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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 해전

last modified: 2015-03-25 12:35:40 Contributors

鎭浦 海戰

고려 우왕 6년에 벌어진 대규모 해전. 당시 고려 남쪽을 어지럽히던 왜구를 격파한 전투로 황산 대첩과 더불어서 고려 말의 전투로 유명하다.

1380년 8월, 500척이 넘는 왜구의 대규모 선단이 진포에 침입해 큰 밧줄로 배를 묶어 두고 이를 기지로 삼아 진포 연안에 상륙해 약탈과 살육을 저질렀다. 상황이 이러하자 고려는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 심덕부(沈德符) 그리고 최무선에게 전함 100척을 주고 진포로 내려보내 왜구를 막게 했다. 이때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화약고기(火藥庫記)》[1]에 따르면 화통(火通)과 화포(火砲)가 왜군의 배를 불태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해군의 함포사격에 왜군의 배는 거의 모두 격침해버렸고 육지에 상륙해 있던 왜구들은 포로들을 모두 죽이고[2]도망갈 곳을 찾아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갔는데 이때 왜구가 지나가는 길마다 살육과 약탈을 저질러서 피해가 극심했다. 내륙으로 도망간 왜구들은 고려 중앙군이 보낸 병력에 의해 토벌되었는데, 이때 이성계가 활약한 황산 대첩이 벌어지며 내륙으로 퇴각한 왜구들은 모두 격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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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이오(鄭以吾)가 쓴 책.
  • [2] 고려사에는 포로로 붙잡혀 있던 양민과 아이들을 대거 살육해서 시체가 산을 이루고 도망쳐나온 포로는 겨우 330명에 불과하다고 기록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