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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2세

last modified: 2014-08-31 10:27:34 Contributors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유스티누스 2세 티베리우스 2세 마우리키우스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라틴어: 티베리우스 2세 콘스탄티누스
그리스어: 티베리오스 2세 콘스탄디노스

생 540 경 ~ 몰 582, 재위 574 ~ 582.

전임 황제 유스티누스 2세 치하에서 황제 친위대인 엑스쿠비토레스 병단의 코메스였다. 574년에 잇따른 외교적 실패와 군사적 실패에 절망한 유스티누스 2세가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더 이상 제국을 통치할 수 없게 되자 유스티누스 2세의 황후 소피아와 공동 섭정을 맡다가, 578년에 유스티누스 2세가 죽자 즉위하였다.

전임 황제들인 유스티누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유스티누스 2세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3~4세기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마찬가지로 일리리아 출신의 황제였다.

다만 이름이 하필이면 그 때까진 이미지가 좋지 못했던 티베리우스와 같은 게 영 부담이 되었는지, 즉위하자마자 이름 뒤에 콘스탄티누스를 붙여서 '티베리우스 콘스탄티누스'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티베리우스란 이름이 워낙 인상이 깊었던 탓에 당대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그를 그냥 티베리우스 혹은 티베리우스 2세로만 부른다.

유스티누스 2세 때 재정 상황이 극도로 나빴다지만 여러모로 현명한 운영을 하여 최악의 파산 상황에 빠지는 것만은 막았으며 그 상황에서도 꾸준히 비축금 예산까지 편성하는 운영의 묘를 보였다.

다만 유스티누스 2세의 실수로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은 여전히 부담이었으며, 페르시아에게 여러 차례 큰 타격을 주어 조기 평화 협상을 벌이려 하였으나 페르시아의 당시 왕중왕 호르미즈드 4세는 국내에 대한 체면 문제와 자존심 때문에, 전쟁을 끝내지 않는 옹고집을 보여주며 양국 모두의 재정과 군사를 고갈시키는 치킨 게임을 벌이려 하였다.[1]

어떤 의미에서는 약 칠십 년 후 벌어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벌일 양패구상의 전조였으며 티베리우스 2세는 이 문제를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병사하고 만다. 그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재정 파탄과 대 페르시아 평화 조약의 문제는, 그의 사위이자 후임 황제로 제위에 오른 마우리키우스가 인수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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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로마측이 입은 막심한 피해가 강조되지만 실인즉슨 사산조 측도 계속되는 군사와 재정의 고갈로 큰 고통을 당했으며, 사산조 측이 동쪽 국경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취약해진 것도 실은 이 원인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