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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모건

last modified: 2015-01-18 19:24:55 Contributors



이름 조 모건 (Joe Leonard Morgan)
생년월일 1943년 9월 19일
국적 미국
출신지 텍사스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6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1](1963~1971)
신시내티 레즈(1972~1979)
휴스턴 애스트로스(198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81~1982)
필라델피아 필리스(198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84)

1975년~197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티브 가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조 모건
(신시내티 레즈)
지 포스터
(신시내티 레즈)

197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 모건
(신시내티 레즈)
바비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시내티 레즈 영구결번
No.8

Contents

1. 소개
2. 휴스턴 애스트로스 : 최고의 선두타자
3. 신시내티 레즈 : 빅 레드 머신의 중심타자
4. 저니맨
5. 이후의 행보
6. 조 모건과 빌 제임스
7. 기타

1. 소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창단될 무렵, 애스트로스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1970년대 최강의 타선이자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선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신시내티 레즈빅 레드 머신의 중심 타자로 활약한 명 2루수로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수는 누구인가?'라는 논쟁에 꼭 들어가는 선수이다.

키는 168cm밖에 안되는 선수였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로 뽑히는 야구 센스와 재능으로 팀에 엄청난 도움을 가져다 주었고 현재는 야구 해설로 활약하며 최고의 야구 해설자로 불린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71, 출루율 0.392, 장타율 0.427, 2517안타, 268홈런, 1133타점

2. 휴스턴 애스트로스 : 최고의 선두타자

아직 인종차별이 일상적이었던 시기, 모건은 흑인이었고 거기다가 키까지 작았다. 뛰어난 야구 실력과 센스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건은 1962년 11월 1일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간신히 계약을 맺고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인종차별을 피부로 직접 겪었지만 모건은 이를 실력으로 극복했고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1965년부터 애스트로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다.[2] 모건은 드넓은 외야를 지닌 애스트로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장타보다는 단타와 2루타 위주, 그리고 넓은 외야를 활용한 스프레이히팅을 발전시켰고 출루시에는 빠른 발을 활용하여 많은 도루를 했다. [3]

그러나 1971년 시즌이 끝난 후, 모건은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레즈의 거포 리 메이의 영입때문이었지만 사실은 해리 워커 감독과 모건을 비롯한 몇몇 유색인종 선수들의 갈등 때문이었다.[4]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애스트로스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중 하나로 뽑힌다.

3. 신시내티 레즈 : 빅 레드 머신의 중심타자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모건의 능력을 알아보고 모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또한, 드넓은 애스트로돔을 벗어난 모건은 그간의 타격습관을 버리고 당겨치는 스윙과 어퍼스윙을 익혀 장타력도 끌어올린다.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에는 자니 벤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 이브 콘셉시온, 그리고 모건과 함께 온 자르 헤로니모등이 타선을 구성했는데 이 타선은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선으로 불리게 된다.[5]

모건은 빅 레드 머신에서 3번을 치며 활약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모건이 팀에 가장 큰 활약을 했던 분야는 자신의 천부적인 센스를 활용해 상대 투수가 무엇을 던지는지, 언제 상대 팀이 투수를 교체하는지, 언제 상대 팀이 도루를 시도하는지등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 팀이 적시에 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모건은 5번의 골드 글러브와 2번의 리그 MVP수상을 하며 전성기를 보낸다.

4. 저니맨

1976년의 월드 시리즈 우승과 1977년의 골드 글러브 수상이후, 모건의 기량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고 1979년을 끝으로 신시내티 레즈와도 헤어진다.

이 후, 1984년에 은퇴하기까지 모건은 5년간 4개의 팀에서 뛰게 되는데, 1980년에는 친정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1년과 198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다.[6]

1983년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뛰었는데, 이 때 필리스에는 모건과 함께 레즈에서 활약했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등이 있어서 사람들은 필리스의 타선을 빅 그레이 머신이라고 불렀다.

결국, 198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모건은 22년간의 메이저리거 생활을 끝마친다.

5. 이후의 행보

이 후, 모건은 메이저리그 해설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데,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천부적인 직관력을 통해 최고의 인기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독점 전국중계인 ESPN의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에서 20년간(1990~2010) 캐스터인 존 밀러와 콤비를 이루면서 방송을 진행한 것이 유명하다.

또한, 은퇴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 해에 81.8%의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 조 모건과 빌 제임스

천부적인 야구 재능을 지닌 모건이지만, 유독 세이버메트릭스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시초이자 거두인 빌 제임스와의 관계는 최악 중의 최악으로 모건과 제임스는 서로가 서로를 공개적으로 디스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빌 제임스가 역대 최고의 2루수로 조 모건을 뽑았다는 것이다. 츤데레?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건가???

영화 머니볼의 마지막 부분에 시즌 막판 20연승 행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또 한번 실패를 겪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빌리 빈을 디스한 논평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조 모건이다.

7. 기타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한 선수로 명성이 드높은 조 모건이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이버메트리션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의 모습으로 뽑힌다.

3할 타율을 기록한 적은 단 2번에 그쳤지만 엄청난 수의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를 하였고 또한, 레즈시절에는 장타력까지 보유하는 이상적인 OPS형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도 야구팬들사이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2루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면 로저스 혼스비, 라인 샌버그, 로베르토 알로마 등과 함께 그 후보로 이름이 올라가는데에서 모건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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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때의 애스트로스는 휴스턴 Colt.45's라는 팀명으로 메이저리그에 참가했다.
  • [2] 이 당시 애스트로스의 홈구장 애스트로돔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릴만큼의 찬사를 받았지만 드넓은 외야와 파울지역으로 인해 타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구장이었다. MLB의 대표적인 친투수적 구장인 다저스타디움과 다름없을 정도.
  • [3] 모건의 도루는 좌투수와 우투수상대로 성공률이 별 차이 없었으며 오히려 좌투수를 상대로 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 [4] 이 때 모건과 함께 트레이드된 선수중에는 빅 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자르 헤로니모도 있었다.
  • [5] 나중에는 630개의 홈런을 친 타자아버지가 가세한다.
  • [6] 1982년에 선수로서 마지막 기량을 불태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를 차지한다.
  • [7] 일반적인 총평은 혼스비 원탑에 알로마-샌버그-모건이 그 뒤를 잇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