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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마가트

last modified: 2015-03-22 12:27:5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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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볼프강 펠릭스 마가트 (Wolfgang-Felix Magath)
생년월일 1953년 7월 26일
국적 독일
출생지 아스펜부르크
포지션 MF
경력 빅토리아 아스펜부르크(1972/73 - 1973/74)
1.FC 자르브뤼켄(1974/75 - 1975/76)
함부르크 SV(1976/77 - 1985/86)
지도자 경력 브레머하펜 (1992/93, 코치)
함부르크 SV (1993/94 - 1994/95, 수석코치)
함부르크 SV (1995/96 - 1996/97)
1.FC 뉘른베르크(1997/98)
SV 베르더 브레멘 (1998/99)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9/00 - 2000/01)
VfB 슈투트가르트 (2001/02 - 2003/04)
FC 바이에른 뮌헨 (2004/05 - 2006/07)
VfL 볼프스부르크 (2007/08 - 2008/09)
FC 샬케 04 (2009/10 - 2010/11)
VfL 볼프스부르크 (2011/12)
풀햄 FC (2013/14 - 2014/15)
단장 경력 함부르크 SV (1986/87 - 1987/88)
1.FC 자르브뤼켄 (1988/89 - 1989/90)
위르딩겐 05 (1990/91 - 1991/92)
VfB 슈투트가르트 (2001/02 - 2003/04)
VfL 볼프스부르크 (2007/08 - 2008/09)
FC 샬케 04 (2009/10 - 2010/11)
VfL 볼프스부르크 (2011/12)
국가대표 경력 47경기 5골

Contents

1. 소개
2. 선수 커리어
3. 감독 커리어
4. 성향
5. 기타
6. 기록
6.1. 선수시절
6.2. 감독시절

1. 소개

볼프강 펠릭스 마가트(Wolfgang-Felix Magath)

1953년 7월 26일생으로 미국계 독일인으로 A매치는 서독 국가대표 출신으로 43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선수 시절 주요경력으로 함부르크 SV에서 10년을 뛰며 분데스리가를 3번 우승시키는 등 함부르크 SV의 전성기와 함께 했으며 특히 1982-83년 유럽피언컵(현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함부르크를 우승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1].

선수 은퇴 후, 여러 클럽에서 단장직을 겸하기도 했으며 슈투트가르트 시절에는 유망주들을 이끌고 분데스리가 준우승,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는 2시즌 연속 더블, 볼프스부르크 시절에는 깜짝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분데스리가소방수, 사담(...)[2], 쾰릭스, 독일의 라니에리[3]

2. 선수 커리어


함부르크의 레전드
선수 초창기에는 아스펜부르크와 자르브뤼켄 같은 하위디비전에서 활동했지만 1976/77 시즌 함부르크로 이적하여 10년 동안 팀의 주전으로 활동한다. 10년동안 306경기에 출장했으며 46득점을 하여 미드필더로서 쏠쏠히 공격에도 가담한 편. 특히 1982/83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팀을 유럽 정상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10년동안 함부르크에서 3차례의 분데스리가 타이틀과 유럽챔피언스리그와 컵위너스컵 각각 1회 우승, 유에파 컵 준우승 등을 하며 함부르크 SV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국가대표에도 43경기에 출전하며 82, 86 월드컵에 2회연속 출장하였고 유로 80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6 월드컵 참가 후 무릎부상으로 33살의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된다.

3. 감독 커리어

감독계의 저니맨

사실 펠릭스 마가트는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 수업을 받은게 아니라 프런트에서 단장직을 시작했다. 자신의 친정팀인 함부르크 SV를 시작으로 자르브뤼켄,위르딩겐에서 6년동안 단장직을 겸임하던 마가트는 1992년 브레머하펜의 코치로 영입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고 그 다음 시즌인 1993/94 시즌 당시 함부르크 감독 Benno Möhlmann의 부름을 받아 수석코치로 영입된다. 그리고 한 시즌 뒤 함부르크 감독으로 승격된다.

1995/96시즌 팀을 유에파컵으로 이끈 마가트는 그러나 1996/97 시즌 리그 1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경질된다.

그 뒤로 1997/98시즌 2부리그에 있던 뉘른베르크 감독을 맡아 2부리그 3위를 기록하며 뉘른베르크를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는 업적을 이루었으나 구단주와의 의견차이로 인해 1년만에 바로 그만두고 베르더 브레멘감독으로 취임한다. 이때 1시즌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잘렸고, 브레멘을 수습하기 위해 토마스 샤프를 감독으로 임명하고 강등권 탈출과 포칼 우승이라는 업적을 1주일만에 이뤄냈다.

여기까지 보면 뉘른베르크를 승격시킨 것 외에는 별 볼일 없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겠지만, 브레멘에서 경질 이후 1999/00 시즌 분데스리가 강등위기에 놓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감독을 맡아 소방수 역할로 팀을 강등권에서 구출해낸다. 그러나 칭송도 거기까지...다음 시즌 또 다시 막장 성적에 팀이 6연패를 하자 경질당한다.이거 독일의 라니에리인데?[4]

그러나 강등권 위기의 팀을 소방수로서 살린 명성을 얻은 펠릭스 마가트는 2001/02 시즌 강등권에서 악전고투하던 VfB 슈투트가르트감독이 된다. 이때부터가 마가트의 전성기. 슈투트가르트 프런트로 부터 단장직 겸임이라는 권한까지 얻어낸 마가트는 그 후 마가트 유치원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흘렙, 티모 힐데브란트, 케빈 쿠라니 등에 바이에른 뮌헨의 필립 람을 임대 영입을 하며 팀을 구축시켰고 2002/03시즌 리그 준우승을 차지해버렸다!

부진한 팀의 감독을 맡아 리그 준우승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까지 해 버렸으니 네임벨류가 슬슬 쌓여가고, 03-04시즌에도 지난날관 다르게 팀을 4위까지 끌어올려 놓고서 2004/05 시즌, 당시 오트마르 히츠펠트의 부진한 성적에 실망한 분데스리가끝판왕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5]

빠방한 지원에 전권위임을 맡은 마가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우승컵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임한 뒤 2004/05, 2005/06시즌 리그와, DFB-포칼을 우승하는 2년연속 더블을 한 명감독의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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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이때가 좋았지...

그러나 2005/06시즌 이후 팀의 에이스인 미하엘 발락이 첼시로 이적하고 제 호베르투마저도 팀을 떠나게 된다. 마가트는 급하게 반 봄멜을 데려와 공백을 메꾸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중원의 실종으로 인해 마카이, 피사로 등이 예전과 같이 제대로 공을 공급받지 못하여 공격에서 해매고 다른 분데스리가 팀들은 아예 라인을 깊숙히 내린후 역습 한방으로 전술을 바꾸었으나 여기에 해답도 제대로 못내놓으며 지지부지한 성적을 보여주게 된다.

여기에 선수들의 줄부상과 호흡이 맞지 않은 수비진, 발락과 제호베르투가 팀을 떠났으나 마치 있는것처럼 활용하는 전술로 2006/07 시즌 중반 리그 4위로 밀려났고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바이에른 뮌헨 프런트에 의해 경질된다.[6]

2007/08시즌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감독겸 단장으로 전권을 부임한다는 계약으로 감독이 되었다. 07-08시즌 5위로 팀 순위를 끌어올린 마가트는 08-09시즌에서 그 포텐이 폭발했다! 에딘 제코, 라피테, 미시모비치를 앞세운 삼각편대로 분데스리가의 우승컵을 차지한 것이다!! 이 우승은 볼프스부르크의 유일한 리그 우승이었다.
http://cfile5.uf.tistory.com/image/132F77284A77029FDBFFF7
모기업 빵빵하지, 권한 막강하지, 어린 선수도 잘키웠지, 뭐 하나 후달릴 게 없는 볼프스부르크 생활이었지만 1년 만에 FC 샬케 04로 떠나버린다. 샬케가 좀 더 크고 역사도 빵빵한 구단이긴 하다.2년차에서 무너진다는 전적이 있으니 전설일 때 물러나려고 했나?

샬케에선 라울 곤살레스클라스 얀 훈텔라르를 영입해 전시즌 제코-그라피테와 같은 영혼의 투톱을 꿈꾸었고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다. 그리고 4년계약 반도 못채우고 11년 3월 16일 경질되었다. 막판 훈신의 1000분 무득점을 보기전에 잘려서 다행인가... 그리고 베르더 브레멘때와 똑같이 마가트가 경질된 뒤 샬케는 포칼을 우승했다.

샬케에서 경질된 마가트는 리즈시절을 보낸 볼프스부르크에서 다시 감독/단장을 겸임하는 전권을 위임받는단 조건으로 다시 볼프스부르크에 돌아와 강등권에 허덕이던 팀을 구해냈다. 그러나 볼프스부르크에서도 부진을 겪자 2012년 12월 해임되어 1년 넘도록 쉬었다.

2014년 2월 14일, 풀럼 FC 감독을 새롭게 맡게 되면서 처음으로 해외 구단 감독이 되었다.계약기간은 1년 6개월. 하지만 풀럼이 20위 꼴지로 부진한 상황에서 1달동안 1승 1무 3패를 겪으면서 불안한 상황 끝에 강등이 확정되었다. 챔피언십에서도 1무 6패의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며 꼴찌로 내려앉은 끝에 2014년 9월 18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전체적으로 종합해오면 95년부터 11년까지 함부르크 SV, 뉘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에른 뮌헨, FC 샬케 04, 볼프스부르크 등의 8개 팀에서 1부리그 승격 한번, 분데스리가 우승 3번, 준우승1번,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번, DFB-포칼 2번, 리가포칼 1번의 우승을 기록한 나름 커리어만 보면 괜찮은 감독이다.

4. 성향

마가트의 방식은 감독이 가장 위에 있다는 주의로 언제나 팀내 전권 위임을 요구하는 감독이다. 훈련방식은 정신력과 강도 높은 체력훈련, 그리고 쌍팔년도 애들도 아닌 희안한 규율들[7]이 많다.

자기한테 대든 선수는 절대 쓰지 않으며, 자기 말 잘듣는 충실한 선수 위주로만 기용하는 성향이 있어 개성강한 선수들과 갈등이 잦고, 자기가 하란대로 충실히 하는 선수들을 좋아해 아시아권 선수들을 좋아한다. 대표적인게 구자철과 하세베 마코토, 오쿠보, 알리 카리미, 하오준민, 우치다 야쓰토 등등 감독 부임시절 다양한 아시아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다.

별명중 하나인 쾔릭스가(Quälix, 이름 "Felix"와 괴롭히다 라는 뜻을 지닌 "quälen"의 합성어)라는 뜻이고, 그게 선수들한테 불리는 거 보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더블스쿼드를 선호하는 정책 역시 많이 까이는 편인데, 선수오타쿠라고 불릴 정도로 한 포지션에 다량의 선수를 사는 짓을 많이 한다. 이래서 구자철이 피봤다. 그리고 구자철이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고 대활약을 펼치는 바람에 이 감독은 한국에서 욕을 더 얻어먹었다.[8]
11-12 겨울이적시장에서 3000만 유로라는 거금을 들여 선수들은 잔뜩 사왔고, 그 전에도 중앙 미드필더만 8명을 두는 정신나간 짓을 벌이기도 했다.

FC 샬케 04팬들은 특히 더 이를 가는데 재정난이 심했던 구단에서 1500만 유로를 들여 을 사오고, 방만한 재정낭비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반짝 성적은 일으켰지만, 리그에서 14위라는 실망스런 성적으로 경질되고는 한다는 소리가 날 경질하려면 내가 벌어준 UEFA 챔스리그 상금 전부 내놔라! 하면서 소송을 걸어버린 사건으로 샬케팬의 금지어다. 물론 흐지부지 되고 끝났지만. 사실 방만한 스쿼드와 훈의 영입 등은 당시 훈이 부진했기에 문제였지만 자신에게 반대하는 선수는 가차없이 처내는 그 성향 덕택에 주급 좀 되는 노장들이 팍팍 갈려나갔기 때문에 저 놈이 안 그래도 재정 안 좋은데 돈 더 썼다는 비난은 좀 그렇다. 본인 말마따나 상금도 팍팍 따냈고.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강등에 허덕이는 당장에 성적이 중요한 팀이나, 유소년들 자원이 뛰어나거나, 전권위임을 해줄 신뢰있는 구단주가 있으면 좋은 성적을 내나, 그 성적이 단기간에 머물고, 이리저리 팀을 옮기면서 반짝 성적을 일으켜 주는 소방수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저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슈투트가르트 이후, 특히 볼프스부르크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거둔 이후 자뻑이 하늘을 찌르게 되어 본인 방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5. 기타

아버지가 푸에르토 리코계 미군이었다. 마가트가 어릴적 독일을 떠나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기 때문에 굉장히 싫어했으나 성장 후 만나서 감정을 어느정도 푼 모양. 그 이후로 아버지의 이름인 펠릭스를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전엔 볼프강 마가트였다. 현재는 볼프강-펠릭스 마가트지만 일반적으로는 펠릭스 마가트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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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아니랄까봐, 맥주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경기장 외적으로 모습을 보면, 맥주 한잔 들고 찍은 사진이 많기도 하고, 선수들이 자신한테 장난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감독이지만, 유일하게 넘어가는 게 우승후 맥주세례.

6. 기록

6.1. 선수시절

  • 함부르크 SV (1976/77 - 1985/86)
  • 독일국가대표팀
    • 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 EURO 1980

6.2. 감독시절

  • 바이에른 뮌헨 (2004/05 - 2006/07)
    • Bundesliga (2) : 2004/05, 2005/06
    • DFB-Pokal (2) : 2004/05, 2005/06
    • DFB Ligapokal: 2004
  • 볼푸스부르크 (2007/08 - 2008/09, 2011/12)
    • Bundesliga (1)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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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준우승이 그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었던 유벤투스 1:0으로 패배.
  • [2]사담 후세인의 사담 맞다. 워낙 스타일이 독재자 스타일이라 사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3] 각자 이탈리아와 독일의 소방수 감독을 맡고 있으시겠다.
  • [4] 현 모나코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와 참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명성있는 팀이 시즌중 성적부진으로 위기에 빠지면 단기감독으로 들어가 어느정도 성적을 내지만, 장기적으로 감독을 맡으면 알수없는 부진으로 경질. 그러나 마가트쪽은 우승을 많이 해서 라니에리보단 평가가 좋으...려나?
  • [5] 지금은 사라진 인터토토컵 우승도 하나 했지만 이 대회는 UEFA과 무관한 토토복권 주관 대회로 우승팀이 여러 팀인 말뿐인 우승대회라서 의미가 그다지 없다.
  • [6] 이때 뮌헨은 리그 4위로 지금과 달리 분데스리가에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3장밖에 할당이 안 돼서 유로파행...그리고 뮌헨은 다음해 분노의 영입을 시전하였습니다
  • [7] 훈련장에서 헤드폰 꼈다고 벌금, 경기장 자기 전술에 반대하는 움직임 보였다고 벌금.
  • [8]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당시의 독일 기사에 따르면 마가트는 구자철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앞의 임대 이적 제시를 거절했었고 기회도 점차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으나 워낙 그 포지션에 선수가 많아 제 자리에서 풀타임은 뛸 수가 없으니 폼이 올라오지를 않았다. 결국 바이에른 뮌헨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골대 앞 결정적인 찬스를 트레핑 실수로 무산시키는 모습을 보고 마가트는 결단을 내리고 임대를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