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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배그웰

last modified: 2015-01-07 05:16:04 Contributors


이름 Jeffrey Robert Bagwell
생년월일 1968년 5월 27일
국적 미국
출신지 매사추세츠보스턴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드래프트 4라운드 보스턴 레드삭스 지명
소속팀 휴스턴 애스트로스(1991~2005)

199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데이빗 저스티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에릭 캐로스
(LA 다저스)

199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배리 라킨
(신시내티 레즈)

휴스턴 애스트로스 영구결번
No.5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약물 복용 논란

1. 소개

휴스턴 애스트로스프랜차이즈 스타. 휴스턴의 어지간한 공격 기록은 그와 그의 절친이자 역시 휴스턴의 레전드인 크레익 비지오가 나눠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휴스턴 역사에 길이 남을 타자.

2. 선수 시절

원 포지션은 3루수였다. 198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었고, 선수 자신도 꿈이 보스턴의 주전 3루수로 뛰는 것이었다. 그의 출신지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고향이 보스턴이고, 어린 시절 팬웨이파크에서 보스턴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면서 꿈을 키운 선수였기 때문. 하지만 그의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1990년 PO 진출이 유력했던 보스턴은 휴스턴에서 불펜 투수 래리 앤더슨을 영입하기 위해 배그웰을 내준 것. 정작 앤더슨은 딱 한 달 뛰고 보스턴을 떠났고, 보스턴은 그렇게 팀의 전설이 될 수 있던 타자를 내줬다.

물론 보스턴 입장에서도 3루 자리에는 웨이드 보그스라는 명예의 전당 3루수가 버티고 있었고, 1루 자리도 모 본이라는 뚱땡이 유망주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모 본을 지명타자로 보내면 될 문제였기 때문에 이 선택은 보스턴 역대 최악의 선택 중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슬러거들의 포지션인 1루수치고는 체구가 다소 작았다는 점도 보스턴이 이런 선택을 하는데 한 몫했다.

어쨌든 휴스턴에 와서 1루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팀에서는 주전 1루수를 트레이드시키면서까지 자리를 내줬고, 그 기대에 배그웰은 완벽하게 부응했다. 1991년 신인왕을 시작으로 1994년에는 파업으로 인해 겨우 110경기만 치렀음에도 0.368 39홈런 116타점을 기록한 것. 이 때 성적으로 인해 1994년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그 후로도 쭉 팀의 주전 1루수이자 간판 타자로서 맹활약했다.[1]

거구들이 자리잡는 1루수로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이나 30-30을 두 차례나 기록했을 정도로 발이 빠른 편이었고[2], 수비력도 준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기 시절 그의 커리어는 타자들의 무덤이었던 애스트로돔에서 거둔 성적이었던 것. 이 때, 배그웰, 비지오, 데릭 벨이 활약한 이른바 킬러 B(1기)는 휴스턴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고, 그 결과물로 휴스턴은 다소 타자들에게 유리한 새 구장 미닛메이드 파크를 개장하기에 이른다. 그 뒤로도 절친한 친구인 비지오와 랜스 버크만, 카를로스 벨트란등과 함께 휴스턴의 강타선을 이끌면서(킬러B 2기) 휴스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iframes. 위 사진처럼, 전성기 시절엔 방망이 흔들기로 유명한 게리 셰필드만큼이나 특이한 타격자세로 유명했다. 위 기마자세 타격폼은 송지만이 장타를 뻥뻥 날려대던 시절에 쓰기도 했었다.

배그웰 특유의 기마자세 타격폼은 낮은 스탠스에서 순간적인 힘을 극대화시켜 공을 임팩트 시키는 메커니즘으로, 배그웰의 다소 작은 체구(183cm 88kg)에도 불구하고 많은 홈런을 터뜨리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특이하면서도 다이나믹한 타격폼은 그다지 좋지 못한 쪽로 야기됐다. 리그의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로 이 특이한 타격폼에 적응하느라 다른 거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몸이 풀리는 경향을 보였다. 통산 449홈런을 기록했지만 2000년의 47홈런이 커리어하이일 정도로 리그 전체를 쥐고 흔들 임팩트는 부족했다는 것이 중평. 그리고 더더욱 큰 문제는 나이가 먹으면서 이 타격폼이 몸에 무리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보통 거포들이 무릎 부상을 달고사는데 비해 배그웰은 특이하게도 어깨 부상이 잦았다. 결국 이 어깨 부상은 상대적으로 이른 은퇴를 가져왔다.

특히 은퇴 과정이 아쉬웠는데, 2005년 팀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에 몇 차례 대타로 나선 후, 팀은 부상자명단에 그를 일방적으로 넣었다. 이는 배그웰의 고액 연봉에 대한 보험 처리를 받아 한 약쟁이의 연봉을 대려는 목적이었다고. 결국 이런 처사에 화가 난 배그웰은 마침 부상도 있고 해서 결국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식도 없이 그냥 조용히 은퇴한 것이었는데, 팀의 홈런 및 타점 부분 1위를 기록한 선수에 대한 예우치고는 너무 어이없는 처사였다. 이런 처사가 안타까웠던 크레익 비지오는 자신의 3000안타 달성 순간 축하해주러 온 배그웰의 손을 들어줘서 마지막 환호를 받게 해 줬다. 어쨌든 통산 449홈런 1529타점으로 은퇴했다. 뒤에 휴스턴 쪽에서도 등번호 5번을 영구결번시켰다.

3. 지도자 시절

2010년엔 휴스턴의 타격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4. 약물 복용 논란

한편으로 약물 의혹이 있다. 다만, 약을 빨고 신이 된 천재처럼 위증 논란까지 불거진 케이스도 아니고, 라파엘 팔메이로처럼 아니라고 의회 증언한 후, 바로 약물 검사에서 걸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로저 클레멘스의 약물 공급책이 그에게도 약물을 공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3] 일단 도핑 테스트에서 걸린 적이 없고, 의회 보고서 미첼 리포트에도 이름이 없다는 점에서 의심은 가지만 약쟁이로 치부하기도 그런 상황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런데 이 약물 의혹 때문에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은근 손해를 봤다. 의혹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들어가서 사실로 밝혀지면 개쪽이 될까봐 안 뽑았다는 기자도 있을 정도니.

2년차인 2012년 투표에서 56%, 2013년 59.6%를 찍었지만, 그후 2014년에 54.3%, 2015년에는 55.7%를 기록하며 60% 벽을 넘기지 못한 채 5년째 제자리 걸음 상태다. 이는 (당시 규정상 합법이었지만) 약물 복용을 시인한 마이크 피아자보다도 낮은 수치. 아무리 2010년대 초반 후보군이 괴물들 천지였다고는 해도 예상 외로 부진한 배그웰의 득표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언젠가는 들어가기는 할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간에 입성하기는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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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담으로 1994 AL MVP 프랭크 토마스와 생일이 같다.
  • [2] 준족 성향이라기 보다는 주루 플레이의 센스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 [3] 이 외에도 약물 복용을 시인한 후 사망한 故켄 캐미니티(Ken Caminiti)와 휴스턴에서 같이 뛰었다는 정황이 있긴 하다. 다시 말하지만 증거가 아니라 정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