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조원우

last modified: 2019-06-10 11:45:28 Contributors


SK 와이번스 No.74
조원우(趙原佑)
생년월일 1971년 4월 8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수영초-부산중-부산고-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 2차 5라운드 지명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1994~1999)
SK 와이번스(2000~2005)
한화 이글스(2005~2008)
응원가 동요《금강산》[1]
지도자 경력 한화 이글스 수비코치(2008~2009)
롯데 자이언츠 외야 수비코치(2011~2012)
두산 베어스 외야 수비코치(2013)
SK 와이번스 주루코치(2014~)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김기태 조원우(2004) 강성우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6번
최해명(1992~1993) 조원우(1994~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36번
팀 창단 조원우(2000~2002) 곽국희

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곽국희 조원우(2003~2004) 조영민(2005~2006)

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조영민[2](2004~2005) 조원우(2005~2008) 빅터 디아즈(2009)

쌍방울 레이더스의 돌격대장, 마지막 선봉장

외야수비의 달인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한화 이글스 시절
3.2. 롯데 자이언츠 시절
3.3. 두산 베어스 시절
3.4. SK 와이번스 시절
4. 기타
5.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국프로야구 선수(외야수. 주포지션은 좌익수,중견수.)이자 현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 겸 외야수비코치. 별명은 쌍방울 레이더스 타자진의 주축이자 이후 4번타자 김기태 등으로 이어지는 쌍방울 득점라인의 선두였기 때문에 팀명인 레이더스(돌격대)의 선두라 하여 붙여진 돌격대장. 선수생활 말년에는 조로켓이라는 눈물나는 별명도 얻었었다. [3]

커리어 최다홈런이 12홈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홈런을 뻥뻥 치는 거포는 아니였고, 발이 느린 편은 아니지만 도루 20개를 넘겨본 적도 한 번 밖에 없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번개같은 발을 가진 선수도 아니였으나, 매시즌 +10개 정도의 2루타와 도루를 기록하며 2할 7푼 이상을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교타자였다.

이 선수에게는 대기록이 하나 있으니, '외야수 부문 연속 경기 무실책'이다. 2001년 7월 5일 청주 한화전을 시작으로 이어진 이 기록은 팀을 한화로 옮긴 후인 2006년 5월 23일 대전 삼성전에서의 중계플레이 실책을 범하면서 마감했다. 총 494경기 연속 무실책. [4]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런 루이스의 392경기, 종전 기록은 김종모의 265경기였다. 실제로, 통산 실책 개수가 12개이다. 1시즌당 평균 1실책도 안 했다는 뜻.

2. 선수 시절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SK 와이번스 시절


한화 이글스 시절

부산 출신의 선수로, 부산고를 졸업하고 동기 강상수와 함께 고려대에 진학하여 故 임수혁,마해영,강상수[5],故 박정혁,심재학,조경환등과 함께 90년대 고려대의 불과 같다고 표현되던 극강의 타선에 일익을 담당하던 선수였다.

이후 1994년 쌍방울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으며,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가 IMF로 인한 부도로 해체된 뒤 SK 와이번스에 인계됐고,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된 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화 이글스에서 몸담았다. 15년 동안 1368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82, 68홈런, 443타점, 123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쌍방울 시절인 1998년에는 149안타로 최다 안타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유일하게 그 해에 두자리수 홈런(12홈런)을 기록했으며, 또한 희생타 1위(39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0.314로 고감도 타격을 보여주던 1999년 5월, 수비훈련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왼쪽 고관절 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되었다. 오랜 재활을 거쳐 2003년부터 타격감을 다시 되찾기 시작하였다.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어 FA를 행사하였으며 4년간 17억 5천만원의 조건을 요구하여 원 소속팀 SK와 이견을 보인 끝에 시장에 나왔고, 김재현을 놓친 LG 트윈스와 정수근의 이적 이후 외야요원의 공백을 메꾸는데 실패했던 두산 베어스 등에서 조원우를 노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긴 했으나 요구조건이 너무 셌던 탓인지 다른 팀과 계약을 하지 못한 채 2005년 1월까지 FA 미아로 남아있다가 결국 원소속팀 SK와 계약기간 2년 총액 4억 5천만원에 계약을 하였다.

FA 과정에서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외야진의 핵이었던 채종범이 병풍으로 빠져나갔음에도 조동화 등의 신인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고, 시즌 중 한화 소속의 투수였던 영민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1971년생과 1981년생의 트레이드였기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조원우가 연일 불꽃타를 휘두르면서 선전하였다. 이 분위기를 타서 한화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6] 조원우는 SK와 한화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7]를 휘두르면서 팀을 플레이오프로까지 이끌었다.

한화에서 2006년과 2007년에 100경기 이상 출전하였으나 2005년의 모습과 같지는 않았으며 뱃스피드가 눈에 띄게 느려져 빗맞는 타구, 특히 수직으로 높이 뻗기만 하는 내야 플라이를 양산하였고 팬들은 로켓타구만 날린다하며 조로켓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1군 5경기 출전에 머물러 결국 2008년 10월에 방출되었다.

우승경력은 없으며 준우승은 2003년과 2006년이며 1998년에는 최다안타 부분 2위이다. 쌍방울-SK 시절 동료였던 김원형이 2007년 SK에서 우승을 맛보면서 조원우에 대해 아쉬워했기도 했다.

3. 지도자 시절

3.1. 한화 이글스 시절

2008년 11월에 한화 2군 코치로 다시 합류했다. 2009년 1시즌 동안 한화 이글스에서 코치로 활동한 후 김태균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하면서 그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

3.2. 롯데 자이언츠 시절


고향 팀으로 돌아온 후 외야 수비코치를 맡게 된 조원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 수비코치로 임명됐다. 이례적으로 기용된 1루 코치 겸 외야 수비코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훈련을 받았던 손아섭김주찬의 외야 수비가 가면 갈 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 수비에선 답이 안 나오던 김주찬마저 7월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수비수로 바꿔놨으니...# 이 때문에 수비코치지만 내야를 담당하는 공필성과 많이 비교되고 있는 상황. 7월 31일 경기에서 보살 2개를 기록했던 손아섭도 인터뷰에서 조원우 코치의 지도 덕에 수비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건 특급 좌익수 홍성흔 차례다!

# 코치님 날 가져요 헠헠

근성으로 불의의 부상을 딛고 일어난, 쌍방울 레이더스다운 선수.

다만 2012년도에는 주루코치였는데 3루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판단으로 롯갤이나 엠팍등지에서 좀 까였었다. 어째서 이 항목에 제대로 작성이 되지 않았었는지 의문.

2012년 10월 말 부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이고 코치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의 퇴임이 조원우 코치의 사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3.3. 두산 베어스 시절

이후 2013 시즌 두산 베어스 외야수비코치로 임명됐으나,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김민재와 함께 사의를 표명하였다.

3.4. SK 와이번스 시절

2013년 12월 18일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조영민과의 트레이드 이후 8년만에 SK로 다시 오게 되었다.
2014년 SK가 막장이 되면서 이만수 감독을 포함 모든 코치들이 욕을 먹는 와중에 뛰어난 판단으로 김경기 타격코치와 더불어 욕을 안 먹는 코치가 되었다.

2015년부터는 외야수비코치로 임명하고 이명기의 막장수비를 한번 맡겨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며 결국 2015시즌부터 주루코치와 외야수비코치를 겸하게 되었다. SK팬들은 이명기 수비가 만약 정말 좋아진다면 종신계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2015년 시즌 초반 이명기의 수비가 진짜 좋아졌다! 전년도에 비해 수비에 훨씬 안정감이 생긴 것은 물론 간간히 호수비도 보여주는중. 오오 원우매직

4. 기타

참고로 조원우의 부친이 육상선수 출신이다. 그래서 조원우 역시 발이 빠른 편이었다. 정확한 컨택트 능력을 생각한다면 2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이 적당하나 나름대로 클러치 능력도 있어 주로 6번 타순에 기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컴투스 프로야구 2013에서는 조원우98카드가 SK 레전드 카드가 아닌 한화 레전드 카드로 되어 있다.

SK 와이번스로 인계되어 첫 시즌을 마친 2000년에 결혼했는데, 그의 부인은 공인회계사라고 한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쌍방울 레이더스 86 223 .274 61 5 1 4 13 26 15 13 .359 .312
1995 38 87 .230 20 5 1 1 7 14 3 5 .345 .272
1996 122 284 .268 76 7 1 2 29 39 8 27 .320 .328
1997 126 424 .321 136 18 9
(1위)
5 49 61 15 26 .441 .355
1998 126 479 .311 149
(2위)
20 4 12 62 80 23 42 .445 .365
1999 47 188 .314 59 9 2 6 22 25 11 13 .479 .358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와이번스 29 77 .221 17 0 0 1 10 5 0 6 .260 .267
2001 111 307 .244 75 15 1 7 39 43 7 46 .368 .339
2002 116 297 .269 80 8 2 8 36 42 4 23 .391 .320
2003 128 452 .281 127 18 0 8 48 65 13 49 .374 .349
2004 119 386 .277 107 17 2 3 35 59 5 53 .355 .361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이글스 95 351 .302 106 17 1 6 42 43 7 35 .407 .362
2006 106 341 .267 91 10 0 1 25 48 6 35 .305 .332
2007 114 319 .266 85 15 1 4 26 36 6 30 .357 .329
2008 5 5 .200 1 0 0 0 0 0 0 0 .200 .200
통산(15시즌) 1368 4220 .282 1190 164 25 68 443 586 123 403 .381 .342
----
  • [1]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 [2] 조영민-조원우 트레이드로 등번호 교환
  • [3] 로켓같이 빠르다던가같은 긍정적인 별명이 아니다. 늘상 로켓같이 부웅 뜨는 내야 플라이 타구를 날린다 하여 로켓이다(...)
  • [4] 한화 시절에는 실책이 나올 플레이를 안 해서 실책이 없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기본적으로 외야 수비의 달인 중 한명이였던 것은 사실이다.
  • [5] 아마추어 시절엔 타자로써의 재능이 뛰어났다.
  • [6] 2001년 이후 4년만
  • [7] 21타수 9안타, OPS 1.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