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팀 던컨

last modified: 2015-03-28 17:38:19 Contributors


샌안토니오 스퍼스 No.21
티모시 시어도어 "팀" 던컨
Timothy Theodore "Tim" Duncan)
생년월일 1976년 4월 25일
211cm (6 ft 11 in)
체중 116kg (250 lb)
출신학교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
포지션 파워포워드 겸 센터
드래프트 199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
등번호 21번
소속팀 샌안토니오 스퍼스(1997년~현재)
수상내역 NBA Rookie of the Year (1998)
정규시즌 MVP 2회 (2002,2003)
파이널 MVP 3회 (1999,2003,2005)
All-NBA First Team 10회 (1998-2005,2007,2013)
All-NBA Second Team 3회 (2006,2008,2009)
All-NBA Third Team (2010)
All-Defensive First Team 8회 (1999-2003,2005,2007,2008)
All-Defensive Second Team 6회 (1998,2004,2006,2009,2010,2013)
NBA All-star 14회 (1998,2000-2011,2013)
올스타전 MVP(2000)[1]
NBA All-Rookie First Team (1998)
USBWA College Player of the Year(1997)
Naismith College Player of the Year (1997)
John Wooden Award (1997)
ACC Player of the Year 2회 (1996,1997)

1998년 NBA 올해의 신인상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빈스 카터

2002년 ~ 2003년 NBA 정규시즌 MVP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케빈 가넷

1999년 NBA 파이널 MVP
마이클 조던팀 던컨샤킬 오닐
2003년 NBA 파이널 MVP
샤킬 오닐 팀 던컨천시 빌럽스
2005년 NBA 파이널 MVP
천시 빌럽스팀 던컨드웨인 웨이드

2000년 NBA 올스타 MVP
마이클 조던[2]팀 던컨 & 샤킬 오닐앨런 아이버슨


200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랜스 암스트롱팀 던컨 & 데이비드 로빈슨보스턴 레드삭스

Contents

1. 소개
2. 상세
3. 커리어
4. 플레이스타일
5. 센터냐? 포워드냐?
6. 개그맨
7. 기타


1. 소개

NBA의 농구선수.

샌안토니오 스퍼스프랜차이즈 스타이자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워드[3] 별명은 미스터 기본기(Mr. Fundamental)[4].

2. 상세

NBA 역대 파워포워드 서열을 논할때 가장 논란이 없는 No.1 선수.[5] 통산 성적으로 따지면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다음 시대의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6]

데뷔 이후 던컨이 이끄는 스퍼스는 서부지구에서 단축시즌을 제외, 17년 동안 정규시즌 승률 6할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통산 239승을 기록해 팀 성적에서도 라이벌인 샤킬 오닐이나 르브론 제임스에 비해 우위에 있다.

4대 센터와 MJ가 떠난 이후 샤킬 오닐과 함께 NBA의 패권을 다툰 빅맨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NBA 엘리트 포워드 시대에서 사실상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밑에서 선수들이 활약하는것을 구경했다 해도 반론이 제기되지 않을 만큼 그의 커리어와 실력은 압도적이다.[7]

농구경력에서 단 하나 모자란 점이 있다면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는 것.[8]

3. 커리어

참고로 원래는 버진아일랜드의 국가대표급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강타한 허리케인 "휴고"로 버진 아일랜드에 유일한 국제규격 수영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고민끝에 수영을 포기하고 농구를 선택했다. 수영팀이 연습장소를 바다로 옮기자 상어가 무서워서 탈퇴했다 카더라(…). 근데 NBA 오니까 상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

13-14시즌까지 통산 24,904점 13,940리바운드 3,832어시스트 915스틸 2,791블락. 평균으로 환산시 19.9득점 11.1리바운드 3.1어시스트 0.7스틸 2.2블락. 10-11시즌부터는 12-13시즌의 30.1분을 제외하고 20분대 출전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커리어 20-10이 깨졌다. 흔히 스탯으로 평가할수 없는 선수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카림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칼 말론[9]같은 대괴수들 때문에 가려서 그렇지 막상 보면 스탯이 나쁜 것도 아니다.[10]

ACC 컨퍼런스의 웨이크포리스트대학교를 졸업하고 97년 입단.대학교 2학년 시절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었고,3학년 때에는 UMASS의 마커스 캠비와 함께 NCAA최고의 인사이더로 인정받고 있었다.당시 2학년이던 캠비는 1996년 드래프트에 얼리엔트리하여 토론토에 2번픽으로 지명받지만,던컨은 1년 더 남게 된다.던컨이 이해 드래프트에 참여했다면 1번픽은 알렌 아이버슨이 아닌 던컨이 되었을 거란 얘기도 있지만..어쨌든 대학에 남게 되면서,대학생 신분으로 드림팀3와 대학선발과의 연습경기에 참여하게 되는데..실질적인 대학대표팀의 원맨 리더로,곧 리그에 라이벌이 되는 드림팀3의 센터 3인방(하킴 올라주원,데이빗 로빈슨,샤킬 오닐..사기다!)과 모두 맞대결을 벌이게 되는데..연습경기라 드림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그 셋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이미 탈NCAA급 선수로 인정받고 NBA에서도 통할거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그래도 NBA는 아직이 아닐까 평가하던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 경기를 통해 확 바뀌고,대중적인 인지도도 크게 올라간다..

당시 스퍼스의 센터는 데이비드 로빈슨인데... 97년 로빈슨이 6경기 만에 무릎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자 던컨의 전체 1픽이 예고되어있는 드래프트에서 1위를 먹기 위해 드래프트역사상 가장 성공적인탱킹을 한 스퍼스가 꼴등을 해 1번 픽을 얻으며 이 둘의 공존이 실현될 수 있었다. 루키시즌 평균 21.1득점 11.9리바운드 2.5 블록을 기록하며 당연하다는듯이 98년 신인상을 수상.

1999_final_duncan.jpg
[JPG image (Unknown)]

그리고 입단 2년차만에 1999년 트윈 타워의 명성을 알리며 우승과 동시에 파이널 MVP를 수상한다. 사실 로빈슨과의 데뷔는 던컨에게 있어 다양한 면에서 매우 행운이었는데, 물론 가장 큰 행운은 역시 수준급 강팀이자 NBA 스타 플레이어[11]와 함께 데뷔할 수 있었다는 점.

2003_final_duncan.jpg
[JPG image (Unknown)]

로빈슨에게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은 던컨은 리그 최고급 빅맨으로 성장했으나 2000년에는 시즌 말미에 무릎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때 뛰지 못했고, 01년과 02년에는 LA 레이커스에게 가로막혔다. 그러나 02-03 시즌, 2002년에 이어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던컨은 피닉스, 레이커스, 댈러스를 차례로 꺾으며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이기면서 두번째 파이널 MVP까지 차지함과 동시에 데이비드 로빈슨에게 은퇴선물로 우승반지를 선사한다. 2003년 플레이오프 당시 스퍼스의 평균 출장시간,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블록 슛 1위가 모두 던컨이었을 정도로 완벽한 원 맨 우승이었다.

2005_final_duncan.jpg
[JPG image (Unknown)]

이듬해부터 팀의 리더가 된 던컨은 당시까지는 인지도 낮은 외국인 선수였던 마누 지노빌리토니 파커, 악랄한 수비수 브루스 보웬, 클러치때만 빛나는 파워포워드 로버트 오리 등을 이끌게 된다. 2004년 레이커스와의 세미파이널때 5차전에서 0.4초를 남기고 득점에 성공했으나 데릭 피셔에게 통한의 어부샷을 맞고 패배했다. 04-05 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가서 디펜딩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대결하는데, 극악의 수비대결 끝에 다시 파이널 MVP를 수상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방송국과 NBA총재 (디트로이트, 샌안토니오를 제외한 전 북미 시청자 포함)는 극수비팀끼리의 파이널경기로 시청률저하를 우려했고 실제로 역대 최저급의 파이널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 리그는 빈스 카터, 트레이시 맥그레디등의 스윙맨이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데뷔때부터 2005년까지 쭉 ALL-NBA 퍼스트팀 자리를 차지하며 자기 할일만 했고 샌안토니오를 서부 끝판왕 자리에 올려놓았다. 노화가 시작되어 에이스 자리를 토니 파커에게 물려준 후에도 기본기가 워낙 충실해서 몰락하는 일 없이 꾸준히 자기 몫을 해주었다.

06-07시즌엔 패기만만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끌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나 4-0 완승을 이끌며 개인통산 네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NBA 역사상 가장 원사이드했던 이 시리즈에서 던컨의 스탯은 18.3득점 11.5리바운드 2.3블록. 공수에서 완벽한 존재감을 뽐내며 우승에 기여했다. 망연자실한 르브론에게 앞으로 이 리그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라며 위로하기도 했다.하지만 내 시대가 가는것은 아니란다...

10-11 시즌에 와서는 간만에 국대 차출 피한 지노빌리와 이혼남 파커의 다이나믹듀오의 난동, 신불사 맷 보너, 이제 어느정도 적응한 제퍼슨, 무섭게 성장하는 조지 힐 등 팀원들의 컨디션이 너무 좋은 관계로 자기의 롤이 줄어들면서 출전시간도 줄어들고 스탯도 엄청 떨어졌다.[12] 근데 이 양반은 자기 스탯이랑 출장시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스탯에 관심이 있었으면 전성기에 3쿼터 끝나면 퇴근하지 않았겠지...스퍼스 팬들은 '저 양반이 이제 갈 때가 됐구나' 하면서 없는 사람 던잉여, 20득점 10리바운드도 못하는 주제에 0.9조던이나 처먹는 욕심쟁이 취급하는 반면에, 다른 팀 팬들은 '사람이 한 두번 속아야 속지 또 플옵가면 씹어먹을거면서!!'라고 이 양반들 또 약 판다고 난리다.

요 몇년동안은 플옵에서 종종 방전이 되면서 예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NBA의 수많은 센터들이 일류,초일류 할 것 없이 30대 중반 나이에 급노화되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것에 비하면 던컨은 굉장히 잘버티는 축에 속하나, 팀이 스퍼스이고 여전히 팀의 중심이다보니 방전으로 인한 플옵 뒷심부족의 책임은 어쩔수 없이 지게 되었다. 플옵은 DNP-OLD 못한다특히 11-12시즌 플옵에서는 유타 재즈, LA 클리퍼스의 빅맨들을 상대로 속된말로 관광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나 싶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인 오클라호마와의 경기에서는 단축시즌에 몸을 너무 빨리 끌어올린게 독이 되어서 방전이 되어버렸다.

12-13시즌에 들어와서는 체중 감량을 통해서 예전모습을 어느정도 되찾았으며, 요 몇년동안 보여주는 플레이 중에서 가장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센터 포지션으로 퍼스트팀에 다시 들었고 플레이오프 통산 500블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팀은 승승장구하며 6년만에 다시 NBA 파이널에 진출하며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는데, 대니 그린이라는 새파란 후배가 반짝 활약해서 3승 2패가 된 이후 6차전에서 말년에 파이널 MVP 하나 더먹겠다는듯이 대활약하며 미친 존재감을 뿜었으나 지노빌리의 대역귀짓과 대체선수인 티아고 스플리터의 잉여스러움때문에 플레이시간 조절이 실패해서 막판에 방전, 6차전을 내줬다.


서로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던 7차전, 6차전에 이어서 매치업상대인 크리스 보쉬를 완전히 물먹이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4쿼터가 끝나기 직전 골밑 레이업과 팁인을 모두 실패하면서 그답지 않게 땅을 치면서 아쉬워했고, 우승컵은 마이애미에게 양보해야했다. 이것이 던컨 커리어 최초의 파이널 준우승.

2013-14 시즌, 던컨은 74경기에 출장해 평균 15.1득점 9.7리바운드 3.0어시스트 0.6스틸 1.9블락을 기록하며 소속팀을 정규시즌 서부 1위이자 리그 전체 1위로 견인했다. 토니파커, 카와이 레너드를 비롯한 다른 키 플레이어들이 잔부상으로 로스터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철저한 몸관리를 통해 팀의 플랜에서 한번도 이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던컨의 스퍼스는 노비츠키가 이끄는 8번시드 댈러스와 격돌했다. 카터, 노비츠키, 던컨, 지노빌리를 비롯한 포스트조던시대의 영웅들이 노장이 되어 투혼을 보여주는 모습은 팬들에게 결과를 떠나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던컨 또한 1경기에서 27득점을 기록하며 기울어져가는 경기를 뒤집어서 이기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댈러스의 릭 칼라일 감독이 들고나온 스위칭 디펜스 위주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치열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스퍼스는 그런 댈러스를 상대로 7차전 대혈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진출했다. 댈러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은 시리즈가 끝난 뒤 팀 던컨이 어서 빨리 우승을 하고 커리어에 만족을 느낀 뒤 은퇴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반농담성 인터뷰를 하며, 지난 17년간 서부의 지배자로 군림한 이 위대한 빅맨에게 우회적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이어진 세미파이널에서 벤치가 약한 포틀랜드를 상대로 낙승을 거둔 던컨의 스퍼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2년 전자신들에게 역스윕의 굴욕을 안겨준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의 오클라호마를 상대했다. 오클라호마 최강의 샷블락커 이바카가 부상으로 결장한 첫 두경기에서 던컨은 오클라호마의 허약한 포스트를 박살내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부상에서 빠르게 회복된 이바카가 3경기부터 다시 선발출장을 시작하자, 던컨 또한 노쇠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며 원정 2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감독 포포비치는 5차전을 앞두고 이바카에 막혀 잉여인간이 되어버린 티아고 스플리터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외곽슛이 좋은 맷 보너와 보리스 디아우를 활용하여 이바카를 밖으로 끌어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것은 보리스 디아우의 다재다능함과 팀 던컨의 골밑파괴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벼랑끝 전술이었는데, 팀 던컨은 보리스 디아우가 이바카를 밖으로 끌어내는 사이에 22득점 12리바운드를 찍으며 오클라호마 골밑을 파괴,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그리고 이어진 6차전에서 엘리미네이션 위기에 몰린 오클라호마는 정규시즌 MVP 케빈 듀란트와 리그 최고의 돌파력을 가진 러셀 웨스트브룩, 그리고 레지 잭슨과 이바카를 앞세워 강력하게 저항해왔다. 던컨은 경기내내 이바카의 강력한 수비력 앞에서 고전했으나, 팀의 운명이 걸린 연장전에서 절묘한 풋웍과 슛터치로 1:1을 계속해서 성공시키며 소속팀 스퍼스를 2년 연속 NBA 파이널로 끌어올렸다. 마이애미와 스퍼스는 이렇게 2년 연속으로 NBA 파이널에서 격돌하게 되었으며, 같은 팀이 2년 연속으로 NBA 파이널에서 만나는 것은 96~98시즌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 간의 파이널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던컨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6월 6일(한국시간 기준) 마이애미 히트와의 파이널 1차전에서 21득점(FG 9/10 90%), 10리바운드라는 나이를 의심케 하는 활약을 펼치면서 스퍼스의 110-95 승리를 이끌었다. 도대체 언제 늙는 거야 이 양반은 거기에 파이널 4차전에서 매직 존슨의 플레이오프 더블 더블 횟수, 카림 압둘 자바의 플레이타임 합계 기록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수많은 레전드들이 경기를 지켜본[13]대망의 파이널 5차전. 1쿼터는 르브론이 맹활약하면서 마이애미가 유리하게 가는 듯 했으나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마이애미를 폭격하면서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로서 던컨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우승을 모두 차지한 위대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가온 14-15시즌 한국기준 12월 6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완전체에 가까워진 마크 가솔과의 매치업에서 통산 4번째 트리플 더블을 했다!!!14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진짜 늙을 생각이 없나보다

4. 플레이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정말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움직임을 계속 보여준다. 보기에는 정말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유연성과 순발력, 좌우 움직임이 빅맨 중에서는 사기급이었기에 그의 기본기가 빛을 발하였다. 뛰어난 신체 스펙에 완벽한 기본기, 티안나게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했던 완전무결한 선수. 전성기 시절에는 파워도 장난 아니게 강했다.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잡고 냅다 덩크를 찍고, 혼자서 코스트 투 코스트(!!!)도 하곤 했었다.[14] 루키 시절에는 쫄깃한 원 핸드 앨리웁도 선보였을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생긴거나 플레이 스타일로는 특징적일게 없어보일 것 같지만, 팀 던컨의 시그니처 무브이자 성명절기중 하나는 바로 뱅크 슛. 전성기 시절 기준으로

  1. 45º 각도 베이스라인에서 공을 잡는다.
  2. 상대가 작으면 포스트업 크면 페이스업
  3. 몇번의 무브를 보여준뒤 슛을 던진다.
  4. 백보드 맞고 깔끔하게 들어간다.

이런 식의 기본적인 공격 루트를 사용했는데, 수비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코 베이듯 실점하는 상황이 잦았다. 상대팀 인터뷰에서 마치 벽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매 경기마다 20득점 10리바운드 3~4어시스트 2~3블락을 해주는 사나이. 단점이 있다면 인품이 조용하고 경기 스타일도 멋대가리 없는 뱅크 슛, 작대기 덩크등 기본기에 충실한 스타일이라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뿐만아니라 이런 그가 팀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팀 전체에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안정된 득점을 선호하는 기본에 충실한 분위기가 전염되면서 팀 자체가 재미없는 팀이 돼 버렸다. 재미없는 팀의 재미없는 중심선수.[15] 덕분에 샌안토니오도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도 오히려 주목도는 데니스 로드먼, 데이비드 로빈슨 시절도다도 낮은 기현상을 연출.

수비도 공격만큼이나 완벽하다. 유연하면서도 강한 몸, 긴 팔을 바탕으로 버티는 수비, 페이스업 수비, 헬프 수비 모두 우수했다. 전성기 샤킬 오닐의 포스트업, 르브론 제임스의 닥돌 모두 효과적으로 견제했다. 특히 파울이나 블락으로 집계되지 않더라도 긴팔로 상대의 슛을 방해하는 데엔 도가 텄다. 커리어 상으로도 14번의 수비팀, 8번의 수비 퍼스트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팬들은 이렇게 대단한 선수가 올해의 수비수 수상이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중.

5. 센터냐? 포워드냐?

흥미로운 것은 바로 포지션의 문제이다. 실상 던컨의 포지션은 웨이크 포리스트 시절 센터였지만, NBA 데뷔때는 나이때문에 하향세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4대 센터로 위용을 떨치던 데이비드 로빈슨과의 조합때문에 파워포워드로 출장했고 로빈슨의 은퇴 이후에도 쭉 이어졌는데, 경기 내 포지션과 플레이는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그때그때 바꿔서 플레이한다. 공격에 있어서는 비교적 레인지도 넓고 페이스업이 제법 뛰어났기 때문에 로우포스트에 파트너가 있을때는[16] 파워 포워드처럼 플레이하고, 코너쪽에 파트너가 있을때는[17] 인사이드에 자리잡고 센터처럼 플레이한다. 수비할때 역시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역할을 둘 다 할 수 있었다. 즉, 파워포워드, 센터 두 포지션에 모두 당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선수라는 것.

하지만, 데뷔시의 포지션 설정이 이어지면서 던컨은 파워포워드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포지션은 꽤나 논란이 많은데, 일부 전문가들과 팬들은 파워포워드의 탈을 쓴 센터일뿐이라고 말하고, 역대급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극렬 안티들은 센터로는 역대 최고에 올라설 수 없으니 꼼수 쓰는 거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비교대상이 PF가 되는것 이외에도, 시즌 수상시도 포워드로 분류되어 올스타 선발, 올NBA 퍼스트팀에서 포워드 한자리를 쓸어갔기 때문. 센터는 1명만 받을 수 있지만 포워드는 파포더라도 SF와 묶어서 두명까지 퍼스트팀을 받을 수 있다. 포지션이 센터로 분류되었다면, 2000년대 초반 오닐과 함께 퍼스트팀에 선발된 던컨이 오닐에 밀려 세컨드팀으로 밀렸을 거라는 뜻이다.[18] 오닐은 98년부터 2006년까지 단한번(99)을 빼고 전부 퍼스트팀에 올랐는데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오닐의 확연한 우위라는게 전반적인 의견이다.

물론 던컨이 연속 mvp를 탄 02,03은 당연히 던컨의 활약이 더 뛰어났지만 그 전에 오닐을 제칠 확률은 극히 적다. 커리어 말미 선정되었던 2013년 센터 퍼스트팀도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이때 포워드진은 듀란트,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등 엄청난 뎁쓰를 자랑한 반면 센터는 마크 가솔, 로이 히버트등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 (드와이트 하워드는 부상으로 부진해 써드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오닐 전성기 땐 포워드로 분류되어 이익 보더니 커리어 말미엔 경쟁력 약한 센터로 분류되어 이득보네"란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던컨이 역대 최고의 파포인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센터로 분류되었으면 샤킬 오닐의 존재 때문에 루키시절인 98시즌부터 8시즌 연속 퍼스트팀은 불가능했다는 건 사실이다. 00년의 오닐만 해도 MVP 투표에서 단 한 표를 제외하고 싹쓸이할정도로 압도적이었으니... 이때 오닐은 던컨이 아니라 조던이 와도 MVP를 뺏을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이게 현지에서도 문제가 되었는지 현재는 올스타의 경우만 프론트코트 2명, 백코트 3명 이런식으로 묶어서 뽑고 있다.

뭐 그래도 워낙 대단한 양반이라 큰 흠결이라고 보긴 어렵고, 이러한 논란은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빅맨으로 통합해가는 2000년대 NBA의 포지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것뿐이며 2000년대 홀로 샌안토니오라는 프랜차이즈를 왕조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포지션과 무관한 그의 위대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센터로 취급해도 그는 커리어면에서 한 손 안에 꼽힌다.

클러치 상황에서 유독 강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던컨은 데뷔 초부터 4쿼터 박빙상황의 공격을 전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게다가 동포지션에서 상위권의 볼핸들링, 높은 수준의 게임조립능력까지 갖춘 토탈패키지형 선수였기에 파커와 지노빌리가 여물기 전까지는 하이포스트에서의 리딩도 담당할 정도로 클러치 상황에서의 게임장악력이 탁월한 선수였다. 최근에는 나이를 먹으면서 감량한 몸과 예전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과거처럼 리그를 지배하는 수준의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능력을 꾸준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대신 리그 최고수준의 작전수행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패싱게임을 전개하여 꾸준히 득점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플레이오프든 정규시즌이든 박빙상황에서의 1:1 옵션으로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다. 12-13시즌 멤피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연장 연속득점, 13-14시즌 오클라호마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 연장 연속득점같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던컨은 여전히 중요한 경기에서 스퍼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1:1 득점원이다. 또한 전성기에는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덕 노비츠키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만 가면 더욱 강력해지는 선수로 명성을 날렸으며, 실제로 플레이오프만 가면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클래스를 끌어올리는 기형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포스트 조던시대를 지배한 스몰마켓의 지배자로 평가받았다.

6. 개그맨

게임 스타일이나 팀 자체가 재미없는 인식이 박혀있지만, 꿈뻑거리는 눈과 끔찍한 패션감각, 어이없는 허당짓 및 가끔 터지는 기행 등 개그 캐릭터이기도 하다. 좀 재밌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다 보니까 국내 한정으로 던말년, 던병장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우승후 백악관에서...


지노빌리와 함께..


던컨표 패션 세상에[19]

선배[20] 해설 방해하는 던잉여. 마지막에 보이는 견문색의 패기는 덤

발 헛디딘거 아니다 점퍼 준비한거다.



인 유어 페이스(...)

벤치에서 웃다가 테크니컬 파울 2개 먹고 퇴장당한 던컨. 스퍼스팬들은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21]


나이 많다는 이유로 경기를 뛰지 못한 던잉여 지못미[22][23]

어 나한테 팔이란게 있었나? 이게 뭐지?[24]

한 번은 팀원 전부를 페인트 볼 게임으로 초대를 했다. 그리고 대부분 총을 빌렸는데, 팀 던컨은 자기 총을 가지고 왔다. 참가한 팀원 마이크 핀리의 말대로라면 페인트볼 경기장 끝에서 반대 끝까지 쏠 수 있는 엄청난 총을. 그것도 부족한지 동료인 데니 페리에겐 영점이 안맞는 총을 주고 자신의 팀에는 잘하는 사람만 넣은 뒤... 불쌍한 동료들을 쫓아다니면서 실사 FPS를 했다 카더라.

- 2011년 팀 멤버가 점점 초라해져 가는 상황[25]에서 라커룸에서 코치 팝이 한탄했다.
"이놈들아,네놈들은 대체 뭐냐!"
진지 빨고 포포비치에게
"제 이름은 팀 던컨입니다. 이 팀에서 12년을 뛰었습니다. "

- 플레이오프 중 자유투 성공률이 워낙 저조하자 성이 난 폽할배가 선수들을 내 보내면서
"이제부터 자유투 실패하는 놈들은 사비를 털어 나에게 차 한대 사 내라."
그러자 이 날 일곱개 던져 하나만 성공해 폽영감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던컨 왈...
"무슨 색깔이 좋겠습니까?"

- 애틀란타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다가 자신의 열혈팬과 만난 던컨. 팬은 던컨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던컨은 그 팬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야. 핫도그 먹을래?'
던컨은 어안이 벙벙한 팬에게 핫도그를 사주고 종이에 사인을 해준 뒤 헤어졌다.
'친애하는 크리스(가명)에게, 핫도그를 사랑하는 팀 던컨이.'

-휴스턴과의 치열한 경기 도중 4쿼터에 휴스턴이 작전타임을 부르고 복잡한 작전을 설명하는 와중에, 던컨은 슬쩍 휴스턴 벤치에 들어가 작전을 엿듣고 있었다. 보다못한 휴스턴 감독이 던컨을 쫓아낼때까지 던컨은 표정하나 안바뀌고 귀를 기울이고 있더라...
(2014 플옵 인디애나의 랜스 스티븐슨이 히트 벤치로 가서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

7. 기타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의 유언 때문. 홀어머니로써 티미와 두명의 누나를 키웠던 윌리엄 던컨은 1990년 유방암으로 작고하셨다. 이는 던컨의 14번째 생일 바로 전날이었다고 한다.(...) 눈감기 전 그녀는 3남매가 꼭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대학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미국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그러하듯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 관련 전공서적의 일부를 공동집필하기도 했었다고. 흠좀무

게임 NBA98의 데모버전에서는 마이클 조던과 당시는 애송이였던 던컨의 일대일 매치가 수록되어 있었다. 모 게임잡지 부록으로 나오기도...

2001년 같은 대학교 치어리더였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금슬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2013년 이혼을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시즌 중에! 팬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설은 에이미의 외도 때문이라는 것. 또한 이혼 과정에서 충격적인 루머가 돌았는데, 던컨이 양성애자이며, 에이미가 외도를 하기 전부터 그의 대학 룸메이트(남자다)와 불륜관계였다는 것이다. [26]
파커의 경우를 생각하며 '설마?'했던 팬들에게 잠깐이나마 동정심을 유발하였으나.......


1년만에 더 빵빵한(?)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노인네가 성격도 참 급하네
----
  • [1] 샤킬오닐과 공동수상
  • [2] 99년의 MVP가 아니라 98년의 MVP다. 99년은 파업으로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았다.
  • [3] 13-14시즌, 우승에 한번 더 성공한 이후 래리 버드까지 넘어섰단 평이 지배적이다. 그뒤론 역시나 르브론 제임스가 남은 커리어를 질주하며 바짝 뒤쫓는중
  • [4] 샤킬 오닐이 한 인터뷰에서 지어준 것이다. 최초에는 'The Big Fundamental' 이었으나, ESPN의 리포터가 던컨과의 인터뷰에서 'Mr. Fundamental'이라고 호칭하면서 굳어진 것임
  • [5] 칼 말론이 우승 1번만 했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우승이 없기 때문에 약간 밑으로 쳐준다. 케빈 가넷이나 더크 노비츠키도 우승 횟수가 모자르고.
  • [6] 르브론 제임스는 오직 MVP 숫자만 더 앞설뿐 조차 반지 개수 및 파이널 MVP 숫자가 떨어진다. 물론 개인 성적은 아직 르브론이 전성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르브론쪽이 우위에 있다.
  • [7] 보통 라이벌을 꼽으라면 전성기가 비슷했고 같은 21번인 빅 티켓 케빈 가넷을 거론하곤 하지만 중요한 무대에서 만난 일은 별로 없고, 오히려 같은 디비전인 텍사스 지역 라이벌 댈러스 매버릭스더크 노비츠키와 지겹도록 많이 상대했다. 심지어 201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까지 만났다.
  • [8]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미국 대표팀으로 선발되었으나 마누 지노빌리의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면서 동메달에 그쳤다.
  • [9] 이 양반은 19시즌 동안 커리어스탯이 25득점 10리바운드다.
  • [10] 기량에 비해 스탯이 좋게 나온다는 논란이 있었던 라이벌 케빈 가넷은 보스턴 셀틱스 이적 후 득점이 급전직하하면서 20-10이 던컨보다 더 빨리 깨졌다. 나이먹고도 출장시간이나 득점-리바운드에 큰 변화가 없는 선수는 더크 노비츠키 정도.
  • [11] 데이비드 로빈슨은 던컨 데뷔와 더불어 부상 이후 보조자 역할에 그쳤지만, 당장 부상 직전인 96년까지만 해도 득점랭킹 5위, 리바운드 2위에 MVP셰어와 윈셰어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초특급 스타 플레이어였다. 이런 클래스 있는 빅맨이 보조자 역할을 거리낌없이 맡아주니 루키에게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 [12] 현재 스퍼스의 공격은 전성기 새크라맨토의 모션오펜스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 [13] 션 엘리엇, 에이버리 존슨, 조지 거빈, 데이비드 로빈슨.
  • [14] 던컨의 발목부상 이후로 이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비에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망할 아디다스 던잉여의 발목을 돌려줘
  • [15] 우스갯소리로 스퍼스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던컨이 나와서 그냥 빈둥빈둥 거리는것만 보였는데, '경기 끝나고 나니까 트리플 더블을 했더라', '30-20찍고 벤치에서 놀고 있더라'라며 경기 다운받아서 다시 살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붙은 별명이 던잉여.
  • [16] 라쇼 네스테로비치, 나즈 모하메드, 티아고 스플리터등이 해당된다.
  • [17] 로버트 오리,갓보너신맷 보너,보리스 디아우등이 해당된다.
  • [18] 만약 그랬다면 당시 세컨드팀 센터 벤 월러스가 서드로 밀리고 서드팀 센터 야오밍이 탈락했을 것이다.
  • [19] 참고로 스턴 총재가 선수들은 앞으로 경기장 출퇴근 등 공식 석상에서 정장만 입어야 한다는 강력한 드레스 코드를 제정했을 때 답사마와 함께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선수가 던컨이다(...)
  • [20] 션 엘리엇. 스퍼스의 영구결번 선수 중 하나로 신장 이식수술을 받고도 필드로 복귀한 선수. 풋풋하던 입단 2년차 던컨과 로빈슨과 함께 98-99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 [21] 심판인 일명 조빡빡 조 크로포드가 스퍼스 선수의 반칙을 지적했는데, 던컨이 벤치에서 이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자 이를 본 크로포드가 던컨이 자신을 비웃었다고 판단해 던컨을 퇴장시킨 황당한 사건이다(...) 팀 던컨도 이 사건으로 벌금을 물었으며, 조 크로포드는 이 경기 이후 NBA 사무국으로부터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크로포드는 NBA가 요구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거치고 약 5개월 후에 복직하게 된다. 참고로 조 크로포드는 터무니없는 테크니컬 파울을 자주 불러서 경기의 흐름을 끊어먹는 것으로 악명높은 심판이다.
  • [22] 더 웃긴건 이 경기에서 또 벤치에 앉아있다가 테크니컬 파울 먹었다.
  • [23] 리그 사무국에서는 해당 사유에 대해서 경고를 먹였다. 원래는 던컨이 제일 먼저는 아니고 로버트 호리를 먼저 DNP-OLD로 했던 건데 계속하니 사무국에서 경고한 것. 감독인 포포비치 曰 "농담을 모른다"고....
  • [24] 사실은 벤치에서 쉬는 도중 수건으로 팔을 닦다기 피가 묻어 나와서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는 장면이다. 슬램덩크 보면 알겠지만 경기중에 피나면 지혈할때까지 벤치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 [25] 높아져 가는 샐러리 기존 브루스 보웬, 브렌트 베리, 마이클 핀리 등의 노쇠화하면서 폼이 떨어졌지만 네임 벨류를 영입하진 못했다.
  • [26] http://www.hngn.com/articles/10405/20130819/tim-duncan-divorce-rumors-secret-gay-relationship-caused-wife-amy.htm 사실 두 사람 모두 이혼 사유에 대해는 입을 다물었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니 억측은 자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