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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석

last modified: 2015-04-12 20:28:56 Contributors



LG 트윈스 No.70
차명석(車明錫)
생년월일 1969년 4월 20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사당초-성남중-성남고-건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5번)
소속팀 LG 트윈스(1992~2001)
지도자경력 LG 트윈스 투수코치(2004~2005)
LG 트윈스 불펜코치(2006~2009)
LG 트윈스 재활코치(2009)
LG 트윈스 육성군 투수코치(2009)
LG 트윈스 불펜코치(2010)
LG 트윈스 투수코치(2010~2014.2.10)
LG 트윈스 수석코치(2015~ )

LG 트윈스 등번호 70번
김선진(2012~2014) 차명석 (2015~ )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해설자 1기
4. 지도자 1기
5. 해설자 2기
6. 지도자 2기
7. 코칭 스타일
8. 연도별 주요 성적
9. 차명석 해설 어록
9.1. 마누라 디스
9.2. 올스타전
9.3. 낚시
9.4. 매덕스와 차명석의 공통점
9.5. 케리 우드의 변화구
9.6. 장종훈의 홈런
9.7. 말실수
9.8. 옥의 티와 티의 옥
9.9. 공감 능력
9.10. 워커는 이름이 문제다
9.11. 롤모델
9.12. 10분에 하나씩 나오는 투수
9.13. 도곡동 호나우두
9.14. 상대성 이론
9.15. 견제구
9.16. 갖고 싶은 어깨
9.17. 어려운 승부
9.18. 목 부상
9.19. LG가 2014년 4강에 갈 수 있는 이유
9.20. 20승
9.21. 이종범 196안타의 증인
9.22. 기타 등등

1. 소개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 오랜기간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활약했으며, 잠깐 동안 맡았던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 해설자 시절에도 특유의 입담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LG 트윈스 역대 투수코치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코치.

2. 선수 시절


성남고등학교건국대학교 야구부를 거쳐 졸업후 1992년 2차지명 1라운드에서 LG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덧붙여 그 해 1차지명 선수는 휘문고등학교의 임선동. 초기에는 주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나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컨트롤이 좋은 것도 아닌 그에게 선발이라는 보직은 버거웠던 듯. 그대로 가면 존재감이 안습인 선수인 채로 아무도 모르게 은퇴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김용수한국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선구자였다면, 차명석은 중간계투의 에이스, 즉 셋업맨의 선구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패턴이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 충족 → 최대한 이닝을 길게 끌고 간다 → 7~8회에 마무리를 올린다'였다면 차명석은 주로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등판하여 셋업맨으로써 1~2이닝을 책임지고, 그 후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이전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며 차명석 이전에 팀 선배인 차동철과 후배인 강봉수, 해태 타이거즈의 마당쇠 송유석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노예처럼 마무리 투수를 불러내기 애매한 상황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던지던 승리조 투수에 가까웠지 메이저리그 식의 프라이머리 셋업맨 개념은 아니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고 정착한 것은 선수 보다는 투수 분업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이광환 당시 LG 트윈스 감독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6~8회에 공을 던지는 투수'와 '전문 셋업맨'을 본격적으로 분리시킨 것이 바로 이광환 감독이 도입한 라루사이즘식 투수 분업화이기 때문. 차명석은 이런 시스템에서 '전문 셋업맨'이라는 역할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성공한 투수로 평가받을 만한 선수다. 그덕에 중간계투 투수로서 최초로 억대 연봉자에 이름을 올렸다. 즉 이 성공이 이동현, 안지만, 정현욱 등을 있게 해준 뿌리인 셈. 이처럼 이광환 감독의 체계적인 투수분업화 도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보직도 없이 마구잡이로 혹사당하면서 사라졌을 수많은 투수들의 선수 생명을 10년 이상씩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커리어 하이는 11승을 기록했던 1997년이다. 그 해 68경기에 등판해 119.1이닝이라는 중간계투로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등판을 해서 11구원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이 당시의 뛰어난 활약상 덕분에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차덕스였다. 1990년대 후반 LG 트윈스 마운드의 대표적인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그가 비록 그가 A급 선수라고 부르긴 힘든 성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가 2001년에 방출되어 은퇴한 이후 2000년대 LG 마운드에서 이동현을 제외하면 그에 버금가는 활약을 해준 셋업맨은 전무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습.

2001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서 9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고 재활하다가 시즌 후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것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였다. 32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한지라 차명석 본인으로서는 후회도 물론 많지만, 처음 소박한목표로 세웠던 선수 생활 10시즌, 억대 연봉, 300게임 출장을 모두 달성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특히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중간계투 최초의 억대 연봉 기록은 그로서도 의미가 깊은 듯.

3. 해설자 1기


은퇴한 후 허구연의 제안으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MBC 스포츠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을 맡았다. 해설가로 활동한 시절에 특이한 어록 등을 많이 남겨서 재미를 선사했는데, 아래에 언급되는 저 수많은 어록들이 해설가를 맡았던 단 1년 사이에(…) 나온 것이다. 해설자 경력은 다음해에 코치 신분으로 친정 팀에 복귀하게 되면서 마무리하게 되는데, 해설을 계속 해 보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자신은 현장에서 뛰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 코치로 복귀했다고 한다.

4. 지도자 1기


2003년 시즌이 끝난 뒤 친정 팀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어 이후 불펜, 재활, 육성군 투수코치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코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박종훈의 뒤를 이어 김기태 수석코치가 LG 트윈스의 감독이 되자 2011년 10월 14일 LG의 1군 메인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그 전에 코치일 때도 큰 실적이 없었고 해설가일 때 개드립(?)을 많이 날렸던 탓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명목상 1군 투수코치일 뿐 사실상 조계현 수석코치가 1군 투수진을 총괄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LG 팬들로부터 의외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변화구를 잘 전수해 준다는 듯했다. 2011 시즌까지 고인화되었던 김광삼 & 정재복의 부활이라든지 중간계투의 투입 타이밍이라든지 괜찮은 평가를 들었다. 아쉬운 점은 투수코치 재임 후 2012년 LG 투수들의 최고 구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 변화구 & 컨트롤 UP & 스피드 DOWN 하지만 레다메스 리즈는 162km/h 찍었다 물론 2012 시즌 LG 1~2군 투수코치진을 보면 전원이 현역 시절 변화구와 제구력이 특기였고 구속은 떨어지는 사람들이긴 했다.
2012 시즌에는 팀 평균자책점이 4.02로 3점대 평균자책점에 근접했고, 불펜 평균자책점이 3.65로 전체 3위를 기록하면서 마운드의 개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13 시즌에는 정현욱의 FA 영입과 더불어 팀 불펜진이 더 강해졌고, 우규민신정락, 류제국 등 토종 선발진이 자리를 잡으면서 6월 21일 기준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그 와중 7월 8일 콩팥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느라 2주 동안 병가를 냈다. 따라서 엔트리에서 잠시 말소되었고, 그 사이 1군 투수코치 대행은 강상수 1군 불펜 투수코치가, 1군 불펜코치 대행은 경헌호 2군 투수코치가 1군에 잠시 올라와서 맡았다. 7월 23일 후반기 첫 경기인 잠실 KIA전에 요양을 마치고 복귀하였다.

2013 시즌 시작 전 단장, 사장과 같이 모인 자리에서 2013 시즌에는 적응기라 생각하고, 빠르면 2014 시즌, 늦어도 2015 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즈평균자책점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공언하여 모인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2013시즌 LG트윈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실제 삼성을 제치고 1위를 달렸기에 수많은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 정규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삼성의 평균자책점은 4.52로 2위, LG의 평균자책점은 4.58로 3위이다. 참고로 1위는 4.29의 NC 다이노스. 타고투저의 시즌으로 불린 2014년 시즌에서 팀 평균자책점이 4점대인 팀은 위 세 팀 뿐이다.
LG 트윈스의 2013 시즌 돌풍의 원인으로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쉽, 김무관 타격코치의 무관매직과 더불어 마운드를 꾸려낸 차명석 투수코치의 능력이 상당히 높게 평가받았다.

게다가 2013 시즌 후반에 내놓은 공약으로는 2014 시즌에는 국내파 선수 중 15승을 거두는 에이스 투수를 키워내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아마도 5월에 합류하여 시즌 10승을 거둬 낸 류제국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2013년 시즌 후, 3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다행히 팀 내에서 정치적인 문제랑은 상관없이, 잠시 몸을 추스리게 하기 위해 구리로 보낸 것이라고 프런트가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신장 종양제거 수술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가을야구까지 선수들을 지도했으니. 실제로 병원에서도 1년 간 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규제가 LG 트윈스에 새로 영입되었다.

2014년 시즌을 앞두고 3군 총괄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아내의 병환으로 수술을 받게 되자 자신의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2014년 2월 11일 3군 총괄코치직에서 사임했다. 하지만 건강과 가정상의 이유로 잠시 쉬는 형태인지라 완전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사정이 좋아지는 대로 코치직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했다.

5. 해설자 2기


2014년 3월 2일 11년 만에 MBC 스포츠플러스해설자로 돌아왔다. # 1년 뒤 현장에 복귀하려면 경기 감각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해설을 하면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선택했다는 것이 이유. 오전에 메이저리그 방송을 하고 저녁에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유로 작용한 듯 싶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해설만 맡는 것은 아니며 한국프로야구 중계와 베이스볼 투나잇 출연도 병행했다. 결국 2014년 3월 8일 시범경기를 통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후 2014년 시즌 초반 LG 트윈스의 투수진이 막장으로 치닫자 새삼스레 차명석의 위엄이 부각되기도 하였다.그런데 김기태 감독 사퇴 관련 기사 내용을 보면 자진 사퇴라기 보다는 프런트가 계약을 안 해줘서 그만 둔 것 처럼 보인다. 역시 프런트는 악의 근원

2014년 9월 13일, MBC Sports+ 해설위원을 그만두고 친정팀인 LG 트윈스의 코치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같이 중계를 하던 한명재 캐스터도 경기 중간에[1] 차명석이 해설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10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또 헤어지게 된다니 아쉽다면서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다.[2]
스스로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차명석은 이날 중계 초반에는 선수들 사이에 줄무늬 피가 흐른다는 말을 한다고 언급했으며, 스트라이프 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왔다.

6. 지도자 2기

2014 시즌 도중 김기태 감독의 사퇴 과정에서 수석코치였던 조계현이 2군 감독으로 옮기며 공석이 된 LG의 수석코치 직을 맡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기간에 팀에 합류하여 선수들을 지도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지난 2014년 2월 3군 총괄코치 사직 이후 약 7개월 만에 다시 LG에 복귀하는 셈이다.

그러나 양상문 감독은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찍지 않았다. 설령 계약하더라도 지금 체제로도 잘 돌아가고 있으므로 당장 1군에 합류시킬 계획은 없다"며 차명석이 수석코치로 임명된다는 얘기에 선을 그었고 "다만 10월 미야자키 교육리그 파견이라던가 손이 모자란 부분을 지원하게 될 것이며, (차명석 코치의)선수단 합류는 2014 시즌 후가 될 것" 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으로 LG 선수들은 차명석의 복귀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이다.관련기사

뒤이어 나온 기사내용 으로 볼 때, LG에서의 차명석의 역할은 ①아시안 게임 기간 투수코치로 파견된 조계현 2군 감독의 대행 ②10월 초 미야자키 교육리그 파견 선수단 담당 인 것으로 보여지며, 정식 계약은 시즌 종료 후가 될 것이고 보직 또한 그 때 정해질 전망이다. 아무튼 차명석의 LG 복귀는 거의 기정사실이며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플레이오프 종료 후 2014년 시즌 마무리 훈련을 총괄 지휘하게 되었다. 양상문 감독이 2015년 시즌을 대비한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시즌이 끝나고 바로 도미니카 공화국 으로 출국했고,[3] 약 2주 동안 차코치가 양감독을 대신하여 선수단을 이끄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그렇고 차코치 자신도 수석코치 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아 LG 수석코치 직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7. 코칭 스타일

정명원 투수코치와 확연히 정반대 스타일.
2013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재직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마운드를 부활시켰고 KT 위즈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했으며 야구 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정명원 투수코치는 전형적인 속구 & 포크볼 전수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지도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명석 투수코치는 정작 스타일이 정명원 투수코치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안정된 제구부터 먼저 잡아야 하는 지론을 가졌으며, 실제로 주축 투수들의 볼넷이 크게 줄었다. 그동안 LG를 거쳐온 투수코치들 중에 이런 지도를 한 사람도 적지 않앗지만, 능력이 딸리는 고로 스피드만 왕창 줄고 제구는 눈꼽만큼 업된 악순환을 불러왔는데, 차명석은 이렇게 하면서 투수들의 제구도 확실히 잡고 그 나비효과로 속구도 자신 있게 던지게 만든 공신이기도 하다. 다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신정락에게 구속을 약간만 줄이자고 했을 때 설득에 두 달이 걸렸다는 일화가 있기는 하다.

2번째로는 포크볼 성애자 소리를 듣는 정명원과 달리 대표적인 포크볼 족까 스타일이다. 투수들에게 무리한 부하가 들어가는 변화구를 무조건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의 변화구 전수에 있어서는 역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주로 투수의 어깨나 팔꿈치를 덜 갉이먹는 종류의 변화구를 가르치는 방법을 쓴다.

3번째로는 투수를 절대로 갈구지 않는다.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류제국이 승리 투수를 눈앞에 두고 위기에 빠질 때면 그가 마운드로 올라와 씨익 웃으면서 "내려가기 싫지? ㅋㅋㅋ"라는 말로 긴장을 풀어주며 잘 다독여 주었고, 멘탈이 약하다는 평가를 듣는 신정락을 확실하게 선발의 한 축으로 만든 점은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유원상중간계투 보직으로 고정한 장본인도 차명석이다. 두산 베어스에 보상선수로 이적했다가 방출당한 신재웅도 공익으로 복무하는 동안 차명석이 다잡아 주어서 복귀할 수 있었다.

아무튼 확실한 사실은 6668587667로 대표되는 LG의 암흑기 시절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투수왕국을 차명석이 구축했다는 것이다. 2014년 시즌 막판 차명석이 LG 코치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LG 팬들은 물론 선수들 모두가 쌍수를 들고 입을 모아 환영했다는 점도 그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 투수코치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2 LG 트윈스 27 85 0 5 2 0 3.92 77 37 52
1993 35 125⅓ 7 9 1 0 4.88 146 47 61
1994 26 61 2 3 1 0 4.28 69 22 24
1995 9 20⅓ 1 1 0 0 2.66 24 4 6
1996 31 71⅓ 4 4 1 0 4.04 81 20 34
1997 68
(2위)
119⅓ 11 4 7 0 2.79 100 39 66
1998 56 77⅓ 3 4 3 0 3.96 78 20 43
1999 50 67⅔ 7 2 2 0 3.46 68 24 45
2000 54 74⅔ 3 4 2 11
(3위)
4.82 84 29 50
2001 9 8⅓ 0 1 0 0 8.64 16 7 6
통산 10시즌 365 710⅓ 38 37 19 11 4.02 743 249 387

통산 365경기 710⅓이닝 3완투 38승 37패 19세이브 11홀드[4] 387탈삼진 평균자책점 4.02

9. 차명석 해설 어록

해당 영상 중간중간에 해당 명언들이 나온다.

2003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차명석 해설 어록의 개그 포인트는 일종의 셀프 디스에 가깝다. 그도 주위에서 왜 그렇게 자신을 폄하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냥 해설에 재미를 가미하기 위한 방송용 컨셉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많았지만, 방송에 소개된 에피소드들 모두 그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라고 한다. 유명한 낚시 에피소드는 건국대학교 시절 이야기이고, 올스타전 추억 에피소드도 실제로는 1997년에 올스타전 명단에 뽑힐 뻔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천보성 감독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라고 해서 포기하였고 이후 기회가 오지 않아, 결국 선수 생활 동안 올스타전에 한 번도 못 나간 거라고 한다. 지못미.

이런 개그를 하게된 까닭으로는 해설 시에 왕년에 내가 말이지 식으로 자기 자랑을 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선수 시절에는 그닥 특출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허세 없이 솔직담백한 그의 경험에다 그만의 위트를 섞으며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은 당시의 스포츠 해설 스타일로서는 상당한 센세이션이었다. 이게 자기비하로 들리는 것은 어쩌면 방송계에서 미화와 허세의 진부함에 대중들이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차명석은 어록으로 소개된 에피소드들 외에 앞으로도 풀어낼 만한 이야기들은 정말 많지만, 인터넷에서 자신의 말이 어록으로 떠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해설시에 개그는 자제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야구계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런 이야기들로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그닥 달갑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이후 해설가를 그만두고 지도자의 길로 나아간 그의 행보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그의 어록은 더더욱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였는데, 2014년 한시적으로 해설위원직에 복귀하며 어록이 더욱 확장될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부인 역시 투병 중이어서 그런지, 바로 밑 항목같은 호쾌한(…) 와이프 디스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4 MBC 중계진 기자간담회에서 MBC로 간 이유를 "함께 방송할 아나운서의 미모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신 2014년에는 과거에 했던 재미 위주의 해설이 아닌,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인 부분이나 선수의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하게 전달하는 스타일로 변한 듯했다. 물론 솟아나는 개그 욕심을 참기는 어려운지, 2014년 해설로서 경기를 중계하던 중 직후 상황 예상을 한 것이 틀리자 '뭐 제가 이런 거 다 맞췄으면 계속 지도자하고 있었겠죠' 같은 자학드립을 치긴 했다.


9.1. 마누라 디스

(메이저리그 야구중계 중 카메라가 관중석의 선수 부인을 비추자)

차명석: "아, 저 선수 부인 참 미인입니다.|
캐스터: "그런데 스포츠 선수들 부인들이 대부분 미인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차명석: "그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참히 깨버렸죠."
캐스터: "……."
차명석: "……."
캐스터: "집에 가면 아무일 없을까요?"[5]
차명석: "…………(침묵)."

9.2. 올스타전

캐스터: "메이저리그 올스타 전 중계는 계속됩니다. 차 해설위원님, 기억나는 올스타전 추억이 있습니까?"
차명석: "네, 저는 올스타전 추억이 아주 많습니다. 올스타로 뽑힌 적이 없어서 그 기간 중엔 늘 가족들이랑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캐스터: "…………(침묵)."

2014년 KBO 올스타전에서도 써먹었다.

9.3. 낚시

캐스터: "오늘 중계를 맡은 지방케이블 방송이 주로 메이저리그와 낚시를 중계한답니다. 참 특이한 일이군요. 야구와 낚시가 관계가 있습니까?"
차명석: "야구 선수 중에도 낚시광이 많습니다."
캐스터: "낚시 좋아하면 가족도 버린다는데…….
차명석: "제가 전에 모시던 감독님도 낚시 참 좋아하셨습니다. 낚시를 하시며 제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저놈을 짤라야 되나 말아야 되나."
캐스터: "…………(침묵)."

9.4. 매덕스와 차명석의 공통점

캐스터: "예전에 차명석 해설위원도 뛰어난 제구력 때문에 그렉 매덕스와 닮았다고 해서 차덕스라고 불렸었지요?"
차명석: "저랑 매덕스랑 닮은 것은 공 느린 거 하나뿐입니다."

9.5. 케리 우드의 변화구

(시카고 컵스의 투수 케리 우드가 시속 90마일이 넘는 변화구(슬라이더)를 던지자)

차명석: "전성기 시절 저의 직구보다 빠르군요."

9.6. 장종훈의 홈런

(J.D 드류의 장거리 홈런이 나오자 )

차명석: "저런 홈런을 쳐본 적은 없어도 맞아는 봤습니다."
"대전구장에서 장종훈에게 맞은 홈런이 어찌나 컸는지 아직까지 날아가고 있을 겁니다."

9.7. 말실수

(생중계 중 연장 17회까지 간 경기에서 방송나가는지 모르고)

"미치겠네."

나중에 너무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런 실수를 했다고 해명했다.

9.8. 옥의 티와 티의 옥

캐스터: "아.. 저 선수는 다 좋은데 주자에 너무 신경을 써서 말예요. 참… 옥의 티에요……."
차명석: "전 다른 건 다 안 좋은데 제구력은 괜찮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럼 전 티에 옥이네요. 하하……."

9.9. 공감 능력

(끝내기 홈런이 터지자)

캐스터: "아… 저런 상황에서 홈런을 맞았을 때, 기분은 투수 당사자말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차명석: "아, 저는 현역시절 홈런맞은 경험이 많아서 잘 압니다."
캐스터: ………….

9.10. 워커는 이름이 문제다

(보스턴의 T.Walker 가 병살타를 치자)

캐스터: "요즘 들어 Walker가 매우 부진한데요."
차명석: "네. 일단 Walker는 이름부터 runner로 바꿔야 될것 같습니다."
캐스터: ………….

9.11. 롤모델

캐스터: "지금 잘하는 야구선수들도 야구를 시작하던 무렵 존경하던 선수를 많이 닮아가게 되는 경향이 있죠?"
차명석: "물론입니다. 어린 시절에 잘하던 선수가 누구였느냐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저 때에는 장호연 투수가 무척 날렸는데, 그래서 제 구속이 그렇게 느렸나 봅니다.^^"
캐스터: ………….

9.12. 10분에 하나씩 나오는 투수

양키스와 보스턴의 경기 중계방송 中

차명석: "저도 선수 시절에 10년에 하나 나오는 투수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런 말을 안하더라구요."
캐스터: "하하하^^;"
차명석: "어느날 코치님께 얘길 했더니 '너같은 투수는 10분에 하나씩 나온다.'고 하셔서 기분이 굉장히 나빴던 기억이 있습니다."
캐스터: @[email protected];;;;;

9.13. 도곡동 호나우두

캐스터: "차명석 위원은 야구외에 어떤 운동을 해 보셨습니까?"
차명석: "대학 다닐 때 테니스를 했습니다만… 서브 넣을 때 선 안쪽에 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관뒀습니다."
캐스터: "그럼 다른 선수들은 뭘 하죠?"
차명석: "보통 축구를 합니다. 제가 도곡동의 호나우두예요."
캐스터: ……??

2014년에 이 드립을 도곡동 허재로 바꾸어 또 써먹었다.

9.14. 상대성 이론

캐스터: "너클볼 투수인 팀 웨이크필드 다음에 앨런 엠브리가 던지니깐 공이 더 빨라 보이는거 같아요."
차명석: "그래서 제가 항상 이상훈 투수 앞에 던졌죠."
캐스터: ……??

9.15. 견제구

캐스터: "앤디 페티트 선수 견제구 동작이 좋아 주자들이 리드를 잘 못하는군요……."
차명석: "앤디 페티트 선수, 지난 8년 동안 견제구 아웃이 무려 67개나 되네요. 시청자 여러분들은 이게 얼마나 좋은 기록인 줄 잘 모르시겠죠. 이해를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제 선수 생활 10년 동안 견제구 아웃이 3개밖에 없습니다."

9.16. 갖고 싶은 어깨

캐스터: "조시 베켓 선수 6회인데도 구속이 96마일이나 나오네요……."
차명석: "정말 타고난 어깨죠…. 저런 어깨를 가진 선수를 보면 맨날 느린 공만 던질 수밖에 없던 저로서는 부럽다는 말밖에 없어요. 정말 부럽죠. 그런데 강한 어깨를 가진 투수 중에서 컨트롤이 안 되는 투수들을 보면 화가 나요. 나에게 저런 어깨를 줬으면 제가 지금 여기서 해설을 하고 있겠습니까?"

9.17. 어려운 승부

캐스터: "원 아웃 2루 상황에서 투수코치가 나오고 있네요... 투수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차명석: "지금 타자가 타격감이 좋으니까 어려운 승부를 하라고 하겠죠."
캐스터: "어려운 승부라면?"
차명석: "스트라이크 존에서 볼 1~2개 빠지는 볼을 던지고 걸려들면 다행이고 안 걸려들면 포볼로 거르라는 거죠…. 근데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주문인 게, 그렇게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으면 잡아내야죠, 왜 거릅니까??"

9.18. 목 부상

(이닝이 바뀌는 한가한 틈에)

캐스터: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도 종종 부상 때문에 선수 생명이 일찍 끝나 팬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차명석 해설위원도……."
차명석: "저는 그만 둘 당시 부상은 없었습니다. 너무 못던져서 그만 둔 경우죠……."[6]
캐스터: "아…네……. 그래도 보통 야구선수들은 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한 두군데 달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투수들은 팔이나 어깨 부위에……."
차명석: "실은 저도 현역 시절에는 목 부상이 조금 있었습니다."
캐스터: "목…이요?"
차명석: "조금 특이한 경우죠…. 하도 홈런을 많이 맞아서 그때마다 고개를 휙휙 돌리다 보니 어느날 목에 이상이 왔습니다."
캐스터: "…………."

9.19. LG가 2014년 4강에 갈 수 있는 이유

인터넷 야구방송 풀카운트에서.

차명석: "아무래도 2014년도 가장 큰 보강은 투수코치가 바뀐 게 가장 큰 보강이 아닐까... 사실 작년까지 투수코치가 문제였는데 투수코치가 바뀌었으니까 상당히 큰 보강을 한 거죠."[7]

이후 MBC SPORTS+에서도 한 번 더 이 레파토리를 써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그런데 실제로 4강을 갔다?!

9.20. 20승

2014년 9월 9일 목동 한화-넥센전, 시즌 20승을 노리는 앤디 밴 헤켄의 19승째 경기 중계 도중

차명석: "20승…. 참 대단한 기록이죠. 저는 20승 하는데 한 7년 걸린 것 같은데요. 하하하하하하핳."

실제로는 1992년~1997년까지 6년 걸렸다.

9.21. 이종범 196안타의 증인

2014년 9월 9일 목동 한화-넥센전(위 20승 발언과 같은 경기다)에서 200안타에 도전하는 서건창의 타석을 보고

차명석: "이종범 선수가 196안타 칠때 정말 잘 쳤어요. 제가 옆에 있었는데 정말 잘 쳤어요."
정용검: "어떻게 잘 치는지 아십니까?"
차명석: "제가 정말 많이 맞아봤거든요."

9.22. 기타 등등

손혁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자면, 어떻게 하면 공을 더 느리게 던질 수 있는지 알려준 선배…라고 한다. 이후에 어떻게 하면 느리게 던지면서 안 맞을 수 있는지 알려줬다고 수습하기는 했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에 나가지 않은 미발표 어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야구경기에서 데드볼을 맞으면 상대팀에게 보복 대응을 하는데, 한 번은 LG 트윈스 선수들이 꽤 많이 맞아 상대팀의 고의성이 의심되어 분위기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차명석이 감독에게 자신이 나가서 총대를 메겠다[8]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감독은 괜히 너까지 나서서 퇴장당하면 안 된다고 말리는 바람에 그것으로 끝이 났는데, 이후 경기가 끝나고 감독에게 들은 속내는 니가 던져봐야 아프겠냐 였다고(...)

과거 MBC 일밤의 인기 코너였던 브레인 서바이버에 나가서 친 개드립도 있는데, 위의 어록들 중에 유명한 것들을 재탕하기도 하고, 함께 출연했던 장종훈이 1987년 4월 12일 프로 시절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친 기억을 특별히 떠올리며 당시 투수가 차동철 선수[9]였다고 언급하자, 이때 차명석이 그 투수가 우리 문중이라고 거들더니, 장종훈의 기록은 우리 차씨 집안에서 세워준 것이라고 물귀신 자학개그 신공을 선보였다(…)[10].

2013년 시즌에 임찬규와의 에피소드도 있다.

차명석 코치가 투수진 미팅 시에 임찬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차: 야 임찬규, 코치로써의 내 단점을 말해봐라.
임: 없습니다.
차: 한 가지라도 말해봐.
임: 얼굴...
차: 외모말고 이 자식아.
임: 지금 이런 행동을...

2013년 시즌 도중 콩팥종양 제거수술을 위해 중앙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는데, 집도 전 의료진들에게 "수술하시는 분들이 오늘 만큼은 LG 트윈스 팬이길 바란다."는 농담을 던졌다. 알다시피 중앙대학교는 2008년 두산그룹에서 재단을 인수했다.[11]


2014년 5월,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중 모기를 잡아 순식간에 웃음 바다로 만들어 버렸다.[12] 이날 방송 끝난 직후 담당PD에게 혼날까봐 귀신같이 도망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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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공교롭게도 이날 중계한 경기가 LG 대 삼성의 잠실 경기였다.
  • [2] 그리고 차명석은 "저 이렇게 잘리나요?" 라는 드립으로 화답했다.
  • [3] 사실 이전에 뛰었던 레다메스 리즈의 상태 관찰과 재영입 검토 목적도 있다.
  • [4] 참고로 홀드 기록은 KBO에서 2000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이전부터 기록했다면 차명석은 어마어마한 홀드 숫자를 남겼을 것이다.
  • [5] 이후 해설 어록이 화제가 되고 부인도 그 내용을 알게 되어 한 동안 가정생활이 힘들었다고 본인이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말 못 생긴 사람한테 못 생겼다고 얘기하겠냐며 넌지시 웃고 넘기는 거 보면 별 문제는 없었는 듯.
  • [6] 실제로는 위에 서술된 대로 재활 도중 방출되고 은퇴한 케이스다. 어디까지나 개그를 위한 자폭성 발언이다.
  • [7] 위 이력에도 나와있지만 2013년도 1군 투수코치가 본인이었다.
  • [8] 중간계투로서 퇴장을 각오하고 빈볼로 복수하겠다는 것이었다.
  • [9] 공교롭게도 차명석과 같은 스타일로 활약했던 같은 프로 팀 소속 선배 투수였다. 본래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했다.
  • [10] 거기에 MC 김용만은 야구계의 서비스라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
  • [11] 원래는 미국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임 시절 저격을 당했을 때 의사들에게 말한 " 당신들이 제발 공화당원이기를..."이라는 농담이 떠올라서 한 말이라고 한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오늘만큼은 저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 [12] 모기를 잡아서만이 아니라 원래 이날 방송에서 NC다이노스 경기분석 중 이재학의 얼굴에 CG로 볼터치를 그렸는데 그걸본 김유정기자(위의 영상에서 노란자켓을 입은 여자)가 터졌고, 잘 넘어가나 싶더니 차명석 해설이 모기를 잡아버리는 바람에 주체할수 없이 터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