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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브렛

last modified: 2015-04-10 00:25:56 Contributors


로열스의 레전드


2013년 5월 임시 타격코치를 맡을 때 모습

이름 George Howard Brett
생년월일 1953년 5월 15일
국적 미국
출신지 웨스트 버지니아주 글렌 데일
포지션 3루수/1루수[1]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71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29순위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1973~1993)

캔자스시티 로열스 영구결번
No.5

1980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베일러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롤리 핑거스
(밀워키 브루어스)

Contents

1. 개요
2. 은인을 만나다
3.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숙적 뉴욕 양키스
4. 꿈의 타율에 도전하다
5. 로열스의 전설
6. 브렛과 양키스의 악연
7. 파인타르(송진가루) 사건
8. 평가
9.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중의 한 사람이자 한 팀에서만 뛰면서 3000안타를 기록한 10명의 선수중 하나이다.[2] 또한 캔자스시티 로열스하나밖에 없는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로열스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이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이야기이지만 통산 기록은 타율 0.305, 출루율 0.369, 장타율 0.487, 3154안타, 317홈런, 1596타점. 2013년에는 로열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은인을 만나다

1971년 드래프트에 나온 조지 브렛은 사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유니폼을 입을뻔 했다. 그러나 브렛의 형들을 지명했다가 모두 실패를 맛본 레드삭스는 조지 브렛을 지명하지 않았고 2라운드에서 로열스가 브렛을 지명한다.그렇게 보스턴은 MLB레전드를 잃었다.지못미[3][4]

본래 브렛의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오른쪽 타구에 대한 수비가 불안하여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973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의 무대를 밟은 브렛이지만 13경기에서 타율 0.125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다음해에 주전 3루수로 무대를 밟았지만 방망이가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로열스의 타격코치로 일하던 찰리 로[5]가 브렛에게 특타를 제안했고 로의 특타를 받은 브렛은 로의 타격 이론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하면서 환골탈태한다.

3. 전성기의 시작, 그리고 숙적 뉴욕 양키스

메이저리그 3년차이자 주전으로 나선지 2번째 시즌인 1975년, 브렛은 처음으로 3할을 기록했고 195개의 안타와 13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최다 안타, 최다 3루타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1976년에는 타율 0.333으로 처음으로 타율 1위를 기록했고 215개의 안타, 14개의 3루타, 298루타를 기록하며 타율, 안타, 3루타, 총 루타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리그 MVP투표에서는 뉴욕 양키스서먼 먼슨에게 밀리며 2위에 그친다.

브렛이 이끈 로열스는 양키스와 아메리칸 챔피언쉽 시리즈[6]에서 대결했고 브렛은 포스트시즌에서 타율 0.444, 출루율 0.476, 장타율 0.778, 8안타, 1홈런을 기록했지만 양키스에게 월드 시리즈 진출을 내주고 만다.

그렇지만 이것은 브렛과 양키스의 악연의 시작일뿐이었다.

1977년에는 3할과 20홈런을 동시에 기록했고 1978년에는 약간 주춤했지만(타율 0.294) 45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최다 2루타를 기록하는등 로열스의 중심타자로서 로열스를 이끈 브렛은 1977년과 1978년에도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상대했다.

브렛은 포스트시즌에서 양키스의 투수진을 난타했지만 팀은 계속해서 양키스에게 월드 시리즈 진출을 내줘야만 했다.

4. 꿈의 타율에 도전하다

1979년, 타율 0.329, 출루율 0.376, 장타율 0.563, 212안타, 2루타 42개, 3루타 20개, 23홈런, 107타점을 기록하며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인 브렛이었지만 다음해, 더 놀라운 일을 만들어낸다.

1980년, 4월에는 타율 0.259, 5월에는 0.329을 기록하며 0.301에 그친 브렛이었지만 6월에는 0.472, 7월에는 0.494, 8월에는 0.430을 기록하며 타율을 0.403으로 끌어올리며 마지막 4할타자이후 다시 4할타율을 기록하는 선수가 될지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9월, 브렛의 타율은 0.324에 그치며 아쉽게도 타율 0.390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부상으로 117경기에만 출장했지만 타율 0.390, 출루율 0.454, 장타율 0.664를 기록하며 리그 MVP를 차지한 브렛은 또다시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만났지만 이번에는 양키스를 물리치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월드 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최고 3루수 마이크 슈미트[7]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만난 브렛은 치질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8] 타율 0.375, 출루율 0.423, 장타율 0.667, 9안타, 1홈런을 기록했지만 아쉽게도 로열스는 필리스에게 월드 시리즈 우승을 내준다.

5. 로열스의 전설

이후에도 브렛은 꾸준히 로열스의 타선을 지킨다.[9] 1985년, 브렛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0홈런을 기록했고 팀의 유일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안겨주었다.[10]

이후로도 브렛은 로열스의 타선을 꾸준히 지켰고 1990년에는 타율 0.329를 기록하며 3번째로 타율 1위를 차지했으며 70년대-80년대-90년대에 모두 타격왕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1992년 9월 30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브렛은 통산 16번째로 3000안타를 기록한다. 그러나 기립박수후 재개된 경기에서 1루에서 견제사당한다.이거 누군가와 비슷한거 같은데?

1993년을 끝으로 브렛은 은퇴했고 21년간 로열스에서만 뛰면서 통산 3154안타를 기록했다.

1999년, 명예의 전당투표에서 브렛은 98.19%의 투표율을 얻으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이는 역대 최고 투표율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1]

6. 브렛과 양키스의 악연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브렛과 양키스는 악연으로 얽힌 사이이다. 브렛이 전성기를 누린것과 동시에 서부지구의 강자로 떠오른 로열스는 3번이나 양키스에 가로막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데 실패했으며 브렛 역시 2번이나 양키스 선수들에게 리그 MVP를 내줘야만 했다.[12]

그러나 더 큰 악연이 일어났으니...

7. 파인타르(송진가루) 사건


1983년 7월 24일, 로열스와 양키스의 경기가 있던 날. 3번타자로 선발 출장한 조지 브렛은 양키스의 투수 리치 고시지를 상대로 9회초에 역전 2점 홈런을 때려낸다. 그러자 양키스의 감독 빌리 마틴은 즉각 덕아웃에서 걸어나와 브렛의 방망이를 보여주며 브렛이 방망이에 규정을 어기고 더 많은 양의 송진가루를 발랐다고 심판에게 어필했다.

이 당시, 규정상 송진가루는 방망이 끝에서 18인치[13]까지 바를 수 있었지만 브렛의 방망이는 송진가루가 방망이 끝에서 24인치까지 발라져있었다.(17인치인 홈플레이트의 너비와 뱃에 발린 송진의 너비로 판단) 심판은 즉각 브렛의 홈런을 무효로 선언함과 동시에 부정 배트 사용으로 인한 아웃으로 경기는 양키스의 승리로 종료하였다. 하지만 화가 난 브렛은 곧장 심판에게 뛰쳐나갔다. 단순히 뛰쳐나간 것도 아니고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역사상 남을 돌진을 이루어 냈다. 심판은 브렛에게 퇴장을 선언했고 이 경기는 결국 양키스의 승리로 끝난다.


경기가 끝난 후, 로열스는 이 경기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제소했고 사무국은 브렛이 방망이에 규정을 넘는 송진가루를 발랐지만 이 것이 홈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며 홈런을 취소할 이유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1달 후 두 팀의 휴식일이었던 8월 18일에 브렛이 홈런을 친 순간부터 재개되어 로열스의 승리로 끝이 난다.[14][15] 이 때문에 야구 규정에 야구방망이에 대한 규정인 1.10의 (c)항에는 규정에 어긋난 방망이를 사용해도 타격 중이나 타격 후에는 플레이를 인정하도록 되어있다. 즉 부정 배트 사용은 타자가 배팅 박스에 들어오기 전에 발견해야 퇴장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 때, 캔자스 시티의 게일로드 페리가 조지 브렛의 배트를 가지고 클럽 하우스로 도망쳐서 뉴욕 시경이 클럽하우스까지 진입하는 일이 일어나는 등 엄청난 해프닝이 있었다. 사건 25일 후 홈런을 친 순간부터 약 20여분간 이루어진 '특별 9회'는 짧은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000여명의 많은 관중이 왔지만 너무나 간단히 끝나서 김이 빠졌다.

한편, 심판의 판정에 머리끝까지 분노하여 뛰어나온 장면은 브렛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다만 성질머리가 대단한 선수로 기억되는 것이 오히려 조지 브렛 자신은 좋다고 했는데, 그 전까지는 치질수술로 메이져리그 로스터에서 빠진 치질보이로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인터뷰에서 '당신이라면 치질로 기억되는 것과 송진가루로 기억되는 것 어느것이 나은지 알거 아니오'라고 이야기 했다.

8. 평가

3루수로서 유이하게 3000안타를 기록한 선수이며[16] 한 팀에서만 뛰며 3000안타를 기록한 10명의 선수중 한 명이다. 비록 잔부상 때문에 시즌을 완벽히 소화한 적은 드물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타자였으며 꾸준하고 강력한 모습을 보인 선수였다.

동시대의 감독이 새해에 일어나 가장 먼저 안타를 때릴 선수로 지명했으며, 로열스가 브렛의 은퇴이후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적이 단 3번뿐이라는 것과, 브렛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갖가지 타격기록에서 1위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에서 브렛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9. 이모저모

2012년 KC 카우프먼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미국 팀 감독을 맡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필리스의 홈 개막전)에서 마이크 슈미트와 함께 시구를 했다. 그리고 2013년 5월 말 로열스가 타격코치를 해고하고 레전드 브렛을 임시 타격코치로 임명하였는데, 그 첫날 로열스는 미주리 주 라이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인터리그 시리즈에서 우천 중단과 관조네 마이크 매시니 감독의 핵실험으로 한국프로야구가 시작하기 몇시간 전이 되서야 끝난 경기를 치뤘다.(...)

사회인 야구를 한다면 들어봤을법한 BRETT이라는 야구용품 브랜드는 조지 브렛의 이름을 딴 브랜드이며 조지 브렛이 감수를 맞고있다.

2014년 10월 15일 로열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펼친 ALCS 4차전을 승리해 스윕을 거두며 29년만에 월드시리즈로 진출하자 감격에 벅차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인터뷰에서도 "내가 뛰지 않았는데 로열스가 가을에 이겼다." 라고 하여 오랜 로열스 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멘도사 라인의 유래가 된 선수이기도 하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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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수생활 말미에는 1루수와 지명타자로 출장.
  • [2] 나머지 9명은 알 칼라인, 칼 립켄 주니어, 칼 야스트렘스키, 크레익 비지오, 데릭 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 로빈 욘트, 스탠 뮤지얼, 토니 그윈이다.
  • [3] 한편, 그 다음 2라운드 전체 30번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지명한 선수는 마이크 슈미트.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가 앞뒤로 포진된 드래프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랩 당시엔 두 선수가 모두 유격수로서 지명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 [4] 두 선수 외에도 1971년 드래프티 스타가 몇 있다. 역시 명예의 전당 회원인 짐 라이스, 통산 244승을 거둔 타나나, 양키스 좌완 프랜차이즈 레코드를 가지고 있던 론 기드리가 그들.
  • [5] 테드 윌리엄스와 함께 타격이론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테드 윌리엄스가 몸통의 회전을 이용한 타격과 약간의 어퍼스윙을 주장했다면 찰리 로는 무게중심의 전진을 이용한 타격과 레벨스윙을 주장했다.
  • [6] 이 시기엔 지금과 달리 3지구가 아니라 2지구 체제로서, 서부지구 1위와 동부지구 1위가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대결하여 이긴 팀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의 포스트시즌이 진행되었다.
  • [7] 교타형의 좌타자와 정통 우타 거포, 위에 언급된 찰리 로와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이론을 각각 수용한 선수, 냉정히 말해 수비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던 브렛과 내셔널리그의 단골 골드글러버 슈미트, 양대리그 챔피언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간 보여준 가을야구에서의 꾸준함과 삽질 등 여러모로 이 월드시리즈는 브렛 vs 슈미트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 [8] 결국 2차전 도중 교체되어 수술을 받는다.
  • [9] 부상으로 89경기에만 출장한 1981년 제외
  • [10]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팬들에게는 정말로 분노할만한 월드 시리즈였는데 6차전 9회말, 로열스의 선두타자였던 5번타자 호르헤 오르타의 1루 땅볼타구가 1루심 돈 덴킨저에 의해 내야안타로 처리되는 희대의 오심으로 인해 카디널스가 6차전 끝내기 패배를 당해야만 했으며 7차전의 주심을 돈 덴킨저가 맡으면서 카디널스 선수들의 평정심이 사라지면서 7차전까지 내줘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11] 브렛보다 높은 투표율을 얻은 선수는 톰 시버, 놀란 라이언, 칼 립켄 주니어, 타이 콥뿐이다.
  • [12] 서먼 먼슨돈 매팅리가 그 주인공들이다.
  • [13] 야구 규정 1.10의 (c)항.
  • [14] 경기가 재개된 후, 빌리 마틴 감독은 또 다시 이의를 제기 하는데, 브렛이 홈런을 치고 모든 베이스를 밟았음을 어떻게 증명 할꺼냐고 항의 했다. 하지만 평소 마틴 감독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심판진들은 마틴이 또 다른 규정을 빙자해 딴지를 걸 것이라 예상했었고, 미리 받아둔 증명서(이전 홈런 상황에서 브렛이 모든 베이스를 밟았음을 확인하고 보증한다는 모든 심판의 사인이 담긴 서류)를 들이밀어서 마틴을 데꿀멍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 [15] 한 달 후 재개된 경기에서 기이한 상황(...)이 일어났다. 원래 이 경기에서 양키스의 중견수였던 제리 멈프리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하는 바람에 투수인 론 기드리가 중견수로 교체되는가 하면, 2루수였던 버트 캠퍼네리스는 부상으로 뛸 수가 없어 왼손잡이인 돈 매팅리가 2루수를 봤다(...). 사실 이 기묘한 상황에 대해 브렛의 홈런 판정에 불복하는 빌리 마틴 감독의 분노 표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 [16] 다른 한 명은 웨이드 보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