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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토레

last modified: 2015-04-13 18:27:43 Contributors

이름 조셉 폴 토레 (Joseph Paul Torre)
생년월일 1940년 7월 18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 브루클린 진성 뉴요커
포지션 포수, 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LN)[1]
소속팀 밀워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60~196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9~1974)
뉴욕 메츠 (1975~1977)
지도자 뉴욕 메츠 감독 (1977~198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1982~198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1990~1995)
뉴욕 양키스 감독 (1996~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2008~2010)

197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2013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No.6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뉴욕 메츠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시절
3.2.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
3.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시절
4. 은퇴 후


1. 소개

미국의 前 야구선수, 야구감독.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뉴욕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토레가 지휘하는 동안 양키스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적이 없다. 총 10차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 6번의 리그 챔피언과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통산 .605의 승률과 2,326승을 기록한 명장이다.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을 획득했다.

2. 선수 시절


메이저리그가 국내에 알려질 때는 이미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알려져서 선수 시절 명선수라는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조 토레는 선수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다. 1960년에 데뷔, 통산 3할에 가까운 타율 (.297)과 2,342개의 안타, 통산 9회의 올스타, 1971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고 통산 타율-출루율-장타율 .297-.365-.452를 기록한 강타자이다.

특히 포수로서는 자니 벤치라는 강자에 가려서 2인자 이미지였지만 공격형 포수로서 손꼽히는 선수이다. 1971년 30세 시즌부터는 3루수로 전향해 MVP를 따는 등 강타자로 커리어를 연장했고, 1977년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에서 은퇴한다. 선수 시절 4연타석 병살타라는 흠좀무(...)한 경기를 한 적이 있다.[2]

3. 지도자 시절

3.1. 뉴욕 메츠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시절


1977년부터 뉴욕 메츠의 수 겸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토레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메츠를 떠나 친정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러니까 브레이브스 레전드인 필 니크로데일 머피가 브레이브스 시절 유일하게 가을야구를 했던 1982년에 플레이오프에 한 번 밖에 나가질 못 했으니 안습하긴 마찬가지. 그래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일종의 징크스를 따라가나 싶었는데...

3.2.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


제국의 지휘관

1996년 뉴욕 양키스와 감독 계약을 하더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뉴욕 양키스가 제국을 건설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특히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앤디 페팃, 버니 윌리엄스,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제너레이션을 데이빗 콘, 데이빗 웰스, 폴 오닐 등의 베테랑들과 잘 규합하여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끄는 데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 통산 우승 커리어는 6번 진출 중 4번 우승인데 모두 양키 시절이다.

2007년에는 선수로서 2천승, 감독으로서도 2천승 (총 4천승 이상)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역시 양키빨

양키스빨이라고 이야기를 듣지만, 조 토레 이전 양키스는 제대로 혼란기였다. 1981년 디비젼 1위를 한 이후로 양키스는 10년이상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이 없고, 90년대 초반은 오히려 암흑기였다. 7개팀이 있던 당시 디비젼 기준으로 82년부터 92년까지 5-3-3-2-2-4-5-5-7-5-4 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러니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서 임기를 채운 감독이 없다. 이 기간 동안 감독은 밥 레몬 - 진 미카엘 - 클라이드 킹(이상 1982) - 빌리 마틴(1983) - 요기 베라(1984-85) - 빌리 마틴(1985) - 피넬라(1986-87) - 빌리 마틴(1988) - 루 피넬라(1988) - 달라스 그린(1989) - 벅키 덴트(1989-1990) - 스텀프 메릴(1990-91)로 바뀌었다[3].

이런 감독 잔혹사를 최초로 끊고 4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면서[4] 양키스를 플레이오프로 보낸 인물이 쇼월터이지만 쇼월터도 1995년[5] 15년만에 최초로 양키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6] 다음에 바로 잘렸다.

그리고 양키스 감독에 오른 인물이 조 토레이다. 15년만에 플레이오프를 진출시킨 감독을 잘라버린 보스 밑에서 감독이 되었으니,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팀 장악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시기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시기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언급이 있었는데 주요 관심사는 조 토레가 얼마나 오래 감독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였다. 이 상황에서 조 토레는 부임 첫해 1996년 월드 시리즈를 우승시켰고, 이듬해 디비젼 시리즈 탈락을 거쳐서, 1998~2000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한다. 4연패도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좀만 더 버텨줬다면 불가능이 아니었다. 양키스에서, 특히 조지 스테인브레너 아래서 12년 연속 감독 자리 유지하려면 보통 인물로는 무리란 이야기다.

3.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시절


하지만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문제로 양키스와 싸우다 영 좋지 않게 헤어졌고[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감독으로 부임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다저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 결과 2년 연속으로 다저스를 지구 챔피언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시금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한다. 2010년 시즌을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인 돈 매팅리에게 감독직을 물려준 다음 사임한다.

다만 감독생활 내내 불펜 혹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했던 감독이다. 대표적인 예가 불펜투수 주제에 한 시즌에 100이닝을 소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스캇 프락터로, 프락터는 토레 감독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2년 크보두산 베어스와 계약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프락터가 양아들 소리를 들었을까….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운영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말~2012년 초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수전에 참가한다고 하여 관심을 모았지만, 찌질한 구단주 맥코트와 싸우는 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스탠 카스텐-매직 존슨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

2012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선수를 무사히 구단에 돌려보내는 것이 최대의 일"이라는 발언을 하고 영 좋지 않은 투수교체와 선수기용 등으로 많이 까였으며 미국은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13년 12월 9일 바비 콕스, 토니 라 루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만장일치로 헌액된 세 감독의 승수가 총 7558승(...)으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팀의 통산 승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고 투표에 나올 선수들의 면면도 역대급[8]이라 2014년 치러질 헌액식은 사상 전무후무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게 중론이다.

뉴욕 양키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6번을 달아서 한자리수 등번호를 받은 인물로는 2번을 단 데릭 지터와 함께 생존해 있는 사람 (요기 베라는 그렇게 잊혀졌다...).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면서 2014년 8월 23일자로 그의 등번호 6번이 양키스에서는 이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 역시 영구결번이 되면 앞으로 뉴욕 양키스에서 한 자리 등번호는 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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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65년 시즌 후 밀워키 브레이브스는 애틀랜타로 연고를 이전했다.
  • [2] 참고로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이기도 하다. 조 토레 외 한 경기 병살타 4개를 친 선수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스 고슬린과 빅터 마르티네즈가 있다.
  • [3] 빌리 마틴의 경우는 이 이전 5년에도 2번이나 감독에 임명되었다가 잘렸기 때문에 이 시기와 합치면 5번이나 임명과 해임을 반복했다.
  • [4] 이건 조지 스테인브레너가 90년부터 93년까지 3년간 영구제명으로 추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이에 벅 쇼월터가 팀 성적을 끌어올려서 93년부터 2-1-1의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버틴 것.
  • [5] 1994년도 디비젼 1위였지만 파업으로 단축시즌이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 [6] 결과는 디비젼 시리즈 탈락
  • [7]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500만불의 연봉에 포스트시즌 단계마다 100만불, 월드시리즈 진출시 1년 계약 연장과 함께 800만불을 지불하는 계약을 제시했다. 구단에 장기간 헌신한 감독에게 모욕적인 처사였다.
  • [8] 약물 혐의가 확실한 선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등의 굇수들이 쏟아져나와 결국 2014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밖의 명전 헌액 후보자로 크레익 비지오제프 배그웰도 빨리 헌액되기는 힘들어보이고 커트 실링과 새로 합류하는 마이크 무시나도 장수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