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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

last modified: 2015-10-16 22:36:04 Contributors

租界

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조차지와의 차이점
2.2. 외국인 거류지와의 차이점
2.3. 조선의 조계와의 차이점
3. 종류
3.1. 전관조계
3.2. 공동조계
4. 운영
5. 역사
6. 평가
7. 여담
8.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Concession. 청나라중화민국에 존재했던 외국인 거류지를 말한다. 아편전쟁이후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중국 각지의 개항장에 설치되었고, 태평양 전쟁의 종전으로 사라진다.

2. 특징

2.1. 조차지와의 차이점

Concession은 원래 조차지(租借地)를 뜻하는 것으로, 조계도 조차지의 하위개념으로 상당부분은 조차지와 동일하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차이점이 있다.

  • 조계는 중국 내에만 존재한다.
  • 조계는 보통 도시의 일부분같이 좁은 구역에만 설정한다.
  • 조계는 조약 체결시 영구 임대로 설정하며, 해당 토지의 지주와 중국 정부에게 토지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다.
  • 조계는 치외법권을 인정받지만 그 대상은 외국인에 한하며, 중국인은 중국 정부가 법적으로 관리한다.
  • 조계는 군사용 목적이나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계의 치외법권은 조계 내의 중국인이나 기타 거주자에게도 제멋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조계 안에서 발생한 모든 법적 문제는 해당 조계를 다스리는 국가의 법률대로 처리했다. 그리고 공공연히 군사용 목적이나 군사기지로 조계를 활용하기도 했다.

2.2. 외국인 거류지와의 차이점

외국인이 집단으로 거주한다는 점에서 외국인 거류지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 외국인 거류지는 세계 각국에 존재하지만, 조계는 중국 내에만 존재한다.
  • 외국인 거류지는 대부분 현지 국가의 법적 통치를 받지만, 조계는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
  • 외국인 거류지는 현지 국가가 임의로 이동, 변경, 제거가 가능하지만, 조계는 불가능하다.

물론 외국인 거류지도 현지 국가가 힘이 약하고, 거류지에 있는 외국인이 강대국 소속이 많다면 조계 비슷하게 변하는 사례가 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에도 시대의 외국인 거주지는 말 그대로 외국인의 거주와 이동을 제한하는 목적으로 인공섬 같은 곳에 설치되었으며, 거류지의 외국인에 대해서도 에도 막부가 통제할 수 있었지만, 쿠로후네 사건 이후 일본이 열강들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외국인 거류지는 제멋대로 치외법권을 남용하면서 한동안 사실상 조계처럼 운영되었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일본이 강대국으로 성장해서 열강들과 다시 평등조약을 맺은 후 부터다.

2.3. 조선의 조계와의 차이점

조선의 경우에도 강화도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면서 열강들이 개항장에 조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조계와는 다른 특성이 많다.

  • 명칭이 통일되지 않고 조계, 조차지, 외국인 거류지등을 혼용했다.
  • 일본의 조계가 매우 많았으며, 나머지 열강의 조계는 숫자, 면적, 위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 일본이 조선의 내정을 많이 간섭한 관계로 조계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도 일본인과 관련되었다면 일본 법률로 심판하려고 했으며, 성과도 있었다.

결국 조선의 조계는 시작부터 일본이 주도한 면이 크며, 최초의 조선 내 조계도 일본이 주도한 공동조계였다. 청일전쟁러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조선을 차지할 권리를 열강들이 신속하게 인정했으므로 일본외의 타국 조계는 거의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였다. 그리고 을사조약 이후에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상실하면서 조계는 더욱 축소되었으며, 경술국치 이후인 1914년에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므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서 모든 조계를 폐지한다. 이후에도 차이나 타운같은 외국인 거류지는 남았으나 철저하게 일본 제국의 법률 하에 있는 주거지에 불과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조선의 조계는 중국의 조계처럼 특수하게 인식하지 않고, 그냥 일본군 교두보나 일본 점령지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종류

3.1. 전관조계

専管租界. 1개 국가가 전적으로 관리하는 조계를 말한다.

일반적인 조계는 전관조계다. 원래는 전관조계만 있었으므로 그냥 조계라고 불렸으나, 공동조계의 탄생으로 인해 구분을 할 필요가 있어서 그 후에는 전관조계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3.2. 공동조계

共同租界.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조계를 말한다.

공동조계가 탄생한 이유는 조계 자체가 너무 작고 거류민 숫자도 적어서 각 조계마다 공무원을 대거 파견해서 관리하기에는 비효율이 많은데다가, 범죄가 발생했는데 범인이 다른 조계로 튀어버릴 경우에는 체포는 커녕 추적하는 것 자체도 다른 조계를 관리하는 국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등 비능률적이라는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통 공동조계를 만들 때에는 각국의 조계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처음부터 공동조계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공동조계의 관리는 각 국가가 협의해서 공동조계 관리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서 운영, 유지한다.

4. 운영

조계는 크기에 따라서 운영방식이 나누어진다.

  • 작은 조계 - 영사가 행정을 담당한다.
  • 큰 조계 - 자치행정조직을 결성한 후, 본국의 허가를 얻어서 조계 내의 주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행정을 실시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 공동조계의 경우는 위쪽을 보면 된다.

조계는 보통 도시의 일부분, 그 중에서도 중심가나 교통의 요지등에 설치되므로 몇 군데에 검문소는 있지만 조계의 경계선 대부분이 일반 도로라서 맘만 먹으면 조계 안과 밖을 통행할 수 있다. 그리고 조계는 보통 다른 국가의 조계와 인접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 한 조계에서 다른 조계로 넘어가기도 수월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다가 조계를 관리하는 치안 요원에게 걸리면 피곤한 일을 겪게 되지만, 이런 일은 흉악범죄를 저질러서 수배중이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 치안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5. 역사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전한 후 열강들은 중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조약으로 열린 개항장에 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계는 앞서 설명했듯이 치외법권을 누리면서 중국 내부에서 각 열강들의 거점으로 작동했으며, 홍콩이나 마카오같은 조차지와 함께 중국 역사의 치욕중 하나로 남았다.

이렇게 성장하던 조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일단 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등이 동맹국으로서 연합국과 대립하자, 중국에 흑심이 가득한 일본이 연합국의 기치아래 중국 내의 동맹국 조차지와 조계를 공격해서 점령했다. 이 때문에 동맹국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조차지와 조계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후에는 아예 소멸하거나 크게 축소되거나, 열강이 운영하는 공동조계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쇠퇴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에는 중국인의 민족의식이 높아지고, 열강중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와 중화민국간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면서 조계는 일종의 정체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되다가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의 관계가 파탄하자, 일본 조계중 일본군이 점령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의 조계는 주변 지역까지 일본에게 떨어지면서 어차피 모두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므로 존재 가치를 상실했으며, 그렇지 않은 나머지 지역의 일본 조계는 중국군이 점령하거나 적어도 치외법권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격리시켰으므로 역시 조계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열강들의 조계는 살아남았으나, 이것도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이 추축국추축군으로 확실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연합국과 전쟁에 돌입함으로서 상당수가 붕괴된다. 일단 일본군 점령지 내부의 연합국 소속의 조계는 일본군이 강제로 점령했으며, 중립국 소속의 조계라도 무늬만 조계일 뿐, 일본군이 제멋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곳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한동안 일본군의 점령지가 계속 늘어나면서 조계의 파괴는 일본군의 손에서 가속화했다.

이리하여 태평양 전쟁 기간중에 조계는 사실상 빈사상태에 빠졌으며, 형식상으로만 남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중화민국이 연합국에 참여한데다가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남으로서 사실상 소멸한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1947년 이탈리아가 연합국들과 맺은 강화조약으로 천진의 이탈리아 조계를 중화민국에 반환함[1]을 마지막으로, 조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홍콩과 마카오는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조차지였으며, 20세기 막판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합병됨으로서 그 수명을 다한다.

6. 평가

중국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에게 당한 치욕 그 자체였다. 불평등조약으로 인해 주요 도시의 노른자위 같은 곳에 열강들이 사실상 제멋대로 조계란 것을 설치한 후 치외법권을 누리니 형식적이건 실제적이건간에 중국 입장에서는 손톱 아래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다. 여기에 더해서 대부분의 조계가 적어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인 침탈목적을 가졌으며, 일본 조계같은 경우에는 스파이 활동 및 중국 침략의 교두보로서의 역활까지 추가했으므로 말 그대로 헬게이트다.

7. 여담

앞서 언급했듯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조계로 튀어버리면 체포는 커녕 추적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점을 악용해서 조직폭력배가 창궐했으며, 조계의 치안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이점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망명 정부가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 조계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하는 일본 제국과 일본군 입장에서는 코 앞에 있는데 직접 손을 댈 수 없는 아스트랄한 상황에 직면했으며, 이 점을 이용해서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8. 매체에서의 등장

조계가 매체에서 등장할 때는 보통 상하이에 설치된 상하이 조계가 엄청난 빈도로 등장한다. 영화로는 태양의 제국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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