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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도쿄

last modified: 2014-11-16 21:30:16 Contributors


ジュリアナ東京 / JULIANA'S TOKYO

도쿄에 1991년~1994년까지 있었던 디스코 클럽. 일본의 90년대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80년대의 버블경제가 꺼지고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려 했던 무렵의 문화였다. 비꼬아서 보자면, 버블경제는 이미 다 끝났는데도 아직 춤추고 잔치나 벌이고 있던 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버블은 꺼졌어도 90년대 초반까지 일본경제는 여전히 분위기가 좋았다. 본격적으로 헬게이트가 열린 것은 90년대 중반부터 였다.

초창기 하드코어 테크노, 하우스 등 당시 유행하던 클럽 음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클럽이다.

대형 연예기획사인 현재의 에이벡스와는 달리, 클럽 뮤직 전문 레이블이었던 당시의 에이벡스에서는 줄리아나 도쿄 이름을 단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드코어 테크노, 하이퍼 테크노, 이탈로 하우스를 수록한 앨범. 당시에는 꽤 많이 팔려나갔던 모양이다. 중고품이 얼마나 많으면, 물건너 한국의 북오프 신촌점에서도 이따금 발견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춤이나 몸매에 자신이 있는 여성들이 춤을 출 수 있는 특별무대를 일반무대보다 높이 만들어서, 남자들이 춤추는 여성들을 잘 쳐다 볼 수 있도록 만든 실내 인테리어가 화제가 되었다. 물론, 댄서들의 노출도도 꽤 높았다. 이 무대를 '오다치다이'라고 한다. 다만,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오타치다이(お立ち台)때문에 불순한 목적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늘어났던 점을 줄리아나 도쿄 폐점의 원인으로도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댄서들의 복장이 섹시한데 그나마 줄리아나 도쿄하면 바로 떠올리는 디콘(몸에 달라붙는 원피스 미니스커트) 복장은 평범한 축이었고, 하의가 T백으로 된 비키니수영복, 레오타드를 입고 춤추는 댄서들도 부지기수였다보니 자연스레 신사 남자들의 시선이 몰린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의 단속때문에 1993년, 오타치다이를 철거했다고 한다. 결국, 춤을 추던 여성들이 반대로 남성들이 알몸으로 춤을 추는 누드바로 구경을 하러 가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줄리아나 도쿄의 몰락이 가속화 되었다고 한다.

당시 클럽 붐의 사진 및 영상자료를 수록한 개인 홈페이지(일문). 상기 홈페이지 중간쯤에 여성들이 모여있는 곳이 오다치다이.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보디콘 슈트를 입고 깃털 같은것이 달린 부채로 춤추는 모습은 줄리아나 도쿄패러디이다. 이것을 묘사한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크레용 신짱마츠자카 우메 선생이 있다.

이 시절, 당연히 한국에는 줄리아나 이름을 모방한 나이트클럽이 몇 곳이 생겼었다. 심지어 원본이 문 닫은지 한참 지난 2000년대까지도... 이정현 리즈시절의 부채춤도 줄리아나 도쿄의 영향력이 짙게 깔려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비트매니아 IIDX 14 GOLDSense 2007은 이 시대 줄리아나 도쿄의 문화인 쥘부채춤을 소재로 한 곡이다. 아무래도 작품 컨셉이 컨셉이다보니... BGA에 출연하는 아라키 쿠미코(荒木久美子)도 왕년의 줄리아나 도쿄에서 활약했던 일본 디스코계의 레전드로 군림했던 댄서였다.아라키 선생 홈페이지.

이 외에도, GOLD에는 줄리아나 도쿄의 DJ였던 존 로빈슨이 작곡한 'Come On' 등 줄리아나 도쿄와 90년대 레이브에 관한 소재가 많다.

2008년에는 1일 한정으로 줄리아나 도쿄 부활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였다고...

한편 창업자인 오리구치 마사히로는 인재파견업체 '콤슨'을 운영하다가, 2007년 고객에게 개호서비스 비용을 부당청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결국 몰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