기도 개발되었다.

현대전에서도 여러 전폭기들이 비유도 폭탄을 이용하여 적 지상군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맨패즈자주대공포등, 저고도 방공망이 2차대전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무시무시해졌기 때문에 급강하 폭격하겠다고 잘못 저고도로 내려갔다간 되려 전폭기가 벌집이 되는 수가 있다.

3.3. 로프트 폭격

토스 폭격이라고도 한다.이거 말고 폭탄을 위로 집어 던진다는 느낌으로 하는 폭격 방식. 이것은 급강하 폭격과 반대로 전폭기가 급상승을 하면서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이다. 폭탄은 관성에 의해 위쪽으로 고도를 높이다가, 다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이 방식의 폭격은 수평 폭격이나 급강하 폭격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표적에다 폭탄을 '내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폭기들은 표적 근처에 방공망이 두터워서 접근할 엄두가 안난다거나, 혹은 던질 폭탄이 핵폭탄일 경우 내가 그 폭발에 휘말리지 않도록 폭탄이 떨어지는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경우 이 폭격 방식을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핵 투발 전용인 A-5 초음속 공격기가 로프트 폭격을 이용한다. 이를 위해 폭탄창을 동체 뒤에 달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명중률은 수평폭격방식보다도 떨어진다. 최신 전투들은 수평폭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로프트 폭격 방식도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다만 밑에 설명할 정밀 폭격방식과 결합하면 먼 거리에서 안전하게 폭탄을 투하하면서도 꽤 높은 명중률을 얻을 수 있다.

3.4. 융단폭격

일반 폭탄을 수평폭격할 때 나오는 낮은 명중률을 벌충하기 위해 대량의 폭탄을 폭격지역 전체에 골고루 투하해서 맵병기같이 공격함으로서 확률에 의해 목표물이 파괴될 확률을 높이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폭격방식. 이후 광범위한 면적에 퍼진 목표나 군수시설, 가옥밀집지역등을 공격하는 전략폭격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관련 내용을 참고하라.

3.5. 정밀폭격

현대 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폭격 방식. 유도기능이 붙은 유도폭탄 등을 이용하여 표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유도폭탄들은 비유도 폭탄에 비하면 가격이 비싸지만, 표적하나를 확실하게 파괴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란 측면에서는 도리어 정밀유도 폭탄이 싸게 먹히는 경우도 많다. 즉 표적이 대공포등으로 보호를 받고 있어 저고도 폭격이나 급강하 폭격이 어렵고, 그래서 조종사의 목숨을 담보로 폭격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수평폭격으로 하되 많은 숫자의 전폭기/폭격기를 출격시켜 다량의 폭탄을 퍼부어 그 표적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겨우 표적을 파괴하느니... 차라리 정밀폭탄 한 두발로 깔금하게 표적을 파괴해버리는게 전체 비용이나 위험감수 측면에서 더 낫다.

특히 현대전에서 민간인에 대한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폭탄 자체의 폭발위력을 약하게 하는 대신, 표적에 대한 명중률은 높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또 폭탄 자체의 폭발 위력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폭탄의 탄두를 작게 한다는 이야기이므로 더 가벼운 폭탄을 만들어 소형 전폭기에도 다수의 폭탄을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여 한 번 출격에 다수의 표적을 공격하고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도 역시 정밀폭격을 하려면 폭탄값이 비싼것은 사실. 사실 폭탄 자체도 그렇지만 이 폭탄에게 표적을 정확히 지정해주려면 센서류도 정확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뛰어난 정찰자산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폭격 명중률이 십 수 m 수준으로 적당히 명중률이 높으면서, 가격도 몇 천 만원대로 적당히 싼(보통 레이저 유도폭탄 값도 1, 2억원 가량 한다) JDAM 같은 유도폭탄류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가격 역시 결국 비싸므로 여전히 현대전에서 많은 전폭기들은 비유도폭탄으로 무장하고 있다.

4. 폭격의 역사

동력으로 비행하는 비행기가 출현한 후, 최초의 폭격은 최초의 공중전처럼 지나가던 비행기의 조종사가 직접 손으로 수류탄을 던진데서(…) 시작한다[1]. 뭐 기록상으로는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에서 봉기를 일으킨 도시에 대해 열기구를 이용해 폭격을 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제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항공기의 성능이란 게 정말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형 비행선이 더 탑재량이 뛰어날 정도였으며, 실제로 독일군은 대형 체펠린 비행선에 폭탄을 싣고 영국 런던까지 간 다음 런던을 폭격하는 대범한 작전을 세워 연합국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체펠린 비행선은 성능이 향상된 전투기들의 등장으로 느리고 둔하며 거대한 목표물로 전락하여 대형 폭격기의 등장을 부르며, 이탈리아의 공군 전략가 줄리오 두헤는 피해를 눈여겨 보며 '앞으로 미래의 전쟁은 육군이 갈 필요도 없이 공군이 폭탄싣고 가서 폭탄으로 적 도시를 도배해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예견한다. 실제로 그 후 비행기의 성능이 진일보 함에 따라서, 일본처럼 진짜 폭격만 쳐맞고 항복하는 나라가 생겨났다. 하지만 현대 전략연구가나 전사가들 사이에서는 폭격만으로 일개 국가의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지도부의 전쟁의지를 꺾기는 어려우며 육군이나 해군의 접근이 수반될 경우에야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은 원래부터 맞을만큼 맞고 바보가 된데다가 핵폭탄이 너무 황당할 정도의 위력이라... [2]

다만 순전히 항공력만으로 진행된 코소보 전쟁(Operation Alied Force)의 승리 이후 공군력만능론이 되살아나기도 했으나, 그 반박으로 코소보 전쟁 역시 코소보해방군(KLA)의 지상공세 없이는 승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으로는 세르비아 측 자료가 공개되면서 전쟁의 승패와는 관계없이 항공전역의 성과 자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4.1. 항공기와 폭탄의 발전

폭격의 위력 발전사에 대해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폭탄 탑재량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사례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격기 고타 G IV의 폭탄 탑재량은 최대 500 킬로그램 정도였다. 가장 적재량이 많은 비행기가 이 지경이니 나머지 비행기들의 적재량은 진짜로 적었다.[3]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중소형의 폭격기들도 1톤 이상의 폭탄 탑재가 가능했는데, 독일군은 급강하 폭격기에 한발~세발의 대형 폭탄을 달고 정확한 폭격을 퍼붓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미군, 영국군은 이런 비행기도 있는 반면에 대형기도 많았는데, 대형 폭격기인 B-29는 최대 9톤, 랭카스터는 최대 10톤(!)의 폭탄을 탑재 가능했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전쟁 초반에 이런 폭격기들을 한번에 수십, 수백대를 띄워 서로의 도시를 집중 공격했다. 특히, 독일 해군이 상당히 초라했던 까닭에 독일군은 공군으로 영국 해군과 도시들을 초토화시킨 뒤 상륙하려 했는데... 이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공중전을 영국 본토 항공전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런던이 초토화 되고 영국의 군사시설이 많은 피해를 봤지만 결국 영국은 건재하게 된 반면, 독일공군은 수백대의 항공기를 잃고 전투력을 상당히 손실하여 결과적으론 영국 본토 상륙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막판에 코벤트리라는 도시를 폭격으로 완전히 초토화시켜 지도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참사로 인해 코벤트리화하다(Coventration/Coventry Blitz) 라는 용어가 어떤 도시의 전역에 쑥을 재배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다.[4]

그리고 이듬해에 전세가 역전되자 영국군은 폭격기 1,000대를 한도시에 집중적으로 띄워 초토화시키는 전술(밀레니엄작전)로 코벤트리의 악몽을 재현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쾰른이 완전히 콩가루가 되어 버린다. 쾰른 뿐 아니라 독일의 주요 도시들과 군사 거점들은 그 뒤로 계속되는 폭격으로 인해 몸살을 앓게 되었고, 전쟁 후반기에 감행된 드레스덴 폭격은 1시간만에 10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공습으로, 이는 핵무기가 사용되기 전에이건 애초에 수초만에 수십만명 죽이는 놈이니 그런거고.. 벌어진 최대규모의 학살로 평가될 수준이며, 도시의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불살라 버렸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타격을 주었다.

태평양 전쟁에서도 전쟁 후반 커티스 르메이가 부임하면서 그 동안의 폭격 전술을 근본부터 바꾸게 된다. 일본에서는 미군의 B-29 편대가 매일같이 본토를 폭격하고 있었는데, 이후 일본이 목조건물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일부러 잘 타라고 소이탄을 위주로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또한 한발 한발의 폭탄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피해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학자들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각 폭탄을 몇초 간격으로 떨어뜨리면 몇미터 간격으로 떨어지며 최대한 많은 지역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한 값을 폭격 방식에 도입해 적절히 일본을 초토화 하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공식을 악마의 방정식이라고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소이탄 폭격을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일본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군사고문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 일본의 소이탄 공격이 동아시아의 목조건물과 결합하며 피해를 입히는 것을 보고 이를 다시 일본에 써먹은 것이다.

이로 인한 일본의 피해는 그야말로 온나라가 콩가루가 되다시피 하는 지경이었다.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의 "해외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폭격"이 중일전쟁 당시 일제의 상하이 폭격이었음을 생각하면 인과응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우 처참했다. 1945년 3월 9일-10일간에 걸쳐 3시간 동안 진행된 도쿄 대공습 당시 1,665톤의 소이탄을 뿌려서 목조건물에 있던 사람은 타 죽고, 콘크리트 건물의 사람들은 산채로 찜통에 들어간 셈이고, 방공호에 대피한 사람들은 질식해서 죽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은 녹아서 뻘처럼 변한 아스팔트에 빠져 타 죽고, 물에 들어간 사람은 끓어 오른 물에 삶아져 죽었다.

이때 일본 폭격을 담당하던 21 폭격기 부대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의 말은 아래와 같다.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들이 죽어야만 싸움이 멈출 것이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If you kill enough of them, they stop fighting).
그리고 이분은 전후에 항공자위대 설립에 공로한 것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런 심각한[5] 피해를 입고도 몇번에 걸친 항복권고에도 결국 항복하지 않다가 핵을 맞고서야 항복한걸 보면 그 당시 일본 수뇌부는 똘기 근성이 충만한 걸지도. 게다가 항복의 이유도 원폭으로 인한 대량의 사상자 발생이 아니고, 폭격으로 일본이 약해졌기 때문에 미군이 상륙해서 이세 신궁에 있는 3종의 신기를 빼앗는 것과 덴노의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전 때에는 마침내 제트 전투기의 시대가 와서, 2명이 탑승하는 전투기F-4 팬텀 한대가 무려 6.4톤의 폭탄을 탑재하는 시대가 왔다. 또한 B-52 같은 폭격기는 한번에 수십톤(…)의 폭탄을 탑재 가능했는데, 이는 원래 핵폭탄을 여러발 싣고 만에 하나 벌어질 러시아와의 전쟁 때 러시아 도시들을 핵으로 초토화 시키는 임무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전 때에는 재래식 폭탄을 떨어트리고 다녔는데, 이 폭격이 얼마나 가공할 수준이었는지 북베트남이 결국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되며 베트콩들은 B-52의 폭격을 맞는 게 가장 무서웠다고 회고할 정도였다.[6]

그러나 그런 가공한 폭격도 결국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하는것을 막을 수 없었다. 또한 폭격이라는 작전은 엄청난 정치적 결단을 필요로 한다는것도 베트남 전쟁이 보여주었다. 롤링썬더 작전 등의 예를 봐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폭격을 제대로 못 했다가 죽어라고 쏟아부어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했다. 게다가 개전이후 정치적 이유로 작전범위를 남부 전역에 한정해 놓고 있는 동안 북베트남 공역에는 소련제 SA-2 미사일을 비롯한 본격적인 대공방어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B-52같은 중폭격기가 활동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는 러시아의 방공망에 걸리지 않고 적에게 폭격을 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가 개발되었는데, 이로 인해 적에게 발각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어느 순간에도 적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걸프전 때 위력을 발휘하는데, F-117 스텔스 폭격기가 개전 첫날에 이라크 국방부, 대통령 관저, 방송국, 군사령부, 교량, 발전소 등등을 전부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개전과 동시에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본 중국은 병력만능주의를 버리고 대대적인 군 현대화를 결정하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5.1. 폭격과 인물

5.3. 폭격의 매개체

5.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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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11년, 단엽기를 몰던 이탈리아군의 조종사 지울리오 카보티가 리비아트리폴리 상공에 수류탄 하나를 던졌다.
  • [2] 일본은 오키나와 전투를 통해 '본국' 영토가 본격적으로 침략 단계에 있었고, 무엇보다 소련의 선전포고로 만주, 홋카이도를 비롯해 모든 전선에서의 전방위적인 강력한 압력이 들어온 것이 결정적인 항복의 이유였다. 물론 핵폭탄이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사실이지만.
  • [3] 그라프 체펠린 등 당시 비행선의 경우 9톤까지 적재 가능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당시 기준으로는 덩치가 너무 커져버려서 이착륙과 운항, 정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 [4] 이에 대해서 영국은 독일의 암호문을 성공적으로 해독하고 있었던 까닭에 코벤트리가 폭격당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암호문이 해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일부러 방관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암호 해독이 늦어져서 실제로 해독에 성공한 것은 폭격이 끝난 후였다는 것이다.
  • [5] 이 공습 당시 피해는 통계에 따라서 다른데. 미국 전략폭격조사(US Strategic Bombing Survey)의 경우 88,000명 가까이가 사망하고 44000명정도가 부상을 입었다고 계산한다. 도쿄소방청에서는 97,000명이 죽어나가고 125,0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계산 도쿄 경찰청에서는 124,711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 [6] 여담이지만 이들은 B-52의 폭격에 대비해서 철사양동이를 준비했다. 무슨 소리냐면... 폭격으로 인한 대부분의 인명피해는 폭발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화염 폭풍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이들은 양동이에 물을 받아놓고 지켜보고 있다가, 거대한 B-52가 접근하며 양동이에 파문이 이는 것을 확인하면 곧바로 철사를 주변 나무에 묶어서 있는 힘을 다해 매달렸다. 이러면 폭격으로 인한 폭풍에 휘말려 날아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