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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데이비스

last modified: 2015-04-05 01:17:47 Contributors

제이데이비스.jpg
[JPG image (Unknown)]

홈런을 치면 3루코치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었다.[1]

이름 제러드 제이 데이비스(Gerrod Jay Davis)
생년월일 1970년 10월 3일
출신지 미국 일리노이시카고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소속팀 뉴욕 메츠 (1989년 ~ 1995년 루키-AAA)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6년 AAA)
리오 그란데 밸리 화이트 윙스 (1998년)
한화 이글스 (1999년 ~ 2002년)
몬테레이 술탄즈 (2003년)
코르도바 까뻬떼로스 (2003년)
한화 이글스 (2004년 ~ 2006년)
세인트폴 세인츠 (2007년)
베라크루즈 레드이글스 (2007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클리프 브룸바(현대 유니콘스)
이병규(LG 트윈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이진영(SK 와이번스)
이병규(LG 트윈스)
리 서튼(현대 유니콘스)
제이 데이비스(한화 이글스)
이용규(KIA 타이거즈)
이택근(현대 유니콘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Contents

1. 개요
2. 대한민국 진출 전
3. 한화 이글스 시절
4. 기타
5. 통산 기록


1. 개요

KBO에서 통산 순위가 집계된 유일한 외국인 타자

한국프로야구에서만 7년간 뛴 외국인 타자로 타이론 우즈와 더불어 한국 프로야구 역대급 타자용병에 꼽히며 현재도 외국인 타자 이야기가 나오면 자주 언급되는 선수이다. 한화팬들 사이에서는 '남연이형'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한화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인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타격, 주루, 수비가 모두 우수한 다재다능한 선수로 주 포지션은 중견수.

커리어 상으로 봤을 때는 막상막하다. 타격은 우즈가 우위고, 수비를 감안한 능력은 데이비스가 우위.

2. 대한민국 진출 전

1989년 뉴욕 메츠에서 투수로 12라운드에 지명되어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뛸 적에는 코너 외야수였으며 파워는 거의 없고 발만 조금 빠른편인 마이너 레벨에서도 평범한 선수였다. 한국 진출 직전인 97,98년도에는 텍사스-루이지애나 리그에서 뛰면서 대활약하는데 특히 98년도에는 OPS 1.175의 괴수같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당시 그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에다가 대부분 24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뛰던 리그라서 데이비스의 성적은 잘 봐줘야 상위 싱글A 정도 폭격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데이비스는 이 성적으로 한국리그에 이력서를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마이너리그시절 스탯[2]

1999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용병 트라이아웃에서도 데이비스는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메이저 리그 올스타 출신 펠릭스 호세를 필두로 대다수가 메이저 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고 2라운드급 선수들 또한 마이너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검증된 선수들이었다. 데이비스의 경쟁력은 드래프트 참가선수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는것 정도...(20대후반~30대초반의 쌩쌩한 AAAA급 용병이 오는 현재 프로야구와는 달리 당시엔 한물간 왕년의 메이저리거 또는 마이너리그 죽돌이들이 많았기에 평균 연령이 높았었다.)

그런데 대다수 팀들이 외면하던 데이비스를 유심히 지켜보던 명장(?!?!?)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삼성 라이온즈서정환 감독이었다...
이승엽김기태 두 좌타 거포를 보좌할 백인뚱땡이 우타자 찰스 스미스를 1라운드에 지명한 서정환 감독은(찰스 스미스는 사전접촉 의혹도 있었다.) 2라운드로 제이 데이비스를 지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스보다 더 빨리 뛰고 내야수비도 볼 수 있었던 빌리 홀 이란 선수가 갑자기 맘에 들었던지 드래프트 전날밤 결정을 바꾸었고 결국 데이비스는 거의 최하위 순번이었던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한화 이글스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중반까지 한화를 먹여살리는 빅 초이스가 된다. 당시 이희수 한화 이글스 감독은 용병 타자로 댄 로마이어를 점찍은 후, 나머지 한 명으로 그 때까지 '껄렁껄렁하다며' 다른 구단이 주목하지 않았던 데이비스를 지명한다. 독한 선수가 필요했다는 판단이었다고...# .. 당시 서정환 감독은 내야에 김한수, 정경배, 김태균, 이승엽까지 있었으면서 왜 내야 용병을 뽑았을까? 스미스나 김기태가 외야를 봐야 하는 사정은 고려하지 않았을까? 미스테리한 희대의 뻘짓임이 분명하다...

3. 한화 이글스 시절

입단당시에는 별 기대를 가지지 않았던 데이비스였지만 시즌초반부터 차원이 다른 기량을 보여주며 KBO를 평정했다.

1999년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2003년을 제외한 2006년까지 7년동안 한화에서 뛰어왔으며 미칠듯이 잘 했던 시즌은 없지만 [3] 꾸준히 제 몫을 해줌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은 용병 타자였다. 용병 중 가장 장수타자이며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선수 중 하나였다. 979안타 591타점으로 역대 외국용병 안타와 타점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리그 통산 타율 .313으로 장효조, 양준혁에 이어 통산 타율 역대 3위에 올라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장타력있는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중견수로 뛰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높은 선수였으며 30-30 클럽에 올린 호타준족이기도 했다. 활동 원년인 1999년에는 이승엽의 홈런성 타구를 뜬공으로 처리했는데 하필 그 때가 이승엽이 54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시점이라 대구구장의 외야팬들로부터 쓰레기와 물병투척도 당했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처럼 고간테러를 안 한게 어디야 우리나라에 홍현우, 박재홍과 더불어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의 진기록을 기록한 몇 안되는 선수.[4]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로 처음에는 꽤나 말썽을 부리기도 했다.

2002년에 계약을 끝내고 멕시코리그에서 1년을 보낸 뒤[5] 2004년 다시 한화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때부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예전같은 말썽을 부리지 않고[6] 성실한 선수로 재탄생하며 한화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다만 노쇠화로 인해 예전보다 성적은 살짝 저조해졌으며 2004년 이후론 두자릿수 도루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래도 매년 20개 이상의 홈런과 3할을 넘나드는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7]. 2005년에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했다.

을 깎아치는 듯한 독특한 스윙궤적, 홈런을 친 이후에 하는 거수경례 세레모니가 데이비스를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6년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았으며 그 뒤 멕시칸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2008년 초에 은퇴했다.

그러나 데이비스라는 철밥통 걸출한 외국인 선수를 보유했다는데 안심한 한화 구단은 중견수를 볼 수 있는 외야수 수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리빌딩을 소홀히 한 결과, 그 후폭풍이 계속 이어져 노장 강동우라든가, KIA 시절 코너 외야만 보던 김경언이라든가 추승우 같은 선수들이 중견수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찌보면 지금 한화가 폭삭 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 물론 선수의 잘못은 아닌 리빌딩에 소홀했던 구단의 책임이다. 결국 중견수는 2014년 FA 이용규를 영입하기전까지 한화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게 된다.[8]

4. 기타

오랜 세월동안 한국생활을 해서 그런지 한국어에 능숙했고 매운 음식에 거부감이 없었으며 특히 신라면을 매우 좋아해 '신남연' 이라는 별명도 생겨났을 정도다. 보통은 '데횽' 또는 '남연이횽' 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미국에 있을 때 미국에서 파는 신라면은 맛이 없다면서 한국에서 만든 신라면을 공수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신남연으로 쳐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 파는 신라면은 현지화 때문에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여담으로 2000년 시즌 후 동료 용병타자 댄 로마이어 가 LG로 이적하자 코칭스태프 중 한 명이 '너도 나갈래?'하고 묻자 걔는 걔고 나는 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인영 한화 스카우트 대리의 글에 따르면 제이 데이비스의 근황은 그리 밝지는 않은 듯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고교 진학을 앞둔 아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9]

5. 통산 기록

(한국에서의 성적만 기입)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한화 이글스 130 525 .328 172
(3위)
31 3 30 106 93 35
(5위)
46 .570 .370
2000 107 419 .334
(5위)
140 29 1 22 80 72 21 27 .566 .367
2001 130 496 .335
(5위)
166
(2위)
21 0 30
(4위)
96 95
(4위)
15 62 .559 .404
2002 115 404 .287 116 23 1 21 72 56 14 50 .505 .364
2004 119 440 .291 128 26 1 19 77 70 9 64 .484 .378
2005 118 431 .323
(2위)
139
(3위)
24 0 24
(4위)
86
(4위)
90
(1위)
7 70 .545
(3위)
.412
(2위)
2006 117 415 .284 118 21 0 21
(4위)
74
(5위)
62 7 59 .487
(3위)
.370
통산(7시즌) 836 3130 .313 979 175 6 167 591 538 108 378 .533 .383

구체적으로는 통산...

타율 역대 4위,[10] 외야수중 2위
출루율 0.383 역대 14위, 외야수중 5위
장타율 0.533 역대 3위, 외야수중 1위
OPS 0.915 역대 8위, 외야수중 2위

여기에 중견수로서 수비실력도 매우 뛰어나 KBO의 용병, 국내선수 통틀어 역대급 외야수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투수 출신이라 그런지 강견을 자랑해 매년 보살 순위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갔었다. 거기에 성적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꾸준했으며, 성격도 좋아서 좋은 타자용병의 표본 같은 선수.

참고로 KBO는 통산 3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기준으로 통산 순위를 집계하는데 외국인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데이비스만 포함되어 있다.

한화는 이런 용병 하나 더 뽑아보자. / 용병 한 두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 그래서 2014시즌에 도플갱어를 뽑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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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고 이 세리머니는 2014년 펠릭스 피에가 이어 받았다.
  • [2] 참고로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다. 2003년도 한화에서 가출(?)한 데이비스는 AAA수준의 멕시칸리그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타고투저 리그라고는 해도 꽤나 인상적인 정확도와 파워를 보여주었다. AA레벨에서 빌빌대던 KBO 진출전 시절을 생각한다면 괄목상대할만한 일이었다. 코너 외야수를 보며 2할 중반대에 10홈런도 넘기기 힘들어 하던 평범한 마이너리거가 KBO에선 리그최강의 홈런도둑, 저격수 중견수이면서 리딩히터급의 타율과 30-30이 가능한 대괴수가 되었으니, 용병신분으로 KBO에서 잠재력이 터진 거의 유일한 케이스가 아닐까.
  • [3] 99시즌의 30-30도 역대급 타고투저시절에 기록한 성적이라 평가절하당했고 골든글러브 시상식때는 항상 한국선수들에게 밀려나 수상에 실패하였다, 상복이 없었다뿐이지 리그 최상위급 타자였다. 스탯만 봐도 역대 타자 가운데 타율 4위를 마크하고 있다.
  • [4] 그런데 그 중 두 명이 골글을 못받았다.(...)
  • [5] 2002 시즌 도중 유승안 전 감독에게 빠따로 맞아서 재계약을 거부했다(…)는 설이 있다. http://gall.dcinside.com/tigers/1668451 참고 자료
  • [6] 유승안 전 감독에게 빠따로 맞은 후(…) 쫄아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다.
  • [7] 실제로 중견수 한정 세이버 스탯을 살펴보면 WAR나 wRC+에서 박재홍, 라뱅 이병규와 동급.
  • [8] 하지만 이용규도 어깨부상의 여파로 14시즌 내내 지명타자로만 뛰고 있으며, 결국 중견수 수비 문제는 또 다른 외국인 펠릭스 피에로 해결했다.
  • [9] 아들로 알려진 앤서니 데이비스 주니어의 아버지는 당연히 앤서니 데이비스 시니어다 .# 아들이 그가 아니라 다른 선수인듯 하다. 이인영 대리의 글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 앤서니 데이비스는 이미 University of Kentucky로 진학을 확정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이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소속의 센터로 활동 중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이 사람 때문.(...)
  • [10] 2013년 기준으로 현역 선수인 김태균 포함시. 현역선수를 제외하고 집계하면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