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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제

last modified: 2019-01-22 01:04:03 Contributors


이름 조규제(曺圭帝)
생년월일 1967년 10월 7일
국적 한국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교 금광초-군산중-군산상고-연세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쌍방울 1차지명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1991~1998)
현대 유니콘스(1998~2000)(2003)
SK 와이번스(2000~2002)
KIA 타이거즈(2004~2005)
코치 넥센 히어로즈 (2008~2010)
KIA 타이거즈(2010~2013)
LG 트윈스(2014)

1991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김동수(LG 트윈스) 조규제(쌍방울 레이더스) 염종석(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8번
구단창단 조규제(1991~1998) 가내영 (1998~1999)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박정현 (1988~1998) 조규제(1998~2000) 배힘찬 (2002~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박정현 (2000) 조규제(2001) 정대현 (2002~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가내영 (2000~2001) 조규제(2002) 제춘모 (2003~2004)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7번
조규제 (2003) 박준수 (2004~2007)
KIA 타이거즈 등번호 24번
김경언 (2002~2003) 조규제(2004~2005) 장문석 (2006)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3.2. KIA 타이거즈 1기
3.3. LG 트윈스
3.4. KIA 타이거즈로의 복귀
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돌격대의 수호신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의 마무리 투수이자 현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 코치. 전성기 때는 전주특급, 쌍방울의 수호신뭐? 어디를 수호한다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원래 오른손잡이었지만, 중3 때 장난삼아 왼손으로 피칭한 것이 150km 가까운 속도를 내자 아예 좌완으로 전향해 동대문을 평정(...)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한다. 쌍방울에서도 첫 해에 규정이닝을 채우며 1.64의 평균자책점에 27세이브를 기록하여 팀 동료 김기태를 제치고 신인왕에 오른다.

선동열의 프로 입단 후 6년간 아무도 선동열의 평균자책점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1991년의 선동열 평균자책점은 1.55, 오직 그만이 선동열의 평균자책점에 근접할 수 있었다.

당초 보직은 선발 투수였고, 빙그레 이글스와의 데뷔전에서 송회장님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쌍방울의 구원진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김인식 감독의 지시로 클로저로 전향했고, 이 후 김현욱과 둘이 쌍방울의 구원투수진[1]을 책임지다시피하며 매년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던 1998년, 현금 10억+박정현+가내영과 맞바뀌어 현대로 이적했고, 현대에서 우승반지 2개를 수집하기는 했지만 199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 등판했다가 LG의 손혁에게 발리고, 2000년에는 부상으로 9경기에만 출장하는 등 김동식스러운 모습을 선보이면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우승반지를 또 가져갔다.

결국 신생팀 SK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 우승팀에서 선수 2명을 현금트레이드로 영입이 가능하다는 지원책 덕분에, 조웅천과 같이 현금 15억원에 SK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노익장을 과시하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고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다시 현대로 옮겼다가 2005 시즌 후 홍현우, 이강철 등과 함께 KIA에서 방출당해 은퇴했다. 특히 SK 시절이던 2002년 8월 1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 1사 2루서 등판, 1⅔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프로통산 150세이브(역대 세 번째)고지를 밟았다.

박경완과의 인연이 굉장히 깊은 선수. 1991년 쌍방울 입단동기로 시작해서 1998년 현대의 양민학살 때 함께 현대로 이적했고, 박경완이 FA 자격으로 SK로 이적했을 때 박경완의 보상선수로 친정팀 현대에 지명되었다.

여담이지만 한 이닝 5개의 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2003년 어린이날 수원 KIA전에서 10회 노아웃 3루 위기에 등판해 삼진 2개로 2아웃을 만들었지만, 포수 김동수가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2명의 주자를 출루시켰고, 2아웃 만루 역전 위기에서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

3. 지도자 시절

3.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은퇴 후 200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투수코치를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넥센 팬들에게도 KIA 팬들에게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며[2], KIA로 이적할 당시 넥센 팬들이 많이 아쉬워했을 정도. LG 감독을 맡은 김기태도 노리고 있다 카더라 그래서 데려갔지만 정작 본인이 도주했다.

3.2. KIA 타이거즈 1기

2012 시즌까지 KIA의 1군 투수코치를 담당했던 이강철 코치가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면서 2013 시즌부터 KIA의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KIA의 방어율이 8위가 되면서 선동열과 같이 까였고, 결국 8월 17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김용달, 정회열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 5일에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이순철, 박철우, 김평호 코치와 더불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3.3. LG 트윈스

2013년 11월 12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에 대해 LG 트윈스 갤러리 등에서는 김기태 감독과의 친분으로 데리고 온 것인데 걱정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일단은 건강 문제로 1군에서 빠진 차명석 코치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영입인 모양. 그러나 2군 투수코치로 부임이 되었고 팬들은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1군 투수코치인 강상수의 무능을 한탄하였다.

그러나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의 일환으로[3][4] LG 트윈스에서 해임되었다, 여담으로 이 무렵 LG에서는 2군 투수코치로 윤학길을 영입했다.

3.4. KIA 타이거즈로의 복귀

2014년 11월 30일 입단동기인 김기태 감독의 취임식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복귀를 알려왔고 전력분석원으로 영입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1 쌍방울 레이더스 49
(2위)
142⅓ 9 7 27
(1위)
0 1.64
(2위)
70 61 133
(5위)
1992 30 54 7 7 8 0 3.17 48 26 65
1993 41
(5위)
88⅔ 1 4 23
(3위)
0 1.42 51 37 96
1994 44
(4위)
98⅓ 2 8 24
(4위)
0 2.39 69 43 93
1995 8 10⅔ 0 1 3 0 5.06 11 7 9
1996 48 59⅔ 5 5 20
(3위)
0 1.81 41 28 74
1997 52 77⅔ 4 6 28
(2위)
0 2.90 64 27 7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8 현대 유니콘스 40 56 5 4 2 0 4.18 65 17 40
1999 17 56 6 2 2 0 5.95 62 23 52
2000 9 4⅓ 0 0 0 3 2.08 2 2 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SK 와이번스 46 106⅓ 8 9 9 3 3.55 90 38 75
2002 46 78⅔ 6 8 6 3 4.23 81 37 6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현대 유니콘스 36 40 0 3 0 4 5.63 39 36 41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4 KIA 타이거즈 38 21 1 0 1 5 2.14 11 5 18
2005 4 1 0 0 0 0 36.00 5 3 0
통 산 508 894⅓ 54 64 153
(7위)
18 3.07 709 390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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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투수난이 심각하여, 에이스 김원형과 2선발 김기덕도 가끔 구원진에 추가되었다.
  • [2] 본인과 마찬가지로 좌완인 심동섭에게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끊임없는 잔소리 토렌트 주소도 있다
  • [3] 김기태 전 감독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 일어난 코치진 정리였다.
  • [4] 이 시기에 해임된 이홍범, 계형철 코치는 김기태 감독과는 쌍방울 시절에 인연이 있었고, 김선진, 박준태, 김인호 코치는 모두 김기태 감독의 광주일고 선배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갈려나간 2군에서 살아남은 김기태의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코치는 신경식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