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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야스트렘스키

last modified: 2015-03-06 14:38:18 Contributors



레드삭스의 레전드

이름 Carl Michael Yastrzemski
생년월일 1939년 8월 22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 주 사우스햄튼
포지션 좌익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메이저리그 입단 195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1961-1983)

196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
니 맥레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7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윌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대 주장
칼 야스트렘스키(????~1983) 짐 라이스


1967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칼 야스트렘스키 빌 러셀

보스턴 레드삭스 영구결번
No.8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기타

1. 소개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구결번자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타격의 달인. 테드 윌리엄스에 이은 레드삭스 본좌라인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화이티 포드, 스탠 뮤지얼 등과 함께 폴란드계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도 기록되었다. 별명은 Yaz. 이런 별명이 생긴 이유야 당연히 팬들이나 기자들이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다. 이렇게 꼬이게 된 원인은 성 한가운데에 있는 z가 원인으로 z만 없으면 그렇게까지 헷갈릴 철자는 아니다. z가 영어의 상식으로는 있기 힘든 위치에 있어서 그렇게 된 거.


2. 생애

테드 윌리엄스가 데뷔한 1939년 뉴욕 근교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에는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서 핀스트라이프 저지를 입고 뛰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학 시절 뉴욕 스카우트가 그에게 큰 관심을 보였으며 양키스타디움에 초대를 받기도 했는데 클럽하우스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는등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고 자신의 자리도 없을 거라 판단하여 결국 MLB에서 빨리 뛰겠다는 의지로 뉴욕의 철천지 원쑤 보스턴 레드삭스와 사인한다. 마침 레드삭스가 양키스보다 더 많은 계약금을 제시한 것도 있었고...

그렇게 60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하여 테드 윌리엄스에게 가르침을 받는등[1] 좋은 성장세를 보였고, 61년에 처음 빅리그에 올라왔다. 다만 당초 맡아왔던 유격수 포지션이 아니었다. 그리고 레드삭스를 이끌었던 레전드는 은퇴했다. 레드삭스가 윌리엄스의 후계자로 야스트렘스키를 지명한 것이다.

하지만 첫 해에는 11홈런 타율 .266에 머무르며 (루키 치고는 훌륭한 성적이긴 하지만) 레드삭스의 좌익수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며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19홈런과 .296을 시작으로 테드 윌리엄스에 이은 새로운 본좌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진정한 본좌가 되었다.

기존에 야즈는 교타력에 비해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좌익수로서 파워가 떨어진다는 점은 두고두고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런 지적을 알고 있던 야즈는 67년을 앞두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여 장타력 상승을 시도했고, 44홈런을 쳐냈다. 그리고 교타력도 대폭발, 189안타를 쳐내고 .326의 타율과 121타점을 기록, 트리플 크라운[2][3]을 달성하며 하먼 킬러브루를 제치고 AL MVP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밥 깁슨이 1.12를 찍는 등 라이브볼 시대 최악의 투고타저 속에서 아메리칸리그 유일의 3할 타율[4]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레드삭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캡틴[5]으로 군림했다. 또한 전임 좌익수인 테드 윌리엄스가 수비에서는 다소 약했던 것과 달리 그린 몬스터를 완벽히 꿰뚫어보는 훌륭한 수비와 강견[6]을 바탕으로 7회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따냈다. 나이 들어서는 1루로도 많은 경기를 출전했다.

그리고 1979년에 아메리칸리그 최초이자 양대리그 통산 세 번째로 400홈런-3000안타를 모두 달성하며 명예의 전당을 예약했다. 이후 83년까지 활약하며 총 3419안타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역대 9위에 랭크된다.[7] 또한 3,308경기 출전 기록은 피트 로즈의 3562경기에 이은 역대 2위이며, 단일 클럽에서 보낸 23시즌은 볼티모어 오리올스브룩스 로빈슨과 함께 역대 최장기간 기록이다. 당연히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은 떼논 당상으로, 94.63%의 높은 지지율로 헌액되며 깐깐하기로 소문난 레드삭스 영구결번 규정을 가볍게 충족시켜 야즈의 8번은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다만 .369 .447 .600에 빛나는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에도 불구하고 콩라인인데, 196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밥 깁슨의 3완투에 밀려 7차전 끝에 패했고, 1975년 빅 레드 머신에게 당한 7차전 패배, 1978년 뉴욕 양키스와의 원게임 플레이오프 버키 덴트의 홈런으로 당한 패배 등 여러가지로 우승복이 없었다. 그래도 1983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 레드삭스는 순금 10K 반지를 특별히 제작하여 우승반지를 얻지 못한 야즈에게 은퇴 기념 반지를 선물했다.

3. 기타

  •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이 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레드삭스 팬으로 인정하지 않는단다(...) 드루 배리모어가 주연한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 잘 드러나는데, 보삭스빠 남자친구를 만나 처음 야구장에 와서 각종 보삭스 입문서를 사제낀 린지 믹스(드루 배리모어 분)가 "칼 야스트르..."라고 버벅대자 주변에 있던 시즌 티켓 홀더들이 바로 반응하여 Yas-TREM-ski!라고 발음해준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그리 똑똑한 년은 아닌가벼"라고(...)

  • 손자인 마이크 야스트렘스키도 좌완투수와 외야수로 활동하는 야구선수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범상치 않은 혈통을 믿고 지명했지만 과감히 밴더빌트 대학교 진학을 선택했고, 2012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받았지만 할아버지가 학위를 딸 것을 조언하여 대학에 잔류했고, 대학 졸업 신분으로 나온 2013년에는 14라운드라는 전보다 높은 라운드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지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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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후에도 야즈의 팬임을 천명하며 대놓고 자신의 후계자로 밀어줬다. 특히 지독한 연습덕후였던 야즈의 노력에 반했다고.
  • [2] 이후 45년이 흐른 2012년에야 타격 트리플 크라운이 나왔다. 그 주인공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미겔 카브레라.
  • [3] 테드 윌리엄스 曰, "1967년의 야스트렘스키는 베이브 루스이자 호너스 와그너였으며, 타이 콥이었다"
  • [4] 세이버메트리션들은 68년 야즈의 .301은 1930년 빌 테리의 .401과 마찬가지라 평했다. 그의 통산 타격 비율스탯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 치고는 꽤 낮은 편인데, 이는 그가 전성기를 보낸 60~70년대가 타자들의 암흑기이자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고타저 시대였기 때문이다.
  • [5] 역대 레드삭스 최초의 공식 캡틴이다. 2대 캡틴은 야즈의 후계자 좌익수인 레드삭스 영구결번자 짐 라이스이고, 3대는 제이슨 배리텍. 그 외에 'The Commander' 칼튼 피스크가 야즈에 이은 제2대 캡틴으로 유력하긴 했지만 구단과 연봉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며 1980년을 끝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다. 배리텍을 끝으로 현재는 캡틴을 선출하지 않는다.
  • [6]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부문 어시스트 1위를 7번이나 했다. 통산 195개의 외야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좌익수로 기록한 177개의 어시스트는 밥 존슨, 구스 고슬린에 이은 역대 3위.
  • [7] 1900년 이전에 뛴 캡 앤슨을 제외한다면 역대 8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