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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전쟁

last modified: 2015-03-23 12:58:27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1.1. 배경
1.2. 발단
1.3. 전개
1.4. 절정
1.5. 결말
2. 여담

1. 개요

1986~1987년에 걸쳐 일어난 차드-리비아 간의 전쟁으로 정식 명칭이 도요타 전쟁은 아니다.

1.1. 배경

배경은 사실 간단하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간의 국경선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서구 열강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이 지도에 자 대고 줄 그은 정도라는 것이다. 즉 실제 독립되어 그어져야 할 각국의 국경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1]

이처럼 불확실한 국경 문제는 곳곳에서 문제가 일어났고, 리비아차드 국경도 그 중의 하나였다. 특히 쿠데타 이후 리비아의 정권을 장악한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범아랍주의를 제창하며 주변국에 온갖 간섭을 하곤 했다. 더군다나 차드 북부지방은 우라늄이 많아서 짭짤한 돈줄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차드는 이런 리비아의 행태에 불만이 꽤 많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파탄국가 중에서도 톱클래스를 차지하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1.2. 발단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리는 없었다. 1983년, 차드에서 내전이 종식되고 신정부가 수립되며 리비아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카다피는 신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드 북부를 침공하여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거의 절대적인 종주국 노릇을 하던 프랑스가 전투기를 동원해 두들겨패면서[2] 남하는 중단되었고, 리비아차드 강점은 북위 16도선에 그치고 말았다.


차드라는 글자 위의 위도선이 북위 16도선이다. 차드의 반절쯤을 떼먹은 셈이니 사실 많이 내려간거다.

1.3. 전개

그리고 1986년, 리비아차드 점령지에서 대대적인 무력봉기가 일어나자 카다피는 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차드군은 점령지역에 대한 수복을 위해 군대를 파병하며 전쟁이 발발했다.
그런데…….


차드 군이 주력 부대를 이런 식으로 굴려서 토요타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리비아군의 압도적 우위였다. 리비아군은 소련에서 수입한 전차장갑차도 매우 많았으며, 병력도 훨씬 많았다. 반면 차드군은 제대로 된 전차와 장갑차도 없었고, 보병 중심으로 토요타 랜드 크루저 픽업트럭에 태워서 돌아다녀야 하는 판국이니 차드군은 패배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1.4. 절정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차드군은 리비아군의 강력한 기갑전력에 맞서기 위해 테크니컬을 동원한 치고 빠지기 전술을 선택했는데, 이게 제대로 먹힌 것. 리비아군은 당시 각 지역의 점령지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차드군은 이 점을 이용해서 격멸-기동-격멸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게다가 제공권이 프랑스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상태라 리비아군은 적이 움직임을 파악할 방법조차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드군은 신출귀몰하게 랜드 크루저를 타고 사막을 종횡무진하며 리비아군을 각지에서 격파했다. 차량탑승형 기동 게릴라들은 리비아 기갑부대를 강습하여 대전차미사일과 로켓포를 날려 궤멸시킨 뒤 다시 기동하기를 반복했는데, 소규모로 분산된 리비아군은 곳곳에서 와해되어 분산 격파당하고 보급로가 두절되었으며, 막강하다는 기갑부대는 트럭을 타고 다니는 차드군 보병의 대전차화기에 파괴당하거나 패닉에 빠진 리비아군이 버리고 도망가면서 순식간에 전멸당했다.

1987년에는 아예 차드군이 총공세로 전환하여 트럭을 타고 국경을 넘더니, 리비아 남부의 공군기지 한 곳을 기습해 수비중이던 1개 여단을 제압하고, 기지에 있던 모든 전투기를 파괴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리비아군은 패배한 것이었다.

1987년 4월에는 11대의 L-39 제트훈련기와 9대의 SF-260, 2대의 Mi-24를 노획했고, 이렇게 노획된 항공기의 대부분은 미 공군 C-5로 차드의 수도 자메나로 옮겨진 뒤 Mi-24와 다른 곳에서 노획된 상당한 수의 구소련제 대전차미사일들은 미국과 프랑스로 보내졌다. L-39 제트훈련기 10대는 이집트가 가져가서 이집트 공군이 운용중이다.

각종 테러 사건을 후원한 리비아와 적성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 또한 이 전쟁을 매우 관심있게 주시했으며 1988년 6월에 마운트 호프 3(Mount Hope III) 작전을 실시해 160특수작전항공연대가 투입되어 차드에 유기된 리비아군의 Mi-24 공격헬기를 입수하고 구조와 성능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1.5. 결말

이쯤되니 리비아도 더 전쟁했다간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고, 차드도 잃어버린 영토를 다 회복하고 큰 승리를 거두어 만족한 데다 리비아군이 재반격에 나설 경우에는 중과부적으로 패할 가능성이 높아 극단적으로 자극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양측은 1987년 9월에 휴전협정에 조인했다. 물론 카다피가 김정은처럼 절대권력을 확보한 상태였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김정은 같은 케이스가 특이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이 전쟁으로 리비아는 무려 10,000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1,000여 대에 달하는 전차 및 장갑차. 기타 차량. 그리고 30여 기의 항공기를 잃었다. 이 전쟁에 투입된 리비아군이 약 90,000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손실률 10% 이상. 물론 차드군의 사상자는 1,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테크니컬 특성상 한 번 맞으면 끝이지만 리비아군이 워낙 오합지졸이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패전책임을 물어 군부인사들을 숙청하고 내부독재를 더 강화했으며, 전쟁에 아무런 관련이 없던 토요타는 졸지에 피와 죽음이 넘치는 전쟁때문에 광고효과로 땡잡았다고 한다.

물론 카다피가 차드 침공을 단념했다고 해서 보복하는 것까지 잊지는 않았다. 나중에 차드와 갈등관계인 투아레그족을 지원했는데, 이번에는 이들이 차드군을 상대로 테크니컬 차량을 타고 정반대로 차드군을 골탕먹인 것.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사하라의 터줏대감인 투아레그족에 무기와 차량을 지원하니 차드군 이상으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들 투아레그족은 현재도 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카다피는 지옥행 열차를 탄 지 꽤 됐지만 대신 북수단의 독재자 알 바시르가 차드를 교란하기 위해 투아레그족에게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1년, 리비아 내전에서도 시민군이 트럭을 동원해 카다피군에 맞섰으며 서방, 특히 미국이 방공망을 제공하고 카다피군을 괴롭혔고 카다피는 시민군에게 박살나기를 반복하다가 2011년 가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서방이 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카다피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에 나서서 키레나이카 재정복 목전에 있었다.

2. 여담

참고로 성능 좋은 트럭에 소규모 인원이 탑승하여 종횡무진하며 적진을 들쑤셔놓는 전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SAS가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전법이다. 미군 특수부대도 이라크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 리비아-차드 전쟁에서 양측이 사용한 병력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이 전쟁 이후 트럭이 척박한 환경과 각종 기관총 및 대포의 반동에도 견고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들과 아랍권 테러리스트들도 트럭을 즐겨 쓰게 되었고 심지어 미군도 아프간의 사막지역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youtube(8GgrGvqYUjY)
이에 대한 도요타 광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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