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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모두스

last modified: 2015-06-29 11:04:06 Contributors

로마의 역대 황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내전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페르티낙스

이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Lucius Aurelius Commodus Antoninus)[1]
출생지
생몰년도 161년 8월 31일 ~ 192년 12월 31일
재위기간 177년 중기[2] ~ 192년 12월 31일

풀네임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가끔 "코모두스"로 표기하는 책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코모도 왕도마뱀이라고 놀려먹을 수도 있다. 사실 이름만 들어도 문득 떠오르는 것이 파충류의 한 종류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인된, 로마의 암흑기를 연 암군이자 폭군. 황제 부적격자. 혈통주의의 폐단의 상징.

Contents

1. 즉위와 통치
2. 검투사 황제
3. 평가
4. 창작물에서의 모습

1. 즉위와 통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죽은 후 로마 제국황제가 되었다.

즉위 후 다 이겨가던[3] 게르만 부족과의 전쟁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사실 이 자체는 그 당시 로마의 재정상태가 최악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시 로마는 태평성대가 아니라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 판국이었던 차에, 내부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상황에서 게르만족과 전쟁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로마에겐 득보다는 실이 컷다. 이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도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한 결정은 아니나 결과는 좋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하드리아누스[4]처럼 이후 내치에 전념했으면 모를까 이후 행적을 봤을 때 그렇지 않았다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도나우 강 건너편의 오지에서 갑옷 입고 군막 생활하는 게 귀찮아서 그랬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콤모두스는 지금 나이로 치면 대학교 1학년 정도의 철없는(?) 젊은이였다(...).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들이 모인 회의에서도 장수들의 강력한 요청을 단호히 기각한 것을 보면 역시 황제로서의 위엄을 갖춘 모양이다. 콤모두스가 부황의 별세 이후 곧바로 황위에 등극한[5] 초짜 황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의로 배짱도 두둑하고 치세 초기에는 군왕의 권위도 있었다. 사실 로마는 가부장제가 뿌리깊은 사회였고, 콤모두스가 당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선왕의 적장남이란 점에서 보자면 콤모두스의 후계자로서의 권위는 오히려 오현제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튼튼했다고 볼 수 있다.연산군도 후계자로서의 권위만은 튼튼했지.

하지만 즉위를 하자마자 무능함이 드러나서 로마로 돌아오자마자 정치는 아버지 시절의 관료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먹는 세월을 보냈다. 차라리 게으르고 무능한 황제로 치세를 끝냈다면 모르겠지만, 남매 중 장녀이며 친누나 루킬라가 어처구니없는 악감정으로 암살극을 벌인 탓에(…) 황제 시해미수 이후의 치세는 그야말로 피로 얼룩지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큰 충격을 받은 콤모두스는 쓸데없는 의심병이 생기고 이것이 도져서 아버지 시절의 유능한 관리들이나 주변 친척, 친지들을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다만 루킬라의 남편이었던 폼페이아누스는[6] 숙청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위로 삼을 만큼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큰 누나와의 내외간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 때문인 듯. 그리고 5명의 누이들의 남편 - 매형, 매제 - 들 중 3명이나 살해하는 참극을 일으켰다. 누이들에게 위협은 가하지 않았지만 애정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유능한 근위대장 페렌니스가 있을 때는 페렌니스가 직무 유기하는 어리석은 황제 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의심병과 간신배의 농간에 넘어가 오히려 페렌니스를 반역죄로 죽인 뒤에 탐욕스러운 해방노예 출신인 클레안드로스가 근위대장이 되어 실권을 쥔 뒤로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결국 로마 시민들의 봉기가 일어나서 콤모두스가 클레안드로스의 수급을 던져주는 걸로 봉기를 가라앉혔을 정도였다.

2. 검투사 황제

스스로 헤라클레스환생이라고 여겼으며 사자 가죽 옷을 입고 곤봉을 휘두르며 코스프레라니! 직접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과 싸우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기행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검투 시합을 예행연습한 장소로 추정되는 미니 콜로세움까지 발견됐다.

검투사로서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그는 실제로 엄청난 완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흉기였다. 다만 매 싸움마다 전승무패였으나. 전승무패의 기록 자체는 그가 황제였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의 곤봉과 칼에 희생당한 자들은 검투사들보다는 주로 본인이 스스로 조달하게 한 사지가 온전치 않은 부상병들, 병자들, 장애인들이었고, 반면 검투사들과 싸운 경기의 승리는 반드시 상대의 항복으로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와 대결한 검투사들은 한 명도 죽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베스티아리로서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검투사들 쪽에서 먼저 항복했을 지언정 그가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서 억지로 상대를 지게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의 무서운 힘과 기술은 베스티아리로서의 경기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기린, 얼룩말 등 진기하지만 비교적 약한 초식동물들을 쳐 죽이기만 한 게 아니라,[7] 코끼리 3마리를 죽였고 하루에 100마리의 사자를 때려죽인 적도 있으며 그 외 각종 맹수들을 무대에서 죽이곤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단순히 완력이 셌을 뿐만 아니라 잘 훈련된 전투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궁술에 능했다고 한다. Augustan History에 따르면 70-90km/h로 전력질주하는 타조도 활로 쏴 죽였다고 한다.

정적들은 그의 폭정과 무능함에 치를 떨며 축출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일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는데다 거의 대부분을 무장한 채 지내는 황제를 죽일 방법이 별로 없어서 정적들은 콤모두스에게 실망한 근위대장과 그의 애첩과 짜고는 그를 죽이기 위해서 음식에 독을 타고, 그가 독 때문에 욕실에서 토하고 괴로워하는 틈을 타서 그의 레슬링 교관이자 파트너를 보내서 목 졸라 죽이게 된다.

어처구니 없게도 암살의 원인은 지독한 검투사질 때문이었다. 그가 일도 안하고 부상병이나 병자들을 경기장에 동원해서 때려죽이는 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헤로디아누스의 기록에 의하면 콤모두스는 아예 검투사 숙소에서 살겠다고 선언했고 근위대장과 애첩이 어이없어 하며 이를 말렸다. 아무리 황제가 검투사질을 하는건 둘째치고라도 검투사랑 똑같이 숙소에서 살겠다는건 황제의 체면상 있을수 없는 일이었던 것. 측근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만류를 했음에도 되려 콤모두스는 빡쳐서 오히려 근위대장과 애첩을 처형하라는 명령서에 싸인을 했고 이를 알게된 그들이 결국 살기 위해서 콤모두스를 죽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괜한 병신짓만 안했어도 목숨은 부지할수 있었던 셈.

그와 별개로 콤모두스를 죽여서 다음 황제를 일찍 즉위시키려는 움직임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정적들이 암살 계획을 보조했기 때문이다.

3. 평가

철인 황제-철학자 황제라고까지 불렸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 오죽하면 친아들이 아니라는 설도 생겨났고 이를 채용한 픽션도 있다. 하지만 조각상이나 기타 문헌을 보면 생긴 게 완벽하게 닮았다고 한다. 다만 선입견 탓인지 묘하게 흐리멍텅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대에는 꽤 괜찮은 미남으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뭐 어떻게 보면 늘 책만 보면서 골골거린 아버지를 생각하면 '과인은 저리 되기 싫다!'라고 할 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버지랑 달리 불성실한데다 무능한 나머지 정치나 국방에서는 하나도 개선된 게 없었다. 사실상 호부견자.

이때부터 근위대장의 시대가 시작된다. 콤모두스 초기에 국가를 통치했던 페렌니스는 근위대장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시절까지의 문민 통치가 이 때부터 군사력에 기반한 통치로 전환된다. 페렌니스가 피살되고 뒤를 이은 클레안드로스는 아주 탐욕스러워 제국을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었고, 이제 지방 정부에서 딴 생각을 품고 비위를 저지르더라도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근위대가 준동하기 시작[8]했고, 세베루스 이후의 로마 제국의 군국주의화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페르티낙스가 피살된 직후 곳곳에서 군대가 들고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속주에 대한 감시도 이 때부터 해이해졌을 것이다. 여러 모로 제국의 종말의 시작을 기하는 황제[9]다. 하필이면 야만족의 침입이 격화되고 제국의 재편성이 필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터져버렸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선 수백 명의 미소년, 미소녀들을 모은 하렘이 있었다고 하지만 신빙성은 그리 높지 않다. 여러 명의 후실 황비가 있었으며 정실 황후는 귀찮다는 이유로 폐서인하고 살해하였다. 시오노 나나미조차도 이런 악행은 곱게 보지 않았다. 다만 슬하에 자녀는 있었는지 의문인데 여러 명 얻었는지 몰라도 콤모두스가 암살된 이후 원로원과 근위대에게 참살되었을 것 같다. 설령 콤모두스의 자녀들이 잠시 동안의 내란기에서도 무사히 생존했다고 해도 후에 황위에 등극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가 콤모두스의 '기록말살형'을 철회했다고 해도 냉정한 세베루스 황제가 콤모두스의 후궁과 자녀들을 살려둘 리 없다.

여러 서적이나 백과 사전을 읽어봐도 콤모두스의 후실 황비와 자녀들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진짜로 전문적으로 로마사를 전공한 사람들도 모르는 것인가?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네로를 떠올리는데 콤모두스와 비교하면 명군이라고 불리기에는 많이 모자라고 막판에 실패했어도 네로는 최대한 할일을 하는 황제였다. 사치가 심했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지나친 심취[10], 무엇보다 로마 대화재 전후의 부적절한 행동[11] 때문에 폭군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사실 네로는 제위 기간 동안 선정을 펼치려고 노력했고 제법 성과도 올렸다. 거기에 이런저런 이벤트도 많이 열었고 개인적인 매력도 상당해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꽤나 인기있는 황제였다.

하지만 콤모두스는 정치할 생각을 아예 그만둔 암군이었다. 폭정이든 실정이든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오직 여흥과 취미생활 분야에서만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노력했고 가끔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숙청을 가하는 정도에 그쳤다. 다만 한번 터지면 제대로 성질을 부려서 관련자들을 잡아 죽였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역대 로마 황제이나 다른 나라의 황제에 비하면 성인군자로 보일 지경. 왕권이 어쩌니 하면서 신하들에 대해서 스토커적 감시를 하며 최대한의 경계를 하는 전제군주들에 비하면 아주 점잖은? 수준이었다. 하다못해 그의 치세에 노예,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는 언급이나 이야기도 없다. 다만 황제가 놀자판으로 하고 다니는데 국가 기강이 어지러워지지 않을 리는 없고, 오현제 시대의 성과 때문에 아직 제국에 남아 있었던 여유를 까먹으면서 버티기에는 무리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해서 기독교 박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건에 섭섭하게 여겼는지 애매모호하게 반응했다.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신고해도 콤모두스 황제가 무시하고 기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일로 짐을 귀찮게 하지 마."정도의 대응. 큰 연관성은 없겠지만 그를 시해한 암살에 가담한 후실황비가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어쨌든 잠시나마 기독교 공동체에 숨통을 튀어주었고 계속 명맥을 이어가게 한 것은 정말로 큰 업적이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선황 아우렐리우스에게 탄압을 받은 기독교가 콤모두스 치세에 연속해서 궁지에 몰리지 않았기에 다른건 몰라도 기독교 문헌이나 교황청에서 콤모두스를 지적해서 비판하는 경우는 없다. 사실 교황청 입장에서는 빌라도처럼 표창장을 주고 싶을지 모른다. 의외로 세상사람들에게는 명군으로 알려진 아우렐리우스가 기독교 탄압으로 후세에 기독교가 제국을 장악한 로마 말기나 중세 유럽에 신나게 혹평당하고 그의 기마상이나 동상은 보는 즉시 파괴할 정도로 미움을 받았다. 현대사회에 기독교 신자들이나 신학자들은 그를 어찌 보는지는 의문이지만?

로마 인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 기질은 뛰어났고 또한 특별히 대형사고를 친 것도 없으며 인민들을 핍박하거나 무리한 세금징수도 하지 않았기에 로마 제국이 그의 치세 중에 막장으로 치닫거나 하지는 않았다.[12] 하지만 그거 말고는 아무런 업적도 없다. 어느 정도였나면 콤모두스 사후에 "기록말살형"에 처해졌지만 뭘 한게 없으니 이름을 지울 기록조차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냥 용상에 등극하지 말고 콜로세움의 검투사 인생을 - 아버지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 살아가는 것이 좋을 뻔 했다.


여담이지만 그의 치세에 중국 한나라에서는 역시 비슷한 막장 테크가 일어났고 그 이후에 군웅들이 한 왕조를 무시하고 거병하는 내란이 발발하고 삼파전 분할대립으로 중국이 엉망이 되는 전개가 벌어졌다. 중국이나 로마나 이런 전개는 절대로 낭만이나 대서사시가 아니며 민생이 파탄나고 전란으로 생지옥이 되는 혼돈 그 자체였다. 중국의 경우를 봐도 삼국 분할이 끝나고 서진이 일시적으로 재통일했지만 얼마 못가 5호 16국 시대로 더 엄청난 재앙이 도래했다. 로마의 경우는 군인황제시대 이후에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치세는 일시적인 안정이 있었지만 그들 사후에 야만족의 침공을 저지하지 못하고 제국의 통제력은 겉잡을수 없을 무너지고 결국에는 멸망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천계제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황제로서는 부적합하지만 이들이 했으면 매우 적합한 직업이 있었다는 점이다. 콤모두스는 황제로서는 부적합했지만 검투사를 했으면 대성했을 인물이였고 천계제 역시 황제로서는 부적합한 인물이였으나 목수를 했으면 대성했을 인물이였다. 덕업일치하지 못한 자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4. 창작물에서의 모습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호아킨 피닉스가 배역을 담당. 한국어 더빙판 성우는 김일. 베스테아리로서의 전투 능력은 어딘가로 증발하고 찌질+시스콘 기질이 다분한 악당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지그 브리커로 질식시켜 죽인다(…). 썪씨딩 유, 퐈더 누나인 루킬라는 암살 시도 얘기가 없어진 채 선역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이 정도면 대체역사물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트라프 남작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콤모두스로 열연한 고전영화 마제국의 멸망[13]에서는 생부가 유명 검투사라는 설정이 나온다.[14](...) 황후의 부정을 제다이 기사인[15] 아버지 아우렐리우스가 눈 감아주었고 대신에 믿을 만한 부하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공화정을 부활시키려고 했는데 콤모두스의 부하가 그것을 알고 독살한 것으로 처리된다.[16]

비르투스》에서는 고증에 충실하게 무패의 검투사로 묘사되며 서쪽 나라에서 300승을 올린 웨르키우스가 콤모두스에게 도전하지만 패배하고 콤모두스는 내심 서쪽 나라에서 최고라고 칭송받는 자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시시하다고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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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라틴어를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름에 들어가는 "Commodus"는 놀랍게도 모두의 법이 되는 자라는 뜻이다. 세상에나 이 싸이코가...
  • [2] 180년 3월 17일부터 단독 통치.
  • [3] 게르만 부족들은 사산조 페르시아에 비하면 정치적, 군사적 요소가 부족했기에 로마군의 상대가 되기 힘들었다.
  • [4] 트라야누스 대제가 파르티아를 반 죽여놓은 상태에서 죽은 후 파르티아랑 화해했다.
  • [5] 로마의 전례로 현장에서 군단의 승인을 받아서
  • [6] 누나의 연인관계(?)라는 설정 때문인지 이 시대를 다룬 2차 매체에서는 반드시 이 사람과 루킬라를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 [7] 다만 기린이나 얼룩말이 약하다는건 육식 동물들과 비교해서지, 그래도 사람보다 훨씬 세다. 기린은 발차기로 사자를 일격사 시킬 정도이며사자보다 센 육식동물이 아프리카에 있던가? 그럼 육식 동물과 비교해서 약한게 절대 아닌데? 아프리카 생태계에서 코끼리, 하마와 함께 최상위권에 올라서는 강력한 육상 동물이다. 실제로 천적도 인간 말고는 거의 없다.
  • [8] 이후 황제인 페르티낙스는 근위대장인 레토에 의해 피살.
  • [9] 실제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콤모두스의 치세부터 시작한다.
  • [10]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많이 수용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1세기까지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로마인이 많았다. 철학만큼은 예외였지만 쾌락주의 같은 경우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 [11] 화재 전에 로마는 아름답지 못해서 다 때려부수고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 것, 화재 후 자신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독교도를 범인으로 몰아간 것 등
  • [12] 사실 로마 제국의 막장화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황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경제적, 정치적 변화였다. 이후 즉위한 황제들도 디오클레티아누스나 콘스탄티누스처럼 그럭저럭 수습만 했을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 게 그 증거다.
  • [13] 원제나 시대를 보면 로마 제국의 쇠퇴라고 보는 게 더 낫다
  • [14] 클라이막스에서 이 비밀이 밝혀지고 격분한 콤모두스는 친부를 죽이게 된다.
  • [15] 오비완 케노비로 유명한 알렉 기네스 옹이시다. 영화에서는 완벽한 철인 황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 [16] 콤모두스도 나중에 그 진실을 알게 되고 원래 황위에 오를 수 있던 부하도 그걸 알지만 일부러 황위를 포기하고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넘긴다. 로마 쇠퇴의 원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