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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last modified: 2016-03-01 21:25:43 Contributors

ECA(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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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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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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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스
(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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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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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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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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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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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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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키르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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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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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더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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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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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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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Chel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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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벤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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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Porto)

2014-15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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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New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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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Leic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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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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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
(M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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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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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리
(Burn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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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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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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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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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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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Arse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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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톤 빌라
(Aston 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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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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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브롬
(West B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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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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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Chel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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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 파크 레인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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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팰리스
(Crystal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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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Totten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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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l)

첼시 FC
Chelsea F.C.
정식 명칭 Chelsea Football Club
애칭 더 블루스(The Blues), 더 팬셔너즈(The Pensioners)
창단 1905년 3월 10일
소속 리그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 런던(London), 풀럼(Fulham)
홈 구장 스탬퍼드 브리지(Stamford Bridge)
42,055명 수용 가능
라이벌 풀럼 [1], QPR, 아스날, 토트넘 핫스퍼, 리버풀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
회장 루스 벅(Bruce Buck)
감독 주제 무리뉴(José Mourinho)
주장 존 테리(John Terry)
부주장 페트르 체흐(Petr Čech)
최고 이적료 영입 페르난도 토레스(Fernando Torres)
(2011년, From 리버풀 FC, 5850만 유로)[2]
최고 이적료 방출 다비드 루이스(David Luiz Moreira Marinho)
(2014년, To 파리 생제르맹 F.C., 6300만 유로)[3]
우 승 기 록
프리미어 리그 우승
(4회)
1954-1955, 2004-2005, 2005-2006, 2009-2010
챔피언십 리그 우승
(2회)
1983-1984, 1988-1989
FA컵 우승
(7회)
1970, 1997, 2000, 2007, 2009, 2010, 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2012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2013
리그컵 우승
(5회)
1965, 1998, 2005, 2007, 2015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4회)
1955, 2000, 2005, 2009
풀 멤버스 컵 우승
(2회)
1986, 1990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2회)
1971, 1998
UEFA 슈퍼컵 우승
(1회)
1998
공식 홈 페이지 http://www.chelseafc.com
UEFA가 주관한 모든 메이저 유럽대항전 대회[4]를 우승한 유일한 잉글랜드 클럽[5]
EPL 역대 최다승점 우승(95점)[6], 시즌 최다골(103골)[7], 시즌 최소실점(15실점)[8] 기록을 보유한 EPL의 대표적인 강팀 중 하나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창단
2.2. 로만, 그리고 주제 무리뉴의 등장
2.3. 무리뉴가 떠난 후
2.4. 08-09 시즌
2.4.1. 스콜라리 하의 첼시
2.4.2. 히딩크 하의 첼시
2.5. 09-10 시즌
2.6. 10-11 여름 프리 시즌
2.7. 10-11 시즌
2.8. 11-12 시즌
2.8.1. 프리 시즌
2.8.2. 겨울 이적 시장
2.8.3. 11-12 시즌
2.8.4. 11-12 시즌의 기적
2.9. 12/13 시즌
2.9.1. 프리 시즌
2.9.2. 겨울 이적 시장
2.10. 13/14 시즌
2.10.1. 프리 시즌
2.10.2. 겨울 이적 시장
2.11. 14/15 시즌
2.11.1. 프리 시즌
2.11.2. 겨울 이적 시장
2.12. 로만 집권 후 잦은 감독 교체와 스타 영입 실패의 원인
3. 라이벌
3.1. FC 바르셀로나와의 악연
4. 스쿼드
5. 역대 성적(99~00시즌 이후)
6. 응원가
7. 첼시 레이디스
8. 기타

1. 소개

잉글랜드 런던의 풀럼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9] 창단 연도는 1905년이며 팀 컬러는 전통적으로 푸른색과 흰색의 조합이다. 애칭은 "더 블루스(the blues)" .

구장이 먼저 지어지고 소유권을 구단이 산 케이스다. 왜냐하면 풀럼에 위치한 스탬퍼드 브리지는 원래 풀럼 FC에게 제공될 예정이었으나 풀럼이 이 제의를 씹으면서 막 창단된 첼시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첼시는 런던의 첼시지구에 위치해 있지 않고 풀럼에 위치해 있다. 실제 첼시는 런던의 부촌으로 팬들도 부자가 많고, 특히 모바일 관련 기업의 오너들도 많은데 예전 초기 팬들은 노동자 계층이었다. 축구 팀들이란 게 노동자들이 일 끝난 후 취미 형식으로 만들어 하던 것들이니. 현재는 부유한 팬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2003년 이후부터 돈을 처바르고 우승권에 든 구단이라고 욕을 들어먹긴 하지만 만수르 인수 전까지 강등권을 맴돌던 맨체스터 시티와 달리 중상위권 성적을 내던 클럽이었기에 억울한 측면도 있다는 평이다. 밑에 역대 성적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90년대 중반부터 로만이 인수하기 전 최저 성적이 리그 6위였을 뿐이다. 더불어서 선수 몸값을 올린 주범이자 선수진 전체의 몸값도 비싸다고 비난을 받는데 첼시 선수단 몸값을 다 합쳐도 갈락티코스 정책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며, 리그 라이벌 맨유 역시 남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첼시 팬들은 항변한다.

하지만 타팀 서포터즈의 주장대로 chel$ki(국내에선 돈시)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을 정도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돈이 구단의 몸집을 키우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우승, 스쿼드, 구단 시설 등). 하지만 한때 세계 경제 위기로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재산이 줄어들면서 짠돌이 구단으로 탈바꿈했던 적도 있었다.

삼성은 파란색의 팀 컬러, 첼시 팬인 여러 대기업 오너들과의 인맥 등을 고려한 결과 첼시가 3시즌(2006/07~08/09) 리그나 챔스를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스폰서 계약 연장을 했다. 그리고 09/10 시즌 첼시가 더블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삼성도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그리고 2015년 2월 17일,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과의 16강전 응원을 위해 프랑스로 간 일부 첼시 팬들이 보인 인종차별주의 행태와 "인종차별주의자인 게 자랑스럽다"는 정신 나간 망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공개적인 팀 망신과 나라 망신까지 사며 국제적인 까임+조롱거리가 되고 있다.#아예 똥도 흰색으로 싸지 그러냐? 라는 댓글이 일품이다.
이에 구단은 즉각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밝혔으며, 또한 해당 비디오의 인물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해당 사건 이틀 뒤, 가담자 3명을 평생동안 스탬포드 브릿지에 입장 금지조치 했음을 밝혔으며, 그 다음날에는 2명을 입장금지조치하는 등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감독인 조세 무리뉴 역시 번리 FC전 경기전 기자회견에서 불쾌감을 표현하고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였다. 또한 구단과 무리뉴 둘다 피해자에게 자필편지를 보냈으며,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리는 경기에 초대했음을 밝혔다.

2. 역사

2.1. 창단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소속 프로 축구 구단으로 1905년 3월, 라이징 선(해오름)이라는 술집에 모인 여러 주주들이 모여서 만든 게 시초이다. 2부 리그 소속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첼시는, 조지 힐스톤, 지미 윈드리지, 닐스 미들보 등의 슈퍼스타를 앞세우며 1906/07 시즌 준우승을 거두며 1부리그로 올랐고, 다음시즌 13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1부 리그에 정착했다. 창단 10주년인 1914/15 시즌 FA 컵 준우승을 거두었고, 1919/20 시즌에는 리그 3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꾸준히 중상위권을 넘나드는 팀으로 자리잡았으나 2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구단을 해체할 위기에 놓였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52년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인 테드 드레이크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테드 드레이크는 축구적인 면 외에 구단의 전반적인 현대화 작업을 진행시켰는데, 우선 스타 플레이어 영입에만 의존하던 어?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켄 암스트롱, 존 해리스등 전도유망한 유망주들을 수집하고, 유스시스템을 재정비해 팀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드레이크 감독의 노력에 힘입어 첼시는 1954/55 시즌, 드디어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둔다. 하지만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 1회 대회(1955년)는 당시 대회 자체를 무시하던 FA의 압력으로 참가를 포기해야 했다.

1960년에는 토미 도허티가 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도허티 감독의 지휘 아래 1964/65시즌, 2개 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리그 우승, FA컵 우승, 리그 컵 우승이라는 트레블을 달성할 기회를 얻었으나, 리그 컵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에도 데이브 섹스톤, 존 닐 감독 등을 거치며 1969/70 시즌 다시 한번 FA 컵 우승을 거두었고, 1970/71 시즌에는 유로파리그 전신인 컵 위너스 컵]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70년대 후반, 첼시는 스탬포드 브릿지의 재건축으로 인해 구단의 재정이 심각하게 흔들렸고, 팀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매각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이후 1978/79 시즌에는 1부리그에 참가한 이래 처음으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으나, 1982년 켄 베이츠가 구단주로 취임하고, 1983년 존 닐 감독이 부임해 1983/84 시즌 2부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며 다시 한 번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1부리그로 승격한 첼시는 1987/88 시즌 다시한번 강등되고, 이듬해인 1988/89 시즌 또 2부리그 1위를 차지해 1부리그로 승격한다.

프리미어 리그 개편 이후에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1994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1996년 발롱도르컨덴터인 트 굴리트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여 1996/97 FA컵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지금까지도 첼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취급받는 안프랑코 졸라가 영입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후 지안루카 비알리가 팀을 맡아 1997/98 시즌에는 2번째 컵 위너스 컵 우승 및 UEFA 슈퍼 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1999-2000 시즌에는 리그에서 맨유를 5:0으로 이기기도 했으며 그 해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진출(덜미를 잡은 게 FC 바르셀로나)했고 5, 6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중상위권 팀으로 저력을 보였고 2002-03 시즌에는 4위를 차지하며 4강에도 진입했다.

이 시절 구단주인 켄 베이츠는 1982년 첼시가 가진 빚을 갚고 1 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값을 내며 구단을 샀다. 그의 투자로 중하위에 맴돌던 첼시는 중상위권에 들면서 안정적인 성적을 내긴 했으나 그도 결국은 많은 빚을 져야 했고 결국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구단이 진 빚을 청산함과 동시에 구단을 팔고 만다. 참고로 베이츠는 첼시를 판 돈으로 2005년 리즈 유나이티드를 샀지만 3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일을 겪게 된다.

EPL 출범 이후 간간히 챔스에 출전하기도 하는 등 중상위권 팀이었으나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인수 될 즈음에는 챔스에 단골 출전하게 되면서 빅4의 일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유럽의 강호로 평가받을 만큼 강호의 이미지를 굳힌 팀으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돈 발라서 급격히 강해진 하위 팀'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그런 중위권 팀이었으나, 90년대 중반, 팀을 괴롭히던 고질적인 경기장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고 대대적인 투자로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기에 팀 감독까지 했던 비알리, 디 마테오, 첼시의 레전드로 기억되는 졸라 등 이탈리아 출신의 선수들[10]과 98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드사이, 데샹, 르뵈프, 프티,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한 하셀바잉크, 오베르마스와 더불어 윙을 보면서 폭발적인 돌파력을 보여준 젠덴 등을 영입했다. 결국엔 부채를 껴안았으나 극적인 챔피언스 리그 진출과 결국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인수로 위기에서 벗어났다[11].

2.2. 로만, 그리고 주제 무리뉴의 등장

2003년 6월 로만은 당시의 첼시의 빚까지 모두 청산하고 첼시를 인수한다. 이후 로만은 한 시즌이 지난 03/04 시즌 후 감독이었던 라니에리(전 인테르 감독, 현 레스터 시티 감독)를 03/04의 리그 2위, 챔스 4강의 부진한(?) 성적에 따라 경질하고, 04/05 시즌에 FC 포르투의 03/0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중년 간지 주제 무리뉴를 감독으로 영입한다. 이와 함께 로만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되었다. 당시 첼시의 이미지가 지금처럼 유럽의 강호가 아니었기에 막상 당대 최고의 스타를 영입하지는 못했고, 대부분 스타 선수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을 영입했다.

무리뉴가 영입했던 선수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전자는 포르투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었으며(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헤이라), 후자는 프랑스 리그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선수들이었다.(페트르 체흐, 존 오비 미켈, 디디에 드로그바, 마이클 에시엔, 살로몬 칼루, 아르연 로번 등) 이 당시 대표적으로 비난받은 영입 대상이었던 디디에 드록바마이클 에시엔의 경우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손꼽힌다. 체흐 역시 원래는 주전이었던 쿠디치니의 백업 요원으로 영입한 것이지만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주전경쟁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레딩 전에서의 악몽같은 부상으로 지금은 폼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유럽전체 다섯 손가락 내에는 드는 실력이다.

다만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왼쪽 풀백 아시에르 델 오르노의 경우 무리뉴가 완벽한 자신만의 포메이션 구축을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케이스이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발렌시아 C.F.로 가버렸다. 존 오비 미켈과 살로몬 칼루의 경우에도 영입을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미켈의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영입에 관해 마찰을 감수하고 질렀음에도 현재까지는 기대 이하. 미켈은 그래도 나름 성장을 했지만 칼루는 냉정하게 말해 서브 이상의 카드로써는 의미가 없는 상황.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네딘 지단 이후 빠지고 있던 이적 시장의 거품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미하엘 발락이나 안드리 셰브첸코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를 영입하기도 했으나 이건 구단주의 입김이 작용한 영입이었다.

이런 행태에 알렉스 퍼거슨 맨 유 감독은 돈으로 성공을 살 수 없다라면서 첼시의 돈지랄을 비난했고, 이에 당시 감독이었던 무리뉴는 "퍼거슨의 말이 맞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FC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꺾었다. 그것이 그 증거이다"라고 응수했다.

어찌됐든 간에 엄청난 영입을 통해 무리뉴 사단은 04-05 시즌 29승 8무 1패 승점 95점이라는 EPL 역대 최고 승점을 따내며 우승. 참고로 1패는 맨 시티에게 0:1로 패배한 기록이다.[12] 막대한 자금을 써서 대개혁을 실행한 첼시에게 처음에 쏟아진 것은 돈 처바른 구단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었으며, 첼시가 이후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보여준 팀 컬러[13]은 그 비난을 더더욱 가중시켰으나, 무리뉴는 그딴거 몰라라는 듯 승승장구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FC 바르셀로나와의 16강 2차전에서 무리뉴 사단의 팀 컬러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는데, 전반에만 무려 3골을 빠른 역습과 세트 피스로 집어 넣었다. 각각 전반 8분, 17분, 18분에 득점하여 단숨에 분위기를 가져오는 듯했으나 당시 외계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호나우딩요가 팀의 부진 속에서도[14] 2골이나 넣으며 추격했다. 그러나 후반 테리의 헤더로 점수차를 더 벌린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4:2로 박살내고 8강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베니테스가 이끌던 리버풀 FC에게 패배하였다. 그 외에 리버풀과의 칼링 컵 결승전에서 제라드의 충격적인 자책골과 함께 분위기를 되돌리며 2-3으로 역전, 우승했다.

다음 시즌인 05-06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나, 동시에 팀 내 잉여 선수의 정리도 이때 상당히 이루어졌다. 구드욘센, 크레스포, 데미안 더프, 델 오르노, 갈라스 등이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거나 다른 선수와 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갈라스는 현금과 함께 아스날 FC의 애슐리 콜과 트레이드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불법 접촉 논란이 있었으며 일부 사실로 나타나는 등 잡음이 이끌었다. 갈라스는 이후 자서전에서 무리뉴 감독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또 바르셀로나와 16강에서 만나 이번에는 홈에서 어이없는 1-2 패배, 원정 1-1 무승부로 떨어지고 만다.

06-07 시즌부터는 로만의 영입 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우선 애슐리 콜을 불법 접촉 논란까지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노려 겨우 영입했지만 덕분에 튼튼했던 수비진이 혼란을 겪었으며, 수비진은 센터 백이 세 명 밖에[15]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락과 셰브첸코를 영입하는 데에 이적료를 낭비하여 팀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10/11 시즌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라 레딩전에서 체흐가 끔찍한 부상을 당해 사실상 시즌 아웃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또한 야심차게 영입한 발락과 셰브첸코는 엄청난 부진을 보였으며, 특히 셰브첸코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적응에 실패하여 전력 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16][17] 뿐만 아니라 그나마 없는 센터 백들이 줄부상당하고, 불라루즈가 외계인 막기 빼고 미친 듯한 부진을 보이며 삽질을 하자 결국 맨 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리그 3연패에 실패한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대장정 끝에 다시 한번 4강으로 들어섰으나 다시 만난 리버풀 FC에게 패하고 만다.[18] 그러나 FA 컵과 칼링 컵 우승[19]을 거머쥐었으며 드록바는 포텐이 뻥뻥 터져 득점왕까지 석권했다. 이로써 무리뉴는 3시즌간 5개 대회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무리뉴의 축구는 로만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와는 정반대인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한 전술을 사용했다. 04-05 시즌을 보더라도 득점량은 2위였던 아스날이 87골로 첼시의 72골에 비해 15골이나 많았지만 실점량이 36실점으로 첼시의 15실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던 걸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무리뉴의 축구가 10백 축구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 더프-드록바-로번의 3톱은 가히 살인적인 공격력을 선사했다. 게다가 로만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에는 번번이 실패하자 로만은 점차 무리뉴의 축구에 불만을 표시한다. 3년동안 최고수준의 성적을 냈음에도.

07-08 시즌이 시작하자 첼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도 로젠보리와 비기는 듯 불안불안한 행보를 보인다. 이를 핑계로 로만은 무리뉴의 상호 계약 해지, 사실상 해고를 선언한다.

2.3. 무리뉴가 떠난 후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불화 때문에 경질당하고 당시 코칭 스탭이었던 이스라엘 국적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을 세웠지만 준우승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불운을 맛봤다.[20]

특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는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는 패배를 당했다. 호날두의 선제골과 램파드의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로 1-1이 되어 120분 연장혈투 끝에 승부차기 까지 간 첼시는 호날두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분위기가 가져오는 듯 싶었으나 존 테리의 불운한 실축대단한 선택..., 그리고 새로 영입한 니콜라 아넬카의 슛이 반데사르에게 막히며 승부차기에서 패배, 결국 우승 컵을 맨유에게 잃고 말았다.

감독이 거의 무명(이스라엘에서야 유명하지만 국제적으론 그게 누구야? 소리 듣던 인물)이었단 점을 감안해보면 준우승은 절대로 나쁜 성적(되려 무리뉴도 못해 내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도 첼시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했다.)이 아니다. 허나 이 때 선수들간의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스티븐 클라크 코치도 홀대를 받기 시작하는 등 로만의 네덜란드 커넥션이 점점 영향력을 대놓고 행사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로만에 의한 낙하산(첼시를 이끌던 실력을 봐도 능력치는 꽤 있음에도, 같은 유태인인 로만 구단주의 낙하산이라는 오명은 그를 괴롭혔다.)이라고 불리던 그랜트도 결국 경질[21]당하고 남은 연봉을 받기 위해 고소까지 하고 이래저래 안습이 되고 말았다.

2.4. 08-09 시즌

2.4.1. 스콜라리 하의 첼시


그랜트의 후임으로 들어온 감독은 명감독이라 칭송받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 다만 스콜라리 감독 체제는 시작부터 흔들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던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 영입 실패. 게다가 폼이 떨어진 데쿠를 영입해서 거의 매 경기 주전으로 돌리는 바람에 라커 룸 분위기도 어수선 해지고, 팀의 살림꾼이던 에시엔이 한동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초반의 상승세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시즌 도중 경질당하고 말았다.

재밌으면서도 강력한 축구를 원하던 로만 구단주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기존의 스쿼드에서 별로 변경된 것도 없으며 스콜라리 입맛에 맞는 스쿼드가 아님에도 갑작스런 스타일 변경을 시도한 것이 문제였던 듯. 주전급 선수로는 데쿠와 보싱와 정도가 영입되었으나, 이는 그 당시 스콜라리 감독이 추구하려던 포메이션에선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는 아니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데쿠를 플레이 메이커로 기용하고 호비뉴를 세컨드 스트라이커 혹은 윙포워드로 기용하는 시스템으로 기민하고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구상했던 듯 하나 호비뉴의 영입 실패로 인해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콜라리 감독 또한 팀내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체흐, 발락, 드록바 등의 반발) 전술적으로도 특색이 없거나 다소 의아한 용병술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첼시의 자랑이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86경기 무패라는 대기록이 08-09 시즌 프리미어 리그 9 라운드에서 리버풀에게 패배하며 깨지고 리그 내 성적도 서서히 내려가게 되었다.

2.4.2. 히딩크 하의 첼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설득해 러시아 대표팀 부임 중 임시로 데려오게 된다.

'히딩크 매직' 이라는 별명답게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도 리그 10승 1무 1패 등 많은 성과를 보여줬는데

우선 스콜라리 감독시절 드록바와 아넬카는 물과 기름이라며 서로 공존 할 수 없다면서 드록바의 부상 이후 아넬카만을 고집해왔는데 히딩크는 훈련에서 과감히 드록바-아넬카 조합을 시도하며 자신감을 내보았다. 결국 아넬카가 수비진을 흔들고 드록바가 마무리 함으로 공존에 성공했으며 말루다는 시즌 초반 내내 부진했으나 히딩크의 지도 하에 특유의 폼을 다시 되살려 후반기 최정상급의 윙어로 거듭나 말루다-아넬카-드록바 라인의 폭발적인 공격력을 만들어낸다. 또한 램파드는 월드클래스급의 미드필더로써 재능을 만개하여 중요한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에 기여했고 에시앙, 발락과의 조화를 이루어 첼시 특유의 중원을 단단히 잡았다. 이 밖에도 이바노비치와 알렉스의 재발견, 칼루의 수퍼 서브로서의 좋은 활약 등이 겹치며 첼시는 떨어졌던 리그 순위도 끌어올리고 FA 컵도 결승전에 진출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6강 이탈리아의 강호 유벤투스를 꺾고 8강에서 리버풀을 만났는데 이 경기는 그야말로 첼시 경기 중 백미 중의 백미. 1차전을 지옥의 안필드 원정에서 이바노비치의 대활약으로 3:1 역전승을 이루어낸 첼시는 2차전에서는 전반에만 2골을 먹고 끌려다녔으나 후반전 드록바, 알렉스, 램파드의 골로 3:2로 다시 앞서나가다 리버풀의 맹공으로 2골을 더 먹어 3:4로 지던 중 아넬카의 돌파와 함께 이은 땅볼 크로스를 램파드가 환상적인 슛으로 집어넣어 기어이 4:4 동점을 만들어내 1,2차전 합계 7:5로 4강에 올라간다.[22]

4강에서는 최근 무적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FC 바르셀로나와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원정은 0:0 무승부

참고로 경고 누적으로 주전 왼쪽 풀백 애슐리 콜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대다수의 팬들은 이제 오른쪽 공격수로 나서는 메시에게 망했어요털리겠다..고 걱정했지만 히딩크는 보싱와가 잘 막아줄 것이라며 인터뷰하였다. 그당시 보싱와의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에다가 자리도 제대로 잡지못하고 서브 신세를 지고 있는데 무슨 수로 메시를 막겠나 싶었는데 다음날 정말 놀랍게도 메시를 지웠다.[23] 이 날 경기는 보싱와가 MOM을 받았고 팬들은 메시에게 밥 먹다 체했냐며.. 물론 당시 바르셀로나 공격수로 나온 에투가 너무 삽질한 것도 있지만 1대1로 안정적이게 잘 막아줬다. 지금도 메시 네스타 얘기 등이 나오면 보싱와도 같이 껴서 간간히 회자되는 경기

이어진 2차전 홈경기 역시 1:1 무승부로 원정 득점 우대 원칙에 따라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다만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 홈 경기의 경우 워낙에 오심이 판을 쳤던 경기였던지라 이것은 히딩크 감독과 첼시 선수들의 역량으로는 타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패스.

그날 경기에서 첼시가 받아야 할 PK만 적어도 3개정도였으며, 맨마지막에는 주심이 보는 가운데에서도 핸드링을 했지만 휘슬이 안 불리는 등 X판이었다. 또한 아비달이 파울을 하지 않았는데도 퇴장을 내리는 병크까지 발생. 결국 1: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이니에스타의 동점골로 탈락. 경기 직후 선수들은 분노하여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드록바는 폭언으로 징계를 받았다. 망할놈의 UEFA야 잘못한 건 주심인데 왜 드록신께 감히 출장정지를 매기냐 히동구 형님의 토너먼트 4강 징크스는 여전한 듯..

리그는 결국 3위로 마쳤지만 챔스 32강 직행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만족하는 중 유종의 미로 FA 컵 우승도 한다.[24]

이때도 우승컵을 들고있는 센터싱와

이로써 팬들이나 선수들 모두 히딩크의 첼시 잔류를 바랐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러시아 대표팀으로 돌아간다고 확고하게 말해왔었고 결국 잔류하지 않았다. 그 후 감독은 카를로 안첼로티.

사실 히딩크 감독은 특별한 전술적인 변화나 선수층의 변화를 주지 않았으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심리술로 첼시 선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실제로 히딩크 시절 첼시의 전술을 무리뉴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드록바가 말하길, 히딩크가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 '너희들은 감독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나는 신경 안쓸테고 너희들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냥 니네가 하고싶은대로 해라'였다고(…). 결국 심리적인 변화가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된다.

2.5. 09-10 시즌


히딩크가 사임한 후, AC 밀란 전 감독인 안첼로티 감독을 후임으로 내정하고 영입 시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마 예상하기를 안첼로티 감독은 챔피언스 리그에 강한 감독이기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위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리그를 먹었네?

로만 제국이 되기 전에도 주전 선수들의 대부분이 비잉글랜드계 선수들이라서 용병 구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위에도 언급했듯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이탈리아 선수들(비알리, 디 마테오, 졸라, 쿠디치니, 암브로시오), 감독들이(비알리, 라니에리, 안첼로티) 비중이 크거나 많았던 팀이 첼시이다. 현재 조 콜과의 재계약 불발로 잉글랜드의 주전급은 09/10 시즌 이후로는 세 명이라 할 수 있다(램파드, 애슐리 콜, 존 테리). 솔직히 좀 적은 편이긴 하다. 대표적인 선수로 지안프랑코 졸라(現 왓포드 FC 감독)를 꼽을 수 있다.

현재 팀에서 러브 콜을 넣고 있는 선수로는 프랑스의 현재 희망과도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는 FC 바이에른프랑크 리베리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세르히오 아궤로, 그리고 AC 밀란안드레아 피를로, 알렉산드르 파투 등이 있다. 제각기 현재 보여주고 있는 클래스가 보장된 선수들이자 각 팀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들이기에 이번 이적 시장에서 어떻게 선수진을 보강할 것인지가 매우 주목된다.

2009-2010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2007년까지 첼시를 지휘한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인테르와 만나 관심을 모았는데 2전 전패, 스코어 합계 1-3으로 패했다.

충격의 맨시티전 4-2 패배 이후(한 경기를 덜 치렀지만) 맨유에게 리그 선두를 내주고, 챔피언스 리그까지 탈락하자, 안첼로티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첼시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과 FM을 착각하는 구단주와 무리뉴의 그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선수진. 무리뉴가 떠나고 그랜트-스콜라리(히딩크는 임시직이었니 제외)-안첼로티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첼시의 주축은 무리뉴 체제에서 성장했거나 중용된 선수들이다. 다만 맨시티의 물량 공세 덕인지 안첼로티 체제에는 특히 10-11 프리 시즌에는 현실 FM과 돈지랄을 자제하고 안첼로티의 자율을 배려하다 못해 주전급 선수를 별다른 보강없이 팔고있다. 그리고 그중 태반은 나이가 30줄에 접어들고 있다. 뭔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세대 교체를 단행해야 할 시점인데 구단주는 1년도 채우기 전에 감독을 갈아 치우니 감독 입장에선 눈앞의 성적이 중요하지 장기적으로 뭘 해볼 여지가 없다.

급기야 블랙번과의 원정 시합에서 무승부, 맨유보다 덜 치른 한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맨유에게 승점 1점차로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되자 현지에선 벌써 안첼로티 경질설마저 솔솔 나오는 중...은 훼이크고 포츠머스 FC 원정과 애스턴 빌라 홈 경기에서 각각 5:0, 그리고 7:1로 대파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 마침내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2:1로 이겨 다시 프리미어 리그 1위에 복귀했다. 현재 09/1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가장 유력. FA 컵 역시 우승이 가능한 상태인데, 현재 준결승에 올라와 애스턴 빌라와 붙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드록바, 말루다, 그리고 램파드의 골로 3:0으로 승리함으로서 FA 컵 결승에 2연속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아스톤 빌라는 첼시와의 마지막 2경기에서 10골을 먹는 수모(...)를 보여준다. 그 다음 경기에서 볼턴 원더러스에게 1-0으로 이긴후 맨유와 승점차를 4점으로 벌리면서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하지만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존 테리가 퇴장을 당하면서 2-1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경기에서 스토크 시티를 7-0을 대파하고 나서 이제 맨유와의 승점차는 1점. 리버풀전도 2-0으로 이겼다. 그래서 나머지 빅 4를 모두 이기는(6전 6승)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리버풀은 이제 빅4가 아닌가 하지만 맨유도 선더랜드에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우승 컵의 주인은 마지막 라운드, 38 라운드에 결정되게 되었다.

위건 감독도 그렇고 퍼거슨도 그렇고 위건의 분전을 말했으나 무참하게 8:0으로 떡실신당하면서 첼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4:0 승리와 관계없이 2009/2010 EPL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또한 리그 38경기에서 103골을 몰아쳤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한 드록바는 2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17도움의 램파드는 도움왕. 거기다 프리미어 리그 팀 최다 득점(103골) 기록에 골든글러브(체흐, 레이나 역시 클린시트 17경기지만 경기수에서 체흐가 더 적기 때문에)수상, 소위 빅4라 불리는 팀과의 경기에서 전승까지.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가져갔다. 시즌 4호골의 박지성은 이렇게 묻혔다 5월 15일 2010 FA Cup에서 포츠머스를 1: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클럽 역사상 최초로 더블을 이룩했다(리그+FA 컵).

대부분의 선수들이 지난 시즌 막판의 좋은 폼을 그대로 시즌 끝까지 이어나갔다. 램파드는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후반기 첼시 특유의 4-3-3으로 전환한 이후에 엄청난 스탯을 찍으며 32살의 미드필더답지 않은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드록신은 드록신이었다. 아넬카는 드리블과 패스가 돋보이는 플레이 메이커 같은 모습이 점점 만개하기 시작했으며, 말루다 역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발락은 에시앙의 후반기 부상 공백을 잘 막아 주었으며, 미켈 역시 약점을 장점으로 메꾸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 외에 이번 시즌 주전급으로 영입한 유리 지르코프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활발한 움직임과 멀티 플레이어 능력으로 애슐리 콜의 부상 공백을 메꿨으며, 페헤이라와 이바노비치는 보싱와의 장기 부상을 잊어 버리게 만들 정도로 오른쪽을 잘 책임졌다.
알렉스는 이번 시즌 부진했던 카르발료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고, 존 테리는 후반기 불륜 사건으로 폼이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무난했다. 체흐는 헤드 기어를 낀 이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며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다.

이렇게 09-10 시즌은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 덕분에 첼시 팬들로 하여금 다음 시즌에 대한 밝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6. 10-11 여름 프리 시즌

프리 시즌에는 앙헬 디 마리아, 외질, 페르난도 토레스, 수아레즈. 사미 케디라, 페드로, 파비오 코엔트랑 등이 강하게 링크되고 있으나, 이 중에서는 토레스가 가장 유력하게 영입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토레스는 리버풀에서 폼이 점차 떨어지고 있던데 그거와 별개로 진짜로 영입 ㄷㄷㄷ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10시즌이 끝나고 미하엘 발락조 콜, 데쿠, 리아누 벨레티와는 계약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대체자로 리버풀 FC에 있던 유다메시 요시 베나윤을 영입했다. 이 때 베나윤이 전 리버풀 감독이자 현 인터밀란 감독무직인 라파엘 베니테스를 디스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10일 첼시는 전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벤피카의 공격형 미드필더 하미레스를 영입했다. 이적료는 2,200만 유로(약 337억 원). 포지션으로 보아 발락과 덕후 데쿠의 빈자리를 보강하는 영입으로 보이지만 브라질 국가대표출신 답지않게 테크니컬 한 면보다는 많은 활동량을 주 무기로 하고있는 선수이다.

한편,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은 하미레스 외에도 한 명의 선수를 더 영입하길 원한다고 밝혔으며, 첼시는 현재 산토스의 공격수 네이마르, 포르투의 미드필더 라울 메이렐레스,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미드필더 다리요 스르나와 연결되고 있다.

네이마르는 펠레를 비롯한 브라질 축구인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마음을 바꾸고 산토스와 제계약을 하면서 영입에 실패하고, 메이렐레스는 하미레즈를 영입하면서 그는 리버풀로 이적하게 된다. 이외에 벤피카의 브라질리언 중앙 수비수 다비드 루이스와도 링크가 났는데, 안첼로티 감독이 직접 부인하였다.

아직도 안첼로티 감독은 AC 밀란 시절의 씀씀이를 첼시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적응이 안 된 씀씀이 유일하게 영입된 하미레스가 마이클 에시앙과 디디에 드록바처럼 첼시에서 탄생하는 월드 클래스 선수가 될 것인지, 그저 살로몬 칼루 정도의 수준에 머무를 것인지, 겨우 수십 번의 경기에 교체로만 출장하다 맨 시티에서마저 버려질 위기에 처한 숀 라이트-필립스처럼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팀의 주전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가 자신의 옛 감독 무리뉴를 따라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800만 유로로 추정되고 있다.

별다른 선수 보강 없이 선수를 내치고팔고 있는 첼시는 별다른 보강 없는 상황상 이번 시즌은 첼시의 유망한 맨시엔, 카쿠타, 스터릿지 등의 유망주를 통해 세대 교체를 감행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선수를 이적시킴으로써 이번 시즌부터 적용되는 25인 로스터 제도의 1군 용병 제한을 정확히 채웠다.근데 왜 조 콜은 무리뉴 시절 야심차게 영입했던 영광의 주역들은 이제 페트르 체흐,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엔, 파울루 페헤이라 정도만 남게 되었다.

2.8.1. 프리 시즌

안첼로티가 경질된 후, 감독에 대한 여러 루머가 난다. 주제 무리뉴, 혹은 거스 히딩크의 복귀, 반 바스텐, 리피 등 여러 명에게 링크가 났지만, 2011년 6월 22일 결국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가 감독을 맡게 된다. 빌라스-보아스는 예전에도 첼시에 있던 인물로, 무리뉴 감독을 따라 포르투-첼시-인터밀란에서 코치 경험을 한 바 있다.[25] 하지만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로 갔을 때, 빌라스-보아스는 독립을 하였고, 포르투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결과는 리그 무패 우승, 컵 우승, 유로파 리그 우승 트레블.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이것을 알아채고 빌라스-보아스 감독에게 계속 비드를 한 결과, 드디어 13.5M 파운드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내고 빌라스-보아스를 첼시 감독으로 임명하게 된다.

이적 시장에서는 모든 팬들의 염원에 맞게 리빌딩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을 거라 예상했으나...의외로 초반에는 밍기적거리는 듯한 행보로 팬들의 답답함이 상승. 토트넘 핫스퍼의 뛰어난 미드필더인 루카 모드리치와의 이적설이 마구 터져 나왔으나 토트넘 구단주 특유의 깡다구(...)[26] 때문에 사실상 밀고 당기기만 거듭할 뿐, 게다가 윙 포워드 중 가장 유력했던 알렉시스 산체스FC 바르셀로나로 가 버렸다.
유망주로 겐크의 어린 골키퍼 쿠르투아를 영입했으나 곧바로 임대[27]를 가버려 즉시 전력감으로 쓸 만한 영입은 아니어서 더더욱 분노 게이지가 상승. 그나마 프리 시즌이 점전 막바지에 치닫게 되자 슬슬 직접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해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수많은 링크가 떴으며, 특히 오래 전부터 노리고 있던 로멜루 루카쿠와 팔레르모의 하비에르 파스토레 등에 비드를 넣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현재 가장 영입이 유력한 선수는 의외로 FC 바르셀로나 B 소속인 오리올 로메우라 팬들의 의문을 사고 있다. 게다가 조금은 굴욕적일 수 있는 바이백 조항[28]까지 붙여서 팬들이 꼭 이런 조항까지 붙여서 데려와야 하나 하는 불만을 표하고 있다. 오리올 로메우 본인도 "일단 첼시에서 성공해야 하지만 언젠가 바르샤에서 다시 뛰고 싶음요ㅋ"라고 발언하기도 했고(...).

이렇게 이적 시장에서 밍기적거리던 도중 드디어 각종 밀고 당기기 끝에 로멜루 루카쿠의 영입에 성공했다! 단순히 언론에만 나온 것이 아니라 아예 공홈에서 인증까지 대놓고 때려 주었다.드디어 루카쿠 온라인 종결인가요 다만 수많은 첼시 팬들이 간절히 원했던 모드리치 이적은 거의 흐지부지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팬들은 좌절감 역시 맛보고 있는 중.[29]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 이후 좌우 윙에 문제가 지적되면서 후안 마타에덴 아자르와 연결되는 중. 또 모드리치 협상이 지연되면서 포르투의 무티뉴와도 연결중이다.

결국 마타 영입에 성공했다. 이적료는 30M 정도. 일단은 매디컬 테스트와 개인 계약만 남았다고... 8월 24일 후안 마타의 오피셜이 떴다. 가격은 27M. 그리고 26일 발렌시아와 챔스에서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 이틀만에 성사된 마타 더비

이적시즌을 이틀 남기고 요시 베나윤이 떠나는 게 확정되었다. OSC 릴, 아스날 FC, 리버풀 FC, 토트넘 핫스퍼와 연결되는중. 알렉스도 유벤투스나 아스날과 연결되는중. 여전히 모드리치와는 연결중이고 포르투의 알바로 페레이라의 영입이 임박했다고 한다. 또한 리버풀라울 메이렐레스[30], 아약스의 반 더 비엘, 유벤투스의 밀로스 크라시치[31]와 연결되는 중.

이적 마지막 날, 결국 토트넘이 40M을 거절하면서 모드리치 영입에 실패했다. 또한 페레이라 영입도 사실상 실패. 그 밖에도 사실상 모든 제의가 실패했고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이 이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종료 직전 리버풀에서 하울 메이렐레스 영입에 성공! 금액은 12M.

슈퍼 서브 요시 베나윤은 아스날로 임대 이적했다. 스터릿지의 임대로 재미를 본 볼턴에 기엘 카쿠타를 임대보냈고 유망주 반 얀홀트를 위건에 임대보냈다.

정리하자면 11/12 프리 시즌 첼시는 즉시 전력감으로


등을 영입했으며, 그 외에

티보 쿠르투아, 리시스 다빌라, 카스 피아존

등의 유망주들을 영입하였다. 이 중에 쿠르투아, 다빌라 등이 임대를 갔으며, 포텐이 터지지 않는 유망주로 유명했던 엘 카쿠타임대왕 볼턴 원더러스로 임대를 갔다. 반 얀홀트는 위건으로 임대를 갔으며, 대체적으로 아르네센 단장 시절 유망주들을 대거 싼값에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32] 카스 피아존은 1월 부터 전력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 와중에 요시 베나윤이 외국인 선수 제한으로 인해 아스날 FC로 임대를 가게 되어 전력의 손실이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는 지난 시즌까지 이어졌던 호갱님호구같은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당한 전력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출한 금액이 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33]

2.8.2. 겨울 이적 시장

새해 시작부터 대참사를 불러일으키며 리빌딩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순식간에 더더욱 불어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첫 타자로 예전부터 노리고 있던 게리 케이힐의 영입에 합의를 봤으며, 현재 계약 관련 문제로 개인 협상만이 남았다고 한다.[34] 그리고 결국 주급 8만 파운드, 5년 계약을 맺었다.

케이힐 영입 후 현재 다양한 선수들과 이적 루머가 돌고 있는데, 니콜라 아넬카의 대체자로 유명한 에덴 아자르, 스테판 요베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그중에서 아자르는 첼시가 릴에 직접 비드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8.3. 11-12 시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체제가 들어선 이후, 사상 최악의 리그 성적인 6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는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 4위권 진입에 실패했다는 의미...하지만 첼시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결승에서 FC 바이에른마저 꺾어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여, 내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이로서 첼시는 런던 축구 클럽들 중에서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팀이 되었다.[35] 그리고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1999-2000 시즌의 비센테 델 보스케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이어 감독대행 신분으로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두번째 감독이 되었다.[36] 그야말로 기적같은 시즌이 11-12시즌이었다.

2.8.4. 11-12 시즌의 기적



07-08 시즌부터 빅이어를 드는 11-12시즌까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고군분투를 기록,편집한 영상

첼렘덩크
챔피언의 숙명은 원래 아픔이 따른다 11-12 시즌의 첼시의 행보는 그야말로 장편의 드라마[37]에 가까웠는데,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원정 나폴리전에서 3:1로 참패를 당한 후,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며 FA 컵 버밍엄 전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던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은 결국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전 1:0 패배를 계기로 경질당하고,그 자리를 소년 명수 로베르토 디 마테오 수석 코치가 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타축구 팬들은 물론이요 첼시 팬들마저 첼시의 이번 시즌이 망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허나 FA 컵 재경기에서 버밍엄을 깔끔하게 2:0으로 이기고, 스토크 시티전 역시 1:0으로 이기며 슬슬 경기력을 끌어올린 첼시는 나폴리와의 2차전 홈 경기에서 4:1로 극장 같은 역전승을 따내며 8강 진출에 성공한다. 전반 17분 하미레스의 크로스를 받은 드록바의 헤딩골, 후반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코너킥에서 존 테리의 헤딩골로 둘 다 머리로 넣은 두 골을 먼저 넣어 쉽게 올라갈 수 있었으나, 인러의 만회 골로 다시 득실에서 뒤쳐졌고 결국 램파드의 페널티 킥 득점으로 동률이 되어 연장전에 돌입한 뒤, 드록바의 크로스를 받은 이바노비치의 골로 극적인 승리를 따낸 것이다.

그뒤 비록 리그는 미미했으나 FA 컵에서 레스터 시티를 5:2로 화끈하게 격파해 토트넘과의 경기를 남겨두었고, 진출한 8강 벤피카전은 원정 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벤피카 홈에서 1:0 승리, 그리고 극장 골로 패배를 면한 2차전 2:1 승리로 4강으로 진출했다.

4강 팀이 바르사였기에 첼시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심지어 첼시 팬들마저도). 허나 토트넘과의 FA 컵 4강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희망의 불씨를 태운 첼시는 바르사를 홈으로 불러들여 드록바의 결승골로 1:0으로 격침시키고, 원정에서 존 테리가 퇴장당하고 케이힐이 부상으로 교체되어 센터 백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2점이나 실점, 후반에는 PK까지 허용하는 그야말로 불운의 끝을 달렸으나, 메시의 PK 삽질에 힘입은 영혼을 담은 수비와 한 방 역습을 잘 살려 하미레스의 만회골과 900억짜리 토레스의 종료 직전 동점 골로 2:2 극적인 무승부[38]를 이끌어내며 첼시 역사상 두 번째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한다.

FA 컵에서는 최근 두 시즌동안 5번 만나 모두 패한 리버풀을 상대. 허나 첼시는 하미레스의 선제골과 결승전의 사나이 드록바의 결승골로 캐롤의 만회골을 허용하고도 끝까지 버티며 2:1로 승리해 무관을 벗어났다.

그리고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첼시는 바르사와의 4강전의 주역이었던 하미레스, 메이렐레스, 존 테리, 이바노비치 등 주축이 모두 빠진 라인 업에,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케이힐-루이스 조합을 센터 백으로 써야 했다. 게다가 결승전 장소는 바이에른의 홈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인,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비록 바이에른 역시 3명이나 경고 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한다지만 공격진은 건재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첼시는 홈 어드벤티지를 업고 밀어붙이는 바이에른을 전반부터 후반 막판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수비로 막아 냈으며, 제공권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으며 세트 피스 상황에서도 모두 걷어 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사실 어느 쪽으로 승부의 축이 기운 것은 아니었다. 뮐러와 고메즈는 시종일관 루이스에게 막히는 모습이었고, 애슐리 콜은 로벤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심지어 똥쟁이보싱와마저 리베리와 디에고 콘텐토를 예상외로 잘 막아내며 결정적이거나 위협적인 장면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리베리와 로벤, 뮐러가 큰 찬스때마다 삽푼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큰 경기에 강했던 토마스 뮐러의 기습 헤더로 후반 37분경 골을 먹으며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패색이 짙어졌고, 모든 사람들이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잘한 거지' 하면서 포기하려던 찰나, 종료 직전 마타의 코너 킥에 이은 결승전의 사나이 드록바의 헤더로 1:1 극적인 동점을 이룬다.

허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연장전에 들어서자마자 리베리의 돌파를 막으려던 드록바의 실수로 PK를 허용한 것. 다시 패색이 짙어졌고 첼시 팬들이 모두 돌아서려던 순간, 키커 로번의 슛 경로를 읽은 체흐의 완벽한 선방이 나왔다.[39] 또한 드록바의 태클로 인해 리베리는 교체당했고, 안 그래도 보싱와라 시도때도 없이 뚫리던 오른쪽 측면이 안정화되었다.

그 뒤 오히려 바이에른은 정신적으로 충격이었는지 급한 모습을 보여주었고,[40] 첼시는 차분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바이에른의 공격을 막으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돌입.

독일 팀이 전통적으로 승부차기에 강했기에 이 역시 바이에른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첼시의 1번 키커인 마타가 실축해 버렸을 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바이에른의 승리를 다시 점치고 있었다. 허나 바이에른의 4번 키커 올리치가 체흐에게 막히고, 새가슴인 5번 키커 슈바인슈타이거의 킥이 골 포스트를 맞고 흘러 나오면서[41] 순식간에 분위기는 다시 첼시 쪽으로 넘어갔다. 사실 이 날 체흐는 경기 중에 모든 PK의 방향을 예측하는 미친 활약을 보여주었다

결국 오늘 좋은 활약을 펼친 드록바가 마지막 키커로 나서 노이어를 상대로 매우 침착하게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첼시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빅 이어를 들게 되었다. 그리고 케이힐은 오자마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전 소속팀은 블루 드래곤과 함께 강등을...


그리고 보싱와는 센터싱와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센터싱와의 진실
사실 보싱와가 아니었다면 램통수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보스트라다무스 ㄷㄷ



단체사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센터싱와ㄷㄷㄷ

2.9. 12/13 시즌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으로서의 자존심은 로만 구단주 부임 이후 첫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유일한 전 대회 우승팀의 16강 진출 실패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그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실드, 클럽 월드 컵, 리그 컵, FA 컵,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모두 우승에 실패하며 기운만 빼고 무너지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어찌 어찌 유로파 리그를 우승하며 체면치레는 했다.

'뮌헨의 기적'의 주인공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 계약을 맺었으나[42] 유벤투스전 0-3 완패 이후 초고속 경질되었다. 세간은 물론 첼시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들끓었음은 당연하다. 다만 로만은 이전부터 감독 물갈이가 잦다는 지적을 받아 왔기 때문에 디 마테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좀 더 힘을 얻었다.

미국 투어까지 포함하면 12-13 시즌 동안 무려 71경기를 치르게 되는 것인데,노예가 따로 없구만 대회란 대회는 다 참가하는 식으로 선수들을 혹사시킨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체력적인 부담이 각종 대회에서의 우승 실패에 한 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듯. 근데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

2.9.1. 프리 시즌

조제 보싱와살로몬 칼루와의 계약이 만료되었다. 칼루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베르더 브레멘의 마르코 마린의 영입을 시즌 중에 성사시켰고[43], 릴의 에당 아자르에 대한 오퍼가 받아들여졌고 이제 선수와의 협상만이 남아 있는 상황. 그걸 또 트위터나 페북에 올려서 자기 PR하는 아자르

첼시와 디디에 드록바 간의 재계약이 결렬되어(라기보다 드록바가 챔스 우승이라는 마지막 소원을 달성했기에) 결국 드록바는 팀을 떠나게 되었다.[44] 드록바를 대체하기 위해 FC 포르투헐크의 영입 시도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프리 시즌 동안 포르투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칼루와 보싱와의 계약 만료로 생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무려 마이콘으로 약 6M에 영입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그 외에도 브라질의 신성 유망주인 오스카르[45], 에버턴의 미드필더 콤비인 펠라이니와 로스 바클리, 작년부터 노렸던 루카 모드리치[46], 말라가의 살로몬 론돈, 위건의 빅토르 모제스 등 엄청나게 다양하다.[47]

7월 25일에 브라질의 유망한 미드필더인 오스카르를 2500만 유로에 영입함으로써 위의 링크들이 단순히 루머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현재 오른쪽 풀백과 오른쪽 윙어 링크들이 나오는 상태. 아스필리쿠에타, 헐크, 드뷔시 등의 선수들이 링크되고 있다. 유로 이전에 꽤나 링크가 잦았던 반 더 비엘은 유로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여준 이후 링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8월 12일에 벌어진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토레스가 선취골을 기록하며 3년만의 우승을 차지하는가 했더니만 후반 들어서 콜로 투레, 테베즈, 사미르 나스리에게 차례로 실점하면서 결국 2:3으로 역전패하면서 우승 컵을 맨 시티에게 넘겨줬다. 맨 시티로선 저번 시즌의 리그 우승에 이어 40년만의 커뮤니티 실드를 전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인 첼시를 상대로 한 우승이라서 기쁨은 컸던 반면 첼시 선수들과 벤치 분위기는...

8월 24일에는 뉴캐슬과의 경기가 있기 직전 링크가 나던 위건 애슬레틱의 오른쪽 윙어 토르 모제스를 약 8백만 파운드의 가격에 영입하는데 성공했으며, 마르세유의 오른쪽 수비수인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 역시 약 8백만 파운드[48]의 가격에 영입하는데 성공하여, 이번 시즌 상대적으로 백업 자원이 부족했던 오른쪽 라인을 보강했다.[49]

추가 영입이 없는 이상 현재까지의 영입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로멜루 루카쿠, 케빈 더브라위너, 샘 허친슨, 조쉬 매키크런, 티보 쿠르투아[51] 등은 임대를 보냈다.[52]

2.9.2. 겨울 이적 시장

니얼 스터리지리버풀 FC로 떠나보내고,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차출로 모제스, 미켈 등이 차출되고, 오리올 로메우의 6개월 짜리 부상으로 인해 루이즈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리는 등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에 구멍이 보여 그 구멍을 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지 공격수와 미드필더 링크가 마구잡이로 뜨고 있다.

가장 유력했던 라다멜 팔카오는 엄청난 바이아웃과 주급 때문인지 포기하고 뎀바 바의 바이아웃[53]을 질러 개인 협상에 돌입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 사실상 오피셜. 등 번호는 29번으로, 주급은 출장 수당까지 합쳐서 약 8만 파운드라고 한다. 드록가 가니 뎀바가 오네

미드필더에는 당연히 최근 좋은 폼으로 엄청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루앙 펠라이니가 1순위로 올라왔지만 최근 에버턴이 리그 4~6위 사이를 전전하면서 엄청나게 선전하고 있어서 그런지 1월 안에 영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

그와중에 기대되는 유망주인 카스 피아존은 말라가로 임대를 떠났다.

2.10. 13/14 시즌


리그,컵,챔피언스리그 모두 무관으로 끝났다. 이로써 로만 체제 2번째 무관이자 무리뉴의 감독 경력 2번째 무관이 되었다.

팬들의 평가는 엇갈리는 편인데, 애초에 무리뉴가 없는 동안 전력이 약화되어 지난 시즌에는 우승경쟁에서 진작에 밀려났고 챔스는 조별리그 광탈을 했던 팀을 없는 공격진을 가지고 막판에 결국 밀려났다지만 계속 우승경쟁을 했고, 챔스도 4강을 기록했기에 나쁘지 않다는 평가와, 그래도 우승 경쟁을 하던 맨시티리버풀에게 더블을 하고그놈의 의적질만 아니었어도 리그와 리그컵 성적은 더 좋았을 테니... 챔스 8강에서 기적적으로 판도를 뒤집는 등의 임팩트 있는 모습이 몇 번 있었기에 이대로 끝난 게 아쉽다는 평가로 나뉜다.물론 첼시까들과 무까들은 무관을 신나게 조롱 중 그래도 다음 시즌을 기대한다는 점은 모두 같은 듯.
※ 더 상세한 경기 내용을 알고 싶다면 첼시 FC/13-14 시즌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각 경기마다의 내용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프리 시즌부터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다룬다.

2.10.1. 프리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이 6년만에 첼시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이적 시장 첫 걸음으로 안드레 쉬를레를 영입했다. 이적료는 약 2000만 유로에 주급은 7만 파운드 정도인 듯. 손흥민 이적의 연쇄 효과

첼시의 13-14 시즌 이적 시장의 예상도는 대부분의 팬들의 생각대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각각 한명씩 구입하려는 것처럼 나아갔다. 공격수 부분에서는 에딘손 카바니, 루이스 수아레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이 링크가 났으며 이중에 카바니가 가장 유력했지만 미친 듯한 바이아웃 6000만 유로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한 상태. 미드필더에서는 작년에도 링크가 걸렸던 다니엘레 데 로시, 세비야의 유망한 흑형 미드필더 콘도그비야, 로만 위성 구단 비테세 아른햄의 르코 반 힌켈 등이 유력하다.

그 와중에 마르코 마린헤수스 나바스가 빠진 FC 세비야로 임대를 떠났다. 무리뉴 감독은 직접 인터뷰에서 로멜루 루카쿠케빈 더브라위너를 언급하여 다음 시즌에 1군에서 기용할 생각을 내비쳤다. 오히려오리올 로메우가 작년 십자인대 부상으로 다른 팀으로 임대를 갈 듯 루머가 오르고 있다. 발렌시아가 가장 유력하다.

7월 3일에는 비테세 아른햄의 르코 반 힌켈을 약 800만 파운드의 가격에 5년 계약을 맺고 영입했다. 맨유, 첼시와 링크가 강하게 떴는데 위성구단답게무리뉴가 직접 설득하여 첼시로 오기로 마음을 굳힌 듯. 여기에 거의 붙박이였던 성장하지 않는 유망주존 오비 미켈이 갈라타라사이 이적설이 들고 있어 아무래도 지난 시즌 하미레스 혼자 고군분투했던 3선이 대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질듯 하다. 허나 공격수 부분은 여전한 나폴리의 고집으로 카바니의 영입이 불가능해져 현재는 즐라탄과 수아레즈를 노리고 있다.

7월 9일에는 뜬금포로 호주 국가대표 크 슈월처 골키퍼를 영입했다. 자유계약으로 풀려있어서 데려오는 것이 쉬웠다는 듯. 1년 계약[54]이며 계약 만료로 떠난 라리우스 턴불을 대체할 듯 싶다.

7월 12일에는 오리올 로메우발렌시아 CF로 임대를 떠났다. 발렌시아 측에서 각종 입단식까지 화려하게 해준 것으로 보아 완전영입조항이 포함된 임대로 알려졌다.

8월 19일 리그 첫 경기에서 헐 시티고려대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했다. 더욱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해 아쉬운 점도 있었으나 더브라위너의 패스를 이어받은 오스카르의 골, 램파드의 프리 킥 골근데 PK 실축 등 첼시의 우승 후보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전반전에 헐 시티를 완전히 봉쇄하며 사실상 가둬놓고 팼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다르게 후반전에는 전반전에 비해 좀처럼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8월 27일에는 모예스가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55] 우승 후보인 강팀과의 원정 경기에서 초반부터 무리뉴가 승리한다면 시즌 초반 경쟁에서 부담을 덜 수 있다.

8월 25일에는 마타의 이적설이 떠도는 가운데 토트넘 핫스퍼와 이적 링크가 뜨던 윌리안을 뜬금포로 영입했다.[56] 이적료는 약 3000만 파운드로 알려졌으며, 본래 가레스 베일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그 공백을 윌리안 등으로 메우려던 토트넘은 대놓고 뒤통수를 맞아 각종 축구 팬사이트에는 첼시와 무리뉴그리고 로만을 욕하는 토트넘 팬들의 아우성이 넘쳐났다. 다만 2선이 그렇지 않아도 넘쳐나는 첼시 선수진에 윌리안의 추가는 너무 지나친 라이벌 견제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57] 여기에 시즌 전부터 말이 많았던 공격수 링크는 루니에 대한 3000만 파운드 제의를 공식적으로 했으며, 그 외에도 안지에서 사무엘 에투를 1년 계약으로 데려오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루니에 대한 차선책이라고 한다.

8월 28일에는 윌리안의 영입이 공식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22번. 그리고 8월 29일에는 사무엘 에투와 정식으로 계약했다. 계약 기간은 2014년까지라고.

UEFA 챔피언스 리그 2013-14 조별 리그에서 샬케04(독일), FC바젤(스위스), 슈테아우아(루마니아)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PSG와 더불어 조 추첨에도 현질

UEFA 슈퍼 컵에서 전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인 바이에른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상당한 경기력을 보이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냈지만 아쉽게 승부차기에서 5:4로 패하고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경기에서 체흐갓흐는 엄청난 선방 쇼를 보여주었고, 아자르는 바이에른 수비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아쉬웠던 점은 오스카르가 찬스를 놓쳤던 장면, 루카쿠흑태현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실축한 점, 하미레스하미레기라고 불리는 이유가 입증되었다가 카드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점이다. 하지만 작년 트레블을 달성했던 팀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경기를 이끌어 간 점, 퇴장 인원을 극복했다는 점은 첼시가 충분히 강팀임을 입증해 주었다. 여태껏 영입된 선수들을 모두 충분히 기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첼시의 조직력이 무리뉴 감독이 이끌기에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바이에른도 여러 경기가 진행되면서 조직력이 다듬어질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결국 2선의 과포화로 빅터 모제스의 리버풀 임대가 거의 확정적으로 보인다. 특히 9월 2일 리버풀과 맨 유의 EPL 3 라운드 경기에서 빅터 모제스가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 카매라에 잡히면서 사실상 거피셜. 결국 9월 2일 오피셜이 떳다. 1년 임대.

9월 1일 가나 국가 대표팀이자 포르투의 윙어 크리스티안 아츠를 약 350만 파운드에 영입했다.

9월 2일 이적 시장 막판에 뜬금없이 루카쿠가 에버턴으로 1년 임대를 떠났다. 토레스, 에투, 뎀바 바까지 있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팬들은 좀 아쉽다는 평.

이번 시즌 영입상황은 다음과 같다.

IN
안드레 쉬를레(레버쿠젠, 18M), 마르코 반 힌켈(비데세, 9M), 크리스티안 퀘바스(오힝기스 3M), 마크 슈와처(자유 영입), 윌리안(안지, 32M), 사무엘 에투(자유 영입), 크리스티안 아츠(포르투, 3.5M)

OUT
플로랑 말루다, 로스턴불, 요시 베나윤(이상 방출) 제프리 부르마(PSV 2.5M) 티보 쿠르투아(ATM 임대) 오리올 로메우(발렌시아 임대) 패트릭 반 얀홀트, 크리스티안 퀘바스, 루카스 피아존, 가엘 카쿠타, 크리스티안 아츠, 샘 허친슨(이상 비데세 임대) 토드 케인(블랙번 임대) 마르코 마린(세비야 임대) 왈라스(터밀란 임대) 패트릭 뱀포드(MK 돈스 임대) 빅터 모제스(리버풀 임대) 루카쿠(에버턴 임대) 파울루 페헤이라(은퇴)

2.10.2. 겨울 이적 시장

지난 겨울 이적 시장과 마찬가지로 팀 내 구멍을 채울 영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오고 있다. 다만 첼시가 2013년 약 4700만 파운드에 가까운 재정 적자를 보았기 때문에 거액의 영입은 힘들 거라는 전망이 컸고, 실제로 영입설보다는 방출설이 더 흘러나오고 있다.[58]

현재 가장 유력한 이적 후보는 인테르에서 죽쑤고 있다는 프레디 구아린. 이적료는 약 1500만 유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아무래도 반 힌켈의 시즌 아웃 부상 후 생긴 미들진의 구멍을 메꾸기 위한 영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외에 사실상 쩌리로 밀린 마이클 에시엔이 겨울 이적 시장 때 챔스 출전 가능한 팀으로 이적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 외에 "설"이 도는 선수로는 곤살로 이과인, 라다멜 팔카오 등의 스트라이커 포지션. 그러나 무리뉴 감독이 공격수 영입은 없다고 천명했고, 이 선수들의 몸값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영입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동이 있다면,에시엔이나 케빈 데 브루네가 떠나고 한 명 정도의 선수가 영입되는 선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끈질긴 링크 끝에 네마냐 마티치가 2500만 유로에 영입되었다!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 비테세로 임대된 이후 3년 반만에 첼시로 복귀한 것. 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할 때 벤피카에 2000만 파운드에다 마티치를 넘겼던 것을 생각해보면 첼시는 다비드 루이즈를 4000만 파운드에 샀다는 계산이 된다.(...)[59]

1월 16일 이언 버트런드는 애스턴 빌라로 임대되었다. 1월 18일 1800만 파운드의 이적료[60]케빈 더브라위너가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1월 23일 FC 바젤 출신 모하메드 살라를 영입하였다. 이적료는 1100만 파운드이다. 1월 23일 조쉬 매키크런이 위건 애슬레틱으로 임대되었다.

1월 24일 마이클 에시엔이 AC밀란으로 이적료 0원에 이적했다. 고액 주급자 정리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1월 24일 후안 마누엘 마타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3710만 파운드로 알려졌다.

이적 시장 마지막 날인 1월 31일에는 AS 생테티엔 소속 프랑스 특급 유망주인 퀴르 주마를 1200만 파운드에 영입했다. 하지만 바로 첼시에 영입되지 않고 이번 시즌까지 생테티엔에 임대되는 형식으로 뛴 이후에 다음 시즌부터 첼시에 합류할 예정이다.

IN
네마냐 마티치(벤피카, £35.0M), 모하메드 살라(FC 바젤, £11.0M), 퀴르 주마(AS 생테티엔, £12.0M), 베르트랑 트라오레(프로 선수 계약 체결)

OUT
후안 마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7.1M), 케빈 더브라위너(VfL 볼프스부르크) 마이클 에시엔(AC 밀란), 가엘 카쿠타(SS 라치오 임대), 퀴르 주마(AS 셍테티엔 임대), 빌리 클리포트(로얄 앤트워프 임대), 조쉬 매키크런(위건 애슬레틱 FC 임대), 샘 워커(콜체스터 임대), 라이언 버트란드(아스톤 빌라 임대), 나다니엘 찰로바, 케네스 오메로(이상 미들즈브러 FC 임대), 패트릭 밤포드(더비 카운티 임대), 베르트랑 트라오레(비테세 임대)

2.11. 14/15 시즌


※ 더 상세한 경기 내용을 알고 싶다면 첼시 FC/14-15 시즌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각 경기마다의 내용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프리 시즌부터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다룬다.

2.11.1. 프리 시즌

이번 시즌 영입상황은 다음과 같다.

IN
세스크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 33M), 디에구 코스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40M), 마리오 파살라치(하이두크 스플리트, 1.7M), 필리페 루이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M), 디디에 드록바(자유계약), 로익 레미(QPR, 10M)

OUT
다비드 루이스(PSG, 63M), 프랭크 램파드(맨체스터 시티, 계약만료),애슐리 콜(AS 로마, 계약만료) 사무엘 에투(에버튼, 계약만료), 엔리케 힐라리우(은퇴), 샘 허치슨(쉐필드 웬스데이) 마스 칼라스(쾰른, 임대계약), 르강 아자르(뮌헨글라드바흐, 임대계약), 뎀바 바(베식타스, 6M), 마리오 파살리치(엘체, 임대계약), 케네스 오메루오(미들스보로, 임대계약), 루카스 피아존(프랑크푸르트, 임대계약), 패트릭 반 안홀트(선더랜드, 비공개), 로멜루 루카쿠(에버튼, 30M), 라이언 버트란드(사우스햄튼, 임대계약), 가엘 카쿠타(라요, 임대계약), 오리올 로메우(슈투트가르트, 임대계약), 마르코 마린(피오렌티나, 임대계약), 크리스티안 아츠(에버튼, 임대계약), 조쉬 매키크런(비테세, 임대계약), 빅터 모제스(스토크시티, 임대계약), 페르난도 토레스(AC밀란, 임대계약), 마르코 반 힌켈(AC밀란, 임대계약), 자말 블랙맨(미들스브러, 임대계약)
  • 단위는 유로이다.

5월 24일 다비드 루이즈가 PSG로 이적하였다. 가격은 40M+10M(옵션) 파운드로 역대 수비수 이적료중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대다수 첼시팬들은 루이즈가 오피셜이 뜨자 살짝 멘붕 상태에 빠졌으나 이적 금액을 보고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그리고 브라질 월드컵에서 터진 어떤 사건에 의해 신의 한수가 되었다.

6월 9일 기준으로 현재 바르셀로나의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티아고 멘데스, 펠리페 루이스, 디에고 코스타의 영입이 유력한 상태이다. 또한 유벤투스 포그바와 레알마드리드의 케디라, 모드리치, 포르투의 망갈라와 링크가 뜨는중. 또한 마린, 덴바바, 에투, 콜, 미켈, 버틀란드 등이 정리 대상인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체흐, 루카쿠 등이 이적설이 나오고있다. 6월 12일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이적이 완료되었다. 이적료는 33M. 6월 12일 토마스 칼라스가 쾰른으로 1년 임대되었다. 이로서 센터백 영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되었다. 6월 13일 뉴욕시티로 프랭크 램파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헌데 이후 램파드가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며 첼시와 맞상대를 하게 되었다.[61] 7월 1일 애슐리 콜, 사무엘 에투, 힐라리우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콜은 곧바로 AS 로마와 계약했다. 7월 2일 디에구 코스타의 이적이 완료되었다. 이적금액은 바이아웃인 38~40M 정도로 알려졌다. 7월 5일 토르강 아자르가 묀헨글라드바흐로 1년 임대가 확정되었다. 7월 8일 샘 허치슨이 쉐필드 웬스데이로 완전이적했다. 첼시 풀백의 미래로 불렸지만 결국 무릎부상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7월 9일 크로아티아의 유망주 마리오 파살라치를 크로아티아 리그팀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영입했다. 95년생인데 월드컵 예비 30인 명단에 들어갈 만큼 재능있는 선수라고 한다. 이적료는 1.7M. 7월 14일 터키의 베식타스가 뎀바 바와 마르코 마린을 임대영입한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베식타스는 소문을 부정했다. 7월 14일 뜬금없이 차기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무리뉴 감독이 거론되고 있다. 다행히 무리뉴 측에서 거절한듯. 하지만 브라질 측은 2년 정도 더 기다려줄수 있다고...뭔 짓거리야 7월 16일 뎀바 바베식타쉬 JK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6M. 그리고 필리페 루이스를 20M 유로의 이적료를 주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데려왔다. 7월 20일 케네스 오메루오가 미들스보로로 임대되었다. 마리오 파살리치는 엘체로 임대되었다. 7월 22일 영입이 유력했던 티아고 멘데스가 AT와 2년 제계약을 하면서 영입에 실패했다. 티아고 측은 2년을 요구했으나 첼시측은 1년 계약만을 고수했고 주급도 티아고가 요구한 주급에 반정도 밖에 안됬었다고... 이로서 이적할것이라 예상되던 오리올 로메우나 존 오비 미켈이 기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7월 23일 루카스 피아존이 프랑크푸르트로 임대되었다. 7월 24일 패트릭 반 안홀트가 선더랜드로 이적하였다. 7월 26일 디디에 드록바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였다. 7월 30일 로멜루 루카쿠에버튼 FC으로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옵션 포함 30M 유로였다. 라이언 버트란드는 사우스햄튼으로 임대되었다. 7월 31일 가엘 카쿠타가 라요 바예카노로 임대되었다. 8월 3일 오리올 로메우가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되었다. 8월 10일 마르코 마린이 피오렌티나로 임대되었다. 8월 13일 크리스티안 아츠가 에버튼으로 임대되었다. 8월 14일 조쉬 매키크런이 비테세로 임대되었다. 8월 16일 빅터 모제스가 스토크 시티로 임대되었다. 8월 30일 페르난도 토레스가 AC 밀란으로 임대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가디언 등지에 따르면 주급 보조도 위약금도 없다고. 토레스는 2016년 6월까지 첼시와 계약했으므로 사실상 완전이적에 가깝다첼시팬들이 풍악을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8월 31일 로익 레미를 영입하였다. 이적료는 10M 유로라고 한다. 반 힌켈이 AC 밀란으로 임대되었다. 9월 1일 자말 블랙맨이 미들스브러 FC로 임대되었다.

위컴 원더러스, 윔블던, RZ 팔렛츠, 올림피야, 테세, 베르더 브레멘 등 유수의 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브레멘 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군 선수 중 대부분이 월드컵 후 휴식으로 결장하는 가운데서도 유망주나 2군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 영입한 세스크 파브레가스디에구 코스타가 각각 프리킥 골과 필드골로 클래스를 여실히 증명했으며 프리 시즌 초반이라 그런지 필리페 루이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간결한 볼터치와 발재간으로 찬스를 창출해내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수비적으로 단 한개의 크로스도 허용하지 않는 등 레프트백으로써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유망주 중에서도 눈에 띈 선수는 스위프트, 루이스 바커, 이사이아 브라운, 패트릭 뱀포드, 힌켈, 조우마와 크리스텐센, 아케로 아케는 위컴 전에서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도움을 올리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크리스텐센과 조우마는 아케의 오버래핑으로 텅 빈 왼쪽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또한 스위프트와 바커는 공수를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개인기로 찬스를 만들어냈고 반 힌켈과 로메우는 중원에서 꽉 잡아주며 홀딩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했다.

특히 반 힌켈은 깔끔한 태클과 패스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함은 물론 플레이메이커로서 넓은 시야를 활용해 측면으로 패스를 뿌려주었고, 뱀포드도 위컴전에서 골은 넣었지만 오프 더 볼 움직임이나 볼 트래핑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프리시즌이 좀 지나고나자 RZ 팔렛츠전부터 상당한 오프 더 볼 움직임, 빠른 스피드를 활영한 드리블, 훌륭한 발재간, 코스타 뺨치는 연계 플레이로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다비드 루이즈가 빠진 중앙 수비수의 문제가 도드라졌는데, 이바노비치는 센터백으로서는 풀백만큼의 안정감이 부족했고, 영입된 후 임대에서 복귀한 퀴르 주마는 지능적인 수비를 하지 못하면서 불안함을 노출했다. 주장 존 테리가 언제까지 폼을 유지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중앙 수비수를 보강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데, 현재는 라파엘 바란이나 메흐디 베나티아등이 이적설로 연결되는 중.

2.11.2. 겨울 이적 시장

IN - 후안 콰드라도(피오렌티나, 35m)

OUT - 마크 슈와처(레스터 시티, 자유영입), 모하메드 살라(피오렌티나, 임대), 안드레 쉬얼레(볼프스부르크, 32m), 라이언 버틀란드(사우스햄튼, 5~10M추정)

오른쪽 공격수인 윌리안이 활동량은 많으나 생각보다 낮은 퍼포먼스를 보였고 안드레 쉬얼레모하메드 살라가 예상보다 기량이 너무 안 좋아 지속적으로 오른쪽 윙포워드와 연결되었다.

이에 마르코 로이스, 가레스 베일, 후안 콰드라도, 더글라스 코스타와 지속적인 링크가 떴다.

또한 존 오비 미켈의 발전없는 기량과 세스크-마티치의 혹사로 인한 체력문제가 부각되면서 루카 모드리치나 무사 시소코, 폴 포그바같은 중앙 미드필더와도 연결되었다.

모하메드 살라는 팀을 떠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사실상 인테르로 임대 이적이 유력했으나 무산되었고, 쉬얼레 같은 경우 도르트문트나 볼프스부르크와 연결되었다.

한 때 미켈+하미레스로 폴 포그바를 영입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소문으로 끝났다.

서드 골키퍼였던 마크 슈와처는 레스터 시티로 이적료 없이 완전 이적했다.

밀란으로 임대를 떠났던 토레스는 결국 밀란으로 완전 이적함과 동시에 친정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임대되었다.

무리뉴 감독도 겨울에 선수보강을 부정적으로 봤고 이적 시장 막판까지 소문만 무성해 사실상 이적 없이 겨울 시장이 끝나는듯 했지만 결국 마지막 날 피오렌티나의 후안 콰드라도를 35m+ 모하메드 살라 1년 6개월 임대[62]로 완전 영입에 성공했다.

또한 안드레 쉬얼레를 무려 32m 유로에 볼프스부르크에 판매하고 사우스햄튼으로 임대를 떠났던 버틀란드는 5~10m 파운드(예상)로 완전이적했다.


2.12. 로만 집권 후 잦은 감독 교체와 스타 영입 실패의 원인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때문이다.

2004년 이후의 첼시의 성공에 큰 이유는 바로 로만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로만은 매우 다혈질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성격인데다가, 축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단 운영에 매우 깊게 관여하고 있다. 물론 첼시에 거금을 투자했으니 어느정도 구단 운영에 관여하는것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그정도가 심하다.

실제로 로만은 경기중 리저브 타임에 선수 라커룸에 들어와 선수를 질책한다던가 칭찬을 하며 전술적 요구는 물론 지시까지 내린다고 한다.[63]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독들과 잦은 마찰을 가져왔다.[64]

이는 팀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잉글랜드 축구는 전통적으로 감독이 팀내 업무의 전권을 쥐고 있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영입과 유소년 발탁, 계약, 훈련등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구단주 밑에 보드진, 감독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첼시의 경우에는 감독 외에 스포르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라고 하는 이른바 단장 혹은 기술 이사라고 불리는 직책이 존재하며 선수 스카우트 등 구단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맡는다. 때문에 감독은 선수단 관리와 전술 등 경기장 내부의 일만을 맡게 되고 단장은 그 외의 구단 운영을 하며 선수 영입시에는 감독과의 상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때문에 단장은 감독과 동등한 위치이거나 감독보다 조금 높은 지위를 맡는다.

이렇게 단장직을 만든 이유는 보드진과 감독간의 의견차가 생길 경우 특히 선수단의 연봉이나 영입과 방출 등의 의견 충돌시에 보드진과 감독간의 조율을 하며 구단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첼시의 경우 감독과 단장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심하며 선수영입과 운영에 대하여 힘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단장은 아사진 즉 보드진으로써 로만 구단주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안드리 셰브첸코미하엘 발락의 영입은 무리뉴 감독은 영입을 반대했지만 당시 단장인 아르넨센과 그랜트의 주장(이라고 쓰고 로만의 주장으로 읽는다.)으로 영입되었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경우도 단장과 보드진의 요구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의중과는 상관 없이 영입되었다.

그결과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술과 맞지 않을 뿐더러 원하지도 않는 선수임으로 당연히 팀 전술에 스타 선수들이 녹아들지 못해 스타 선수들의 성적은 저하되어 선발진에서 빠진다. 그러면 보드진은 감독이 스타 선수를 계속 기용하도록 압박하여 감독은 스타 선수를 다시 기용한다. 그럼 다시 전술에 맞지 않는 스타선수들의 성적은 더욱 떨어지고 다시 선발에서 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감독과 보드진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보드진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를(비록 감독이 원치 않았더라도) 못 써먹는 감독을 무능하다고 판단하여 결국 감독을 경질하게 되는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전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현 기술이사인 마이클 에메날로가 라파 베니테즈 감독을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후임으로 추천한것 때문에 큰 압박을 받고 있어 조만간 기술이사가 바뀌어 구단 운영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65][66]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지극히 절실하게 원하던 펩 과르디올라FC 바이에른으로 가버린 후,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주제 무리뉴를 선임함으로서 지금까지의 행보의 변화를 예고했다. 에메날로의 경질도 본인은 사임을 표했으나 무리뉴와 보드진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또한 셰브첸코 이적에 대한 것은 무리뉴가 직접 인터뷰로 구단주의 의도만으로 된 것이 아닌 자신의 의사도 들어가 있었다고 고백했다.[67]

그러나 이런 잦은 감독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적이 나오는 것은 칭찬받을만 하다. 새로 들어온 감독의 전술적 역량, 감독의 경질에 따른 선수단의 사기 상승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두가지 이유로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닦아놓은 첼시의 기본적인 큰 틀과 첼시의 10년을 책임진 환상적인 척추 라인이 손꼽히고 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닦아놓은 첼시의 4-3-3 포메이션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부임 이전까지 첼시의 큰 틀이었고, 그 틀 안에서 첼시의 황금세대, 척추라인이라고 불리우는 페트르 체흐, 존 테리, 애슐리 콜,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는 꾸준히 환상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었고, 그 덕에 첼시는 EPL과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첼시의 10년을 만들어 냈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귀환하면서 향후 10년을 책임질 황금 세대는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3. 라이벌

축구 종가 영국, 그리고 그곳의 수도답게 수많은 축구 클럽이 있는 런던이지만 사실 첼시는 런던 내에서는 라이벌이 많은 팀이 아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첼시가 있는 서부 런던에는 렌트퍼드 FC, 풀럼 FC, QPR 등이 있는데 첼시는 브렌트퍼드와 처음 맞붙은 게 1950년이었고(브렌트퍼드는 1889년에 창단했고, 첼시도 창단이 1905년이었는데!), QPR과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만난적이 없다. 리그 컵이나 FA 컵에서 조차도. 많이 붙어봐야 선수, 팬들 간의 라이벌리가 생길텐데 일단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서런던 더비는 상당히 심심한 편이다. 바로 옆동네의 북런던 더비의 토트넘-아스날, 그리고 축구 라이벌리에서 최악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웨스트 햄-밀월을 보더라도.

그나마 풀럼 FC과는 74번 맞붙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서런던 더비라고 불린다. 문제는 첼시가 41승 24무 9패로 완전히 씹어 먹는 상대 전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서런던에서는 이렇게 미지근한 반면 다른 구단들과는 꽤나 라이벌리를 형성했는데, 아스날 FC와의 더비는 북런던 더비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역사가 깊다. 177번을 붙어 54승 52무 71패로 밀리는 성적. 2000년대 이후에는 2002 FA 컵 결승에서 아스날이 첼시를 잡은 적이 있었고, 2007 칼링 컵 결승에서는 첼시가 아스날을 꺾었다. 이 경기 이후 아스날에 개스날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다만 무리뉴 감독이 지휘하고 있을 때 만큼은 7승 5무 무패로 벵거를 완전히 호구잡아서 가지고 노는 일방적인 전적을 자랑한다. 토트넘 핫스퍼 FC와도 근래 자주 만나 양 팀 팬들은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매우 민감해진다. 그 대표적인 경기가 11-12 시즌 FA 컵 4강.

첼시는 요크셔의 리즈 유나이티드와 자주 붙었기 때문에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101번이나 만나서 33승 29무 39패로 약간 밀리긴 하나 이정도면 팽팽한 수준. 맨 유와 리즈 간의 라이벌리가 너무 강력해서 그렇지 리즈의 두 번째 라이벌은 첼시였다. 지금은 리즈 시절의 리즈가 아니라 그렇지만 1970년에는 FA 컵에서 재경기 끝에 첼시가 리즈를 꺾고 우승한 적도 있다.

2000년대 이후 강팀이 된 이후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와 라이벌 관계에 엮이기도 했다. 맨유와는 대체로 성적에 의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었으며, 리버풀은 심심하면 컵 대회에서 만나면서 라이벌리가 형성되었다.[68] 특히 리버풀과는 페르난도 토레스 이적건으로 인해 라이벌리가 더욱 불타올랐는데, 토레스 이적 직후 2012시즌까지 첼시는 리버풀에게 겨우 1승에 그치고 있다. 다만 그 1승이 FA 컵 결승이라 리버풀 팬들은 "차라리 리그에서 한경기 지고 말지 왜 하필 거기서 지냐"면서 배아파하고 있지만. 그런데 13-14 시즌에는 리그 2경기 모두 첼시가 이기고 징크스를 깼다.

3.1. FC 바르셀로나와의 악연

현재 세계 최강팀이라고 불리는 FC 바르셀로나와는 2000년대 초기부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 자주 만나 경기마다 명경기를 불러일으키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첫 만남은 1999-2000 챔피언스 리그 8강전. 1차전 홈에서 첼시는 지안프랑코 졸라 등이 맹활약하며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당시 첼시는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바르셀로나는 펩 과르디올라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2차전에서 0-5로 털리면서 4강은 바르샐로나가 갔다는거지...

그 뒤 두번째 만남은 로만이 인수한 후 주제 무리뉴 감독의 첼시 첫 시즌인 2004-2005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1차전 캄프 누 원정 경기에서 드록바의 퇴장 등으로 열세에 몰린 첼시는 선제골 이후 내리 2골을 먹으며 2:1로 역전패했다. 그리고 2차전 홈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를 만들어내며 4:2로 대승을 거두었다.문제는 4강에서 리버풀에게 털렸다.그 리버풀은 우승했다[69]

바로 다음 시즌 2005-2006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다시 만난 첼시와 바르셀로나는 이번에는 1차전은 첼시의 홈에서, 2차전은 바르사 원정으로 치뤘다. 허나 1차전 메시와 딩요의 맹활약에 델 오르노의 퇴장으로 불운을 겪은 첼시는 2:1로 패배했고, 원정에서도 간신히 1:1 동점을 만들었으나 결국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2006-2007시즌, 이번에는 무려 조별 리그에서 만났다. 1차전에서 첼시는 드록바의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1:0으로 승리했으며, 2차전에서는 2:0으로 끌려다니다가 드록바의 만회골, 그리고 프랭크 램파드의 무각도 슛으로 동점골을 만들면서 1승 1무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8-2009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오브레보 개새끼 해 봐

그 뒤 3년 만에 2011-2012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위에 서술한 대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펼치며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꺾고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이때 두 팀의 감독은 첼시는 로베르토 디 마테오였고, 바르셀로나는 펩 과르디올라였다. 악연의 끝 게다가 이 뒤에 둘 다 사임했으니 쌤쌤

첼시는 2006-07 시즌 이후로 한 번도 FC 바르셀로나에게 진 적이 없으며,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최고의 축구스타 메시 역시 첼시와의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골을 넣지 못했다. 심지어 PK도 놓쳤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FC 바르셀로나와 티키타카가 유독 첼시에게만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첼시가 전성기의 첼시가 아닌, 무리뉴 1기의 말년과 잦은 감독 교체기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결과이다. 티키타카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게겐 프레싱에 카운터를 맞고 황혼기에 접어들었는데, 첼시 역시 수비 차원에서 이와 비슷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리뉴가 남긴 선 수비 후 역습 정신은 후에 부임한 감독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으며,[70] 마케렐레, 에시앙, 램파드, 발락, 미켈 등 활동량과 압박 면에서 유럽 최고 수준의 중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수준의 게겐 프레싱은 아닌, 단순히 수비 차원에서 그쳤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바르셀로나를 타도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중요한 길목마다 번번이 바르셀로나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4. 스쿼드

Chelsea FC 2014-2015시즌 선수명단
등번호 이름 영문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1페트르 체흐Petr ČechGK
CZE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2년 5월 20일
2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Branislav IvanovićDF
SRB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4년 2월 22일
3필리페 루이스Filipe LuísDF
B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5년 8월 9일
4세스크 파브레가스Cesc FàbregasMF
ESP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5월 4일
5퀴르 주마Kurt ZoumaDF
F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4년 10월 27일
6단 아케Nathan AkéMF
NED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5년 2월 18일
7하미레스RamiresMF
B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3월 24일
8오스카르OscarMF
B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9월 9일
10에덴 아자르Eden HazardMF
BEL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1월 7일
11디디에 드록바(부주장)Didier Drogba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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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 11일
12존 오비 미켈John Obi Mikel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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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22일
13티보 쿠르투아Thibaut Courtois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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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11일
18로익 레미Loïc Rémy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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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2일
19디에고 코스타Diego Costa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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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7일
21네마냐 마티치Nemanja Matić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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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1일
22윌리안Willian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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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9일
23후안 콰드라도Juan Cuadrado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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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26일
24게리 케이힐Gary Cahill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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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 19일
26존 테리(주장)John Terry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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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7일
28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César Azpilicueta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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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28일
31드레아스 크리스텐센Andreas Christensen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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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10일
35미니크 솔랑케Dominic Solanke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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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4일
36벤 로프터스-치크Ruben Loftus-Cheek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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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23일
46말 블랙맨Jamal Blackma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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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27일

5. 역대 성적(99~00시즌 이후)

99~00 시즌 리그 5위, 챔스 8강, FA컵 우승
00~01 시즌 리그 6위
01~02 시즌 리그 6위
02~03 시즌 리그 4위
03~04 시즌(로만 구단주 부임) 리그 2위, 챔스 4강
04~05 시즌 리그 우승, 챔스 4강, 칼링컵 우승
05~06 시즌 리그 우승, 챔스 16강
06~07 시즌 리그 2위, 챔스 4강, FA컵 우승, 칼링컵 우승
07~08 시즌 리그 2위, 챔스 준우승, 칼링컵 준우승
08~09 시즌 리그 3위, 챔스 4강, FA컵 우승
09~10 시즌 리그 우승, 챔스 16강, FA컵 우승
10~11 시즌 리그 2위, 챔스 8강
11~12 시즌 리그 6위, 챔스 우승, FA컵 우승
12~13 시즌 리그 3위, 유로파 우승
13~14 시즌 리그 3위, 챔스 4강

6. 응원가


노래 제목은 Blue is The Colour. 홈 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응원가이다. 1972년 리그 컵 결승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선수단이 이 노래를 녹음했다. 한 때 UK 차트 5위까지 올라가면서 가장 성공한 축구 팀 응원가가 되었다. 1973년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컵 결승전에서 첼시 팬들이 처음으로 이 곡을 부르나 졌다.

뿐만 아니라 Pride of London본격 아스날 도발하는 응원가 토트넘은 안중에도..., Blue Day 등도 응원가로 유명하다.

선수 응원가도 많이 있으며, 감독 디스 곡(Rafa Out)도 있다(...). 응원가 중에는 꽤나 거친 곡도 많아 F word가 밥먹듯이 들어가는 곡들도 있을 정도. 링크.

7. 첼시 레이디스

첼시 레이디스 FC
Chelsea Ladies F.C.
정식 명칭 Chelsea Ladies Football Club
애칭 더 블루스(The Blues)
창단 1992년
소속 리그 FA 여자 슈퍼 리그
연고지 런던, 풀럼
홈 구장 휘트셰프 파크(Wheatsheaf Park, 수용인원 3,009명)
구단주 존 테리(John Terry)
회장 피터 스튜어드(Peter Steward)
감독 마 헤이스(Emma Hayes)
공식 홈 페이지 http://chelsea.fawsl.com

여자부 축구단도 산하에 두고 있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는 그 레이디킬러존 테리가 2009년에 팀에 직접 투자해서 구단주로 앉아 있다.[71]

Chelsea L.F.C. 2014시즌 선수명단
등번호 이름 포지션 국적
13마리 아워리한GK잉글랜드
5길리 플래허티DF잉글랜드
6엠마 빌헬름손[72]DF스웨덴
11클레어 래퍼티DF잉글랜드
21해나 블런델DF잉글랜드
23로라 배셋DF잉글랜드
4드루 스펜스MF잉글랜드
10지소연MF대한민국
17케이티 채프먼MF잉글랜드
19로라 쿰스MF잉글랜드
20조디 브렛MF잉글랜드
22로젤라 아야네MF잉글랜드
7오기미 유키FW일본
9에니올라 알루코FW잉글랜드
12카린 무야FW잉글랜드
-로라 래퍼티DF잉글랜드
-레이철 윌리엄스MF잉글랜드
-대니엘 뷰엣MF잉글랜드

8. 기타

  • 웸블리 스타디움이 재건축을 하는 동안 잉글랜드 FA 컵은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결승이 진행되었는데, 첼시는 재건축 전 마지막 결승과 재건축 후 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첫 FA 컵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뉴 웸블리에서의 첫 칼링 컵 결승에도 진출했으나 토트넘에게 패했다.

  • 팀 닥터 에바 카네이로의 빼어난 미모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첼시 선수들은 팀닥터의 어루만짐을 받고싶어 안아파도 아픈척한다 카더라#



  • 1970년 이후로 첼시 헤드 헌터스라는 훌리건 집단이 악명을 떨치던 적이 있었는데, 웨스트 햄, 밀월 등과 더불어 런던의 악질 훌리건으로 유명했다. EPL 출범 이후로는 구장의 전좌석화, CCTV 설치 등으로 거의 훌리건들이 보이지 않으며 타팀 팬들이 보기에 첼시 팬들이 얌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여전히 첼시의 과격 훌리건들은 무시무시하다. 09-10 시즌에만 126명의 팬이 구속되었으며 27명은 영구 입장 정지를 당했다. 참고 자료.[73]

  •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알반탑기어의 메인 호스트 제레미 클락슨이 첼시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 EPL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유명하지만 삼성이 스폰서하는 팀으로도 유명했다. 첼시가 강팀으로 일어서는 와중에 삼성에서 스폰서 계약을 했고, 파란색이라는 컬러가 잘 맞아떨어져서 광고효과도 매우 쏠쏠하다고 한다, 이러한 신의 한 수는 아직도 대표적인 성공적 마케팅 전략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2015년에 스폰서 계약이 종료되고, 연장 계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15-16시즌부터는 첼시 유니폼에 삼성이 아닌 다른 스폰서의 마크가 달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삼성과의 스폰서계약은 2014-15시즌으로 끝나고 2015-16시즌부터 요코하마고무(요코하마타이어라는 타이어 브랜드와 기묘하게 생긴 타이어얼굴 마스코트 로고로 유명하다.)로 유니폼 스폰서가 바뀐다. 04-05시즌부터 첼시와의 스폰서계약을 한 삼성은 딱 10년동안 스폰서를 한 후 관계를 끝냈다.[74] 더불어 스폰서 금액은 연간 40M,우리나라 돈으로 680억원의 계약이라고 한다. 스폰서와 구단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한국 네티즌 사이에선 논란이 되고 있다. 바로 직전이 삼성이었기 때문에 많은 첼시팬들이 더욱 더 실망하고 있다.[75] 본격적으로 유니폼이 바뀌는 다음 시즌 많은 첼시팬들의 이탈이 예측된다. 제발 한국인이면 첼시 응원하지 맙시다냐? ~~그러고선 그 첼시팬들이 맨시티 아스날 뮌헨 레알 바르사로 갈아타는건 웃기는 유머. 사실 첼시팬중에서 일부는 삼성때문에 응원한다.
그냥 첼시 스폰서 바뀌는거에 거품물고 날뛰면 그건 철새고 진짜 애정있는 첼시팬들은 덤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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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첼시는 이름만 첼시지 사실은 풀럼에 위치해 있다
  • [2] 역대 EPL 영입료 2위.근데 정작 결과는....
  • [3] 역대 수비수 최고 이적료
  • [4]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현재 폐지된 UEFA 컵 위너스 컵
  • [5] 2013년에 유로파를 우승하면서 4번째로 이 기록을 보유한 클럽이 되었다. 이전에는 유벤투스 FC,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이 달성한 기록이 있다.
  • [6] 04-05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 시절
  • [7] 09-10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시절
  • [8] 04-05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 시절
  • [9] 첼시가 위치한 지역은 런던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하다.
  • [10] 이 지역은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많다고 한다.
  • [11] 첼시가 로만에게 큰 클럽이라고 할 수 있어도, 맨시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즉, 첼시는 로만 이전부터 어느 정도 성적도 낸 클럽이었던 반면 맨시티는 만수르가 인수하기 전까지 첼시와 달리 하위권이나 2부리그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 [12] 아이러니하게도 이 득점은 지금 첼시에 있는 니콜라 아넬카의 득점이다. 파울루 페헤이라의 반칙으로 얻은 PK를 성공한 것.
  • [13] 선 수비 후 역습.
  • [14] 부진이라고 해도 점유율은 4:6으로 바르셀로나가 앞서 갔다. 그러나 유효 슈팅 수는 첼시가 더 많았다.
  • [15] 테리, 카르발료, 불라루즈
  • [16] 역시 거금을 들여 영입한 칼루와 미켈은 위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생략.
  • [17] 물론 발락은 FA로 왔기 때문에 이적료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고 셰브첸코에 비해서는 덜 까였다. 후에 잘했기도 했고...문제는 주급이 너무 비싸 재계약에 실패했다.
  • [18] 참고로 첼시는 04-05, 06-07, 08-09 시즌에 4강전을 치를 때마다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이 불거져 나왔으며, 그럴 때마다 반드시 패했다. 안습.
  • [19] 아스날에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은 계기가 된 경기. 아스날 항목 참조. 06-07 FA Cup 결승전에서는 드록바의 연장 결승골이 터지자 무리뉴의 벼 베기 세레모니가 나왔다. 벼 베지 마
  • [20] 칼링 컵까지 포함하면 무려 3개 대회 준우승이다.
  • [21] 이스라엘 여러 구단의 스카웃 제의를 마다하고,그 뒤로도 프리미어 리그에 남고 싶다던 그는 이후 포츠머스 FC 감독이 되지만 첼시 때와 달리 강등당하였고 다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감독이 되었지만 여기도 2010~11시즌 강등권에 머물다가 결국 강등, 2회연속 강등팀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당했다. 그 뒤에 잉글랜드를 떠난 그란트는 세르비아 리그로 가서 FK 파르티잔 감독이 되어 팀을 리그 우승시키며 프리미어리그에서 2회 연속 강등감독이란 오명을 씻으며 은퇴했다.
  • [22] 이 경기는 첼시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명경기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경기니 축구 팬이라면 꼭 감상해 보도록 하자. 리버풀도 당시 스티븐 제라드가 없이 나선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이 기대를 버리고 보다가 어...어... 하는 사이 희대의 명경기를 보았다며 감탄하는 팬들이 많을 정도. 오죽하면 리버풀이 해당 시즌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털어버린 것보다 더하다고 할 정도다. 물론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맨유1-4리버풀 정도로까지 쳐주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이탈리아의 스포츠전문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이 경기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천년에 한번 나올법한 승부."
  • [23] 매일 같이 경기 비디오를 보며 메시의 움직임을 공부했다고 한다
  • [24] 에버턴과의 결승전이었으며 이 경기 역시 명경기이다. FA 컵 사상 가장 빠른 25초 만에 루이 사하에게 선제골을 먹었지만, 말루다의 크로스를 받은 드록바의 동점골, 그리고 램파드의 환상적인 중거리 슛 역전 골로 2:1로 승리했다. 골을 넣은 뒤 램파드의 세레모니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FA 컵에서 골을 넣은 뒤 한 세레모니를 따라서 한 것.
  • [25] 제2의 무리뉴라고도 하지만, 본인은 그런 표현을 싫어한다. 실제로 빌라스-보야스는 무리뉴의 제자라기보단 같은 스승을 둔 사제이자 파트너라고 하는게 보다 정확하다.
  • [26] 베르바토프가 도망치듯이 이적하게 만든 그 고집 맞다.
  • [2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임대가 결정되었다. 거기도 유망한 골키퍼를 잃어버렸으니...
  • [28] 8M을 지불하면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조항.
  • [29] 그런데 유리 지르코프가 그 동안의 쩌리 생활을 마치고 러시아 클럽 안지로 이적했다. 이것으로 첼시는 25군 로스터에서 외국인 선수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 상태. 이 떡밥에 수많은 첼시 팬들이 설레이고 있다.
  • [30] 현금+요시 베나윤으로 비드했다고 한다.
  • [31] 현금+알렉스.
  • [32] 맨시엔, 라이코비치, 괴칸 퇴레 등등...
  • [33] 일단 아르네센 단장이 사임한 후 마이클 에메날로 단장이 부임하면서부터 보드진의 무능함이 어느 정도 완화된 것 같다. 그리고 사임 후 함부르크SV로 건너가 단장으로 부임한 아르네센은 팀을 자기 맛대로 바꾸었다가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시 모든 원흉은 아르네센이었어.
  • [34] 이적료는 5~7M 정도
  • [35] 런던 소재 클럽 중 첼시와 함께 빅4의 일원이었던 아스날은 아스날은 바르셀로나에게 패해 준우승한 게 최고 기록. 또 토트넘의 경우에도 우승 경력이 없다.
  • [36] 공교롭게도 당시 레알 마드리드도 리그를 5위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에 직행할 수 없었다. 이 때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3-0으로 완파하며 8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렸고, 스페인 축구 협회는 리그를 4위로 마감한 사라고사를 UEFA 컵으로 강등시키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부여하였다.
  • [37] 오히려 드라마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 [38] 사실 토레스의 골이 없었어도 1,2차 총합골 (2)-(2)로 홈에서 바르셀로나에게 골을 안내준 첼시가 원정 다득점이여서 결승 진출은 가능했다.
  • [39] 체력이 많이 떨어진 연장전이니만큼 키커가 더 강하게 찰 수 있는 방향으로 올 거라 생각했고, 왼발잡이인 로번의 입장에서는 오른쪽으로 찰 때 힘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으므로 오른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 [40] 특히 슈바인슈타이거는 카메라에 잡힌 모습만으로도 박살나고 있는 멘탈이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리고...
  • [41] 체흐가 손끝으로 터치하기는 했다.
  • [42] 펩 과르디올라를 원하고 있었던 로만으로서는 차마 우승 감독을 내칠 수는 없어서 마지못해 맺은 계약이었다. 햇수도 고작 1년.
  • [43] 물론 FA가 아니기 때문에 첼시에서 뛰는건 12-13 시즌부터 가능하다.
  • [44] 실제로 챔스 우승을 못했었더라면 계속 남았을 거라고 한다.
  • [45] '이건 또 어느 듣보지?'라고 생각한 대다수의 팬들의 뒤통수를 후린 선수. 무려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10번이다!
  • [46] 그러나 모드리치가 레알 마드리드가 관심을 보이면서 상당히 영입 의사가 식은 듯 하다. 작년에 그렇게 노리다가 결국 영입하지 못하고 하울 메이렐레스를 영입햇으니...
  • [47] 이는 아무래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첼시가 우승 상금+TV 중계권+입장료+스폰서+기타 수입 등으로 거의 100M 유로에 가까운 수익을 올려 FFP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대량 영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난 루머들이다. 그리고 첼시는 지난 시즌 도중 마르코 마린을, 그리고 프리 시즌에 들어서자마자 에덴 아자르를 영입하여 이를 증명했다.
  • [48] 또는 8백만 유로라는 소식이 있다.
  • [49] 이 와중에 마르세유 회장이 아직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의 이적은 완료되지 않았다고 언플을 흘렸는데, 그 시각에 아스필리쿠에타는 첼시 훈련장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곧바로 오피셜.
  • [50] 2012년 1월 겨울 이적 시장때에 영입
  • [5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2년 임대 계약 연장을 채결했다.
  • [52] 각각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베르더 브레멘, 노팅엄 포레스트, 미들즈브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53] 약 700만 파운드 밖에 되지 않는다! 뉴캐슬 감독인 앨런 파듀 감독도 인정했다.
  • [54] 슈월처 골키퍼는 40살이다.
  • [55] 시즌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정이 초반부터 험난하다는 것이 리그 라이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지도 모른다. 이미 진행된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첼시, 리버풀, 크리스탈 팰리스,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를 펼친다. 그런데 맨 유가 이 경기들을 다 이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 [56]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윌리안 이미 토트넘과 합의에 도달해 메디컬까지 받고 있었다.
  • [57] 그런데 사실 지난 시즌도 2선 자원이 6명이었지만 정작 경기에는 마타-오스카르-아자르가 주구장창 나왔다. 마린, 모제스, 베나윤 중에서 모제스를 제외하고는 둘 다 쩌리에 가까웠다.
  • [58] 무리뉴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1월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며, 다음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중요한 영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 [59] 다만 루이스의 기량이 그만큼 향상되었고, 마티치도 벤피카에서 꾸준한 주전 출장으로 기량이 급상승한 것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호구스러운 딜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티치를 싸게 사온 것도 있고...
  • [60] 벨기에 국대가 이적료를 보조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불명확한 추가 옵션으로 약 500만 파운드가 더 지불될 수 있다고 한다. 파운드가 아닌 유로로 따지면 거의 2500만~3000만으로 환산할 수 있다. 사올 땐 겨우 700만 파운드였으니 몸값이 세 배 뛴 셈이다.
  • [61] 램파드 본인은 첼시전에 출전하지 않은다고 밝혔는데, 페예그리니 감독이 어떤 수를 쓸지는 모르는 일.
  • [62] 정확히는 남은 이번시즌 6개월은 무상 임대이고, 그 후에 1년 더 임대를 원할 경우 피오렌티나가 첼시에게 1m 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 [63] 예를 들어 로만이 라커에 들어와 에시엔에게 네가 전술의 핵심이다 라고 말하고 간다거나 무리뉴 경질후 실제로 자신이 직접 전술 지시를 하기도 했었다.
  • [64] 첼시 부임당시 무리뉴는 "만약 로만이 계속 팀 훈련에 관여한다면 우린 리그 꼴찌일 것이다. 만약 내가 로만의 사업에 관여한다면 우린 파산했을 것이다."라고 했을정도.
  • [65] 그렇다고 에메날로가 무능한 것은 아니다. 토레스 영입시에도 사실 그는 반대했었고 마타, 다비드 루이스, 오스카르, 아자르 등 주전은 물론 쿠르투아, 로메우, 더브라위너. 피아존과 같은 유망주까지 11/12시즌 이후 이루어진 꿀영입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 [66] 그리고 페르난도 토레스 영입은 에메날로가 아닌 당시 기술이사였고 지금은 함부르크 SV의 단장인 프랭크 아르네센의 입김이 가장 강했다. 사실 10/11시즌의 생각없는 무리한 지출은 아르네센의 무능함이 그 큰 원인이었던 듯. 그리고 그 무능함을 함부르크에 가서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마이클 에메날로가 기술이사가 된 후에는 딱히 심각한 지출 없이 선수들을 쏠쏠하게 사오는 것을 보면...
  • [67] 당시 첼시는 다비드 비야도 관심이 있었지만 사무엘 에투에게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투 및 비야 구입에 사력을 다했으나 돌아온 것은 NFS였고 그 차선책으로 구입한 것이 당시 그래도 전성기를 달리던 셰브첸코였다. 그러나 경기에서 셰브첸코가 폭망(...).
  • [68] 2000년대 중후반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이들은 심심하면 만났다. 초반에는 리버풀이 재미를 보다가 후에는 첼시가 흥했다. 그런데 FC 바르셀로나전보다는 맞대결 기록이 적다.
  • [69] 이 경기는 지금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 [70] 일단 선수단부터 그렇게 구성을 해두었으니 말이다.
  • [71] 당시 팀 해단 위기였다.
  • [72] 지소연 선수와 함께 입단식을 한 선수다.
  • [73] 역시 이 바닥에서 유명한 팀으로는 같은 런던 팀인 웨스트 햄, 그리고 맨 유, 버밍엄, 리버풀 등이 있다.
  • [74] 참고로 삼성그룹은 2013 시즌을 끝으로 스포츠 마케팅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2013년 자사 축구단과 남녀농구단을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넣으며 운영비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와 대한레슬링협회의 스폰서도 더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첼시 유니폼건도 자금싸움에서 밀린게 아니라 계약 연장을 올해까지만 하고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75] 혐한기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팬들이 유니폼을 구매하는데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입고다니기는 더욱 불편하다. 경기를 볼 때도 스폰서 로고는 수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