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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민

last modified: 2014-03-05 12:40:47 Contributors


이름 지승민(池承珉)
생년월일 1978년 9월 12일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남초-온양중-북일고-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7년 한화 이글스 고졸우선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2001~2003)
삼성 라이온즈(2003~2009)
두산 베어스(2009~20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7번(2003~2004)
하춘동(1996~2002) 지승민(2003~2004) 오상준(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00번(2005)
이병훈(1996) 지승민(2005) 고관성(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7번(2008~2009)
나지원(2006~2007) 지승민(2008~2009) 이강혁(2010~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55번(2009)
이경환(2008) 지승민(2009) 장민익
두산 베어스 등번호 67번(2010)
최주환 지승민(2010) 최현정

Contents

1. 소개
2. 선수 생활
3. 연도별 성적

1. 소개

전 야구 선수.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다.

2. 선수 생활

한양대학교 졸업 후 2001년 한화에 입단했지만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은 못 하다가 2003년 2:2 트레이드(지승민+고지행↔김승권+임재철)로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했다. 기량이 발전한 2004년에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소화이닝은 적었지만 17홀드를 올리며 삼성의 필승계투진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4년 말 병풍에 연루되었고[1], 2005년 시즌 중 출소하여 잠시 1군에 복귀했으나 곧 공익근무를 하며 잊혀졌다. 2007년 11월 소집해제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며 왼쪽 어깨 인대 5개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며 삼성에 방출되었다가 2008년 6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9년 드디어 1군에 복귀했으나, 2009년 6월 A형 간염 판정을 받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7월 16일 포수 채상병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삼성에는 진갑용, 현재윤이 잇따라 부상을 당해 경험 있는 포수가 필요했고, 이정식은 상무에서 복무 중이었다. 반면 두산에는 좌완 투수가 필요했기 때문. 그리고 두산에서 김선우 다음 가는 투수진 최고참이 되며 "할배"란 별명이 붙었다.

2010 시즌에는 거의 2군에 머물렀는데, 2군에서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야기[2]가 나왔다. 그가 2군을 전전하게 되는 바람에 선발로 부진했던 이현승이 좌완 불펜으로 나설 정도였다. 결국 시즌 후 방출당해 은퇴했다. 은퇴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인터뷰했다.#

2009년 채상병을 상대로 트레이드될 당시에는 삼성 팬들이 "우리 손해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2010년 지승민이 방출되고나서 최종 승자는 삼성으로 밝혀졌다.[3]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한화 이글스 33 61⅓ 0 3 2 3 8.51 72 37 40
2002 14 27 1 0 0 0 5.67 24 20 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한화 / 삼성 12 13 0 0 0 0 6.23 22 6 10
2004삼성 라이온즈 52 28⅔ 3 1 0 17
(3위)
3.45 21 16 34
2005 7 3⅓ 0 0 0 0 2.70 2 3 5
2006군복무(공익근무)
2007
2008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9 삼성 / 두산 43 34⅓ 0 0 1 8 2.88 38 18 22
2010 두산 베어스 12 6⅔ 0 0 0 0 4.05 9 8 2
통산 173 174⅓ 4 4 3 29 5.68 188 108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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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특히 지승민은 윤성환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줘 구속되었다. 원래는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을 예정이었으나 윤성환이 병역기피를 시도하지 않아 감형받았다. 윤성환은 불구속 기소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 [2] 후배선수들에게 담배셔틀을 시켰다고.
  • [3] 특히 2011년에는 이정식, 현재윤 등이 부상으로 1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면서 팀내 유일한 백업 포수로 활약,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채상병 본인도 처음으로 우승반지를 끼게 됐다. 진갑용이 노령으로 전경기 소화가 힘들다는 점과 당시에는 상무에서 이지영이 군 복무 중, 나머지 유망주들은 2군에서도 수준 이하의 성적을 보여 줬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채상병 영입이 신의 한수. 채상병이 없었다면 백업 포수의 부재로 진갑용이 퍼지거나 혹은 진갑용의 비출장 경기에서 크게 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