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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

last modified: 2015-04-05 03:19:59 Contributors


이름 조중연 (趙重衍 / Cho Chung-Yun)
생년월일 1946년 1월 1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보은군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고려대학교(1965~1969)
산업은행(1969~1974)
해병대 축구단(1970~1972)
코치 고려대학교(1973~1974)
울산 현대 호랑이(1983~1986)
감독 울산 현대 호랑이(1986~1987)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47대~50대) 조중연(51대) 정몽규(52대~)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전 축구 지도자, 전 축구 해설위원, 전 축구 행정가,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아시아축구연맹(EAFF) 회장.

Contents

1. 선수 시절
2. 지도자 시절
3. 행정가 시절
4. 대한축구협회 회장 시절
4.1. 공적
4.2. 실책
5. 평가


1. 선수 시절

선수로는 그렇게 부각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중동중 시절 처음 축구에 입문한 그는 당대 명문인 고려대학교 축구부에 스카우트되었고 청소년대표에 선발된 적은 있으나 그 정도가 내세울만한 경력이다. 뭐 당시 산업은행 축구단도 대통령배를 우승하는 등 나름대로 잘 나가는 팀이긴 했지만... 다만 현재 이미지와는 달리선수시절엔 상당히 모범적인 선수였다고 한다. 고려대 재학시절에도 훈련은 똑같이 받으면서 수업을 빠지지 않았으며, 1969년 금융단 축구연맹전에서는 갓 입단한 신인선수 신분으로 선수대표 선서를 할 정도였다.

2. 지도자 시절

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접은 조중연은 당시 대부분의 금융단 소속 선수들이 은퇴후 낙하산타고은행 직원으로 취직하던 관행과는 달리 은퇴하고 바로 고려대학교 코치를 맡는다. 2년만 하고 결국 산업은행에 입사하긴 하지만...산업은행 울산지점에 근무하다 이후락[1]의 지시로 학성고 축구부의 창단에 힘쓰게 되고 이때의 경력을 인정받아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에 참가할 현대 프로축구팀 창단시에도 실무를 맡게 된다. 이 때 김호곤 현 울산 감독과 함께 코치를 맡게 되고 문정식 당시 현대자동차보험 실업팀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내정한다. 그리고 3년 후 문정식 감독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대신 현대의 사령탑을 맡아 첫해에 프로선수권[2] 우승컵을 얻는다.

그러나 그해 김종부의 스카웃을 두고 복잡한 사정[3]에 따라 감독직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그 뒤 KBS에서 축구해설을 맡았는데 올드 축구팬들은 선수, 지도자, 해설가, 행정가로서의 조중연 중 해설가로서의 조중연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해설을 잘했던 모양.[4] 당시는 일단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고 축구 이론이 전혀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따라서 현재처럼 신변잡기 만담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어려웠고, 전략전술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높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무슨 소린지 모르고, 해외 선수를 소개하려해도 어마어마한 슈퍼스타가 아니면 몽땅 듣보잡 취급하던 시절이라...[5] 게다가 당시는 국대경기나 K리그 포스트시즌 정도는 공중파에서 중계해주던 시절이다. 지금처럼 '스포츠는 케이블에서' 시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경직된 사회분위기였다. 따라서 무려 공중파 방송에서 개드립이나 비속어틱한 방송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게 해설을 하는건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주 레퍼토리가 '고국에 계신 국민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류의 민족적 해설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크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경기의 맥을 짚거나 적당히 시청자의 수준에 맞춰 해설을 하면서 지적인 이미지의 해설을 했다.

3. 행정가 시절

1998년 김정남 현 프로축구연맹 총재의 후임으로 대한축구협회 전무 겸 기술위원장직을 맡으면서 행정가로서 본격적으로 입문한다.[6][7] 프랑스 월드컵 당시 성적부진을 물어 차범근 감독을 경질하고 자신도 책임을 지고 기술위원장 직에서는 사임한다.[8]

그는 전무로 있으면서 이전 축구협회 집행부의 전무들이 시도하지 못 했던 정책들을 입안하고 실행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단적인 지표만 제시하자면 조중연 전무 임명당시 축구협회 1년 예산은 30억원이었는데, 조중연 회장 임기가 종료된 현재 예산은 1천억에 달한다.

전무로서 조중연의 업무수행은 선수출신 행정가들에 대한 편견(공만 차느라 업무수행능력은 형편없다)을 극복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후 김호곤, 김진국, 김주성 등 선수출신 행정가들이 축구협회의 요직을 수행하는 계기가 된다. 조중연 본인도 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정몽준 회장에 의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한국축구의 수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이와 반대로 축구협회의 안팎으로 인적 구성의 과정에서 소위 '축피아'라 일컬어지는 파벌을 공고히 하여 이래저래 부침이 심했던 조광래호, 최강희호, 박종우 세레머니 사과편지 논란을 거쳐 직접적인 관여는 없지만 홍명보호2014년 굴욕까지 여태까지의 공적을 모두 날려버리는 행보로 대한민국 축구 퇴보에 일조한 원흉으로 여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꼽히고 있다. 조중연이 품던 폭탄을 정몽규가 떠안다가 터진 격

4. 대한축구협회 회장 시절

2009년 회장 선거에서 야권을 대표하여 출마한 미스터 골프 허승표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하여 4년 임기의 51대 회장에 취임한다.

회장 임기 동안 일단 한국축구의 성적 면에서는 화려했다. 월드컵 16강, U-20 및 U-17 월드컵의 8강 진출, 여자 U-20 월드컵 3위와 U-17 월드컵 우승, 올림픽 동메달 등 각급 대표팀은 나가는 족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아시안컵에선 왜... 이는 자국 축구전반에 대한 선순환으로 이어져, 임기 동안 K리그 팀들은 매 시즌마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였고 그 중 3번 우승컵을 안았다. 성적뿐만 아니라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U리그도 기틀을 착실하게 다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정면에서 여러 가지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조광래 감독 경질 과정이라거나 코칭스태프 임금 미지급 건 국대 코칭스태프는 무보수 명예직?!, 비리직원 퇴직금 지급, 박종우 세레머니 사건 때의 대응 등이다. 아래에서 자세히 서술.

이런저런 일들로 여론이 좋지 않자 조 회장은 회장직 재선 도전에 나서지 않겠다고 불출마 선언을 한다. 나이도 있고 회장 임기가 끝나면 자연스레 축구계 원로로 물러날 듯.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에서 한 자리 잘 보전하고 계시는 데?!

2013년 1월 28일 협회 회장 선거에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가 당선되자 현장에서 곧바로 회장직 이임식을 갖고 협회 일선에서 물러났다.

4.1. 공적

  • 파주NFC 건립 - 그전까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팀이 소집되어도 여관에 투숙하고 흙바닥이나 인조잔디에서 훈련하던 것을 전용 숙소와 전용 훈련장에서 눈칫밥 안 먹고 마음껏 훈련할 수 있게 되었다.

  • 경기장 인프라 확충 - 잠실종합운동장 활용, 섬 돔구장 겸용 등을 내세우던 서울시를 상대로 이리저리 설득해서 전용경기장인 서울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성사시킨 주역이 조중연이다. 그 영향인지 월드컵을 개최한 10개 도시 중 향후 종합경기대회 개최계획이 있던 도시들[9]을 제외한 곳들은 전부 축구전용구장을 지었다.서울이 전용구장 짓는데 우리라고 꼼수부릴 순 없지 그러나 광주는 실제로 꼼수를 부렸다(...) 이 축구전용구장들은 이후 고스란히 K리그의 인프라로 귀속되었다. 월드컵경기장 같은 대형 경기장들뿐만 아니라 천안, 목포, 창원 세 곳에 축구센터를 조성하기도 했으며 전국적으로 각지에 잔디구장 건설 붐을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초중고리그는 물론이고 아무리 지방 듣보 대회라도 전 경기가 잔디구장에서 개최된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10]

  •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개최와 공부하는 축구선수 육성 - 성적위주의 단기 토너먼트 대회만 존재하던 초중고 축구를 권역별로 쪼개 연중리그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뒤집어엎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정상적인 학습이 불가능하던 학원축구 선수들로 하여금 주중에는 일반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나서, 주말에 리그경기에 참가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결과 선수출신으로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경쟁하여 서울대 등 명문대에 입학하는 선수들이 나오기도 했다.[11]

  • U리그 개최 - 대학축구에도 초중고 주말리그와 마찬가지로 연중리그 모델을 도입하였다. 캠퍼스 내 홈경기장 개최를 권장함으로써 잠재적인 대학생 축구팬들의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 유소년 육성 - 모르는 사람들은 축구협회 예산이 1000억원이라면서 유럽 유명감독들 안 데려오고 뭐하냐고 까지만[12] 천억 예산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바로 유소년 육성이다. 주로 프로구단 산하 유소년팀 운영, 초중고리그 운영, 유소년 상비군, 유망주 장학금 등에 지원된다. 한 명의 감독에 돈쓰는 것보다 수천, 수만 명이 혜택을 입을 유소년분야 투자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 우수유소년 해외유학 - 싹이 보이는 유망주들을 유럽 유소년클럽에 축구유학을 보냈다. 이 프로젝트의 수혜자들로는 설기현, 이용래, 조영철, 지동원, 남태희, 백성동, 손흥민 등이 있다.[13] 이에 대해서는 유망주들의 해외유출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있다. 비율 조절 실패

  • 지도자 육성 - AFC로부터 전달되던 지도자 교재가 모두 영문으로 되어 있어 보급률이 떨어지던 것을 번역하여 보급하고, C,B,A,P코스에 걸쳐 지도자 라이센스제를 시행하였다.[14]

  • 월드컵 병역특례 - 2002 월드컵 당시 16강 진출시 선수단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데 대해 특정종목에 대한 특혜로 생각하여 회의적이던 국회의원들을 한 명씩 직접 찾아다니며 간곡하게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박지성, 이영표, 안정환 등 여러 유망한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 대한축구협회 법인화 - 2005년 국정감사에서 제대로 털린 이후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법인화를 실시하였다. 근데 사단법인이 되어도 여전히 국정감사는 받는다 그래서 털렸는 데 대한체육회랑 사이좋게 같이 털렸다 국정감사 영상1 영상2 영상3 영상4

  • 기타 자세한 사항은 링크 참조. 협회 전속기자의 조비어천가 느낌이 과하게 나기는 하지만 없는 얘기를 만들어서 쓴 건 아니니 적절히 필터링해서 읽어야 한다.

4.2. 실책

  • 차범근 감독 경질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대회 도중 현지에서 감독을 경질하는 것은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았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한다. 조중연 본인은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벨기에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축구팬중에 이때 조중연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본인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퇴진하지 않았다. 이 발언으로 욕을 더 먹었는데 이 때 물러났으면 상기한 업적도 상당부분 없었을 것이므로 마냥 잘못이라고만 하긴 힘들다.

  • 포상급 차등지급 논란 - 2002 월드컵이 끝나고 선수단에 대한 포상금 논의 중에 각 선수들의 출전시간에 따라 포상금을 차등지급해야 한다고 주장. 이는 축구팬들의 강력한 비판에 부딪혔고 결국 축구협회는 포상금을 균등지급하기로 한다.[15]

  • 감독 선임 - 축구계 고정떡밥 중 하나. 클럽 감독으로 그다지 성적이 시원찮았던 시원찮은 정도가 아니라 명문팀을 말아먹은 김호곤이나 박성화를 올림픽 대표팀이나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고, 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특정 에이전시와의 유착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16] 조광래, 최강희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K리그 클럽들을 무시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17]

  • 조광래 감독 경질과정 잡음 - FC 서울을 파탄낼 뻔한 황보관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하더니 기술위원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절차 따위 무시하고 조광래 대표팀 감독을 경질한 데 대한 비판도 컸다. 더군다나 감독 및 코치진에 대한 연봉이 일부 미지급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조광래 전 감독에 대한 연봉은 아직도 미지급 상태였다가 정몽규 회장 체제로 넘어가서 지급이 완료됐다. 조중연이 싼 똥을 정몽규가 치우는 격 참고로 조광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조광래는 원래 축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18]

  • 최강희 감독 선임과정 - 국대 감독직 제안 거절의사를 밝혔던 최강희 전북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클럽팀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중연 회장이 최강희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면서[19] 거의 강제에 가까운 설득을 하자 최강희 감독이 어쩔 수 없이 승락[20]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판단된다.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 비리직원 퇴직금 지급 - 한 축구협회 직원이 공금을 유용한 것이 발각되어 퇴직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것만으로도 까일 일이지만 그 직원에게 1억5천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터지자 곱배기로 까였다. 그 퇴직금의 성격이 입막음 목적이 짙어 보이기 때문. 이에 책임지고 김진국 전무가 사표를 썼으며, 축구협회는 뒤늦게 퇴직금 환수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해서 한 번 더 쪽을 팔았다.

  • 박종우 세레머니 사과편지 논란 - 런던 올림픽 동메달및 목메달 결정전으로 열린 한일전 승리 후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 플래카드를 드는 세레머니를 한 데 대해 논란이 가중되던 중 축구협회에서 일본축구협회에 사과조의 편지를 발송한 사실이 밝혀졌다. 축구협회에서는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편지였고 사과조로 보이는 표현들은 관례적인 외교적 수사라고 해명했지만[21] 당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자극한 꼴이 되어 폭풍까임을 당했다. 여담으로 해당 편지는 김주성 사무총장이 작성했다지만 조중연 회장이 최종결재를 했고 발신도 회장 명의로 이루어졌다.

  • 임기말 국가대표팀 중계권 판매 시도 - 임기 2주를 남기고 4년짜리 국가대표 A매치 중계권 협상을 추진하다가 여론이 심하게 나빠지자 결국은 재계약 협상을 취소했다. 당시 차기 회장선거에 도전장을 낸 정몽규 후보의 공약 중 하나가 A매치 중계권과 K리그 중계권 연동판매였기 때문에, 말은 범현대家라고 하지만 조중연과 정몽규의 사이가 껄끄러운 것 아니냐는 소문에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5. 평가


전반적으로 볼 때 조중연의 실무추진능력은 선수, 지도자, 해설가, 행정가로 모두 활동해 본 풍부한 경험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며, 이는 조중연 이후 선수출신 행정가가 협회 내에서 중용되는 흐름에 기여한다. 조중연 본인이 선수출신으로 축구협회 회장에까지 오른 것이 이를 반영한 상징적인 사건이다.[22]

공과를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조중연의 업적은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고 결과가 나오려면 오래 걸리지만, 가장 중요한 장기적인 플랜 에서 성과를 내었다는 점이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축협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아 틈만 나면 "일본은 유망주를 저렇게 키우는데 한국은 지원을 안하고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판이지만 조중연 시절의 행보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국내 스포츠 협회중에 폐쇄성과 연고주의로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무능한 조직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거대한 판을 그리고 실행해낸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축협폐쇄성과 연고주의의 정점이라는 거

그리고 실책에 대해서 보면 대표팀 감독 선임 때의 잡음, 여타 추문의 뒷수습에서 졸속대응으로 축구팬들과 국민들한테 전방위적으로 욕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소위 축피아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문제다. 그게 굉장히 크리티컬했지 어쨌든 히딩크 시대를 지나서 허정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A대표팀 감독이 협회와 관련해 갈등이 존재했다는 것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부분이다. 허정무를 제외한 모든 감독들이 국제무대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가 거짓으로 비슷비슷한 핑계를 대고 있다고만 보기도 어렵기 때문. 외국에서도 뛰어난 선수가 감독과의 불화나 전술상 문제로 배제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처럼 인맥설, 외압설이 자꾸 퍼져서는 곤란하다. 이것이 위의 최강희, 홍명보 감독 선임과정과 소위 엔트으리 엔트리 논란으로 폭발한 셈. 선수 출신 행정가로서 성공한 것은 대단하지만 역으로 끼리끼리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이 더 필요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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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학성고 이사장
  • [2] 현재의 리그컵에 해당
  • [3] 간략히 서술하자면 조중연이 고대 동문이라는 인맥을 내세워 클래스는 영원하다 김종부를 영입하기로 합의했으나 김종부는 현대와 대우 양팀과 이중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대한축구협회의 중재결과 김종부를 대우로 보내기로 결정되자 현대의 왕회장께서 빡돌아서 이럴 바엔 팀 해체하라고 지시한 것.
  • [4] 여담으로 조중연이 축구협회로 들어가면서 KBS에서 후임으로 영입한 해설위원이 이용수 교수이다. 추후 조중연이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영입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축구계 야권에 서서 조중연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복잡한 인연.
  • [5]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라는 것을 감안하자
  • [6] 아마 현대 프로축구단 창단을 주도한 경력을 정몽준 당시 회장이 좋게 봐 준 듯.
  • [7] 이미 1993년 정몽준이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축구협회 이사로 선임되지만 이때는 실무직이라기보다 명예직의 성격이 강했었다.
  • [8] 다만 전무 직책은 계속 수행한다. 이것 때문에 많은 팬들은 차범근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기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대표팀 성적에 따라 책임이 좌우되는 기술위원장 직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지고 물러나긴 했다. 전무 직은 직접적으로 성적에 책임을 지는 자리는 아니긴 하다.
  • [9] 부산, 인천(아시안게임), 대구(유니버시아드)
  • [10]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백록기 전국고교축구대회가 사상최초 전경기 천연잔디 개최로 주목을 받은 것이 불과 2003년이다.
  • [11] 이 제도가 아래 서술한 유소년 육성책과 지도자 육성책과 맞물리면서 예상 못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데, 진학을 미끼로 학부모에게 갑질하며 금품수수를 일삼던 구태의연한 지도자들이 일선에서 도태당한다.
  • [12] 물론 그런 감독들이 돈만 많이 준다고 오는 건 아니지만
  • [13] 돈들여가면서 유학보내놨더니 조작질이나 한 하의 개쌍놈도 있다만...
  • [14] 라이센스 급수에 따라 맡을 수 있는 팀이 제한된다. D급은 8세 이하, C급은 초등학교와 U-12, B급은 중고교와 U-17, 각급 대표팀을 맡으려면 A급 이상.
  • [15] 선수마다 4강 진출에 기여한 정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오랫동안 한 팀으로서 함께 훈련해왔고 후보 선수는 주연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 [16] 히딩크, 코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까지 모두 같은 에이전시가 연결점이었다.
  • [17] 한 명은 K리그 시즌 도중에, 한 명은 시즌을 한창 준비해야 할 시기에 빼가듯이 감독 선임.
  • [18] 조광래가 국대 감독이 되기 훨씬 전인 2000년 초반 축구 월간지 베스트 일레븐과 인터뷰에서 조광래는 조중연을 신랄하게 깐 바 있다.
  • [19] 둘은 현대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였던 인연이 있다.
  • [20] 단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 [21] 직접 읽어보고 각자 판단하도록 하자.
  • [22] 언론매체에선 조중연이 선수출신 최초의 회장이라고 보도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이미 이종환 회장이 선수출신으로 회장에 역임한 바가 있다. 조중연은 두번째 선수출신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