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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last modified: 2017-08-24 00:24:08 Contributors


  • 이탈리아어 -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
  • 스페인어 - 크리스토발 콜론(Cristóbal Colón)
  • 영어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년경 ~ 1506년 5월 20일

이탈리아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탐험가, 항해가 그리고 식민주의자이자 학살자

저 위의 초상화는 콜럼버스의 초상화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단 당대 기록과 얼굴이 다른 셈[1]

Contents

1. 소개
2. 아메리카 대륙의 최초 발견자?
3. 비판점
4. 몰락과 지금의 대우
5. 콜럼버스의 교환
6. 기타

1. 소개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사이자야구선수 스페인콩키스타도르. 80년대에는 그냥 콜롬부스라고도 위인전에 나오기도 했다. 위인전과 실상의 괴리가 가장 심한 인물.

죽은 날은 전해지는데 태어난 일이나 연도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1451년생으로 보통 많이 알려졌지만 1447년생이라는 주장도 많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지역인 제노바 공화국 출신이며, 스페인의 인가를 받아 활동했는데, 유럽인들 기준으로는 영웅 중의 영웅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이라서 그런지 유럽 언어로는 이 인물을 표기할 때에는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 식이 아닌 자국어 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는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ristoforo Colombo), 스페인어로는 크리스토발 콜론(Cristóbal Colón)이고, 영어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식 이름으로 소개가 되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공식 표기법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콜럼버스에서 파생된 Columbia의 공식 표기법은 컬럼비아이다. 영어 발음에 의해 외래어표기법으로 정확히 표기하자면, Columbus도 컬럼버스라고 표기해야 되겠지만, 관용을 존중해 콜럼버스가 표준 표기가 되었다. 하지만 Columbia의 표준 표기는 컬럼비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컬럼버스라고 하고, 콜럼비아라고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자주 틀리는 외래어의 하나.

2. 아메리카 대륙의 최초 발견자?

일반인들에게는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위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인들 기준이고, 애시당초 콜롬버스가 도달한 시점에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사람이 바글대는 곳이었다. '신대륙'이니 '발견'이니 뭐니 할 것도 없던 행위. 다만, 세계사 자체가 서양인 시점인데다 서양 기준에서는 놀라운 발견이긴 했었다. '신항로' 발견이라고 하면 뭐 누구 시점으로 봐도 맞는 말이 되기는 한다.

대부분의 경우가 확실한 근거가 없다 뿐이지, 유럽에서도 아메리카 대륙을 찾은 사람들은 콜롬버스 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이킹이 알려졌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메리카에 왔다거나, 폴리네시아인들이 진출해서 고구마를 수입해 갔었다거나, 아프리카인들이 남아메리카에 온 적이 있다는 증거로 흑인을 닮은 얼굴 조각상이 있다거나 한다. 이집트가 오랫 옛날 아메리카와 교역했다는 근거 적은 떡밥도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유럽인들의 진출을 시작케 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처음이다. [2] 첫 상륙 이후로도 그 후에도 4번의 항해를 했다.

그는 동생인 바르톨로메오 콜롬버스와 지도 제작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였던 동방견문록을 읽고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게 세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바다 서쪽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지구는 둥글테니까)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하면 언젠가는 세계를 한바퀴 돌아서 중국인도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지중해를 점거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을 거치지 않고 교역과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스폰서를 구하며 포르투갈, 영국,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들의 지도자에게 지원 요청을 하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3]

그러다 마침내 1492년 이사벨라 1세에게 허락을 받고[4] 항해를 시작해 그해 8월 3일 스페인을 떠나 10월 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상륙한다.

위인전같은 곳에선 '선원들이 지구가 평평한 줄 알고 콜럼버스의 항해에 반대했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 발견된 사실이었고 당시 항해기술 자체가 지구가 둥글다는 전제하에 발전한 것이었다. 애초에 지구가 둥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1700년 전에 지구 둘레의 계산까지 끝나 있었다. 다만 선원들은 콜럼버스의 거리계산법을 믿지 않았을 뿐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일화로 중세 까지도 서양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문제였을 뿐, 바다를 끼고 사는 뱃사람들에게 있어선 상식이나 다를 바 없는 사실이 바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었다[5]. 사실 이 부분은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탓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겠다. 그의 권위가 유럽에서, 특히 내륙 지역에서 워낙 높았던지라 당시 가톨릭의 교리까지 바뀔 정도였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모든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최적화된 시기였다.(하지만, 1394년, 엔리케왕자가 탐험대를 보낼 때 였을 당시 뱃사람들의 통념에 의하면 베르겐 곶 남쪽은 바다의 끝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엔리케 왕자 역시, 탐험에 함께할 선원을 모으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전해진다. 100년이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선원들의 정보 공유가 이루어 졌을 시간은 차고도 넘치나, 일반적인 뱃사람들에게 베르데곶까지의 항해도 매우 위험한 장거리 항해라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희망봉을 발견한 것은 1487년 출발한 디아스에 의한 것이었다.(발견 년도 : 1488년) 아프리카 대륙을 따라 항해한, 비교적 안전한 항해임에도 불구하고 1488년에야 아프리카 남단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서양 횡단은 당시 선원들에게나, 콜럼버스에게나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거리계산법은 매우 매우 심각하게 틀렸다. 어느 정도냐면 대충 지구 반바퀴 정도. 깊게 따질 것 없이 인도와 미국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된다. 콜럼버스의 계산대로라면 미국이 있어야할 위치에 인도가 있었어야 했었던 것. 즉,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신념으로 항해를 마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완벽히 빗나간 계산을 가지고 항해를 한 것이다. [6] [7] 괜히 그가 죽기 전까지도 아메리카가 인도라는 신념을 가지고 죽은게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콜럼버스를 반대한 사람들은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서양으로 인도를 가기엔 너무 멀어 가다가 굶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럽에서 대서양을 향해 출발하여 인도에 도착하려면 대륙 하나지구에서 가장 큰 바다 하나를 건너야 하는 아주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콜럼버스가 항해할 때 택했던 유람선 수준의 산타 마리아호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였고 이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후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일주 선단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수십 명의 사람들만 간신히 살아 돌아온 것을 생각한다면 콜럼버스가 얼마나 오류로 점철된 허황된 꿈을 가지고 항해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콜럼버스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당도한 곳을 인도로 믿었는데, 다만 자신이 발견한 곳이 인도 본토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도는 인지했을 거란 주장이 많다. 인도랑 무역을 얼마나 오래 했는데 설마 몰랐을까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도 그러했는데 허나 그렇다 해도 기껏해야 아시아의 동북부 지역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고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전혀 별개의 대륙이라는 사실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이후 이탈리아 항해사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으로 선포할 때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8]. 그래서인지 이 대륙의 이름은 콜럼버스가 아닌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라고 이름지어졌다. 그런데 이것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닌 리처드 아메리크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거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메리카에 오기 2년 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지명이 문헌에 나오고 당시 지명은 사람의 이름이 아닌 성에 따라서 짓는다는 것.

하지만 콜럼버스에서 유래한 이름도 많다. 미국을 시적으로 표현할 때에는 아메리카 대신 콜럼버스에서 여성형 어미를 붙인 컬럼비아(Columbia)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의 공식 명칭인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 D.C.)에서 쓰이고, 그 외에도 캐나다브리티시 컬럼비아를 비롯, 수많은 지명에서 컬럼비아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콜럼버스 이름을 그대로 쓴 오하이오의 주도 콜럼버스도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콜럼버스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다. 콜롬비아 공화국이 이러한 지명의 사례로 가장 유명하고, 콜럼버스의 스페인식 이름인 콜론이라는 지명도 파나마 등 여러 나라에 있다.

카리브해를 한때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콜럼버스의 인도 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여기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경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3. 비판점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위인으로만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이 인간이 위인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가하는 논쟁이 많다. 즉 원주민 수천 명을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치웠으며 각종 재물을 약탈해간 인간 쓰레기이자 천하의 개쌍놈일 뿐이었다는 것.

위인전에서는 그의 탐험 목적이 순수한 탐구심이었다고 묘사하지만 앞서 서술했듯 그의 1차 원정의 진정한 목적은 순수한 탐구심이 아니라 (富)였다. 그리고 그는 순진무구한 '인디언'[9]들을 접하면서 원주민들이 가지고 다니는 금에만 관심을 가지며 1차 원정을 끝냈다.

문제의 2차 원정부터 콜럼버스의 탐욕이 드러난다.[10] 우선 그는 1차 원정에서 돌아올 때 선원 30명 가량을 아이티에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이번 원정에서는 엄청난 수의 노예와 금을 얻을 수 있다며 1차 원정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원조를 받아낸다.[11]

이렇게 2차 원정이 시작되었으나 막상 다시 아이티로 돌아와보니 일전에 남겨놓은 30명 가량의 선원들은 병으로 죽거나 원주민들에 의해 죽어있었다. 그런데 딱히 원주민 잘못이라고 하기 어려운게 선원들이 한 사람당 최고 5명씩 원주민 여자를 거느리며 금을 찾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린다든가 했기 때문.[12]

이후 콜럼버스는 안전을 위해서(응?) 호전적인 부족뿐만 아니라 보통 원주민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한 마을에서는 700명 가량을 자비도 없이 모두 생포해 창칼로 찔러죽였다. 그 후로도 학살은 계속 이어졌다.[13] 3, 4차 원정이 계속될수록 콜럼버스의 후계자들은 점점더 잔인해져선 마스티프라고 하는 맹수사냥용 초대형견을 데리고 와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노예로 팔리거나 14세 이상의 원주민들은 석 달마다 콜럼버스가 제시하는 금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시 손이 잘리는 형벌을 받고 과다출혈로 죽어갔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30만명의 아이티 섬 인구가 2년만에 10만 명이 죽고 나중에는 결국 500명밖에 남지 않아 처음에는 원주민 노예들을 수출하다가 나중엔 역으로 흑인노예들을 수입해왔다.[14] [15]


1519년 다른 스페인 관리들이 본국에 이 학살을 알렸지만 당연하게도 충격적이게도 본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애초에 백인들의 눈에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후 콜럼버스는 죄수선에 실려서 소환조치 되었다. 원주민 학살건도 있지만 실은 그렇게 사망자를 많이 내고도 황금을 전혀 건지지 못했다는 점이 더 문제시되었다.

위에서 서술되었듯이 콜럼버스 자신은 그 땅이 중국의 남서부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중국 황제나 황금 광산을 찾았지만 당연히 나올 턱이 없었다. 사실 중국이 아니었던게 콜럼버스에게는 다행이었던 것이, 만약 진짜 중국에서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다간 당시만 해도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하던 중국인들에게 순삭당했을 거다. 아니 조선이나 일본에서라도 대포 몇 개 들고 깔작 거리는 해적들을 살려둘리가 없다

더구나 별로 건져온 것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정복한 땅의 총독 자리와 지도자 자리를 요구했으며, 해군 제독이라는 지위를 주장하면서 이것을 자식들에게 세습시켜 달라고까지 요구했고, 사업에서 얻은 이득의 1/10은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주는 것도 없이 얻어만 먹으려는 심보였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16]

물욕과 권세욕이 강한 인물이었는지, 부하 선원이 발견한 섬을 자기가 발견한 것으로 협박을 해서 거짓 보고한 적이 많다. 그리고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던 원주민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노예 시장에 팔아넘긴 기록도 있다. 한마디로 인성 자체가 쓰레기 양아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작자를 위해 쉴드를 쳐보자면, 과거의 인물을 현대의 도덕기준으로 착하거나 나쁘다고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좀 우스운 일이기도 하고,[17] 또 원주민들은 자연친화적이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유럽 침략자가 그들의 유토피아를 파괴해버렸다는 나이브한 주장은 영화 아바타에서나 존재하는 일로 사실은 원주민들끼리의 전쟁도 빈번했으며 그들이 너무 많이 사냥해서 멸종되어버린 종들도 많았다.[18] [19]

youtube(GMWVOSz2A2E)

4. 몰락과 지금의 대우

간신히 누명을 벗고 탐험에 나섰지만 그의 후원자이던 이사벨라 1세가 죽자마자 몰락하게 된다. 당연히 무수한 빚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결국 겨우 몇 해 사이에 그야말로 몰락하여 아들 디에고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매독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로 콜럼버스의 시신 일부가 있다고 전해지는[20]도미니카 공화국에선 당당하게 그가 매독으로 죽었다고 설명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이곳을 찾은 매독 연구 관련 책자 지은이에게 현지 길라잡이도 비웃듯이 "그가 매독으로 죽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아닙니까? 그나마 이게 하느님이 내리신 작은 벌입니다." 라고 씹어준 적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제3회 항해(1498∼1500)에서는 트리니다드 섬과 오리노코 하구(河口)를 발견하였으나,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가장 고생스러운 항해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1504년에 이사벨이 죽은 뒤 그의 지위는 더욱 하락하였으며, 그의 직책의 세습까지도 인정되지 않았다.[21] 심지어는 20세기 학자들조차 그를 학살자라고 비판했다. 만일 시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창작물이 나오면 아마 후손놈한테 두들겨 맞아죽을 게 뻔하다.

10월 12일 그의 아메리카 '발견'을 기념해 남북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공휴일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라 하며 기념한다. 기념일이나, 쉬어도 되고 안 쉬어도 되는 기념일로 지역에 따라 공휴일이기도 하고 그냥 기념일이기도 하다. 웬만한 직장/학교는 이날 안 쉬는 지역에서 만약 이날 쉬는 곳이 있으면 '우리 직장/학교는 널널합니다 ^^'라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공휴일이므로 직장/학교도 다 쉬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 하와이, 알래스카, 사우스 다코타의 세 주는 콜럼버스 데이가 없는데,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관계가 없는 지역이며, 사우스다코타는 이름의 유래에서 보듯 원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는 이 날을 "종족의 날(dia de la raza)"이라고 하는데,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처음 만난 것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으로 여러 나라에서 공휴일로 되어 있기도 하나, 원주민들은 왜 그런 개쌍놈을 기념하냐며 학을 떼기도 한다.

5. 콜럼버스의 교환

콜럼버스와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와 유럽의 동식물, 문화전파를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는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생산성과 고자 높은 작물들로 인구가 늘어난 반면, 아메리카에서는 유럽에서 가져온 전염병으로 원주민의 대부분이 죽었다.[22] 그리고 정말 운좋게도, 아메리카 원주민은 딱히 치명적인 공기 전염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23] 만약 그랬었다면 구대륙 사람의 대부분도 같이 몰살당했을 것이다.

­ 유럽아메리카 아메리카→유럽
동물 고양이, 낙타, , , 당나귀, 염소, 꿀벌, , 릿, 거위, 토끼, 돼지, , 비둘기, 호로새, 물소 알파카, 밍크, 기니피그, 칠면조, 라마, 대만오리
식물 아몬드, 사과, 살구,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 바나나, 보리, 비트, 빌베리, 비터멜론, 후추,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콜리플라워, 방울다다기양배추, 오렌지색메론, 카람볼라, 카다멈, 당근, 시나몬, 정향, 커피, 오렌지, 레몬, 오이, 대추야자, 아마, 무화과, 마늘, 아메리카머루, 헤이즐넛, 대마초, 키위, 상추, 망고, 기장, 귀리, 오크라, 넛메그, 올리브, 양파, 복숭아, 아편 양귀비, 완두콩, , , 피스타치오, 루바브, , 호밀, 대두, 사탕수수, 토란, , 순무, , 호두, 수박, 양조용포도, , 목화 악키ackee[24], 용설란, 선인장, 아마란스, 애로루트, 아보카도, 강낭콩, 검은무딸기[25], 고추, 피망, 블루베리, , 캐슈넛, 치아시드, 번련지, 체리모야, 커스타드 애플, 랜베리, 카나무, 카카오, 구아바, 클베리, 해바라기, 돼지감자, 옥수수, 지카마, 카사바, 파파야, 패션프루트[26], 땅콩, 피칸, 파인애플, 감자, 호박, 퀴노아, 무나무, 사포딜라, 딸기[27], 고구마, 담배, 토마토, 바닐라, 야생쌀[28], 마떼, 실유카, 주키니
병균 수두, 페스트, 콜레라, 감기, 디프테리아, 인플루엔자, 한센병, 말라리아, 홍역, 홍열, 장티푸스, 천연두, 발진티푸스, 일해, 황열, 매종[29] 베젤(= 풍토성 매독), 열대성 백반피부염, 샤가스병[30], 매독

6. 기타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세상을 떠난 후 그곳에 묻혔던 콜럼버스의 유해는 1542년 대서양 건너편 산토도밍고로 이장되었고, 1795년 프랑스가 히스파뇰라 섬을 점령하자 아바나로 이장되었으며,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가 독립하자 다시 스페인으로 옮겨져 비야 대성당의 남쪽 익랑에 안장되었다.

아들이 둘 있었는데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디에고는 아버지의 직책을 명칭만 이었지만 손자인 루이스는 스페인 국왕 카를 5세[31] 로부터 베라과 지역[32]을 봉토로 받음으로써 1대 베라과 공작(Ducado de Veragua)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베라과 공작위를 이어 현대까지 내려오고 있다. 조상이 조상인지라 이쪽에서는 해군이나 해운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17대 공작 크리스토발 콜론 데 카르바할 이 마로또 (1925~86)는 해군 중장까지 지냈다.

한편 콜롬버스의 다른 아들 하나는 첫 부인 사후 내연녀(…)와의 관계에서 나왔는데, 이사벨라 여왕의 시동으로 들어가 궁정 신하로 출세하게 된다. 다만 아버지와 달리 그냥 관리로 살았다. 참고로 책벌레(…)였던 탓에 이 사람이 가진 도서 컬렉션은 지금도 스페인에서 알아준다고 하며 콜럼버스의 전기를 최초로 쓴 사람이기도 하다.[33]


적어도 세 편의 영화화가 진행되었는데 가장 걸작은 프레드릭 마치가 주연한 50년대 영화, 50년대 치고는 남미 원주민들의 학살 등의 이야기도 중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0년대 50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영화가 두 편이 있는데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작품은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제라르 드파르디외(콜럼버스 역)와 시고니 위버(이사벨라 여왕 역)가 출연한 《1492 Conquest of paradise》이다. 고증오류도 적지 않지만[34]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학대 등의 어두운 측면도 다루어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꽤 볼만한 작품. 특히 반젤리스 작곡 OST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영화 내에서 콜럼버스 개인에 대해서는 무척 호의적이고 역사와 안맞는(원주민들에게 너그러운 유화책을 편다던가... 대신 동행한 에스파냐 귀족들이 착취와 학대를 저지르고 콜럼버스와도 충돌하는 것으로나타난다.)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주의할 점이다.

- 소프라노소 시즌3에서 이탈리아인들이 콜럼버스에 대해 갖는 감정이 어떤 것일지 알 수가 있다.


세계적인 물류기업인 DHL에서는 업계 최초로 해외발 미국행 항공 특송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자사의 기록을 홍보하기 위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을 테마로 재밌는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기뻐하는데, 이미 DHL 배달원이 콜럼버스를 한참 기다리고 있었으며 한국에서 온 물건인데 확인해 달라고 콜럼버스에게 서명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에 콜럼버스가 DHL이 전달해 준 물건이 뭔지 박스에서 꺼내보니 다름아닌 터보트 엔진(...) 이 CF는 원래 1998년에 호주에서 제작된 CF를 1년 뒤인 1999년 당시 DHL의 한국 대리점 역할을 했던 양 익스프레스에서 수입하여 우리말 더빙과 자막 편집만 거쳐 그대로 방영한 것으로, 원판 CF에서는 배달원이 싱가포르에서 온 물건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한국판 CF에서 배달원의 목소리 더빙을 맡은 성우강수진이다.

모 고인드립 게임에서는 암살단의 협력자로 나온다. 어? 아메리카 원주민 성당기사단 단원설[35]

에로게 영웅전희에서는 모에화되어 USA의 수장으로 등장하며, 플레이어와 세력이 인접하면 80.000골드와 자신의 영토를 교환하자는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이 때 제안에 따라 영토를 구입하거나 제안을 거절한 후 USA를 멸망시키면 동료로 영입할 수 있다.

영화박물관이 살아있다에도 철동상으로 나오며 래리가 아프리카관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더니 래리가 그에게 "혹시 르테스??"라고 하자 그 역시 못알아듣는 편.
그래도 래리의 아들 닉이 콜럼버스라고 말하자 겨우알아들을수 있었고 네안데르탈인들과 같이 세실의 부하중 레지널드를 생포하여 공을 세운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훈족의 왕 아틸라와 축구를 한다.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만 쓴다.
3부작중 딱1편에만 나오는 안습함을 보여준다. 다음 시리즈에서 좀더 활약할줄 알았는데

대항해시대 5에서는 라몬의 해도에 감춰진 비밀을 해명하기 위해 항해한 주인공 일행이 제노바에서 프랑스 서해안의 해도 2를 얻기 위해 찾아오자 자신을 박대한 포르투갈 소속 사람이라는 이유로 매몰차게 쫓아내면서 국적을 바꾸라고 했으며, 주인공 일행이 쥬피톨 에르난데스에게서 받은 잉글랜드 국적 증명서를 가져오자 주인공 일행에게 해도를 건네준다.


외계인의 지구방문(혹은 침공)이 주제로 나올때 흔히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사건을 많이 빗대여 말한다. 그 예로 스티븐 호킹은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외계인은 콜럼버스, 지구인은 아메리카 원주민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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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기록과 대단히 비슷한 류의 초상화는 하나 있긴 하다
  • [2] 제임스 로웬이 쓴 Lies My Teacher Told Me 참조.
  • [3] 거절당할만한 게 군주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요구조건이 꽤나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땅에서 나오는 보물 10% 및 그 섬들의 총독 자리를 평생 보장할 것 외에도 꽤나 많이 요구했다. 동시대에 살던 마젤란의 요구가 보물 5% 양도 및 기록에 대한 저작권 요청에 그친 것에 견줘보면...
  • [4] 당시 스페인 왕국은 아라곤 왕국과 스티야 왕국이 연합하여 이뤄진 나라였는데 각각 나라의 왕과 여왕이던 이들이 결혼했던 것. 때문에 여왕도 권력이 꽤 있었음에도 콜럼버스의 요구가 워낙 까다로워 여왕 자신이 아끼던 보석까지 팔아가면서 개별적으로 후원해줘야 했다.
  • [5] 다만 이러한 이유로 뱃사람들이 승선하지 않자, 콜럼버스들은 죄수를 데리고 항해를 했고 일반인 수준의 통념을 가지고 있었을 죄수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 [6] 익히 알려졌던 측정에서 서쪽으로 가장 짧고 동쪽으로 가장 긴 측정량을 선택하여 대서양+태평양이 충분히 작다는 계산을 했다고 한다. 알면서 후원을 받기 위해 속였다는 설.
  • [7] 그러나 죽을 때까지 본인은 아메리카를 인도라고 생각했던 점이나, 그곳에 대륙이 없었다면 전멸하기 십상이었던 항해를 직접 지휘했다는 점에서는 속인 게 아니라 정말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 [8]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항해사도 아니고, 이걸 신대륙이라고 선언한 적도 없다. 다만 당시 유행한 어느 책에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의 발견자라는 근거없는 이야기가 돌았고, 당대의 지도학자가 그 책에 낚여서 대륙이름에 이 사람의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 [9] 실제로 그들은 콜럼버스 일행이 신기해서 물이고 음식이고 가져다 주며 환영하며 철제무기를 보고 신기해 했다.
  • [10] 1차 원정에서 콜럼버스가 유럽으로 보낸 기록을 보면 원주민들을 우호적이고 영리하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2차 원정 때부터는 멍청하고 폭력적인 야만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 [11] 1차 원정 때의 선박수는 여왕에게 대여받은 3척과 아는 사람에게 빌린 1척 도합 4척이 전부였다. 하지만 2차 원정 때는 17척으로 원정을 시작했다. 선원들은 1차, 2차 모두 면죄부를 미끼로 범법자를 모집하기는 했지만 2차는 전직 군인들도 모집함으로써 원주민들을 족칠 전력을 모은다. 실제로 대포, 갑옷 등 무기를 들고갔다.
  • [12] 단 이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겨 놓은 선원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후 온 탐험가들이 위의 서술대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하는 것.
  • [13] 아무리 순진무구한 원주민들이라도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원주민들은 철의 주조법을 알지못했고 돌로 만든 무기들을 가지고 싸웠으니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덧붙여 저항하다가 붙잡힐 시 불태워졌기 때문에 패배에 직면했을 시 독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
  • [14] 하지만 흑인노예들도 원주민 노예들처럼 얼마 안 가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 [15] 보르헤스의 책, 픽션들의 첫 페이지에 나온다. 대충 번역해 보자면, "지옥같은 광산에서 여위어가고 있던 인디언들을 불쌍히 여겨, 베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황제 샤를 5세에게 흑인들을 카리브 제도로 데려와 그들이 대신 지옥같은 광산에서 여위어가게 하도록 청했다." (...)
  • [16] 빌 브라이슨은 1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콜럼버스처럼 몰락하려면 대단한 무능과 오만이 필요한데 콜럼버스는 그 2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 [17] 아래 영상에 나와있듯이, 당시 기준으로 봐도 꽤나 사악한 짓을 저질렀다.
  • [18] 원주민들이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우글우글거리던 대형 포유류가 얼마 못가 순식간에 멸종해버렸다고. 궁극의 전투종족 인간을 경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멸종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 스팀팩을 장착하지 못한 초기 인류와 같이 부대끼며 살아온 덕에 점차 강력 흉폭해지는 인류에 대한 경계심을 습득한 아프리카 등 구대륙의 대형 포유류가 상당수 목숨을 부지한 것과 대비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 [19] 콜럼버스를 실드치는 건 아니지만, 그 자연과의 조화와 융합으로 유명한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너무 많은 수달을 사냥한 나머지 해초-성게-수달로 이어지는 베링 해의 생태계를 완전히 작살낸 사례가 존재한다.
  • [20] 물론 확실한 인정을 받은 건 아니다. 되려 과학적인 조사를 거부하고 있어 의심을 많이 받는다.
  • [21] 다만 실제적인 직책의 세습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명칭은 대대로 가지게 된다.
  • [22] 그나마 메스티소(백인-원주민 혼혈)로 피가 이어진 경우는 많으나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원주민 인구가 많은 곳(볼리비아, 멕시코, 페루)도 19-20세기의 급속한 인구증가 버프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북미나 카리브,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경우는 메소티소의 인구비율도 적어서 원주민의 피가 이어진 경우가 많지 않다.
  • [23] 매독은 성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 [24] 자메이카 원산의 과일
  • [25] 블랙베리
  • [26] 시계초의 일종
  • [27] 정확히는, 오늘날 우리가 먹는 딸기의 교배친들. 유럽에도 동속이종의 야생 딸기는 존재하였다.
  • [28] 벼 종류는 아니고, 줄의 한 종류이다.
  • [29] 열대 피부병
  • [30] 면병
  • [31] 스페인 국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
  • [32] 현재 파나마의 베라과 지역. 선조의 업적을 주장하며 상당한 영토를 주장하는 콜럼버스의 후손들과 스페인 왕실간의 오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하여 일단 명목상 영토인 미정복지를 던져주고 알아서 정복하라고 작위를 내렸다. 1대 공작인 루이스 콜론은 파나마쪽으로 가서 자신의 통치권을 확립하려 했지만 원주민의 반발과 악천후 등으로 실패하고 20년만에 스페인으로 복귀하면서 봉토를 반납하는 대신 작위의 보존과 연금을 받기로 하였다. 참고로 내려진 봉토가 완벽한 정사각형이었다.
  • [33] 리들리 스콧의 영화에는 콜럼버스는 인정도 못 받다가 이 아들의 전기로 진가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건 오류이다. 적어도 당대에는 연대기 작가들 중에 콜럼버스를 찬양하지 않는 자 없었다.
  • [34] 예를 들자면, 1492년 항해에 나서기 전 콜럼버스 자신이 아프리카 희망봉 경유 인도행 항로 얘기를 언급하는데, 실제로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행 항해가 성공한 건 그로부터 6년 뒤(1498년)이다. 그리고 추가 항해를 준비하던 동안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이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명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지만 (대륙의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지어 소개한 책자는 이미 발표되어 있었던 시점이었으나) 이제 막 탐사를 시작한 당시의 시점에서 아메리카라는 지명이 확정되어 보편화되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 [35] 하지만 암살단 입장에서도 협력자를 잘못 고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대표적으로 마오쩌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