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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

last modified: 2015-01-21 11:12:01 Contributors


몽골어: Алтан Орд (Altan Ord)
타타르어: Алтын Урда (Altın Urda)
러시아어: Золотая Орда (Zolotaya Orda)
영어: Kipchak Khanate; Golden Horde(황금 군단)

Contents

1. 역사
1.1. 건국
1.2. 통치
1.3. 쇠퇴와 멸망
2. 역대 칸 목록

1. 역사

1.1. 건국

몽골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설립된 4대 칸국 가운데 하나로 러시아 제후들이 붙여준 금장칸국(金帳汗國, Golden Horde)이란 이명도 지니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Golden Horde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쓴다.) '킵차크'란 명칭은 몽골시대 이전에 이 지역에서 활동한 킵차크족[1]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칭기즈 칸의 장남인 주치의 영지가 모태가 되며, 주치의 아들 바투가 휩쓸고 다니면서 사실상 킵차크 칸국의 기틀을 닦았다. 전성기 영토는 서쪽으로 현재의 헝가리 일부와 우크라이나 지역,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북쪽으로는 현재의 러시아 지역, 남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광활한 영토를 지녔던 국가이다.

킵차크 칸국의 러시아 남부 스텝 점령은 러시아인들이 그간 몇 세기에 걸쳐 터전을 닦아 놓은 가장 좋은 토지의 대부분을 뺏겼다는 뜻으로, 이후 러시아의 인구와 경제 활동, 정치적 중심은 모스크바브고로드를 비롯한 러시아 북동부로 이동하게 된다. 키예프 루시국의 전성기 이후 각 대공들간의 소모전, 그리고 이로인해 쇠락한 경제가 미처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제징수는 '''러시아인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겨주었다.

1.2. 통치

킵차크 칸국의 기반을 이룬 주치와 바투의 원정군 자체부터가 몽골인이 적고 튀르크인이 많았으며, 획득한 영지도 원래 튀르크인의 거주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튀르크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몽골과 튀르크의 문화가 섞였다.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우즈베크 칸[2]이 즉위한 이후로는 사실상 튀르크족의 이슬람교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칸의 후예답게(...) 기존 로마 가톨릭동방정교회에 매우 관대하였으며 심지어 우즈베크 칸은 교황으로부터 관대한 크리스트교 정책에 대해 감사편지를 받았다. 우즈베크 칸 또한 교황에게 답신을 보냈으며 그의 아들 자니베크 칸은 정교회의 모스크바 대주교를 불러 그의 아내의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킵차크 칸국이 제대로 정착한 이후로부터는 털어먹을 것이 별로 없던(...) 동유럽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남쪽의 일 칸국과 티격태격해댔다. 여기에는 일 칸국이 들어선 영역이 몽골의 전통으로는 칭기스 칸의 장자, 곧 주치 울루스의 영토로 여겨졌던 탓도 있다. 원나라와는 초창기 칸들이 고타이 칸국을 지원하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했지만 카이두 사후 그럭저럭 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친선관계가 지속되었다.

한편으로는 크림 반도제노바인과 제휴하여 크림 반도에서 가강 하류,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교역 루트를 장악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는데, 당시 융성한 모습은 킵차크 칸국의 수도 사라이 베르케를 방문한 여행가 븐 바투타의 묘사에 잘 드러나있다.

몽케 칸을 찾아간 루브룩이나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특사 카르피니도 이 루트를 통해 라코룸에 도착했다.

킵차크의 칸들은 러시아의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러시아 도시 지배자들과의 알력을 이용하였다. 이중 가장 충실한 심복(...)은 스크바 대공으로 이반 1세부터 본격적인 대공으로서의 지휘를 이어받아 징세관 역할을 수행하였다. 때로 모스크바 대공들은 자신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여타 다른 도시들이 칸을 섬기지 않는다는 명분을 들어 칸에게 일러바쳤고(...) 그때마다 킵차크 칸들은 징벌원정을 통해 황폐화시키고 종주권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모스크바 대공이 칸에게 호출되었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사망하기도 했다(...).

1.3. 쇠퇴와 멸망

킵차크 칸국은 흑사병의 유행과 우즈베크 칸의 후계자 자니베크 칸이 1357년 암살당하면서 삐끗하기 시작했으며, 마마이 칸 재위시절에 벌어진 쿨리코보 전투(1380)에서 모스크바 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이끄는 러시아 제후 연합군에게 개발살나면서 체면을 구겼다. 패배한 마마이 칸은 처형되고 그 뒤를 이은 토크타미쉬 칸이 즉위하여 모스크바를 털면서 간신히 체면을 세웠고 러시아에 대한 종주권은 다시 인정받았지만,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같은 동맹을 자청하던 티무르 제국이 쳐들어 왔고, 여기저기에서 갈리다가 결국 수도 사라이 베르케까지 털렸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티무르 제국으로 끌려갔는데 이를 계기로 킵차크 칸국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후 칸에서 쫒겨난 토크타미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비타우타스(Vytautas)의 영토정복욕을 부추겨 그와 함께 킵차크 칸국을 공격했지만 1399년 보르스클라 강 대전투에서 리투아니아군이 궤멸되었고, 이후 주치의 첫째아들 오르다의 후손과 토흐타미시의 자손들이 번갈아 각축을 벌이며 킵차크 칸국은 소리없이 무너져 갔다. 결국 15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카잔 칸국, 크림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카자흐 칸국[3], 우즈베크 칸국[4]으로 분리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마침내 아메드 칸 재위시절인 1480년 러시아 제후국들을 하나씩 통합하고 있던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크림 칸국과 제휴하여 "우린 너네 종주권 인정 안해"라고 선언하였고, 아메드 칸은 이를 응징하기 위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고 모스크바 대공국과 크림 칸국을 압박하였지만, 아메드 칸이 사망하고 그 아들이 물려받은 시기에는 모스크바와 크림 칸국의 공세에 밀리게 되어 결국 1502년 크림 칸국과 모스크바 공국에게 정ㅋ벅ㅋ당하면서 망했어요(...).

킵차크 칸국의 영향으로 러시아 문화는 한동안 유목민의 색채를 띄고 있었다. 이걸 완전하게 엎은 사람이 200년 뒤인 18세기 로마노프 왕조표트르 대제.

2. 역대 칸 목록

  • 바투 칸(Батый) (1237-1256)
  • 사르타크 (1255-1256)
  • 울락치 (1256?)
  • 베르케 칸(Берке) (1256?-1266)
  • 멩구티무르 칸(Менгу-Тимур) (1266—82)
  • 투다멩구 칸(Туда-Менгу) (1282—87)
  • 탈라부가 칸(Талабуга) (1287—91)
  • 토흐타 칸(Тохта) (1291—1312)
  • 우즈베크 칸(Узбек) (1312—41)
  • 티니베크 칸 (1341-1342)
  • 자니베크 칸(Джанибек) (1342—57)
  • 베르디베크 칸(Бердибек) (1357-1359)
  • 이후 약 20년간 킵차크 칸국은 약 20명의 칸들이 쟁탈전을 벌인다.
  • 마마이 칸(Мамай) (1362-1380)
  • 토크타미쉬 칸(Тохтамыш) (1380-1395)
  • 테무르 콰틀루크 칸(1395년~1399년?)
  • 샤디베크 칸(Shadi Beg) (1401~1407)
  • 푸라드 칸(Pulad) (1407~1410)
  • 테무르 칸(Temür) (1410~1412)
  • 잘랄앗딘 칸(Jalal ad-Din)
  • 카림베르디 칸(Karim Berdi) (1412~1414)
  • 케베크 칸(Kebek) (1414~1417)
  • 자바르베르디 칸(Jabbar Berdi) (1417~1419)
  • 울루그무한마드 칸(Ulugh Muhammad) (1419–1421, 1428–1433) 카잔칸국 시조
  • 데브레베르디 칸(Dawlat Berdi) (1419–1421)
  • 바라크 칸(Baraq) (1422~1428)
  • 셰이드 마흐메드 칸 (1433~1435)
  • 쿠춤 무한마드 칸(Küchük Muhammad) (1435–1459)
  • 마흐무드 (1459~1465)
  • 아메드 칸(Ahmad) (1465~1481) 모스크바 독립
  • 쉬야크아메드 칸(Shaykh Ahmad) (1481~1498, 1499~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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