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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자

last modified: 2014-11-06 19:26:27 Contributors

趙襄子

춘추시대 말기와 전국시대 초기의 제후로 이름은 조무휼(趙無恤).

영성(嬴姓) 조씨(趙氏). 본래 서자인 데다가 막내라서 후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아버지인 조간자가 아들 중 그가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적자인 백로를 폐하고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한 번은 조간자가 여러 아들들을 불러놓고 "내가 귀중한 보물을 상산에 숨겼는데 먼저 찾은 사람에게 상으로 주마"라고 말했다. 조간자의 아들들이 말을 달려 산에 올라가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나 무휼이 제일 먼저 돌아와서 보물을 찾았다고 알렸다. 조간자가 그게 무엇이냐고 묻자 "상산 꼭대기에서 (代)나라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대나라는 능히 탈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조간자는 이 아들의 영특함에 탄복했다고 한다. 뒷날 대나라는 결국 무휼의 손에 떨어진다.[1]

진나라 말엽인 기원전 452년, 지(智), 한(韓), 위(魏)씨의 세 가문과 함께 세력을 과시했으며 지씨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려 하자 한, 위와 힘을 합쳐 지씨를 멸하고 한씨, 위씨와 함께 진의 영토를 나누어 가져 조나라의 시초가 되었다.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晋)이라 하며 흔히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2]
이는 한비자 십과(十過) 편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패망하는 사례'로 꼽기도 했다.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이 암살하려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예양이 바로 조양자 무휼이 멸한 지씨를 섬겼던 인물이기 때문. 조양자는 지씨의 대부 지백을 멸한 후 그 후손을 멸했으며 그 두개골에 칠을 해서 술잔[* 혹은 요강이라는 말도 있지만 초기 기록에는 술잔으로 나온다.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다만 조양자가 이런 처사를 한 것은 태자 시절 지백에게 원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백이 정나라를 공격했을 때 당시 태자였던 무휼이 지백의 정나라 공격을 도왔는데, 이 때 진중에서 지백이 술에 취해서 무휼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폭행한 적이 있었다. 가신들이 지백을 죽이자고 청하자 무휼은 "주군이 나를 태자로 삼은 것은 내가 치욕을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오"라고 말하며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지백에게 앙심을 품었고 이 태도를 알아챈 지백이 진나라로 돌아와서는 무휼의 아버지인 조간자에게 무휼을 후계 자리에서 폐위하라고 요청한다. 물론 조간자는 이를 듣지 않았지만 이 일이 결정타가 되어 무휼이 지백에게 원한을 품게 된 것이다.
또한 지백이 조양자의 근거지 진양(晋陽) 땅을 포위하고 3년 동안 수공을 펼쳤는데, 결국 성안에 양식이 떨어져 굶주린 사람들이 자식을 교환해 잡아먹었을 정도로 처참한 지경까지 몰렸다. 그야말로 골수까지 원한이 맺힐 수밖에.

그러나 예양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한 번은 "저 사람은 자기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 뿐이다"라고 놓아주고, 두 번째 시도 때 예양이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예자'라고 칭찬하고는 자신의 옷을 내 주어 예양에게 원수를 갚게 하는 퍼포먼스라도 시켜준 것[3]을 보면 잔인하긴 했어도 제법 배포가 큰 대인배였던 듯하다. 이건 적이었어도 자기 주인에 대해 충의를 지키는 사람은 용서한 아버지 조간자를 닮았다.

열국지에는 예양이 벤 조양자의 옷에 선혈이 묻었고 이를 보고 놀란 조양자는 이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적혀 있으나 사기와 같은 실제 사서에는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사기 조세가에 의하면 조양자의 재위 기간은 33년에 달한다. 이 사람이 대인배가 맞는 것이 아들이 다섯이 있었는데 이 아들들을 두고 자기 때문에 후계자에서 밀려난 형 백로의 아들인 대성군에게 자리를 물려주라고 했었다. 그런데 대성군이 일찍 죽어버리자 대성군의 아들인 완을 후계자로 세웠다. 이 완이 바로 조나라 헌후로 이후 조나라 군주 자리는 헌후의 후손들이 이어간다.

한참 후인 811년, 비잔티움 제국황제 니케포로스 1세가 불가르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후 불가르의 크룸이 니케포로스 1세의 두개골을 으로 도금하고 술잔으로 만들어버린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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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나라 왕의 부인은 바로 조양자의 누이였다. 대나라가 망하자 그녀는 비녀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했다.
  • [2] 이 때문에 진을 갈라먹은 삼진(조, 위, 한)은 춘추전국시대 주요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주나라의 봉작을 받지 않고 건국 후 승인을 받은 나라들이다.
  • [3] 예양이 옷이라도 벨 수 있게 해달라고 조양자에게 요청하자 선뜻 자기 옷을 내 주었다. 예양은 세 번을 뛰어 조양자의 옷을 베고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