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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호

last modified: 2015-03-08 22:59:41 Contributors


이름 최순호 (崔淳鎬 / Choi Soon-Ho)
생년월일 1962년 1월 10일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충청북도 청주시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5 cm
유스팀 광운대학교 (1981~1982)
선수시절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1980~1982)
포항제철 아톰즈 (1983~1987)
럭키금성 황소 (1988~1990)
포항제철 아톰즈 (1991)
로데스 AF (1992~1993)
국가대표 95경기 / 30골
감독 커리어 포항제철 아톰즈 코치 (1992~1993)
포항 스틸러스 코치 (1999~2000)
포항 스틸러스 (2000~2004)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06~2008)
강원 FC (2008~2011)
FC 서울 미래기획단 단장 (2012~2013)

198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순호
FW
이태호
FW
종철
MF
박창선
MF
허정무
MF
영증
DF
용환
DF
박경훈
DF
박성화
DF
종수
GK
연교


전 축구 선수 및 지도자,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아시안컵 최연소 득점왕 (만 18세)

Contents

1. 선수시절
1.1. 클럽
1.2. 국가대표
2.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1. 선수시절

1.1. 클럽

1980년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였고, 1981년 광운대학교에 진학하였다.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프로화된 포항제철로 입단하여 5시즌 동안 55경기 24골을 기록하였다. 이 시절 1986년 팀의 우승과 1985년과 1987년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년 럭키금성으로 이적한 후 3시즌동안 28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럭키금성에서도 1989년 준우승과 1990년 우승을 경험하였다. 이후 1991년 포항제철로 복귀하여 1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골은 없었다. 1992년 프랑스 2부리그 로데스 AF로 이적하여 18경기 2골을 넣었고 프로생활을 마감하였다.
K리그 통산 9시즌 100경기 23득점 19도움. A매치 기록 95경기 30득점과 비교해보면 지금 상식으로는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는 리그 스탯이지만, 쌍팔년도 당시에 전국구 선수라면 저게 정상이었다. 프로팀은 대표선수 월급 주는 호구쯤으로 여기고 마구잡이로 차출해서 굴리던 시절이었으니(...)[1].

1.2. 국가대표

최순호는 79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 청소년 국가대표로 데뷔하였고, 1980년 8월 23일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198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만 18세의 나이로 7골을(!) 넣으며 역대 최연소 득점왕에 올랐고,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로 나서서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 62분 1:1이 되는 동점골을 넣었다.[2] 하지만 그 경기에서는 2:3으로 졌다. 이러한 활약으로 유벤투스 FC 구단이 그의 영입을 위하여 구애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유벤투스 구단의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물론 구단 수뇌진까지 나서서 최순호를 잡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최순호의 플레이를 직접 보기 위해 그가 출전하는 국제대회 현장에 구단 관계자들이 파견되기도 했다. 그런 노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외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토와 포항제철 구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유일한 득점인 스페인전 황보관의 시속 114킬로 대포알 프리킥을 톡 차서 어시스트한게 최순호(...) 나름 멸망직전인 한국국대 중 그나마 준수한 플레이를 했으나 기본적으로 이 대회는 86년 이후 한국 월드컵 진출사에서 독보적으로 흑역사에 가까운 대회라(...심지어 14 브라질 월드컵도 1무는 했다)

사실 월드컵 본선보다 본선진출을 위한 아시아예선에서 최순호의 활약은 눈부셨다. 1986년 한국의 36년만의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맹활약한 것도 최순호였으며 마치 2000년대 이후 안정환처럼 한국국대의 중요한 장면은 대부분 그와 연관되어 있을 정도로 국대공헌도가 높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으로 이어지는 한국축구 에이스계보의 한 명이다.

2. 플레이 스타일

천재 그것도 대한민국 축구 백여년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힌다.

즉 어느 액받이 무녀처럼 조금 재능이 있다고 호들갑스러운 언론이 갖다붙인 수식어가 아니라, 축구전문가와 팬들이 인정하는 진짜 천재.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최순호는 신체조건과 파워와 스피드, 축구 테크닉, 축구 지능 등 축구선수가 갖추고 있어야 할 거의 모든 긍정적 요소를 모두 갖춘 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선수였다. 185㎝의 장신에도 몸이 유연하고 발재간도 뛰어났다. 또한 슈팅 역시 날카롭고 강력했으며, 시야가 넓어 패싱 능력도 일품이었다.

특히 패싱에 관련된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8경기에서 1골을 넣고 8골을 도운 것이 그것이다. 대표팀은 8경기에서 17골을 터뜨렸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인 9골이 모두 최순호의 발끝에서 만들어진 것. 당시 대표팀에서 골가뭄을 겪으며 부진을 겪고 있던 시기라 자신이 득점을 노리는 대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 패싱과 어시스트 위주의 경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8경기 8도움이 되었다(...)골이 안 들어가면 어시스트를 노리면 됩니다. 참 쉽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구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어느 누구도 적시에 최순호에게 패스를 넣어주거나 최순호의 패스를 받을 최적의 위치를 선점하지 못했다(...).

3. 지도자

1992년 은퇴 이후 포항제철의 코치로 스태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9년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2000년 박성화 감독의 사퇴로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절 2001년과 2002년의 FA컵 준우승, 2004년 리그 준우승을 거두는 등 성과를 거둔것 같아보이지만 최순호 특유의 수비축구로 인해 포항팬들이 다 떠났고 결정적으로 2004년 후기리그에서 꼴찌를 찍는 바람에 재계약의 명분조차 사라졌다.[3]
2006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내셔널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우승으로 K리그 승격을 기대하였으나 무산되었다.
2008년에도 리그 우승을 이룩하였고, 2008년 12월 새로 창단된 강원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년 성적 부진으로 강원 FC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2012년 FC 서울의 미래기획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2013년부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역대급 황금세대라는 U-19 대표팀이 조별예선에서 14년만에 광탈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강원라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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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최순호의 선수 생활은 전두환-노태우 재임시기였고, 소속팀 포철의 구단주는 여당 국회의원 박태준이었다. 29만원 각하께서 선수 출장시키라는데 거부할 수 있을리가 있나. 당시 위용이 어느정도였느냐 하면 88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은 출장을 못한다고 해서 대학 졸업한 국대선수들이 프로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버렸을 정도였다
  • [2] 이 골은 외국에서도 월드컵 역대 멋진 골을 선정하면 종종 순위권에 올라가는 환상적인 골이다
  • [3] 당시 K리그는 전후기제도였는데 전기리그를 우승했기때문에 후기리그에 꼴찌를 했어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후기리그동안 고작 2승을 찍으면서 신임을 다 깎아먹었고 통합 준우승이 결정타가 되어 재계약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