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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몰츠

last modified: 2015-03-04 11:24:40 Contributors


이름 John Andrew Smoltz
생년월일 1967년 5월 15일
국적 미국
출신지 미시간주 워렌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22라운드(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88~2008)
보스턴 레드삭스(200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9)

199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그렉 매덕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몬트리올 엑스포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영구결번
No.29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디트로이트의 지명과 트레이드
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선발 투수
2.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그리고 다시 선발
2.4. 은퇴
3. 투구 스타일
4. 이모저모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3인방 중 한 사람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대 투수. 3,000탈삼진을 기록한 16명의 선수 중 한 명이자, 200승과 150 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하면서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 모두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 내에서의 별명은 스틸하트(Steelheart).

2. 선수 생활

2.1. 디트로이트의 지명과 트레이드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라는 하위 지명을 받고 고향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7년 디트로이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 중에서 투수진의 노련미를 더하기 위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36세의 투수 도일 알렉산더를 받는 조건으로 스몰츠를 트레이드시켰다. 도일 알렉산더는 디트로이트에 합류한 후 9승 무패 1.53의 성적을 찍으며, 디트로이트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결국 디트로이트는 정규시즌 겨우 87승을 거둔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일격을 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적어도 이 때 당시에는 디트로이트로 간 도일 알렉산더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고, 반대로 애틀랜타가 받은 것은 고작 22라운드에서 지명된 새가슴과의 투수였기 때문에 애틀랜타의 트레이드 실패로 여겨졌다.[1]

2.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선발 투수

그러나 결국 이 트레이트는 애틀랜타의 승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스몰츠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투수로 성장한 것. 1988년 본격적으로 팀 선발진에 합류하여 12승을 거두머 동료인 톰 글래빈과 함께 애틀랜타의 미래를 책임질 투수로 인정받는다. 애틀랜타로의 연고 이전 이후, 암흑기에 시달리던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의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고, 스몰츠는 그 선두에 서서 애틀랜타의 반격을 진두지휘했다.

가장 빛나는 것은 1991년 월드시리즈. 전년도 꼴찌팀끼리 만나 일명 신데렐라 시리즈로 불리는 이 월드시리즈에서 스몰츠는 미네소타 트윈스 상대로 빼어난 피칭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붙은 별명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강철심장. 특히 1991년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면서 심리적으로 무너져서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소심한 새가슴과 선수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었다. 비록 이 해와 1992년 모두 아쉽게 월드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기는 했지만, 스몰츠는 젊은 선발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이적하자 애틀랜타는 매덕스-글래빈-스몰츠로 이어지는 MLB 역사상 최강의 선발 쓰리펀치를 구성하였고[2] 스몰츠도 이에 편승하여 10승 이상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며 1995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듬해인 96년에는 다승 타이틀(24승), 탈삼진(276) 타이틀을 거머쥐며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많은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활약한 그의 팔꿈치는 그의 구위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미 1994년과 1997년에 두 차례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그였지만, 두 차례 수술로도 팔꿈치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면서 2000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아서 시즌을 쉬게 된다.

2.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그리고 다시 선발

팔꿈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재기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2000년을 통채로 재활에 매진한 끝에 2001년 후반기에 마침내 복귀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발로서 긴 이닝을 던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결국 선발진에서 탈락했고, 결국 불펜으로 전환했다. 내심 선발을 원했고, 실제로 2002년 FA로 풀렸을 당시 선발자리를 보장하겠다면서 달려든 팀이 많았지만, 결국 스몰츠는 팀을 위해 마무리로 남았다. 그리고 약 4년간 무려 150세이브 가량 거두면서 2000년대 초반 무적의 마무리로 이름을 날렸다.

불펜으로 부활한 원인에는 짧게 던지면서 과거 위력을 보여줬던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마음껏 던질 수 있었던 것과 토미 존 수술이후 패스트볼 구속이 충실한 재활을 통해 다른 몸의 밸런스가 맞아가면서 오히려 증가한 것에 기인했다. 즉, 토미 존 수술의 성공적인 케이스중 한 명. 4년을 마무리로 뛰면서 활약한 후, 2005년부터 선발에 복귀했다.

이전 서술에는 선발로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에이스감은 아니었다, 라는 뉘앙스의 서술이 있었는데, 기록을 보면 이런 소리 안 나온다. 2005년도의 스몰츠는 리그 5위의 이닝을 먹으면서 평균자책점 8위, WHIP 7위를 기록하고 3차례의 완투와 완봉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리그 4위의 이닝을 먹으면서 다승왕에 오르는 동시에 리그 7위의 평균자책점과 WHIP을 기록했고, 탈삼진은 3위에 올랐다. 2007년에도 200이닝을 넘기면서 리그 4위의 평균자책점에 리그 6위의 WHIP을 기록하며 탈삼진은 다시 3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랬던 스몰츠가 에이스가 아니라면 누가 에이스였단 말인가? 팀 허드슨? 냉정히 말하면 2005년의 허드슨은 스몰츠를 받치는 투펀치였고, 2006년은 시즌 내내 홀라당 말아먹었다. 2007년의 허드슨이나 되어야 스몰츠에 비교하는 게 그나마 합당할 정도다. 스몰츠는 선발로 전환하고 3년 동안 30대 후반의 나이로 브레이브스의 에이스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2.4. 은퇴

그러나 2008년 말 스몰츠는 그간 다쳤던 팔꿈치가 아닌, 어깨를 다치게 된다. 팔꿈치 부상은 그에게서 빠른 공을 앗아가지 못했지만, 이 어깨 부상은 그의 강속구를 앗아갔다. 결국 애틀랜타는 그를 방출하기에 이르고, 결국 2009년 정든 팀을 뒤로 하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지만, 더 이상 전성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스몰츠였기에 보스턴은 8월 17일 자로 스몰츠를 방출시키게 된다. 다행히 방출 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여 예전 모습까진 아니지만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투수로 다시 거듭나게 되면서 말년을 그래도 깔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09시즌 그의 투구폼을 분석한 결과 직구를 던질때와 변화구를 던질때 준비동작이 비전문가인 아마추어 네티즌이 지적할 수 있을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것이 발견되었다. 보스턴에 있을땐 교정 전혀 안 되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 중 하나라는 데이브 던컨이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향하고 나서 교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보스턴에서 난타 당한 것과 세인트루이스에서 회복한 건 이것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

선수 자신은 선수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어했지만, 어깨를 다친 노장 투수를 원하는 팀은 없었고,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식은 치루지 않았지만, 2010년 3월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하지 않고 포스트시즌 주관방송사인 TBS에서 해설가로 계약하며 야구인생의 제 2막을 열었다.

2012년 4월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존 스몰츠의 등번호 29번을 팀의 아홉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브레이브스에 오래도록 헌신한 스몰츠의 공로를 기린다고 발표했다.

2015년 1월 6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득표율 82.9%로 첫 턴 입성에 무난히 성공했다. 이로서 90년대 브레이브스 왕조를 이끈 에이스 3인방이 모두 영구결번과 함께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먼저 명예의 전당 유니폼의 단추를 다 차고 모자까지 쓴 뒤 의자 위에 올라가 아직 준비 중이던 옆자리의 랜디 존슨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어주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GIF짤 또한 MLB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뉴욕 메츠로 이적했던 글래빈의 3루 쪽 타구를 역동작 송구로 보여준 스몰츠의 멋진 수비 영상을 함께 보며 화면을 통해 마주한 글래빈과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영상

3. 투구 스타일

스몰츠의 주 무기는 최고 98마일까지 기록하는 불같은 강속구와 자신만의 특유한 궤적의 슬라이더, 90마일에 육박하는 스플리터다. 전성기 그는 이 구질을 앞세워서 리그의 타자들을 평정했고, 가장 오래도록 애틀랜타에서 뛴 덕분에 필 니크로를 제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의 최다 탈삼진 기록 선수로 남았다. 그가 던진 직구, 슬라이더, 스플리터 이 3개의 구질을 가리켜 흔히 스몰츠 3종세트 라고 한다. 부상 당시에는 사이드암으로 던지기도 하고, 너클볼도 쓰기도 했는데, 요 레퍼토리는 뒤에 부상이 회복한 후에도 종종 써먹으면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인버티드 W 폼의 대표 주자로 그의 토미 존 서저리의 원인은 과도한 슬라이더의 비중도 있었지만 특유의 폼도 작지 않은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로 그는 말년에 이 투구폼을 교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http://wapc.mlb.com/play/?content_id=18966909&c_id=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사이 영 상 3인방 가운데서는 3인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사이 영 상 수상에서도 셋 중에서 가장 밀린다. 부상 때문에 마무리를 본 시절도 있고 해서 다승도 100승까지는 빨리 도달했음에도 200승 도달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신 마무리로서도 꾸준히 맹활약하며 15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였다. 20승 시즌과 50세이브 시즌을 모두 달성한 역대 두번째 선수[3]라는 점에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동시에 3,000탈삼진을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위 하나는 당대에도 손꼽히는 그야말로 파워피처였다. 3인방 중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이 상대적으로 임팩트 있는 파워피칭보다는 기교파에 가까운 스타일[4]이었음을 것을 감안할 때, 사실상 3인방 중에서 오늘날 일컬어지는 정통파 에이스의 스타일에 가장 가까웠다고 해도 무방할 듯.

무엇보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강심장,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다. 별명인 스틸하트(Steelheart)는 포스트시즌 등의 큰 경기에 강했던 그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포스트 시즌 통산 15승[5] 4패, 평균자책점 2.67 탈삼진 199[6]로 매우 좋은 성적이며 1992년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이기도 했다.

4. 이모저모

슬하에 아들이 넷이며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와도 친교가 깊은것으로 유명하다. 은퇴 후에는 골프에 도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 새가슴이었다. 스포츠 심리학을 꾸준히 적용한 결과 환골탈태해서 대표적인 강심장이 되었지만, 이는 야구 한정. 골프에서는 여전히 새가슴과의 전형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애틀랜타 시절 일요일에 예배 진행 및 설교말씀을 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스몰츠 장로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담으로 봉중근이 애틀랜타 투수 시절 일요일 경기 전에 스몰츠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흔히 황당한 부상을 입은 야구선수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바로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다가 화상을 입은 선수라는 것. 하지만 스몰츠가 이 소문이 근거 없는 소문임을 자서전을 통해 밝혔다. 단지 증기 다리미로 다림질을 하다 증기가 튀어 화상을 입었을 뿐이었는데, 언론이 과장보도 했다는 것.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다 화상을 입은 선수는 스몰츠의 동료였던 다른 선수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몹시 신기하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홀드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1988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2 2 7 - - 5.48 78 37 37 64.0 1.62
1989 29 12 11 - - 2.94 160 74 168 208.1 1.11
1990 34 14 11 - - 3.85 206 93 170 231.1 1.28
1991 36 14 13 - - 3.80 206 78 148 229.2 1.23
1992 35 15 12 - - 2.85 206 85 215 246.2 1.15
1993 35 15 11 - - 3.62 208 112 208 243.2 1.26
1994 21 6 10 - - 4.14 120 52 113 134.2 1.24
1995 29 12 7 - - 3.18 166 80 183 192.2 1.23
1996 35 24 8 - - 2.94 199 58 276 253.2 1.00
1997 35 15 12 - - 3.02 234 72 241 256.0 1.16
1998 26 17 3 - - 2.90 145 46 173 167.2 1.12
1999 29 11 8 - - 3.19 168 42 156 186.1 1.11
2000 - - - - - - - - - - -
2001 36 3 3 5 10 3.36 53 12 57 59.0 1.06
2002 75 3 2 - 55 3.25 55 25 85 80.1 1.03
2003 62 0 2 - 45 1.12 48 9 73 64.1 0.87
2004 73 0 1 - 44 2.76 75 15 85 81.2 1.07
2005 33 14 7 - - 3.06 210 60 159 229.2 1.14
2006 35 16 9 - - 3.49 221 59 211 232.0 1.19
2007 32 14 8 - - 3.11 196 56 197 205.2 1.18
2008 6 3 2 - - 2.57 25 9 36 28.0 1.17
년도 소속팀 경기수 홀드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2009 보스턴 레드삭스 8 2 5 - - 8.83 59 10 33 40.0 1.7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홀드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200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7 1 3 - - 4.26 36 10 40 38.0 1.18
통산 '09시즌 15 3 8 - - 6.35 95 20 73 78.0 1.44
통산 '21시즌 723 213 155 5 154 3.33 3074 1094 3084 3473.0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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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금은 일반화된 심리상담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힌다. 폭발적인 구위를 가졌지만 마운드에서는 항상 위축된 그를 보고 구단은 심리상담을 권유했고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로 자신감을 얻어 강철 심장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 [2] 양키즈가 제국이었다면 브레이브스는 왕조라고 불렀다.
  • [3] 첫번째는 1이닝 마무리의 원조로 꼽히는 데니스 에커슬리로, 에커슬리 역시 한때는 선발로도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다.
  • [4]그렉 매덕스는 구속은 느렸을지언정 무브먼트로 끌어올린 투심패스트볼의 구위는 지금까지도 손꼽힐만큼 타자를 압도했으며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공격적인 피칭때문에 파워피처로 분류되기도 한다. 배리 본즈는 "2스트라이크 노볼카운트에서도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오는데 매덕스가 파워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피처냐?"고 했다. 물론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정통적인 파워피처와는 거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 [5] 포스트시즌 통산 18승인 앤디 페티트에 이어 2위
  • [6] 포스트시즌 통산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