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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last modified: 2015-04-06 11:39:13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tsubakuro.png
[PNG image (Unknown)]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Y-Giants.png
[PNG image (Unknown)]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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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C-Dragons.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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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Hanshin_tiger_logo.gif
[GIF image (Unknown)]
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New_Carp.gif
[GIF image (Unknown)]
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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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팀 엠블럼 팀 마스코트
도아라(ドアラ)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中日ドラゴンズ
구단 법인명 ㈜주니치 드래곤즈
(株式会社中日ドラゴンズ)
창단 1936년
연고지 아이치나고야
구단 연고지 변천 아이치 현 (1952~)
구단명 변천 나고야군 (1936~1943)
산교군 (1944)
주니치닛폰 (1946)
주니치닛폰 드래곤즈 (1947)
주니치 드래곤즈 (1948~1950, 1954~)
나고야 드래곤즈 (1951~1953)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48)
나고야 구장 (1948~1996)
나고야돔 (1997~)
2군 구장 나고야 구장 (1997~)
모기업 주니치신문
감독 타니시게 모토노부 (谷繁 元信)
킷 스폰서 아식스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54, 2007
센트럴리그 우승
(9회)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2010, 2011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7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2010 시즌
2.2. 2011 시즌
2.3. 2012 시즌
2.4. 2013 시즌
2.5. 2014 시즌
2.6. 2015 시즌
3. 홈 구장
4. 유니폼
5. 이야깃거리
6. 주요 선수
6.1. 영구결번


1. 소개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아이치나고야 시. 소유주는 주니치 신문사(中日新聞社)[1], 홈구장은 나고야 돔.

1934년 일본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3개 팀[2] 중 하나다. 센트럴리그의 인기 팀.

1990년대에는 한국에게 가장 친근한 구단이였다. 이유는 선동열 선수가 말년에 활약하던 팀이였기 때문. 그외에도 이종범, 이상훈, 이병규 선수가 거쳐갔으며 이 세 선수는 활약이 약간 미미했었고 부상등으로 오래 활약하지 못했었다.

원래는 '공룡타선' 이라고 불리며 작은 구장인 나고야 구장(좌우 91m, 가운데 120m)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당장에 구단 레전드만 보더라도 에토 신이치, 오치아이 히로미츠, 시마 야스노리, 야자와 켄이치, 우노 마사루, 다이호 야스아키 등 거포들이 떠오를 정도. 그러다 1990년대 초반 들어 잠시 부진하다가 1997년에 현재의 홈구장인 무식하게 넓은 나고야 돔(좌우 100m, 가운데 122m, 펜스높이 4.8m)을 홈구장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팀을 순식간에 투수중심으로 재편하였다. 결과 현재는 12구단 중 가장 수비적인 야구를 하는 팀이 되었으며 타팀에 갈경우 당장 에이스에서 못해도 2, 3선발쯤 할것 같은 선수들이 중계 혹은 2군 대기 중이다(...).

또 하나 일본에서의 주니치의 이미지는 만년 2위팀 홍진호님이 문서를 좋아합니다 근데 게 느낌만 그런게 아니라 통계로도 사실다. 팀은 19501×9+5+0=14, 14는 2의 배수년에 일본 리그가 2리그제가 된 후 616×1=6, 6도 2의 배수년 동안 2위만 무려 24번 을 해먹었다. 는 12구단 중 최고기록. 하지만 의외로 20세기 전체 승률은 한신 타거스에 밀려서런 구단이 일본시리즈 우승 한 번 밖에 없는 건 더 놀라운 사실 3위이다. 1위야 뭐...

사실 세리그 전통의 강호지만 맨날 중요할 때 2위만 해대는 통에 우승경험도 강호의 미지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 거기다 중요한 게임에 워낙에 약해서, 일본시리즈에 진출 횟수는 88도 2의 배수다번인데 우승 횟수는 고작 2번 뿐이다. 그나마도 번째로 우승했던 2007년 시즌의 경우 1위로 진출한 것도 아니고 2위로 리그를 끝낸 뒤 포스트시즌에서 1위 요미우리 자언츠를 발라버리고 올라간 것. 이 정도면 만년 2위팀의 명성에 걸맞는 것 같다(...). 거기다 팀 첫 번째 우승은 19541×9×5×4=180, 180은 2의 배수년인데 번째 우승이 2007년. 실로 우승 한번 하는데 53 5-3=2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안습 --일제가 조선 잡아먹기 전에 우승한 뒤로 백년 넘게 우승 못한 구단도 있는데

등번호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 있는데, 일본 야구에서 투수 에스의 등번호가 181÷8=0.125번인데 비해 팀은 20번이 에스 번호이다.그러니 맨날 2위지 22번으로 바꿔라 스기시타 시게루, 호시노 센, 곽원치 등이 달았고 선동열도 주니치에서 현역시기에 20번을 달고 활동했을 정도. 게다가 보통 에스 넘버인 18번의 취급이 매우 안습인데, 역대 팀 레전드급 투수 보면 18번 달고 있는 사람 매우 드물다. 그래서 드래프트 하위 순위에 입단한 신인한테 18번을 냅다 던져준다. 오죽하면 '실력은 없는데 18번을 달고 싶으면 주니치로 가라'는 농담 닌 농담 있을정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병규선수가 소속했었다. 그러나 성적 외국인 선수 치고는 신통치 않아 언론한테 자주 까였는데, 그럴때마다 라뱅쓰리런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고,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았다.[3]

2. 역사

2.1. 2010 시즌

홈 승률 7할대의 사기적인, 뒤집어 말하면 원정승률은 4할이 채 안 되는 성적을 거두며 2006년 리그 우승에 이어 4년만에 9번째 센트럴 리그 우승을 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는 퍼시픽 리그 3위 치바 롯데 마린즈에 7차전까지 싸웠지만 패하였다. 92 빙그레도 아니고

2.2. 2011 시즌

이번엔 가을만 되면 삽질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패해 연속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8년 가을 동안 공들여 삽질해서 만든 게 주니치 무덤

2.3. 2012 시즌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도 2010년 일본시리즈와 마찬가지의 사태가 일어났다. 시리즈 초반 3연승으로 3승 1패[4]로 앞서가다 막판 세 경기에서 연패를 당하며(...) 리그 2위로 만족해야 했다. 아오! 콩깐다!!

2.4. 2013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밀려 2001년 이후 12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현역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가 차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오치아이 히로미츠 전 감독은 GM으로 팀에 복귀하였다. 이후 베테랑 바타 히로카즈를 퇴단시키고 선수단 전반에 연봉삭감의 폭풍이 몰아치는 등 파란의 오프시즌이 전개되었다.

2.5. 2014 시즌

주니치의 암흑기
팬들이 걱정하던대로수많은 베테랑에 유망주들을 퇴단시킨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시즌 초반에도 에러연발로 이길수 있던 시합을 패배하는 등 영 좋지못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8월 들어서는 한 달에만 20패[5]로 구단기록을 갱신. 지켜 이기는 야구를 표명했던 주니치는 지키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며지키지도 못했던것 같지만 시원하게 5위로 내려갔다.

또한 스타트 멤버보다 우수한 벤치멤버, 2군멤버가 넘쳐남에도 연공서열식의 선수기용으로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실제로 주니치에서 전력 외 통지를 받고 요코하마에 입단해 괜찮은 성적을 남기고있는 나기타 시게오 선수의 경우 주니치전에서 결승타를 친 후 주니치에선 결과를 남겨도 (스타트 멤버로)기용받지 못한다, (애시당초) 기회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라며 주니치의 체제를 비판했다.

2.6. 2015 시즌

한신과의 원정 개막 3연전을 모조리 내주며 우려를 자아냈으나... 그 다음 주 요미우리와 히로시마 6연전을 모조리 쓸어담고 6승 3패로 리그 1위 자리에 올랐다.

3. 홈 구장

나고야돔 항목 참조.

4. 유니폼

5. 이야깃거리

DOARA07.jpg
[JPG image (Unknown)]

이 팀의 마스코트인 코알라 아라가 서브컬쳐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pixiv에서도 도아라의 팬아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 있으며 심지어 figma브랜드의 액션피규어로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못하는 마스코트가 TV, 라디오에 나오고.. 광고는 물론 책에 음반까지 냈다. 관련상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전 구단 통틀어서 상위권의 인기 캐릭터.[6] 4차원적인 행동 등으로 이상하지만 귀엽긴 하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그 역시 2013년 오프시즌의 연봉삭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즌 도중 왼손 중지가 골절되는 바람에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되어 연봉이 식빵 1kg에서 750g으로(...) 25% 삭감되었다고 한다.기자회견 기사

얘 말고도 샤오롱과 파오롱이라는 용에서 모티브를 따온 애들도 있다.

구단의 대표적인 응원가로 '燃えよドラゴンズ'(불타라 드래곤즈)가 있다. 주니치가 거인의 센트럴리그 10연패를 저지한 1974년 나고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도 즐겨 불러지는 응원가로 자리잡았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원본인 74년판 이외에도 거의 해마다 새로 녹음되었을 정도로 버전이 많은데, 선동열-이상훈-이종범 한국인 3총사를 데리고 리그 우승을 한 1999년판 중에는 한국3총사 헌정 버전도 찾아볼 수 있다.가사 번역 여담으로 이 곡을 작곡한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正之)라는 사람은 첫 작곡이었던 이 곡이 인기를 얻은 후, 타임보칸의 주제가를 작곡하는 등 작곡가로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송상훈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셀렉, 타카쿠라 켄이 주연한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의 소재로 다뤄졌다. 톰 셀렉이 분한 강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게 된다는 스포츠 영화인데, 영화에서 셀렉이 소속해 뛰는 팀이 주니치. 타카쿠라 켄은 감독 역으로 분한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셀렉을 일본으로 밀어낸 선수 역은 실제 야구선수이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프랭크 토마스가 맡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10.8 결전을 벌였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경기들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다.

6. 주요 선수

6.1. 영구결번

어째 영구결번 선수들도 유명하지 않다. 역시 콩의 전통!! 그것도 2명
  • 10. 핫토리 츠구히로(服部受弘)
  • 15. 니시자와 토시오(西沢道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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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의 지방신문사이지만 산케이 신문보다 발행부수가 많고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신문사 이외에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국지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논조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진보 성향.하지만 도요타에게는 따뜻하겠지 주니치신문 소유 구단이기 때문에 주니치계열 방송사인 THK, CBC, TVA가 홈경기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NBN, CTV는 자체제작 중계가 아닌 키국 중계를 사용해 원정 경기를 방송.
  • [2] 나머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 [3] 병규 선수 본인도 한국 복귀시 '방출당한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 [4]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시즌 1위팀은 시리즈 1승을 자동으로 부여받는다.
  • [5] 한신의 암흑시절이래의 세리그 구단의 월간20패
  • [6] 요즘은 오릭스 버팔로스위협하고 있다.
  • [7] 대만 출신으로,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왔기 때문에 드래프트 전 최종학력이 일본 학교여서 일본인 선수로 드래프트되었다. 타이호 야스아키(大豊泰昭)는 등록명. 본명은 진대풍(陳大豊, 천타펑)이다. 참고로 그의 동생 진대순(陳大順) 역시 같은 대학 출신으로 롯데 오리온즈에 드래프트되었는데, 이쪽의 등록명은 타이준 마사히로(大順将弘)였다. 형제가 자신들의 본명을 등록명의 성으로 땄기 때문에 형제의 성이 달라진 흠좀무한 케이스. 이쪽은 일본프로야구 생활 2년만에 방출되어 대만 프로야구 리그로 돌아갔다.
  • [8] 이들 세 명이 활약하던 시절 주니치의 인기는 박찬호가 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맞먹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