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last modified: 2015-03-25 13:15:50 Contributors



젊은 시절의 맥스웰 어마어마한 미남이시다
앙대 내 오징어이 상승하고있어!

James Clerk Maxwell(1831/06/13 ~ 1879/11/05),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태생의 이론 물리학자,수학자.
전자기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였으며, 그것만으로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동급으로 숭상받을 수 있는 위대한 물리학자이다.

Contents

1. 생애
2. 전자기학의 창시자
3. 그 외의 업적


1. 생애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하였으며, 종종 비교되곤 하는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등 괴팍한 물리학자들과 달리 매우 친절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한 예화로, 맥스웰의 어머니는 암에 걸려 사망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망한 그 날 어린 맥스웰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기뻐.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 이기도 했는데,(맥스웰은 스코틀랜드 장로교출신. 즉 기독교 중에서도 신교이며, 북유럽의 대세 루터교와는 다른 계파. 어디까지나 그도 스코틀랜드인이기에.. 장로님까지 되셨다.) 한 선교단체에서 '뛰어난 물리학자인 그가 신앙을 간증한다면 굉장히 설득력 있을 거다' 하고 간증을 부탁했으나, 맥스웰은 '전 신앙은 각자의 내면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교육에도 열정적이에서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야간 학교 강사를 무보수로, 시간을 쪼개가며 꾸준히 해 주었다. 다만 그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대 다수의 사람들은 '열정적이긴 한데, 이해는 안 된다.' 고 평하였다.

시골 마을의 지주이기도 했는데, 매년 일정 기간은 마을로 돌아가 발전을 위해 힘썼다. 학교와 교회를 무료로 세우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도 평이 좋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연상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병약한 그녀 옆에서 매일 저녁 책을 읽어주는 게 일과였다. 이 사랑과 일과는 그가 죽을 때 까지 계속 된다.

위암으로 인한 죽음을 앞두고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적으로 깨닫고는 친구였던 의사에게 '그래,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라고 물어보았고 사망 당일에는 조용히 기도하며 숨을 거두었다.


기타로 그래픽카드 칩셋 제조업체중 탑인 엔비디아에서는 과학자들의 이름들 따서 아키텍쳐의 이름을 짓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엔미디아 칩셋 중 현재 미친 성능으로 호평받는 아키텍쳐의 네임명으로 사용 되었는데 아무래도 맥스웰 아저씨가 대단한 사람이니 성능과 비례해 노린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단 이 맥스웰 아저씨가 그랗다고 해서 엔비디아한테 돈을 받거나 그런적은 없고 단순히 네임만 딴거다...

2. 전자기학의 창시자

과거 기력기력은 서로 전혀 다른힘으로 분류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외르스테드가 전기자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내자, 서로 다른 두 힘이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뒤,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를 직접 설명하지 말고 전기장, 자기장과 전기력선, 자기력선으로 설명하자'라는 아이디어와 '전기와 자기는 서로 짝을 이룬다'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자기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다만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만으로는 전기와 자기를 완전하게 통합할 수 없었고, 수학을 잘 몰랐기에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정리해 낼 수는 없었다. 이 때 혜성처럼 맥스웰이 나타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더 추가함과 동시에 기존의 아이디어들과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으로 깔끔히 정리하여 발표한것이 전자기학의 출발점이다.(사실 출발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었다)

한편, 맥스웰의 4가지 방정식에 포함된 장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추상적이었다.[1]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에테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물리학에서 추상적 개념이 도입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전자기학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업적으로, 기체 분자들의 운동에 대한 공헌을 들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기체 분자들 중 특정 속도로 운동하는 분자들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낸 것인데, 그의 이름을 따서 기체 분자의 속력 분포는 맥스웰-볼츠만 분포라고 불린다.[2][3]

3. 그 외의 업적

14살 때 핀 2개와 실을 이용해 타원을 작도하는 당시에는 아주 독창적인 작도 방식에 대한 논문을 냈다. 예전에도 데카르트 등이 같은 모양의 타원을 작도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나 맥스웰의 방식이 더 간편했다.

열역학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열역학에서 그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만 해도 열역학 퍼텐셜 사이의 관계식인 '맥스웰 관계식'과 일반적인 입자의 속도 분포에 쓰이는 '멕스웰-볼츠만 분포'의 2가지가 있다. 특히 후자는 통계역학의 언어로 열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완성한 것은 볼츠만이지만. 한편, 1876년에 열역학 제 2법칙을 작살내는 가상의 악마를 가정한 사고실험인 맥스웰의 악마를 고안하기도 했다.

first_colour_photograph.jpg
[JPG image (Unknown)]

최초의 컬러사진 또한 이 분의 작품.

너무나도 아름답게 설명된 4가지 방정식미분식과 적분식으로 사용되어 공대생들의 밥줄공식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학부과정에서 전자기학은 이 분이 정립한 방정식을 이해하기위해 1년동안 배운다.[4]

뉴튼도 아인슈타인도 삽질을 많이 했으며, 아인슈타인이 현대 물리에 공헌한 바가 크지만 현대 물리 자체가 수많은 천재들의 공헌에 의해 만들어졌던 데 비해 맥스웰의 4가지 방정식은 거의 혼자서 정리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전자기가 이루는 힘의 원리는 마이클 페러데이의 실험에 의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페러데이는 거의 무학이었기 때문에 이를 발견만 했을 뿐, 수학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했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낸 것도 대단한 업적이다. 놀랍게도 고칠 점이 별로 없었다.

여담으로 이 분이 정리한 4가지 방정식에서 전자기 현상이 뉴턴의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대성 이론이 제창되는 방아쇠 역할에 기여하기도 했다.[5]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맥스웰이 오래 살았다면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상대성 원리를 먼저 발견하지 않았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의 기본 전제가 바로 맥스웰의 방정식인데다가, 맥스웰 방정식에서 상대론으로 가는 수학적 유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6]
----
  • [1] 전기장과 자기장이라는 게, 그냥 3차원 공간에 펼쳐져 있는 전기적 분위기, 자기적 분위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반면 뉴턴 역학의 개념들은 질량, 힘 등등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다수였다.
  • [2] 맥스웰이 구체적인 현상에서 유도해 내고, 볼츠만이 이론적으로 다시 유도했다.
  • [3] 그의 이론은 '기체는 매우 작은 크기의 입자들로 되어 있다'는 가설과 관련이 있는데, 그 때는 원자나 분자가 관측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 가설의 타당성에 대해 큰 논란이 벌어졌었다. 결국, 이로 인해 볼츠만이 자살하게 된다.
  • [4] 서울대 물리학전공 기준으로 2학년 2학기에 '전기와 자기'라는 전필과목을, 3학년 1학기에 '전자기파와 광학'이라는 전선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전자기학을 배우는 정식 커리큘럼이다.
  • [5] 덧붙여,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하면 전기와 자기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한 대상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 더 잘 드러나며, 4개의 방정식은 2개의 방정식으로 줄어든다. 단, 이를 위해 배워야 할 수학의 양은 2배 또는 그 이상 늘어난다.
  • [6] 간단한 예시로 대전되어 있는 도선을 정지한 좌표계에서 볼 때와 도선과 평행한 방향으로 등속 운동하는 좌표계에서 바라보는 상황이 있다. 두 번째 경우는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되어 적용되는 방정식이 달라지는데, 놀랍게도 이 두 경우에서 서로 다른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유도되는 결과는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