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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왕조

last modified: 2013-07-31 19:24:04 Contributors



الفاطميون(al-Fāṭimiyyūn)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1] 파티마 왕조 아이유브 왕조

시아파 이슬람 왕조. 파티마 왕조(الدولة الفاطمية)나 파티마 칼리프조(الخلافة الفاطمية)로도 불린다.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시아파의 6대 이맘인 자파르 알-사디크(جعفر الصادق)의 아들, 이스마일 빈 자파르(إسماعيل بن جعفر‎)를 시아파의 제7대 이맘으로 간주하는 분파가 이스마일파이다.

창시자인 이스마일파의 우바이드 알라 알마흐디는 909년에 북아프리카를 차지하고 있던 아글라브 왕조를 전복시키고 튀니지에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921년에는 모로코의 이드리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북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튀니지에 건국한 당시부터 마흐디인 동시에 칼리프라고 칭하여 동쪽의 아바스 왕조, 서쪽의 후우마이야 왕조와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따라서 파티마 왕조는 아바스 왕조의 영토를 계속 공격했으며, 특히 풍부한 재원을 보유한 이집트 지역을 얻고자 수차례의 원정을 시도했다. 파티마 왕조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아바스 왕조의 제4대 칼리프인 알 무이즈 집권기에 이집트에 극심한 기근이 들어 군사력이 약화된 것을 기회로 이집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아바스 왕조에 충성하며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이흐시드 왕조는 파티마 왕조의 가우하르 장군이 이끄는 정예군 10만 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963년 수도 푸스타트를 내놓게 되었다.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여 카이로를 건설하고 이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카이로의 초창기 인구는 약 1만8천명이었으나, 도시가 점차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급격히 팽창해 약 20-30만 명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이슬람 세계 도시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의 중흥기에 다마스쿠스를 포함한 시리아 지역이 이슬람세력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넘어가고 예루살렘까지 위협했지만 파티마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탈환하고 남부 시리아를 점령, 비잔티움 제국의 남진을 저지하고 전성기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제외한 이슬람 제국의 대부분의 영토를 편입하면서 시아파 왕조였지만 순니파 무슬림의 충성도 받았다.

하지만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진하는 셀주크 제국에 패하고 결정적으로 11세기에 십자군에게 패하여 예루살렘을 비롯해 아스칼란, 하이파 등을 점령당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171년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한 살라흐 앗 딘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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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티마 왕조는 아바스 왕조에서 분리독립하여 떨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