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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인천)

last modified: 2015-04-03 21:03:46 Contributors


中區 / Jung-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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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구청 청사는 일제시대 인천부청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1985년에 구월동으로 시청을 옮기기 전까지 인천시청 건물이기도 했다.

인천광역시 중구청. 주소는 인천광역시 중구 포로27번길 80(舊 관동1가 9번지).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상권 및 교육
3.1. 구도심 상권 흥망사
3.2. 중구 소재 초,중,고등학교 명단
4. 명물
4.1. 먹을거리
5. 정치
6. 하위 행정구역
6.1. 구 다소면 지역 (개항 이후에는 구 부내면 지역)
6.2. 구 영종면 지역(영종출장소 관할)
6.3. 구 용유면 지역(용유출장소 관할)
7. 행정구역 개편
8. 그 외
9. 지명
10. 상인천, 하인천, 동인천의 탄생
10.1. 상인천
10.2. 하인천
10.3. 동인천
11. 원인천


1. 개요

인천광역시의 서부에 위치한 자치구. 구 인천 시가지이다. 인구 11만 1,557명 (인천광역시청 2014년 11월통계). 지금의 지역민 경제는 관광과 상권에 의한 수입이 대부분. 하지만 바닷쪽으로 가면 천항과 영종-용유도의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역쪽의 관광쪽과 동인천역의 상권, 월미도쪽의 관광단지, 신흥, 연안, 항동의 인천항, 영종, 용유의 인천국제공항으로 나뉜다. 하지만 공항은 섬이고, 인천항은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지역경제는 죽었다. 나중에 합병된 영종-용유도 때문에 다른 지역의 중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땅이 넓다. 무려 115.25㎢로, 인천 내에서도 강화군 - 옹진군 다음으로 넓으며, 대부분의 중구가 그 시에서 면적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데에 반해, 인천의 구 중에서는 가장 넓다. 하지만 이건 영종도까지 포함한 면적이고, 정작 영종도를 뺀 본토 면적은 매우 작고 좁다.

현재 속해있는 행정동은 신포동, 연안동, 신흥동, 도원동, 율목동, 동인천동, 북성동, 송월동, 영종동(영종출장소), 운서동(영종출장소), 용유동(용유출장소)의 11개이나, 법정동은 52개로 인천 시 중 가장 많다. 법정동이 많은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각 동네들이 정(町)[1], 정목(丁目)[2] 등으로 세분되었기 때문.

2. 역사

개항 이후 본래의 인천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3] 개항 이전에는 인천도호부 다소면[4]이었으나 개항으로 인한 인천부 청사 이전으로 관교동 일대의 부내면이 구읍면으로 개칭되고, 다소면 중에서 개항장이자 현재의 중구 본토지역인 지역이 부내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전국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인천부의 영역은 현재의 중구(영종도, 용유도 제외), 동구(작약도 제외) 일대로 축소되었고, 인천부의 나머지 영역은 부평군과 통합되어 부천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남구, 연수구, 남동구, 서구, 부평구 일대가 부천군에서 인천부로 (재)편입[5]되었지만, 여전히 '인천'이라고 하면 현재의 중구와 동구 일대만을 가리켰다. 당시 서구, 남구, 남동구 일대는 그냥 갯벌+농촌이었다. 옛 중심지였던 관교동 역시 아직도 시골이었으니 간석동, 구월동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부평의 경우 부평역 일대만 시가지였고 나머지는 역시 농촌.

이후 연수, 남동, 계양이 원래 다른 구에 속했다가 분리[6]되고, 강화군, 옹진군이 1995년 편입되어 오늘날의 인천광역시가 되었지만, 원래의 인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곳은 이곳. 하지만 인천 토박이가 아닌 대부분의 인천 시민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게 안습.

3. 상권 및 교육

주요 상권은 동인천 말고는 없으며(...) 동인천에 용동 먹자골목, 신포 닭강정, 동인천역 북부 중앙 양키시장, 동인천 지하상가, 화평 냉면거리 등등 먹거리만 많은 지하상가가 돼버렸다. 부 지역은 동구지역이나, 애초에 경인선라인이 중구와 동구를 구분짓는 라인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리 차이도 나지 않는다. 또한 중구와 동구 모두 상권은 죽었다. 그나마 동구쪽은 아파트라도 짓지만...

인천의 중심지였던 만큼 많은 학교가 있다.

3.1. 구도심 상권 흥망사

개항 직후부터 중구지역은 인천의 중심지였다.[7] 각종 관공서들이 몰려 있었고 또한 학교도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결정적으로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바다에서 건너오는 물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중구였다. 지금까지 구제시장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6.25전쟁이 터지고 나서 동인천 지역은 인천상륙작전의 여파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및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 모두 파괴되었지만 기존에 살던 주민들과 북한에서 넘어온 실향민들이 몰려들면서 엄청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곳으로 변했다. 1970년대 까지 중심지였으나 1980년부터 남동구 쪽에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상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인천시청도 남동구 구월동으로 옮겨가고 중심 상권 역시 남동구의 신흥 택지개발지구와 시청이 인접한 주안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92년에 입주되기 시작한 연수구 신시가지가 생기고 나자 인구가 엄청나게 유출이 되기 시작하여 망했어요.......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1996년에 지역 상권의 중심이었던 인천백화점이 다른 향토백화점[8]과 가까운 동구 송림동에 한국 최초의 월마트[9]가 생기고 인천백화점 바로 앞 인현동에 뉴코아 백화점이 생기면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아버려 동인천 상권이 완전 작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 IMF가 터지고 남구 관교동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생기면서 뉴코아 백화점까지 문을 닫아버렸다. 더는 버틸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거기에 또 막장 사건이 발생했으니..

1999년에 인현동 호프 화재사고가 터져버리고 만다. 그 당시 동인천 지역은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도 술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지금도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속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단속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잘 알려진대로, 가게 주인이 학생들에게 돈을 받으려고 막은 것이 화가 되어 큰 참사가 되자, 결국 지역 상권이 알아서 죽어버렸다.

동인천역사의 인천백화점을 다른 곳에서 인수하여 nJOY 백화점으로 바꿨으나 문을 열었는지 안열었는지도 모르는.... 존재감 없는 곳으로 둔갑했고 시에서도 이곳의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게다가 그곳에 몰려 있던 학교들이 1998년 인천대건고등학교의 연수구 동춘동 이전을 시작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학생상권도 망했어요...

그래서 시와 구에서 내놓은 방안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 개발과 인천 근대역사 루트 개척이었다. 그나마 성공적이어서 월미도-차이나타운-근대역사루트-신포시장, 문화의 거리-답동성당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관광객들이 매우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현재 중구 상권이 연명하는 상태..;;


3.2. 중구 소재 초,중,고등학교 명단

1) 고등학교
하늘고, 인일여고, 광성고, 영종국제물류고, 인성여고, 국립인천해사고, 제물포고, 공항고, 영종고, 국제고, 인천정보산업고, 인천과학고
2) 중학교
공항중, 광성중, 신흥여중, 영종중, 인성여중, 신흥중, 송도중, 용유중, 화교중산중
3) 초등학교
용유초, 무의분교, 하늘초, 운서초, 인성초, 신선초, 송월초, 연안초, 신흥초, 신광초, 삼목초, 공항초, 영종초, 금산분교, 운남초

4. 명물

영종도에 대한민국 대표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인천에서 가장 구제옷이 스타일리쉬하고 구하기 쉽고, 어느정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맞출 수 있는 곳이 동인천 역 거리의 특징. 인천 구제옷의 산실이라고 부르면 딱 맞다. 로데오 거리는 신포시장 뛰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게 점포는 부평 로데오나 구월동 로데오보다 많지만, 사람은 10분의 1 수준.

인천시내 구시가지 권역과 항, 공항등 전망이 좋은 공원인 자유공원과 월미도 놀이동산이 있어 관광객들은 많은 편이다. 월미도 놀이동산은 전국적으로 악명이 높은 바이킹이 존재하는 테마파크(?)다. 월미은하레일이라는 경전철이 공사중이...었지만 부실공사 문제가 발생하면서 개통시기를 넘겨서도 운행을 시행하지 못했고 결국 시에서 사실상 은하레일 사업을 접음으로써 어두운 역사로 남게 되었다.[10]

차이나 타운은 북성동에 위치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중구 인구는 9만 3천명보다 많은 15만명으로 봐도 무방한데 그중 5만명 정도가 외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인이 많은 동네이기 때문. 이는 외국인을 포섭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 취했던 방안이기도 했으나, 덕분에 일무 골목, 일부 상권, 특히 연안부두 근처가 할렘화 되어 정말 난감한 수준까지 되었으므로, 그리 긍정적인 효과만 있다고 보긴 힘들다.

연안부두 쪽으로 가면 인천수산물시장과 해양센터 라고 불리는 인천의 과거 항만 상권이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다.

4.1. 먹을거리

차이나타운이 관광상품화 되면서 이곳을 짜장면 개발지 또는 전래지로 하려는 시 자체의 노력이 엄청나서 중국음식이 유명하다. 하지만 짜장면은 그다지 맛이 없다. 그저 최초로 만들어 진 곳에서 먹는다는 의미 정도..? 하지만 이곳에도 잘 찾아보면 맛있는 만두집과 중국 명절 음식인 월병을 먹을 수 있고 맛도 뛰어나다.

연안부두가 있으니 당연히 해산물이 풍부하다. 인천에서 좋은 해산물을 먹으려면 소래포구 보다는 연안부두를 가는 것이 낫다. 가격은 소래에 비해 비싼편. 그리고 각종 해산물로 만든 튀김이 꽤 맛이 있으니 한번 먹어보는것도 좋다.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을 거쳐 제물포고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면 인천학생문화회관(구 인천여고) 옆에 삼치거리가 있다. 삼치와 각종 생선을 구워서 파는 곳인데 꽤 맛있다. 특히 그곳에서 파는 도토리묵과 막걸리는 엄청나게 맛있다. 참, 이 거리는 인천사람들에게만 조금 유명하고 타지인들은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포시장이 유명한데 그 이유는 닭강정 때문이다. 닭강정을 사기 위해서 길게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신포시장의 닭강정 집은 두집이 유명한데, 두집이 줄이 매우 길고 다른 집은 그렇지 않으니 유명한 집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신포시장 안쪽으로 쭉 들어가다보면 한국 최초의 야채치킨을 개발 한 곳도 있다. 신포시장 길 건너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청과 답동성당에서 일하는 신부님들이 닭강정보다 자주 찾는 곳이다. 입맛 까다로운 신부님들이 닭강정보다 더 많이 찾는 곳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그런데 신포시장은 닭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닭강정만 사들고 뿅 가버리는데 그러면 신포시장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봤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바로 만두가 되게 유명하다. 앞서 서술한 차이나타운 만두가 중국식 만두라면 신포시장의 만두는 그야말로 우리가 자주 보는 만두이다. 각종 왕만두와 물만두 그리고 찐빵은 맛이 전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길건너 천주교 인천교구청에서 40년간 일하셨던 전 천주교 인천교구장 나길모(미국인 주교님이다.) 주교가 자신은 '만두중독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11] 그 만두가 이 만두이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시면 꼭 들르신다고.. 가면 빼놓지 말고 꼭 먹어보도록 하자. 아 그리고 유명 분식 체인인 포우리만두의 발원지가 신포시장이며 본사가 신포시장 안에 있다.

그리고 쫄면의 최초 개발지가 중구이다. 동인천역 앞에 태양당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그곳의 비빔국수가 굉장히 맛있었다고 한다. 그 앞에 있던 광신제면이라는 면 제조회사에서 원료배합을 잘못하여 면을 질기게 뽑아냈는데, 태양당에서 그것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었고 쫄깃하다는 의미에서 '쫄면'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 것이 유래이다. 대 히트를 쳐서 전국적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현재 태양당이라는 음식점은 없어졌다.. 안습..

우동 메밀국수 만두등을 파는 청실홍실 본점이 신포시장안에있다 여기도 줄서서 먹는편인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편.

또한 인현동에 전기구이 통닭삼계탕이 매우 유명하다. 지금도 그곳에서 유년생활을 보낸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옛맛을 기억하며 즐겨 찾으시며 삼복때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삼계탕을 시키면 나오는 인삼주가 별미이다.

이 외에도, 인천 중구 지역이 인천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을 따져봐도 근대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지역 중 하나라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제외하더라도 숨겨진 맛집이 꽤 많은 편이다. 인터넷검색을 하거나 아니면 직접 발품(?)을 팔아서라도 맛집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5. 정치

새누리당이 조금 우세하다. 국회의원은 동구(인천)옹진군(인천)과 함께 뽑는데 옹진군에서 몰표가 나와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제외하면 무조건 새누리당이 당선되고 있다.

그러나 영종도 개발이 시작되고 신도시에 외지인들이 입주하면서 중구는 구도심답지않게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보통 광역시의 구도심이 새누리당 강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 토박이와 황해도 피난민 출신이 많은 중구 구도심과 외지인과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영종도의 민심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인구도 두 곳이 서로 비슷해 앞으로 치열한 격전이 예고된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가장 확실하다고 믿었던 중구청장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2012년 재선거에서 손쉽게 되찾아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영종도 토박이들이 중구 구도심 표심과 비슷하게 가고있어 55:45 정도로 새누리당이 유리하지만 영종도가 더 개발된다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는 동구와 옹진군을 합치기 때문에 당분간 새누리당이 계속 승리할 듯 하다.

18대 대선에서 (강화, 옹진을 제외하면) 인천에서 박근혜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용유동)과 문재인 후보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운서동)이 모두 중구 영종도에 있다.

6. 하위 행정구역

6.1. 구 다소면 지역 (개항 이후에는 구 부내면 지역)

  • 신포동
    법정동은 중앙동 1~4가,해안동 1~4가, 관동 1~3가, 항동 1~7가, 송학동 1~3가, 사동, 신생동, 신포동, 답동이다.
    신포시장,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중구청, 인천남부교육지원청, 자유공원, 홍예문, 이마트 동인천점, 답동성당, 인천중부경찰서, 파라다이스호텔 인천, 하버파크호텔, 인천중부소방서,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다.

  • 연안동
    법정동은 북성동 1가, 항동 7가이다. 소월미도(인천해양경찰서 위치)가 북성동 1가에 속하며, 나머지 인천항 지역 대부분은 항동 7가에 속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12]과 국제여객터미널, 인천종합어시장, 롯데마트 항동점[13], 인천본부세관이 있다.

  • 신흥동
    법정동은 신흥동 1~3가, 선화동이다. 동쪽으로 남구 숭의동 및 용현동과 접한다. 인하대학교 부속병원, 인천지방조달청이 있다.

  • 도원동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도원체육관이 있다. 막상 도원역은 동구에 있다는게 함정.

  • 율목동
    법정동은 유동, 율목동이다. 인천기독병원, 율목공원, 인천광역시립도서관이 있다.

  • 동인천동
    법정동은 내동, 경동, 용동, 인현동, 전동이다. 동인천역,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삼치거리, 애관극장이 있다. 동인천역 상권을 나락으로 빠뜨린 인현동 호프 화재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 북성동
    법정동은 북성동 1~3가, 선린동이다. 인천역차이나타운, 월미도 놀이동산으로 유명한 월미도가 있다.

  • 송월동
    법정동은 송월동 1~3가이다. 북성동과 동인천동 사이에 끼인 동네로 송월아파트가 있는 주거지역이다.

6.2. 구 영종면 지역(영종출장소 관할)

6.3. 구 용유면 지역(용유출장소 관할)

  • 용유동
    법정동은 을왕동, 남북동, 덕교동, 무의동이다. 공항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왕산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 잠진도, 무의도(하나개해수욕장 위치), 684부대의 훈련장이었던 실미도2009년에야 민간인에게 개방된 미도가 있다.

7. 행정구역 개편

동구와 통합하되, 영종·용유동을 분리하는 영종구 분구 논의가 있다. 영종·용유동의 인구는 2014년 현재 5만 5천 명으로, 영종하늘도시로 인한 인구 증가로 장기적인 분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영종하늘도시 입주 완료가 언제 될 지는...

8. 그 외

영종도와 용유도에 가면 왕산-을왕리-선녀바위 해변으로 인해 수많은 펜션과 함께 수도권에 가까운 관광지로 좋은 곳이다. 조개구이가 유명하니 가보도록 하자. 또 다른 서해 바다와는 다르게 바가지도 없어서 가격도 싼 편...이지만, 역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제2경인고속도로(인천대교 구간)의 사람잡는 통행료는 흠좀무.

월미도와 영종도를 이어주는 선박이 있는데, 원래 용주해운이라는 회사가 운행했었다. 당시 2km 가량의 뱃길을 5척의 선박으로 거의 15분 간격으로 선박쪽에선 보기 힘든 빗자루질 수송을 하고, 운임은 성인 500원, 승용차 3000원 이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장사가 되었던 건, 당시에는 영종대교, 인천대교 모두 없었기에, 이 선박만이 영종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명절때만 되면 영종도 용유도가 고향인 사람들로 인해 월미도에서 배 탈려고 온 차량들이 인천역까지 줄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기면서 이 선박의 이용객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사원들에게 월급 지급 조차 힘든 상황에 몰렸다. 결국 이 회사는 휴업을 선언했고, 한동안 선박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삼목-북도면 여객선을 운항하는 세종해운에서 시에서 보조금을 받고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배차간격 1시간을 딱딱 지키고, 막배도 용주해운 시절에는 밤9시까지 잇었는데, 현재는 6시만 되면 끝. 요금도 성인 3000원으로 받는다. 물론 없는 것 보단야 낫긴 하고, 거리상으로는 인천의 구도심과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루트지만, 영종도 선착장이 인천 버스 221번 하나만 운행하는데, 이거마저 배차간격이 30분으로 영 좋지 않고 돌아다니는 택시도 없으므로 차나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없이 이용하기에는 다소 힘들 수 있다. 영종도를 포함하여 도서지역 주민은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신분증을 지참하도록 하자.

인천국제여객터미널도 있어서 중국과의 왕래도 많은 편이다. 여기도 수인선 역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언제 개통될지는 모른다.

전반적으로 겉으로는 외국과의 교류도 많고 선진화되었단 이미지를 가지는 동네면서, 실제로 뜯어보면 로아나프라, 뉴욕 백스트리트 저리가는 할렘화된 동네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에 힘을 쏟고 있지만.... 영종하늘도시처럼 쫄딱 망한 데도 있고... 용유도-무의도 대상으로 에잇시티 개발도 기획했지만 2013년에 망했어요.[16]

9. 지명

인천광역시의 방위에 관련된 지명 (동인천, 하인천, 상인천)은 이 지명이 예로부터 내려오던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때 일제의 행정편의를 위해서 생긴 명칭이다. 당시 인천부(즉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의해 축소당한 인천부)는 면적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만석동, 남쪽으로는 용현동 부근, 동쪽으로는 도화동 일대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17] 그 나머지 인천지역은 이 지명이 정착되기 전에는 인천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 최대의 염전지대였던 주안과 남동구, 계양구 일대는 경기도 부천군소속이었으며, 부평구는 사실상 경기도 부천군의 중심지[18]였고, 서구 일부(검단)는 경기도 김포군이었다. 이미 이러한 지명들이 정착한 뒤에야 주안이 1930년대에, 부평이 1940년에 인천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이 지역들을 무시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빠를 것이다.

10. 상인천, 하인천, 동인천의 탄생

일제관청은 편의상 인천을 상인천, 하인천, 동인천으로 나누게 된다. 그러니까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동쪽은 상인천, 서쪽은 하인천, 나머지를 동인천으로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유적이 있는데, 바로 자유공원 밑에 있는 예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문이 아니라, 일제가 상인천 지역과 하인천 지역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1900년대 초반에 산사이를 뚫어 만든 문이다.

10.1. 상인천

상인천은 현재의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하여 전동, 신포동, 용동 일대를 일컬었다.

10.2. 하인천

하인천은 인천역천항을 중심으로 사동, 북성동, 신생동 일대를 지칭하는 곳이었다. 인천토박이들은 대략 인천역 주변을 하인천이라고 많이 부른다.

인천역을 하인천역이라고 부르는 인천토박이 노인들이 많아서, 인천의 젊은이들은 인천역의 옛 이름이 하인천역이었다고 아는 경우가 많지만, 개통되었을 때부터 인천역이었고, 단 한번도 역이름이 바뀐 적이 없다. 위에 기술한 듯, 동인천역이 상인천역이었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개념으로 하인천역이라고 부르셨던 듯.

10.3. 동인천

동인천은 그 이외의 지역을 일컬었다. 즉 배다리[19]를 중심으로 해서 송현동, 송림동, 도화동 일대를 일컬었던 것이다. 원래 '동인천역'은 일제시대 때 까지 '상인천역'이었던 것을 보았을 때 이 점이 입증이 되고 1953년에 개교한 동인천중고등학교가 현재 제물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드러난다. (동인천고는 이후 90년대에 남동구 만수동으로 또 옮겼다)

그럼 당시에 서인천은 왜 없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인천은 바다였다.

11. 원인천

'원(原)인천' 또한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구한말의 개항을 시점으로 개항 이전의 원인천과 개항 이후의 원인천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개항 이전 원인천 (전근대적 원인천): 지금의 남구 관교동, 문학동 일대. 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 소재지이며, 관교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천도호부 관청과 인천향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문학산 기슭에 비류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문학산성('미추홀 산성'이라고도 한다)의 흔적이 남아있다. 따라서 삼국시기때 '미추홀'은 제물포 일대라기 보다는 지금의 문학동 일대 지역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인천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이상, 이곳이 원인천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일반인(특히 인천 출신이 아닌 경우)이 잘 알지 못하는 편.

  • 개항 이후 원인천 (근현대적 원인천): 개항 이후[20] 인천의 경제적, 사회적 중심이 관교-문학 지역에서 '제물포'로 옮겨짐에 따라 인천부 청사도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이전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원인천은 '제물포'나 '동인천' 또는 '상/하인천'로도 통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인천의 의미는 이쪽이다.

  • 넓은 의미의 원인천: 넓은 의미의 원인천은 현 인천광역시 지역 중에 부평도호부(+ 김포군 검단면) 지역(부평구, 계양구, 서구)이 아닌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인천 중구, 동구, 남구(+부평구 십정동), 연수구, 남동구 일대를 가리킨다.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경기도 시흥시 북부(구 소래읍)도 포함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경기도 부천시(시역 대부분이 부평도호부 소속)의 계수동과 옥길동, 경기도 광명시(시역 대부분이 오리지널 시흥군 소속)의 옥길동도 인천도호부 소속이라 이쪽 의미의 원인천에 속하긴 하나 그쪽 동네에선 쩌리 취급받는 동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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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해방 이후 동(洞)으로 개칭되었다.
  • [2] 해방 이후 가(街)로 개칭되었다.
  • [3] 개항 이전까지의 인천의 중심지는 현재의 남구(인천) 관교동 일대이다. 인천도호부 청사와 인천향교가 관교동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 [4] 다만 영종도, 용유도는 각각 인천도호부 영종면, 용유면이었고,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어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가 1989년 인천직할시 중구에 편입되었다.
  • [5] 부평은 원래 인천과는 별개의 지역이었다가 이때부터 본격적인 인천 관할이 되었다.
  • [6] 남동구는 1988년, 연수구는 1995년에 남구에서 분구되었고, 계양구는 1995년에 북구(현 부평구)에서 분구되었다.
  • [7] 개항 이전에는 인천의 중심지는 도호부청사 소재지인 남구 관교동, 문학동 일대.
  • [8] 남동구 간석동에 희망백화점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는데.. 당시 인천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백화점이었다. 동인천에서도 인천백화점을 내버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30~40분 걸려서 희망백화점에 장보러 가는 분들도 되게 많았다.
  • [9] 한국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창고형 매장이었다. 월마트가 한국 업체의 등쌀에 밀려 철수하기 이전까지 영업했다. 지금의 이마트 트레이더스 송림점
  • [10] 공사비로 800억 가까이 투자했는데, 철거비로 몇 백억의 손실을 입어야 한다고. 결국 아까운 인천 예산 1천억이 그냥 날아가게 생겼다.
  • [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123859
  • [12] 일명 연안부두
  • [13] 2014년 12월 31일 폐점
  • [14] 운염도, 소운염도, 매도가 다리 옆에 있다
  • [15] 가끔 과학고나 국제고 학생들이 야자를 째고 운서동으로 뭔가를 먹으러 도주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는 큰길이 나고 시내버스가 다니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옛날엔 걸어서 30분 걸렸었다.
  • [16] 예상조감도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무리수에 가까운 구상이었다.
  • [17]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동구, 남구의 서쪽 일부만 해당한다.
  • [18] 1914년 당시 명목상 중심지는 부천군청이 설치된 지금의 남구 관교동/문학동쪽.
  • [19]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 헌책방과 청과물골목이 유명하다.
  • [20] 강화도 조약에 따른 제물포 개항을 한국 근대의 출발로 보는 시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