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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말론

last modified: 2015-02-23 18:36:33 Contributors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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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의 영원한 파트너 존 스탁턴과 함께

이름 Karl Anthony Malone
생년월일 1963년 7월 24일생
2m6cm
체중 120kg
포지션 파워포워드
드래프트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3순위
유타 재즈에 지명
소속팀 유타 재즈(1985~2003)
LA 레이커스(2003~2004)
등번호 32번, 11번(레이커스 시절)
수상내역 정규시즌 MVP 2회(1997,1999)
All-NBA First Team 11회
All-NBA Second Team 2회
All-NBA Third Team 1회
All-Defensive First Team 3회
All-Defensive Second Team 1회
NBA All-Rookie Team(1986)
NBA All-Star Game MVP(1989, 1993)

유타 재즈 영구결번
No.32

1997년 NBA 정규시즌 MVP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마이클 조던
1999년 NBA 정규시즌 MVP
마이클 조던 칼 말론 샤킬 오닐

1989년 NBA 올스타 MVP
마이클 조던 칼 말론 매직 존슨
1993년 NBA 올스타 MVP
매직 존슨 칼 말론 & 존 스탁턴 스카티 피펜

Contents

1. 개 요
2. 전반적인 커리어
3. 이것저것

1. 개 요

NBA선수. 존 스탁턴과 함께 유타 재즈의 살아있는 전설. 18년간 유타 재즈에 몸담았다. 1996년에는 NBA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며 NBA가 선정한 역대 위대한 50인의 선수 중 한명이다. 통산 득점 36,928점으로 역대 2위인 선수이기도 하다.

2. 전반적인 커리어

루이지애나 공대를 나온 칼 말론은 1985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된다.[1] 루키 시즌부터 주전을 맡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2년차 시즌에는 20-10을 달성하는 리그의 엘리트 파워포워드로 자리매김 하였고 그 후에는 약점이었던 자유투도 향상시키면서 막기가 까다로운 선수가 되었다. 30득점-10리바운드 이상의 시즌스탯을 기록한 마지막 선수로써(31.0득점 11.1리바운드) 득점력에 있어서는 역대 NBA 파워포워드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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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칼 말론의 스탯. 무려 19시즌을 NBA에서 뛰면서 커리어 평균 25-10의 위엄.

존 스탁턴과의 콤비플레이는 지금도 올드팬들에게 많이 기억하는 부분.[2] 둘의 픽 앤 롤과 픽 앤 팝은 정말로 알고도 못막는 수준의 무시무시한 전술이었다. 원래 픽앤롤의 경우 농구에서는 기본적인 전술중 하나이지만 이 둘이 펼치면 훌륭한 공격옵션이 된다. 팬들은 칼 말론의 꾸준한 플레이를 빗대어 그에게 우편배달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본인도 마음에 들어하는 별명이었다고.

전성기가 정말로 길었던, 존 스탁턴과 함께 NBA를 대표하는 철인중 한명이였다. 11년 연속 All-NBA First Team은 수 많은 NBA선수들중에서 오직 말론만이 기록한 기록이다. 현역 생활을 한 19 시즌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했으며, 2002년11월3일 나이 39살 100일 근처에서 데뷔 이래 최초로 경기에서 무득점하였다.흠좀무

1992년과 1996년 올림픽에서 미국농구대표팀 드림팀 1,3의 멤버로써 두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두번의 올림픽때도 존 스탁턴과 함께 했다.

하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97년도와 98년도에는 팀을 파이널에 올려놓았으나 상대팀은 막강전력을 자랑하는 시카고 불스였고 이들은 분전했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2003년 존 스탁턴은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정말 우승한번 해보는게 소원이었던 칼 말론은 18년간 정든 유타 재즈를 떠나 LA 레이커스와 150만달러라는 헐값에 계약했다. 전년도 연봉으로 무려 1900만달러를 받던 말론이 얼마나 우승을 하고 싶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

그러나 레이커스가 사용하던 전술인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하느라 고생했고, 이제 좀 적응을 하는가 싶더니 부상크리를 당하면서 시즌 절반가량을 개점휴업해야만 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리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파이널에 올라 이젠 우승을 하는가 싶더니.....의외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말론은 04-05시즌에도 선수생활을 하려고 했다.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하던 중이었지만 많은팀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부상회복이 더딘 탓이었을까. 선수생활지속이냐 은퇴냐를 두고 고민하던 칼 말론은 결국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때 자신이 유타 재즈 시절 달던 32번이 델타 센터 천장에 오르는 걸 희망했다. "지금 사용하는 유니폼이 아닌 옛날 유니폼으로 걸어줬으면 좋겠다" 는 바람과 함께.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은퇴 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2010년에 명예의 전당에 개인자격과 1992년 드림팀1의 멤버 자격으로 헌액되는 감격도 누렸다.

3. 이것저것


보다시피 저게 농구선수인지 프로레슬러인지 구분이 안될 근육맨이라 WCW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한적이 있다. DDP와 함께 태그팀으로 헐크 호건데니스 로드먼 팀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단발성 출연은 아니었고 몇 번 나오기도 했다. 또한 피트니스 영상도 찍었을 정도로 몸관리가 매우 철저했던 선수이다.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커리어 내내 더티 플레이때문에 말이 많았다. 특히 상대의 밀착수비를 팔꿈치를 휘둘러 떨어뜨리는 비신사적 플레이가 대표적.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팔뚝굵기도 장난이 아니어서 맞은 상대는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버린다. 데이비드 로빈슨도 말론의 팔꿈치에 관자놀이를 제대로 맞아 기절했을 정도. 가장 유명한 것은 아이재이아 토마스에게 시전한 팔꿈치로, 머리를 강타당한 토마스는 잠시 일어나지 못할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둘은 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2004년에는 ESPN이 선정한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더티 플레이어 2위" 당당히 선정되었다.(...)

위에 언급한 위대한 50인 선정발표때 유이하게 야유를 받은 인물이다.(...) 한명은 샤킬 오닐. 야유의 이유는 확신할수 없으나 팔꿈치 사용이 주 원인이었을지도.

명예의 전당 헌액때 받은 자켓을 기부했고, 또 모교인 루이지애나 공대에도 35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가 27세 때에 결혼한 부인인 케이 말론은 미스 아이다호 출신의 미녀이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런데 후에 그가 결혼하기 전에 낳은 다른 숨겨진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미지가 엄청나게 실추되었다. 2012년 NFL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공격 라인맨으로 뛰고 있는 드미트레스 벨(1984년생)이 바로 말론이 20살에 당시 13살이었던 드미트레스의 어머니 글로리아에게서 낳은 숨겨진 아들이었던 것. 하지만 말론은 벨과 부자관계 성립을 거부한 반면, 벨의 어머니가 아닌 그가 17살에 사귄 다른 여자인 보니타 포드와 사이에서 낳은 또다른 아이들인 쌍둥이 남매(1981년생) 데릴 포드와 셰릴 포드와는 부녀관계를 유지하려고 해서 많이 까였다. 더군다나 벨 가족측이 벨의 양육비를 보내달라고 했을때도 거절했다해서 또 까였다. 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성인이 된 후에야 칼 말론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 말론이 "뭐 이제와서 친한척하기도 그러니까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라"라고 말했다고 한다상남자. 포드 남매와 드미트레스는 일단 서로 교류는 있다고 한다.

가장 흑인문화가 발달한 루이지애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취미 생활은 낚시와 사냥이라고 한다.(...) 바클리의 말에 따르면 흑인의 탈을 쓴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평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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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말론의 평가는 대단히 높은 편이었으나, 말론은 대학에서 학년이 오를수록 스탯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여 평가를 상당히 깎아먹었고 드래프트에서 13픽까지 밀리게 되었다. 덕분에 유타는 명전급 빅맨을 겨우 13픽으로 득템하고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우승을 못했다
  • [2] 당시 최고의 농구선수를 뽑으라면 한명이면 마이클 조던, 두명이면 존 스탁턴&칼 말론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