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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

last modified: 2015-03-07 11:50:47 Contributors

1879년 2월부터 1883년 1월까지 약 4년간에 걸쳐 칠레페루·볼리비아 동맹군이 맞서 싸운 남아메리카의 전쟁이다. 남동태평양 일대에서 났기에 태평양 전쟁이라 불렀는데, 60년 뒤 태평양을 무대로 하는 훨씬 더 큰 전쟁이 일어나면서, 태평양 전쟁하면 다들 제2차 세계대전만 생각한다.(…) 참고로 이 전쟁의 영문명은 War of the Parcific이고,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Pacific War이다.태평양의 전쟁 vs 태.평.양.전.쟁.(...) 그냥 문구만 뒤바꾼 듯하지만 신경쓰지 말자.

Contents

1. 배경
2. 전개
3. 결과

1. 배경

나폴레옹 전쟁 뒤 혼란에 빠진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식민제국이 일제히 독립하며 신생독립국가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남아메리카 정세는 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제대로인 중앙집권국가 형성도 어려웠고, 그 와중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관계로 국가간 영토분쟁도 빈발했다. 즉,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 지대인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문제였다. 이곳은 칠레-볼리비아간 합의에 따라 볼리비아 영토였고, 구아노, 같은 중요 자원들이 많은 황금어장이자 볼리비아의 태평양 출구였다. 그러나 당시 남미 국가들이 다 그렇듯 모자란 인구로 개발이 어려웠고, 볼리비아는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칠레를 끌어들여, 1874년에 자국 내 칠레인 및 칠레 기업에 향후 25년간 무과세 혜택의 제공을 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876년 볼리비아 내부의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경제혼란으로 돈줄이 궁하던 볼리비아는 1878년, 안토파가스타 주의 칠레인 및 기업들에게 수출세를 부과했다. 명백한 조약 위반이었고, 조약에 의거 칠레인들이 세금납부를 거부하자 볼리비아 정부는 이들 자산에 압류조치를 폈다.

뒤이어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와 수도를 잇는 철도를 개통, 안토파가스타 영유권을 확립하려 들자 칠레는 격분했다. 법적으로는 볼리비아 영토지만 사실상 안토파가스타 개발은 다 칠레인이 했는데, 볼리비아가 개발만 다 시켜놓고 그대로 뺏어먹으려 한다는 인식이 커서였다. 더군다나 이 때 칠레도 경제가 나빠서 더욱 민감했다.

여기에 페루도 자국 안에서 구아노 광산을 개발하던 칠레인들의 자산을 압류하여, 칠레와 긴장관계였다. 끝내 페루와 볼리비아는 칠레에 맞서는 비밀 군사동맹을 체결했고, 칠레는 1879년 2월 14일 군을 파병해 안토파가스타 주를 강점했다.

2. 전개

페루와 볼리비아는 말 그대로 개발렸다.

우선 페루 해군은 칠레와의 안가모스(Angamos) 해전(1879. 10. 8)에서 참패, 해군 사령관이 전사하고 주력함을 뺏겨 제해권을 잃었다. 장갑함을 중심으로 한 칠레 해군은 전력을 강화하여 단번에 제해권을 장악, 전쟁의 승기를 굳혔다.

제해권을 장악한 칠레군은 본격적으로 북진을 개시했다. 볼리비아-페루 동맹군은 칠레군과의 연이은 지상전에서 모조리 졌다. 1880년 칠레는 사실상 안토파가스타 주 전역에 페루령 타라파가(Tarapach)와 아리카(Arica) 두 주를 석권했고, 볼리비아군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본토로 쫓겨나며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럼에도 페루가 항복할 조짐이 없자, 칠레는 지상군을 긁어모아 페루 본토를 침공했다. 1881년 1월 15일, 페루는 수도 로 가는 길목이자 최후방위선인 미라홀로레스(Miraflores)에 패잔병과 예비군, 갓 징집한 신병에 용병까지 긁어모아 약 1만 명을 배치해 결사항전에 나섰으나 칠레군에게 끝내 패퇴하여 3천의 병사만 잃고 나머지는 와해했다. 끝내 1월 17일 수도 리마가 칠레군의 손에 떨어졌고, 뒤이어 페루 해군의 잔존함정이 칠레 해군에 잡혀 모조리 전멸하면서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페루군은 각지에서 게릴라식으로 항전했고, 볼리비아도 전쟁을 멈추지 않아 산발적인 교전을 이후 2년여간 이었다. 물론 전쟁을 하면 할수록 페루와 볼리비아가 불리했고, 끝내 1883년 교전당사국들은 종전에 합의했다.

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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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는 볼리비아로부터 안토파가스타 주를, 페루로부터 타라파가·아리카·타크나(Tacna) 3주를 얻었다. 순식간에 칠레의 북부 국경이 남위 18도까지 치솟았다. 전후 이들 지역의 막대한 자원을 장악한 칠레는 개전 이전 1,500만 페소였던 연간 세수가 종전 뒤 1년이 지난 1885년에는 6,400만 페소로 4배 이상 껑충 뛸 만큼 경제적인 성장과 부의 획득을 이뤘다.

이후 칠레는 1929년 페루에 북부 아리카, 타크나 2개 주를 돌려주고 대신 타라파카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볼리비아와는 아직도 안토파가스타 주의 영유권 분쟁이 지속 중이다.

볼리비아로서는 안토파가스타 실함은 뼈아프니, 단순히 자원만이 아니라 이 전쟁에서 바다로의 출구를 잃어 내륙국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 주의 전부가 아니어도 좋으니 바다로의 출구를 일부만이라도 돌려줄 것을 요구하나 칠레는 '그냥 우리 땅 지나. 대신 무관세혜택 ㅇㅇ'로 일관한다. 볼리비아의 바다에 건 의지는 티티카카호라는 호수에서 경비정 1~2척 운용하며 해군이라고 주장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이 전쟁과 전혀 무관해 보이던 아르헨티나도 이득을 챙겼다. 아르헨티나는 칠레와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을 놓고 영유권 다툼을 했는데, 칠레가 전쟁의 와중에 남부 마푸체족과도 전쟁을 시작하자 참전 위협을 했다. 아르헨티나는 50년 전 남미 최강 브라질과도 500일 전쟁을 벌여 이긴 전례가 있는, 남미의 3대 전통 강대국[1]이었다. 끝내 동시에 3개 방면에서 전쟁하면 무리라고 판단한 칠레가 얻어도 그다지 득이 없어 보이는 파타고니아 지방의 아르헨티나 영유를 인정했다.

이 전쟁 뒤 칠레는 남미의 강대국이자 전통적인 해군국으로 성장해 현재도 대표적인 해군국으로 인정받고, 여전히 페루 및 볼리비아와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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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를 ABC 강대국이라 한다. 아르헨티나(Agenhtina), 브라질(Brazil), 칠레(Chile)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