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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농구선수)

last modified: 2015-02-10 23:23:19 Contributors


부산 KT 소닉붐 No.10
조성민
생년월일 1983년 12월 23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한양대학교
포지션 슈팅가드/스몰포워드
신체 사이즈 189Cm, 95Kg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 8번(부산 KTF 매직윙스)
소속팀 부산 KTF 매직윙스/KT 소닉붐 (2006~ )

2013~2014 한국프로농구 이성구 페어플레이상
임재현(전주 KCC 이지스) 조성민(부산 KT 소닉붐) 2014-15 시즌

Contents

1. 개요
2. 행적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1. 개요

부산 KT 소닉붐의 에이스 가드이자,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가드로 성장한 선수. 본래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노력으로 오늘날 한국 남자 농구를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했다. 물론, 과거 허재같은 특급 슈팅 가드로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실력이 급상승하며, KBL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임에는 분명.

2. 행적

전주고 출신으로 동기인 학섭과 함께 한양대학교에 들어갔다. 한양대 야구부는 몰라도 한양대 농구부는 조성민이 들어갔을 당시에도 구타가 횡행했는데, 아예 감독이 대놓고 구타하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1] 김학섭이 이를 못 버티고 자주 소풍[2]을 나간 것과 달리 조성민은 끝까지 버티면서 고교 시절 자기보다 평가가 더 높았던 김학섭을 제치고 대학 무대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한다. 비록 결국 드래프트에서는 김학섭이 재능을 인정받아 4번으로 모비스에 들어가고, 자신은 8번으로 KT에 들어가지만, 오늘날의 위상을 생각하면...

신인 시절 전지훈련에서 활약하며 추일승 감독의 눈에 들었는데, 그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당하면서 신인 시절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면서 그리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다. 결국 신인 시즌을 마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했는데, 상무에서 뛰면서 실력을 향상시켜 제대하자마자 KT의 주전 가드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때까지는 KT가 비인기팀인데다가 스텟이 특출나지 않았기때문에 조성민은 그냥 나쁘지 않은 선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수상한 일이다. 애초에 처음 명단에 뽑히지도 못했다가 추가로 선발되었다가 경쟁후 최종선발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문경은 이후 국가대표 슈터부재가 꾸준히 지적되는 상황. 그리고 조성민에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 아시안게임에서도 슈터로 선발된 다른인원(이규섭, 김성철)들이 몰텐공에 적응을 못하며 전원 부진에 빠졌었다. 하지만 반대로 조성민은 50%이상의 3점성공률을 보여주며 가드진에서 양동근과 함께 유이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 조성민의 임팩트는 매우 컸고 조성민의 위상이 상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가대표에 주전은 아닐지언정 항상 선발되게 되었다.

아시안게임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탄 조성민은 주전 슈팅가드로 KT 전창진 감독의 모션오펜스의 주축이 되면서 맹활약했다. 특히 KT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2010-11시즌에는 평균 13.8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의 주축이 되기도. 비록 MVP는 팀 동료 박상오에게 돌아갔지만, 실질적인 MVP는 조성민이라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이도 사실 문태종이 MVP여야 한다는 여론이 가장 많았었다.) 역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체격조건과 운동능력이 뛰어나며 수비력이 좋은 강병현이 주전으로 뛰며 중용받지 못했으나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 티켓이 걸린 필리핀과의 3,4위전에서 미친 득점력을 보여주며 역전승의 주역이 되어 최종 예선 티켓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했다.

2011-12 시즌에도 평균 13.62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2012-13 시즌에도 꾸준한 국가대표급 슈팅가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총액 4억7천만원에 5년 계약을 맺었다.

2013-14 시즌전에 KT로스터가 상당히 약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었고 조성민하나만 막으면 끝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부분의 매체에서 6강탈락을 예측했다. 주전 포인트가드인 김현중이 부진하였는데다가 이후에 주전이 된 김우람이 득점력은 좋으나 리딩이 약한 가드였기 때문에 조성민이 리딩에 치중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전시간 (32분), 득점(15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KT를 이끌었다. 한 때 정규시즌 MVP로도 거론되었지만,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멀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팀은 6강 PO 진출을 했고 4강까지 진출했지만 LG에게 스윕을 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MVP는 문태종에게 돌아갔지만 MVP투표 2위였고 이성구 페어플레이상을 받으면서 자존심을 챙겼다.

자유투 성공률이 매우 높은 선수로 늘 리그에서 자유투 성공률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2014년 1월 29일에는 KBL 자유투 연속성공 신기록 56개를 달성했다. 기존 기록은 문경은이 현역 시절에 기록한 52개.

2014 농구 월드컵 한국 대표로 뽑혀서 슈팅가드로 뛰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고 조성민 역시 부진했다. 그 후 인천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도 뛰었고 꾸준히 제몫을 해주면서 한국 남자농구 금메달에 일조 하였다. 조성민은 국가대표일원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고 평균 득점도 문태종에 이어 2위였다. 조성민은 아시안게임에서는 확실히 제몫을 했다. 아시안게임에 2회 출전 금메달 1회, 은메달 1회 수상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구선수로서 최고는 아닐지언정 어느정도 인정 받을만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데 국가대표를 뛰면서 무릎이 망가졌고 시즌이 시작되기 전 무릎 수술을 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아 8-10주정도 재활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KT팬들과 전창진 감독에게 충격을 주었다. KT의 중심은 조성민인데 8-10주동안 재활이 필요하면 사실상 시즌 중후반이나 제대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2014-15 시즌KT는 조성민 없이 시즌을 시작하였고 8연패를 기록하며 바닥을 쳤다. 그래도 조성민은 생각보다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수술후 재활과정을 포함해 거의 2달만인 12월 3일 삼성전에서 복귀를 하였다. 부상 후유증이 염려되었지만, 17분 동안 19득점을 폭발시키며 왜 자신이 현 KBL 최고의 슈팅가드인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몸상태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체력적인 부분의 준비가 더 필요하지만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그 뒤로 기복이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실력있는 슛터라는걸 입증하였다. 하지만 시즌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부치는지 잘할때는 잘하지만 기복이 심해졌고 플랍횟수가 늘어나며 이미지까지 안좋아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KT는 6강 PO진출에 실패하며 조성민이 몸을 더 만들고 천천히 복귀했어야 했다는 팬들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되고 있다.

12월 24일 동부와의 경기에서 윤호영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그와중에 윤호영이 조성민에게 머리로 들이 받는 제스쳐를 취했고 윤호영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조성민이 먼저 욕을 했다는게 밝혀지면서 둘다 비판받는 상황이 되었다. 조성민으로서는 이래저래 씁쓸한 시즌이다.


3. 플레이 스타일

높은 3점슛 성공률을 자랑하는 슈터이자 2대2 플레이에도 능하고 패스도 능한 만능형 슈팅가드이다. 머리 위로 힘껏 던지는 특유의 슛 자세를 선보인다. 슛도 슛이지만, 슛까지 가는 과정을 만드는 볼 없을 때의 움직임이 일품이다. 드리볼도 점점 좋아져 크로스오버 같은 상대를 속이는 드리볼 능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전창진 감독 체제 이후 KT의 눈물나는 포인트가드진 때문에 볼 소유시간을 늘려가며 용병과의 2대2 플레이를 익혔으며 실제 KT가 조성민과 외국인선수 혹은 빅맨의 2대2 플레이로 재미를 많이 봤다. 거기에 자유투 성공률은 거의 백발백중 수준이다. KBL 연속 자유투 성공 기록을 보유하고있다. 자유투 하나 놓친게 기사감이나 해설감이 된다 하더라 디펜스는 첫 시즌을 수비전문선수로 뛰었을 정도로 좋은편이지만 포지션 대비 스피드나 운동능력이 좋은편이 아니라 최상급은 아니다.

국가대표에서는 볼 소유시간을 줄이고 전문 슈터역을 주로 한다. 공격시 볼 없는 움직임이 좋기 때문에 조성민을 위한 패턴이 여러가지가 있다.세계 레벨에서는 얄짤없지만 아시아 레벨에서는 꽤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체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수비때문에 감독 성향을 탄다. 허재감독은 거의 조성민을 배제하고 신체능력이 뛰어난 강병현위주로 운용했으며 유재학감독은 조성민 위주로 운용을 했다.

4. 기타

부모를 잃은 뒤 입대한 후 심한 스트레스로 안면신경마비를 앓았다. 지금 그의 얼굴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병으로 인한 후유증이다.

한양대 농구부 재학시절부터 사귀던 플루티스트와 2012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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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야구부 구타는 정민태가 없앴고, 농구부 구타는 감독인 김춘삼이 구타하다가 비디오 카메라에 찍혀서 짤리면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 [2] 농구계 은어로 팀을 이탈한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