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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콥

last modified: 2015-04-03 21:48:40 Contributors


이름 타이 콥 (Tyrus Raymond "Ty" Cobb)
생년월일 1886년 12월 18일~1961년 7월 17일
국적 미국
출신지 조지아주, 내로우
포지션 중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05년 8월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05~1926)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1927~1928)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득표율 98.23%(1회)

191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타이 콥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리스 스피커
(보스턴 레드삭스)

미국 메이저리그의 레전드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최초로 헌액된 5명 가운데 한명이다.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최고의 실력과 최악의 인성을 겸비한 선수라 할 수 있겠다.

통산타율 .367[1] 통산안타 4191개[2]의 대타자.
더불어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8관왕을 한 타자.
1909년 8관왕을 기록했는데 내용이...
타율 0.377 타점 107 타점
출루율 0.431 득점 116득점
장타율 0.571 도루 76도루
안타 216안타 홈런 9개[3]

타격왕은 통산 12번으로 역시 메이저리그 전체 1위. 게다가 1910년의 타이틀이 70년 뒤에 냅 라조이에게 돌아갔는데 타이 콥 입장에서 그거 안뺏겼으면 통산 12회에 9년연속 타격왕을 차지했을 것이다[4]. 하지만 공식적인 타격왕은 타이콥으로 12번의 타격왕이 맞는 기록

4할타율 세번에 트리플 크라운도 한번 해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최고 레전드이며 데뷔시즌인 1905년(당시 18세)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316 이하로 타율이 떨어지지 않은 대타자이다.

19세이던 두번째 시즌과 은퇴시즌을 제외하고 20년 연속 .334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발도 빨라서 통산 도루 3위인 897개통산 도루 성공률도 80%. 은퇴시즌의 타율도 .323으로 웬만한 타자의 커리어 하이 수준. 그렇다고 선구안이 나쁜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데드볼 시기에 뛰었음에도 통산 출루율이 0.433에 24시즌 동안 뛰면서 한시즌에 삼진을 50개 이상 당한게 1907년밖에 없다. 그외 시즌 삼진은 전부다 50개 미만으로 통산 BB/K가 1.8이 넘는다. 뭐냐 이 타자는...
거기다가 중견수로 수비도 준수해서 24시즌 뛰면서 기록한 어시스트가 392개로 통산 2위의 기록.

다만, 포스트시즌 성적은 페넌트레이스 성적에 비해 안 좋은데 디트로이트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907~1909년 3년 동안의 포스트시즌 타율은 0.262밖에 안 된다. 참고로 1907~1909년동안 정규 시즌 타율은 0.350-0.324-0.377순. 아무리 날라다니는 괴물이었어도 나이가 어렸던 것 때문인지 정규시즌 성적을 생각하면 굉장히 저조한 성적. 소속 팀들도 우승 등정에 매번 실패해서 정작 우승 반지는 껴보질 못했다. 본인도 뭔가 조짐을 느꼈는지, 후에 다른 팀의 팔 길쭉한 순둥이 신인을 보고는 프런트를 찾아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저 녀석 데려와야 된다"고 강변했으나 씹힌 적이 있다. (차라리 댁이 새너터스로 이적하지 그랬어...)

정말 엄청난 성적과 더불어 유명한 것은 그의 성격으로 좋게 말하면 승부근성이 너무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강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인성이 쓰레기라는 평을 받은 선수로 슬라이딩 할 때 발목을 노리는 수준을 넘어서 그냥 대놓고 무릎을 노리고 이단 옆차기를 하는건 예사였다.


찬호팍?
슬라이딩인지 옆차기인지 모를 동작...스크류 스핀 슬라이딩?

또, 1912년에는 뉴욕 하이랜더스와의 경기에서 자기를 야유하는(정확히는 반 검둥이라고 놀리는) 관중을 자기 분이 풀릴때까지 두들겨 패서 영구 출장정지 처분도 받았다. 끝내주는 성깔일세.[5] 그러자 디트로이트 구단이 아 우리 그럼 야구 못해 배째!!라는식으로 드러누워서 실제로 이후 경기를 동네에서 야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꾸려서 했는데 경기 결과가 24-2[6]라는 처참한 수준으로 나오자 리그가 망가질 것 같아 겁먹은 총재가 항복하고 10경기로 감형시켜주기도 했다. 역시 세상에 배째라는데는 장사없다 이 사건외에도 구장 안팎에서 여러가지 싸움을 벌였다. 거기다가 상대팀의 1루수가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2루에서 1루로 도루를 하며 다리에 2단 옆차기를 날리기도 했다.[7] 특히, 항상 날카롭게 갈아놓은 그의 스파이크는 수비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로도 유명한데 동시기에 활동한 베이브 루스를 보고 검둥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다만, 그래도 루스의 실력 자체는 인정했는지 은퇴이후 그가 본 최고의 타자를 질문 받자 베이브 루스를 말하면서 누구도 루스의 힘과 선구안의 조합을 가지기 못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승부조작 의혹까지 있다. 당시 베팅 참가 의혹은 있으나 증거가 없기에 무죄로 판명되어 팀에 복귀하고 이후 FA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이적해 2년을 더 뛰다가 은퇴한다[8]. 정말이지 적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인생. 덕분에 1961년 7월 17일 75살로 세상을 떠날 당시 그의 장례식때는 단 3명의 야구인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인성과는 별개로 야구 외적인 능력은 매우 출중해서 은퇴 이후 시작한 사업이 대성공해서 돈은 무지무지하게 벌고 안락한 말년을 즐겼다. 게다가 타이 콥이 젊을 때 사놓은 회사의 주식이 그 코카 콜라. 가난하게 살래야 가난하게 살 수 없을 정도.


은퇴당시 타이 콥이 갖고 있던 메이저리그 1위 기록은 무려 90개. 이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 생기자 당연히 처음으로 입성하여 최초의 5인중 한명이 된다. 더불어 이 시기쯤에 현대 야구 선수들은 기본기가 부족하다면서 불평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9] 비교 대상이 자기 자신이어서야 누군들 괜찮을까...

트리비아

타이 콥의 성격이 저렇게 개차반이 된 건 불우한 가정사가 큰 몫을차지한다. 타이 콥의 집안은 지역에서 나름대로 명문으로 꼽히던 집안으로 아버지인 윌리엄 허셜 콥(1863~1905)은 주의회 상원이였으며 어머니 아만다 치트우드 콥(1871~1936)은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부자의 딸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경악스럽게도 아만다와 윌리엄이 약혼할 당시 아만다 나이는 겨우 12살이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진 갈렙 치트우드는 이거 뭔가 불안하다고 반대도 했지만 콥 집안과 윌리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니 도저히 문제될 게 없어서(?) 결혼을 허락했고 그는 죽을때까지 이걸 후회했다고 한다. 참고로 타이 콥을 낳을 당시 아만다는 겨우 15살이었는데 그녀는 타이 콥에게도 그다지 자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타이 콥이 프로 데뷔(1905년 8월 30일 데뷔경기)전인 1905년 8월 8일, 아버지가 집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근데 놀라운 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둑이라고 여기고 총으로 쏴 죽였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내의 부정한 행각을 눈치 챈 타이 콥의 아버지가 외도의 현장을 급습하기 위해서 출장을 간 척 한 뒤 한밤중에 침실 창문으로 기어오르다가 아내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것.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바라며 야구선수가 되길 크게 반대하였지만 야구에 대한 진실된 열정에 마음을 돌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타이 콥의 성격은 굉장히 나쁜쪽으로 변하고 말았다. 원래 타이 콥은 자존심이 놀라우리만큼 강했고 그로인해 이기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장은 아니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타이 콥의 인성까지 변화시키고 말았고 결국 최고의 야구 실력을 가졌지만 인성은 극단을 달리던 선수가 되고 말았다. 아만다는 막대한 돈을 풀어서 겨우 몇 달만인 1906년 3월에 석방되었지만 타이 콥은 당연히 어머니를 증오했고 그녀가 죽을때까지 만나지도 않았으며 인터뷰에서 그 암캐같은 여잘 본다면 내가 죽여버릴것이라는 증오에 찬 말을 하여 기자들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재혼하였고 타이 콥과 남남으로 지냈다가 1936년에 그녀가 죽을 당시 타이 콥은 장례식에 당연히 가지 않았다.

야구선수로서의 인성은 최악이였지만 자신의 불운했던 가정사 탓인지 자신의 가정은 끔찍하게 아낀 훌륭한 가장이였다고 한다. 비록 이혼을 한번 했지만 아이들에겐 매우 자상했다고 한다. 1남 2녀와 며느리와 두 사위, 손자, 손녀 앞에서 숨을 거뒀다.

앞서 말한대로 사업가로서 역량도 뛰어나서 은퇴 후 츄잉껌과 가터벨트 등 여성용 속옷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재벌급으로 큰 부자가 되었고 가족과 유럽여행도 하고 사냥, 골프, 폴로, 낚시등을 즐겼으며 주식과 채권 거래로도 돈을 벌었다. 선수 생활 당시에 관계를 맺었던 코카콜라사의 주요 주주이기도 했으며 남긴 재산도 엄청나서 무려 1178만 달러를 남겼는데 현재 값어치론 거의 1억 달러에 달한다.그리고 병원을 지어 기증하는 등 사회 기여도 했다.

자존심이 강해서 심지어 베이브 루스까지도 자신의 아래도 뒀던 콥이지만[10] 그런 콥이 인정한 유일한 타자가 있었으니 바로 '맨발의 조 - 조 잭슨'이였다.

루스의 등장과 더불어 '라이블 시대'가 열리면서 시원한 홈런을 때리는 강타자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 콥은 30대 중반을 넘긴 노장이였고 타격폼을 수정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경기에 앞서 한 기자가 콥에게 루스에 대한 칭찬을 하자 열이 받은 콥은 그날 경기에서 홈런을 3개 때렸고 그 다음날 경기에서 다시 2개의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다.

통산 117개의 홈런밖에 기록하지 못한 콥이였지만 단순한 똑딱이 타자만은 아니였다. 콥은 24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8번의 장타율 1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역대 4위의 수치에 해당한다. 897개의 도루를 기록 할 만큼 빠른 발이 큰 몫을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946년. 예순 살이었던 콥은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올드스타들의 자선경기에 초청받아 타석에 들어섰는데 포수에게 "이봐 젊은이. 내가 힘이 없어 방망이를 놓칠지도 모르니 뒤로 물러나 앉게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포수가 뒤로 멀찍이 물러자가 콥은 번트를 대고 총알같이 1루로 뛰어나갔다.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타자이니 만큼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콥 역할을 맡은 토미 리 존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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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준타수를 만족한 타자들 중 메이저리그 전체 1위
  • [2] 메이저리그 전체 2위. 1위는 도박왕.
  • [3] 시대가 라이브볼 시대가 아니라 데드볼 시대라는걸 감안해야 한다. 그때 당시 공과 지금 야구에서 쓰이는 공은 다르다!!
  • [4] 사실 이 기록에는 2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 냅 라조이는 마지막 더블헤더에서 8타수 8안타를 쳤는데 그 중에서 6개는 번트안타였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감독이 타이 콥을 정말로 싫어해서 신인 3루수를 기용하고 그에게 깊은 수비를 지시했기 때문. 둘, 타이 콥은 당시 타격왕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마지막 경기에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385 대 .384로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1981년에 당시 기록원들이 3타수 2안타 경기를 두 번 셌던 것이 발견되어 그의 시즌 타율은 .383이었던 것으로 정정되었다. 통산 타율도 .367에서 .366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MLB.com에서는 다른 모든 야구 스탯 사이트들과는 달리 1910년 타율 .385와 통산 타율 .367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 [5] 이게 문제가 된게 폭행당한 사람은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캅이 한참 두들겨패고있을때 옆의 관중이 "그만해요. 저사람은 팔이 없는사람이라고요"라고 하니까 캅의 대꾸가 가관 "그래?! 두팔이 아니라 두발이없어도 안 두들겨팰거같아?!" 그리고 더 심하게 팼다고(...)
  • [6] 이때 디트로이트의 선발투수 앨런 트래버스는 그냥 동네 신학생이었다. 그는 9이닝을 전부 완투하며 역대 투수 최다실점이라는 기록을 작성한다. 그리고 이 경기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리그 경기가 된다. 그리고 포수는 48살 먹은 타이거즈 팀 코치에, 감독까지 대타로 출동하는 최악의 막장경기였다.
  • [7] 야구에서 역도루가 사라진 것이 이 사건 이후이라고 하나... 루머이며 실제로는 2013년 4월 19일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유격수 진 세구라가 도루로 2루까지 안착한 뒤 2루에서 1루로 역주(逆走)해서 2루를 또 훔치려다 아웃되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자세한 상황은 도루항목 참조.
  • [8] 문제는 같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 선수가 역시 감독겸 선수였고, 역시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중견수 리스 스피커이다. 블랙삭스 스캔들에는 철저하게 처벌했던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는 트리스 스피커와 타이 콥의 승부조작에는 눈을 감아 버렸다. 조 잭슨 팬들에게는 주는 것 없이 미울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애초에 흑인 선수들 문호개방을 거부해서 수꼴로 제대로 찍혔지만 말이다.
  • [9] 70대 시절의 타이 콥에게 한 기자가 "(전성기적 기준으로) 지금 리그에서 뛰신다면 어느 정도 치실 것 같나요?" 라는 질문에, "한 3할 1푼 정도?" 라 답했고, 기자는 의아해하며 "4할도 3번이나 치신 분이 3할 1푼이라니요?!" 라고 되묻자 "이 친구야, 내 나이 70에 그 정도면 됐지 뭘 바래?"(즉, 지금 쳐도 3할은 친다는 뜻...)라고 대꾸한 바 있다.
  • [10] 콥은 루스 식의 '한방 야구'보다 안타를 치고나가 그라운드를 헤집는 것이 훨씬 고차원의 야구라고 생각했지만 대중들은 루스의 시원한 홈런포에 열광을 했고 그런 대중들의 반응에 콥은 굉장히 분노했다고 한다. 그래서 툭하면 루스를 '반검둥이' 라고 놀렸고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을 지녔던 루스는 그때마다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