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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last modified: 2015-09-08 18:00:35 Contributors

Trojan War

그리스 신화에서 들과 영웅들이 개입한, 도시국가 트로이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아카이아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쟁.
그리고 3000년 넘도록 소아시아의 두 국가간 관계를 악화일로로 걷게 만든 단초.[1][2][3]

Contents

1. 발단
2. 경과
3. 트로이 전쟁 관련 인물
4. 역사상의 트로이 전쟁
5. 대중문화 속의 트로이 전쟁
6. 관련 항목

1. 발단

그 발단은 올림포스의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누가 황금사과를 가질 것인가로 다툰데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나중에 아킬레우스를 낳는 테티스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자신을 초청하지 않은데 격분하여 던진 떡밥이었는데, 하필 황금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있는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4] 결국 세 여신들 사이에 싸움이 붙어 결말을 내기 위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부탁하게 된다. 그런데 여신들이 파리스에게 샤바샤바(…)해서 헤라는 최고의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셋 중 제일 쓸모없는위대한 지혜를,[5]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했다.

그런데 트로이가 망조가 들려고 했었는지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조건을 받아들여서 아프로디테를 승자로 선언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파리스에게 데려다 주지만 이게 하필이면 유부녀인 스파르타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라(…) 아내를 뺏겨 격분한 메넬라오스왕[6]은 자기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과 함께 수많은 영웅들,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쳐들어가게 된다.

2. 경과

이에 따라 올림포스의 신들은 각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쪽편이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 그리스 진영
    • 헤라 : 파리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서 돌아섰다.
    • 아테나 : 헤라와 같은 이유로 파리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서 돌아섰다.
    • 포세이돈 : 트로이의 선대왕 라오메돈에게 원한이 있었다.
    • 헤파이스토스 : 테티스와 친분이 있어서 그리스 쪽에 가까웠다. 게다가 어머니 헤라가 그리스 편이기도 하고.
    • 테티스 : 그리스의 장수 아킬레우스가 테티스의 아들이다.

  • 트로이 진영
    • 아프로디테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추가로 트로이의 장수 아이네이아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 아레스 : 아프로디테의 애인이라서. 가장 이유가 단순하다(...).
    • 아폴론 : 헥토르를 아끼는데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사제를 모욕한 일로 트로이 편을 들었다. 또한 자신의 옛 애인이었던 카산드라가 트로이의 공주이기도 해서.
    • 아르테미스 : 아폴론이 트로이 편인 것 + 그리스 군이 출정 전에 그녀에게 바쳐진 사슴을 죽인 것[7] 때문에 트로이 편을 들었다.
    • 헤르메스

  • 중립
    • 하데스 : 사람이 죽어나가면 죽어나갈수록 이득을 보는 하데스만은 유일하게 중립을 지켰다.
    • 제우스 : 트로이의 장수 사르페돈이 제우스의 아들이다...만! 제우스가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최고의 주신임이라서 한 편을 들면 그 다른 한 편은 망했어요(...)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기도로 잠깐 트로이를 도와줬지만 아킬레우스가 돌아온 뒤로 다시 중립에 섰다.

하지만 트로이도 만만치는 않았는데, 강력한 성벽을 두른데다가 프리아모스 왕의 장남인 명장 헥토르, 헥토르의 사촌 아이네이아스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무려 10년동안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우다 헥토르가 죽고 만다.

다른 설에는 트로이 부근에 쳐들어가긴 했지만 곧바로 트로이로 쳐들어가진 않고 주변의 국가들부터 약탈하고 박살내고나니 9년째였더라 하는 말도 있다.

여하간 10년이 넘게 결판이 나지 않자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성 앞에 남겨두고 군대를 물렸다. 트로이인들은 거대한 목마를 그리스의 화해선물로 착각하고 성안으로 들였다. 라오콘이 목마를 성안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이걸로 포세이돈을 자극해 바다뱀에게 아들 둘과 함께 죽고 만다. 결국 묵살당했고 카산드라 또한 목마를 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앞의 예언자님이 죽은 것 때문인지 설득력이 없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트로이인들이 승리의 잔치를 벌여 취해있던 사이, 목마 안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오딧세우스와 병사들은 트로이인들이 방심한 틈에 목마에서 나와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헬레네를 구해냈다.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는 그리스 작가들의 영원한 원천이 되었는데 호메로스일리아스오디세이아가 가장 대표적인 트로이 전쟁을 다룬 서사시다. 의외로 이 외에 트로이 전쟁에 관한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되려 그 전후의 사건이 메인이 되는 일이 잦다. 스케일이 지나치게 큰 것이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만 고대 이후 중세에는 트로이 전쟁사를 다룬 책도 여러권 나왔다. 물론 거의 역사서 가깝게 지어졌지만. 또 중세에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영웅에 대한 이야기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것도 특징.

특이한건 단테의 신곡에서 트로이 측의 영웅들은 파리스만 빼고 다들 림보에 있는데 비해(그래봐야 아이네이아스와 헥토르뿐이지만), 그리스 측 영웅들은 죄다 지옥에 떨어졌다. 이건 단테가 이탈리아인이라 로마쪽을 더 옹호한것도 있다.

근데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보면 상당히 막장인데...여기선 헬레네가 트로이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해서 도망갔는데 잠시 쉬려 이집트에 도달하자, 파리스에게 불만이 있던 하인들이 도망치고 그 근방의 군주에게 그 사실을 까발렸다. 파리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군주에게로 갔다가 헬레네와 보물들을 다 뺏기고 트로이로 쫓겨났는데...메넬라오스는 이 사실을 몰라서 트로이로 가서 헬레네를 내놓으라고 했고 파리스가 이집트에서 헬레네를 뺏겼다는 말을 안 믿어서 10년 걸려 트로이를 다 박살냈는데 헬레네가 없어서(…) 결국 이집트로 가 헬레네를 되찾아갔다고 한다.(…) 헤로도투스가 은근히 일리아드를 까는 점이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막장스러운 이야기다.

참고로 그리스 영웅들이 10년간 전쟁을 치뤄서 함락한 트로이는 헤라클레스가 혼자서 단숨에 박살낸 전적이 있다. 이게 가능했던 게 헤라클레스가 먼치킨이었던 점(…)도 있겠으나, 우연히 포세이돈트로이를 공격하는 시기가 겹쳤던 점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는 말고 로마 신화에 따르면 로마의 설립자들은 멸망한 트로이 성의 후예. 원래는 로물루스/레무스 신화가 로마 신화에서의 로마의 시초였지만 로마가 그리스를 먹고 나서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이고 나니 자기들의 건국 신화가 너무 초라해 보여서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신화를 끌어와서 땜빵한 거라고(...) 다른 설에 따르면 로물루스/레무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직계로 내려오는 후손인 줄 알았는데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이고 나서 보니까 트로이 전쟁은 로물루스/레무스 시대에서 한참 오래 전이라 이것과 로물루스/레무스 신화를 잇기 위해 장장 600년에 달하는 신화를 나중에 따로 끼워넣었다는 설도 있다. 이 땜빵 신화(...)의 맨 처음 조상이 바로 베누스의 아들 아이네아스.

아주 간략하게 만든 트로이 전쟁 이야기(...)

4. 역사상의 트로이 전쟁

많은 이들이 트로이를 호메로스의 서사시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로 여겼지만 호메로스에 감명을 받고 트로이를 찾아내겠다고 결심한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가 1870년에 발굴되었다.[8] 슐리만은 자신이 발굴한 제2층의 트로이를 트로이 전쟁시대의 트로이로 생각했으며 이곳에서 발견한 황금유물들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부르며 빼돌리기까지 했지만 후대 고고학자들의 발굴 조사결과 슐리만의 착각이라는게 밝혀졌다.

트로이 전쟁이 과연 실제의 전쟁이었는지 역사학자들은 의구심을 품었지만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유적에서 발견된 대량의 외교문서를 통해서 트로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의 외교문서에 의하면 월루사에 미케네인들이 쳐들어 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학자들 중에는 히타이트 제국의 식민지인 월루사가 곧 일리오스=트로이로 비정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케네인들이 쳐들어와 약탈하고 불태운 것이 트로이 전쟁의 실체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일어난 전쟁이라는 분석도 있다.[9] 트로이는 입지적으로 험난한 르다넬스 해협을 피해 소아시아로수송이 가능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런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카이아인들이 쳐들어와 트로이를 정복한 것이 트로이 전쟁의 실체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의 실제 가능성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앞서의 주장들을 미뤄본다면 트로이 전쟁의 실체는 미케네인들의 이나 소규모 정복전쟁이 호메로스에 의해서 극적인 드라마로 각색된 것이라고 보는게 타당한 설명일 듯하다. 미케네 인의 루사 침공은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그런 사건이 존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지만, 신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규모는 절대 아니었을 것 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쉽게 말하면 애들 싸움이 입소문을 타면서 집단 패싸움으로 와전된 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청동기 시대 근동의 인구나 문명 기준, 그 중에서도 비교적 약소 문명이었던 미케네 문명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전투로 기억되었을 수는 있다.

일리아드에서 나온 그리스군의 총 병력은 481척의 배로 묘사되는데, 오디세이아에서 나오는 최대의 배는 나우시카 공주의 아버지가 오디세우스를 태워준 52명의 선원이 모는 배였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측의 병력은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서도 '2만 4천명'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히타이트이집트가 싸운 청동기 시대 최대의 전투인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 측이 동원한 병력과 비슷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미케네의 국력은 히타이트보다 많이 약했을 것이므로 이 과장된 숫자조차도 실제보다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마저도 여자 때문에 전쟁난 걸 못마땅해 했으며 투키디데스의 경우 경제활동 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졌다는 설을 내세웠다. 거기다가 트로이가 함락된 원인도 그리스인들의 공격 때문에 성벽이 무너진 건지 지진이 일어난 건지도 불분명하다.

여기에는 고고학적인 이유도 있다. 트로이는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었는데, 그 파괴의 흔적들 중 10년에 걸친 대전쟁에 의한 철저한 파괴의 흔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다.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여러 차례의 파괴들 중 어느 것이 트로이 전쟁의 흔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더구나 히타이트의 문서에는 윌루시아(히타이트인들이 트로이를 부르던 이름)에 대한 기록이 미케네 문명이 무너진 이후에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다.[10] 때문에 만일 미케네인들이 윌루사를 일시적으로 함락하거나 약탈하는데 성공했다 해도, 이 지역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윌루사의 배후에 있는 강대한 히타이트 제국의 영향력을 몰아내는 것은 어려웠을 듯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트로이 전쟁은 2차례 있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것은 2번째 트로이 전쟁이고, 헤라클레스가 트로이를 함락했다는 전설이 신화상으로는 그보다 한 세대 앞의 사건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헤라클레스가 트로이를 공격해서 함락시켰을 때 트로이는 이미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의 괴물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트로이 유적의 흔적 중에도 이러한 신화상의 설명과 잘 들어맞는 듯한 부분이 있는데, 해일로 도시가 파괴되고 약탈당했다가 복원되고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군사적으로 파괴된 (그리고 다시 복원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흔적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공격과 트로이 전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 중 두 번째의 파괴의 흔적은 파괴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첫 번째의, 해일로 인한 파괴보다 오히려 정도가 약했고, 파괴 이후에도 더 빨리 복원되었다는 점 때문에 정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5. 대중문화 속의 트로이 전쟁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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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어디까지나 지역만 보고 말하는 거지, 터키의 조상인 튀르크 (돌궐)족은 한참 후에야 지금의 터키땅에 오므로 진지하게 '그리스vs터키'라 볼 수는 없다. 고대까지만 해도 아나톨리아 반도에 튀르크족 따윈 없었으며, 이들이 지금의 터키지역 근처로 오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천 년쯤은 지나 셀주크 제국때 부터였다. 지금의 터키땅을 튀르크인들이 가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오스만 제국이 중세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을 밀어버린 이후부터.
  • [2] 사실 트로이 전쟁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조사 등으로 그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신화 상의 전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고, 트로이 전쟁 이후 바다 민족의 대규모 침략 등으로 지중해 구성원 자체가 갈려버리는 등의 암흑기가 도래하여 사실상 고대 그리스던 트로이던 민족성이 희석되어 버렸으므로, 지금 와서 현대의 그리스터키에 대입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 [3]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달리 권력층이 이 전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곤 했다. 일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후 메메드 2세가 나는 트로이의 복수를 했다고 선언한 것. 이것도 알고보면 참 어이없는 소리인데, 비잔티움 제국은 자신들을 로마 제국의 정통 후예로 여겼고, 로마는 자신들을 트로이의 생존자인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라고 여겼다 누가 누구 복수를 한다는거야? 더 재미있는 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은 신성로마제국의 후신이라고 하기엔 신성로마제국에게 미안하지만나치 독일의 탄생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소위 '게르만 민족주의' 열풍에 힘입어 스와스티카 무늬를 아리안 민족의 상징으로 간주하여 이를 전파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복수로 반복되는 것인가...
  • [4] 신성한 결혼식을 망치지 않기 위해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 [5] 다른 버전으로 군공을 약속했다는 말도 있다.
  • [6] 단순히 NTR당해서만은 아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 결혼했기에 스파르타의 왕이 된건데, 헬레네가 파리스를 따라가 버결혼하면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헬레네를 되찾아와야 했다.
  • [7] 이 때문에 그리스 쪽에서는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바치는 것으로 무마하려 했고, 전승에 따라 정말 죽었거나,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네이아를 살려놓고 자신의 사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는 이후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이는 동기가 된다.
  • [8] 이는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로이 항목 참조
  • [9] 투키디데스가 처음 제기했었다.
  • [10] 앞서 주장처럼 트로이가 지역 통상에 요긴한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트로이가 몇 번 파괴된 뒤에 버려지지 않고 연이어 재건되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