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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9-09-10 21:30:0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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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주말리그 서울 B
경동고등학교 덕수고등학교 배명고등학교 장충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청원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70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이영복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우승 기록[1] 8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1회(1990) 3회(1972, 87, 2019) 4회(1980, 2005, 09, 10)
청룡기 - 1회(2014) 2회(1981, 2011)
황금사자기3회(1990, 2009, 11) - 3회(2000, 08, 12)
봉황대기4회(1977, 88, 95, 2007) - 3회(1978, 83, 93)
협회장기 - - -

197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상업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1988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북일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동산고등학교
199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경남상업고등학교
199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인천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상업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200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정보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200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201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 충암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Contents

1. 연혁
2. 기행의 야구부
3. 출신 선수


1. 연혁

1970년 창단된 팀으로 재단의 강력한 후원 아래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고교야구 무대에서 정상권을 노크했다. 당진시 태생으로 서대전중을 졸업한 정순명을 스카우트해서 팀의 첫 에이스로 삼아 창단 3년만인 1972년 대통령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팀 역사의 시초였다. 그리고 1977년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여 봉황대기에서 우승하면서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충암고 시절 김성근조범현

당시 우승의 주역들은 서울 태생이 아니라 대구 대건고등학교 야구부가 해체될 때, 그 선수들을 모두 데리고 오면서 성공한 것으로 봉황대기 MVP를 차지한 포수가 바로 조범현이다. 그러나 충암고의 감독 김성근은 "신일고 감독 자리가 비었는데 가 볼까?"라는 농담을 김동엽 앞에서 했다가 진짜로 신일고 교장을 데리고 온 김동엽에 의해 신일고로 옮기게 되었고, 졸지에 수장을 잃은 충암고는 김성근 바로 직전의 신일고 감독인 한동화를 영입해 감독으로 앉혔다. 스승에게 배반당했다고 생각한 충암고 선수들은 신일고 상대로 독하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스왑은 망했다(...) 둘 다 양 학교에서 기대했던 우승을 이끌지 못한 것이다. 4강 2번이니 아주 망한 것은 아니지만, 전국 각지의 중학생을 데리고 온 것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1990년 대통령배 우승

다행히 충암고측 재단은 산하 초등학교부터 야구부를 일구기 시작했고, 그 멤버들이 무럭무럭 자라 고교생이 되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자체 수급한 선수들로 전국 무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실은 1988년 투수 공의식과 당대 고교 최고의 유격수 유지현이 등장하여 봉황대기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1990년에는 심재학-이원식-송재용 3인방에 2학년 포수 최기문을 앞세워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95년에는 OB 베어스 항명파동 당시 모교에서 훈련하던 장호연에게 슬라이더를 배운 박명환의 각성을 앞세워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준수한 명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충암고 재단과 학부모 간의 충돌이 시작되면서 2000년 말 급기야 대거 전학생이 발생하는 사태가 빚어지며 선수가 단 4명만 남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2] 거의 해체 일보 직전까지 가면서 충암고 야구부는 졸지에 약체로 전락했고,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충암고 출신 선수들은 그 양과 질이 현저하게 떨어져 프로 배출 선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에 이른다.

다행히 2004년 이영복 감독 선임 이후, 충암고 야구부는 안정을 찾아 2004년 대통령배 4강을 시작으로 팀 재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실은 2007년 봉황대기에서 홍상삼의 역투를 앞세워 우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마지막 동대문야구장 고교야구 결승이라 모든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나온 홍상삼의 똘끼와 충암고 선수들의 과도한 세러머니로 찍히는 부작용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충암고의 재건은 완전히 자리가 잡혀 2009년 문성현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 2011년에는 변진수의 역투에 힘입어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고, 우승이 없던 2008, 2010. 2012년에도 4강에 진입하는 등, 꾸준한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은 잠시 쉬어간 충암고는 2014년 청룡기에서 조한욱의 호투를 앞세워 결승에 올랐지만, 덕수고에 패하며 아쉽게 청룡기 첫 우승의 기회는 놓쳤다.

2. 기행의 야구부

식빵왕 홍상삼 댄스경영대회

인터넷에서 기행과 관련된 고교야구팀 하면 충암고가 단연 1순위로 뽑힌다. 응원가도 고교야구에서 유별나기로 소문나있고 선수들의 행동도 개그스러운 유별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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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해임당한 곽성열 감독을 따라 다수의 선수들이 새로 창단한 한광고등학교 야구부로 옮겼고 여기에 다른 팀에서 몇몇 선수들이 추가로 합류했다. 그러나 한광고 야구부는 창단 2년도 안 되어 해체되었고 선수들은 다시 흩어졌으며 곽성열 감독은 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 [3] 리그베다 위키 등록 선수 한정
  • [4] 2012년 윤상균에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