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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last modified: 2015-04-06 19:54:31 Contributors


Die Religion ist das Opium des Volkes.
공산주의 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가 <헤겔의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를 비평하면서 한 말.

Contents

1. 오역이라는 주장
2. 알려진 대로 마약이 맞다는 주장
3. 첨언

1. 오역이라는 주장

원문을 직역한 해석은 아래와 같다.

"종교는 억압을 정당화 하는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종교적 고난은 현실적 고난의 표현인 동시에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인민아편이다."

이를 오역이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사실 이건 오역이 아닌 의도적인 왜곡으로 북한에서 귀순한 학자인 항구가 의도적으로 종교 = 마약이라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말을 자기 의도대로 자르고 꼬아놓은 것이다. 실제로 당시 아편은 마약이라기 보다는 진통제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 마르크스의 이 말이 나온것은 1844년이고, 당시에 진통제는 아편이 거의 유일했다. 마르크스 역시 진통제로 아편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 종교에 대한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자면 동시대 그의 파트너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종교에 대한 사회주의의 태도에 대해서 "그대로" 라고 답하였다. 이는 비록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는 가지지만 일정 이상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의도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본래 뜻대로 보자면 종교는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에 불과한 것으로서 필요하긴 하지만 오용하면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다(여기서의 치료제란 사회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수정, 즉 혁명을 뜻한다). 리플 참조
즉 이 말을 현대에 맞게 풀이하자면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다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오역이라는 쪽의 주장이다. 진통제도 마약아닌가

2. 알려진 대로 마약이 맞다는 주장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한 이야기는 단지 종교가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위안을 준다는 것 뿐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고통(특히 자본주의의 모순)을 감수하게 만들고 현 상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굳이 진통제가 아닌 '아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진통제라는 것은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지 아무때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헤겔법철학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문맥을 보면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위쪽 해석의 해당 부분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영문 위키피디아 '인민의 아편' 항목age-of-the-sage 페이지 참고)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종교를 정신적인 향기로 삼는 세상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고통은 실제 고통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실제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무자비한 세상의 본질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핵심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환상의 행복인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인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초기 단계에는, 종교가 후광이 되어주는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종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쇠사슬에 나 있는 상상 속의 꽃들을 잡아뽑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쇠사슬을 아무런 환상이나 위안 없이 견디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쇠사슬을 벗어던지고 살아있는 진짜 꽃을 잡게 하기 위해서이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인간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만들어,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각을 회복한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신의 실체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태양 아래로 걸어나올 수 있게 한다."

위의 글의 의미는 명백하다. 종교가 주는 환상이 인간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종교를 강하게 비판하고 투쟁해서 종교의 실체를 폭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종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가 진통제라는 바람직한 도구라는 의미로 볼 수도 없고, 종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당시에도 아편은 주로 진통제가 아닌 마약으로 사용되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 당대에 두 차례의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아편이 주로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면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아편을 생산한 것은 의약품 생산이었고 청나라에 아편을 밀수출한 것은 의약품 무역이었으며 아편전쟁은 의약품 수입 제한에 따른 무역분쟁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쟁의 당사자인 당대의 영국에서도 아편 거래는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아편전쟁 항목의 글래드스턴의 연설 참조).

마르크스 본인 역시 아편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아편전쟁에 대해서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아편은 마약(drug)으로서 일반적인 상품(goods)과는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는 심지어 아편을 (poison)으로, 아편을 즐기는 것을 자살(suicide)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잡지인 개벽 제63호에 실린 '반기독교운동에 관하야'라는 글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1925年)

70여 년전 파리콤뮨을 경험한 시대에 『맑스』와 『엥겔스』는 『종교는 인민을 아편중독환자로 만드는 아편독이다!』하여 만히는 종교의 기원과 종교의 폐해을 명정히 하여 과학적 메스로 종교가 인민의게 아편독이 되는 것을 표명하엿거니와 20년전, 농민과 노동자의 천하가 된 노국청년들은 그 보담도 좀 방법이 달러서 『신을 사형집행한다』은 형식으로 신의 모형을 만드러 수래 우에 실고 시가에 끄집고 도라다니면서 시위적으로 반종교운동을 하엿다 합듸다.

그리고 만해 한용운이 1938년 잡지 《삼천리》에 게재한 <반종교운동의 비판>이란 논설문의 일부분을 보자.

공산당은 그 유물론적 견지에서 종교를 아편이라 하고 신앙을 酩酊(명정)이라 하야 일절 종교를 배격한다. 그 결과 10월 혁명 이후 곳 공산당의 종교압박 즉 반종교운동이 개시돼야 교회는 파괴되고 성상은 유린되고 다수의 승려는 학살되얏다.

또한 탈북자들은 북한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제국주의자들의 무기라는 교육을 귀가 닳도록" 가르쳤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북한 정부가 ‘모든 종교는 아편이라고 교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근데 주체교는 예외다. 그냥 이교도라고 탄압한다고 봐야할듯 장군님이 그것을 바라신다!

식민지시절에도 이미 이런 인식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고 [1], 또한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 정부가 주민에게 마르크스의 저 문장을 들어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음이 명확하다. 그런데 남북분단 뒤에 남한으로 귀순해온 어떤 특정인물이 저 문장을 의도적으로 왜곡 해석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 주장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다만, 한국이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그리 성행한 나라가 아니라고는 해도, 맑스주의 포럼이 2001년 이후 매년(2013년 현재 13회) 열릴 정도의 연구는 진행되고 있고, 사회과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전문분야로 삼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그러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수십명의 학자들이, 독일어 원전까지 읽어가면서 일개 소설가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다는 말일까?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철학자 강유원도 해석에 관한 논란에 대해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짧게 답한 바 있다. 참고

사족이지만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선 중국과 티벳의 관계가 험악해졌을 때 달라이 라마를 알현하러 온 중국군 장군이 달라이 라마의 훈훈한 덕담을 다 듣고는 쌩까면서 "종교는 아편이오!"라고 한마디한다.

3. 첨언

아편이 진통제든 마약이든 간에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정작 마르크스의 이론을 계승했다는 소련 등지에서는 기존의 종교를 탄압하고 레닌/스탈린등을 '숭배'하는 모습이 나타났기에, 이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다만 개인 숭배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숭배는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독재국가의 문제에 가깝다.

마르크스의 어록 중에서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와 유명세를 다투고 있으며, 종교 비판에서는 프리드리히 니체신은 죽었다와 쌍벽을 이루어 자주 인용되는 명언 중 하나다.

2010년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종교 대신 힐링 등의 주제를 내세우는 자기계발서의지드립이 아편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면 정말 종교가 아편 같아 보이기는 한다.(...)

철학자 강신주는 오히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도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아편이 되었다[2]고 평하면서, "종교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종교에 매달리게 만든 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평했다(경향신문,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 절망에 사로잡힌 나라").

어쨌든 마르크스 사상의 근간은 철저한 유물론이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종교를 부정적인 의미에서 아편이라 일컬었든 종교의 순기능을 얼마간 인정했든 큰 차이는 없다(...). 최종적으로 마르크스 사상은 종교를 극복하고, 종교를 통한 위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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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제시대 출간된 신문 잡지나 서적 등을 찾아보면 위에 인용된 내용 외에도 마르크스의 저 말을 인용해 종교를 비판하거나 혹은 이 말을 들어 공산주의를 비판한다든가 하는 식의 글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 [2] 이후 설립된 소련과 그 치하 노동자들의 생활, 그걸 나쁜 쪽으로 발전시킨(…) 윗동네의 행각을 보면 아편이 맞긴 하다. 또한, 칼럼 본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는 마르크스 본인이 노동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구체적 강령의 성립을 위해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