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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경

last modified: 2015-02-25 22:12:26 Contributors

이름 전이경|Chun Lee-kyung
생년월일 1976년 1월 6일
출생지 충청북도 옥천군
학력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 석사
신장 163cm
주종목 1000m|1500m[1]
은퇴 1998년

Contents

1. 소개
2. 선수경력
3. 은퇴 이후
4. 주요 수상내역
4.1. 동계올림픽
4.2.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선수/現 스포츠 행정가 및 지도자, 해설가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3연패 (1995-1997)
1997-1998 ISU 쇼트트랙 월드컵 초대 챔피언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2연속 2관왕
대한민국 선수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
대한민국 체육훈장 1등급 청룡장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제[2]

2. 선수경력

1976년 1월 6일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으로 서울특별시로 이사가 숭의초등학교 2학년때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변경하고 종목변경 1년만에 초등학교 6학년 만12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중학교때 척추분리증으로 고생을 하며 동갑내기 라이벌 김소희에 밀려 2인자로 머무른다.

쇼트트랙이 처음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만 16세의 나이로 출전한다. 500m 준결승에서 탈락하고 3000m 계주는 예선탈락을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993년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준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부터 전성기를 맞이한다.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000m에서 당시 최강자 나탈리 램버트를 제치며 우승하며 여자 쇼트트랙 사상최초 올림픽 2관왕에 오른다.

올림픽 직후에 열린 1995년 요빅 세계선수권에서 3관왕에 오르며 첫번째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우승을 하고 1996년 헤이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대회 2연패를 한다. 이때부터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최강자라 불리는 양양(A)가 등장하며 전이경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1997년 나가노 세계선수권에서 양양(A)와 포인트 동점으로 공동우승을 하며 한국최초 세계선수권 3연패를 이룬다. 1997-1998 쇼트트랙 월드컵이 최초로 열리고 여기서 세계최초 월드컵 우승자가 된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첫경기인 500m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하나 파이널B에서 1등을 하였고 결승전(파이널A)에서 두명이 실격되며 동메달을 따게된다. 3000m 여자계주에서도 대회 2연패를 이루며 금메달을 획득하고 1000m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따며 2연패를 이룬다. 특히 1000m 결승전에서 중국양양S와의 접전과 막판 날밀기로 넘어져가면서 금메달을 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전이경은 올림픽 2연속 2종목 2관왕에 오르고 금메달 4개로 한국 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총 메달갯수 5개로 이호석, 박승희와 공동으로 한국 최다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올림픽 직후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양양(A)에 이은 종합2위를 하고 1998/1999 월드컵 시즌 도중 돌연 은퇴선언을 한다. 여자 쇼트트랙 선수로는 적지않은 나이(만 22세)[3]였고 고질적인 부상과 목표의식 상실, 그리고 전성기에 돌입한 양양(A)의 존재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중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수상내역을 보유하고 있는 쇼트트랙 여왕이며 약체였던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세계 최강의 위치로 올려놓은 선수이다. 또한 김동성과 함께 1990년대 후반 쇼트트랙 열풍을 불러 일으켜 90년대 초중반 쇼트트랙 세대를 만든 선수이기도 하다. 이 두 선수의 영향을 받아 쇼트트랙을 시작한 선수가 안현수, 이호석, 성시백, 진선유이면 말 다했다.

3. 은퇴 이후


쇼트트랙 선수 은퇴 후 연세대학교를 다니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그러나 자크 로게 위원장의 추천으로 4년간 IOC 선수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스포츠 행정가 양성 지원사업으로 대한체육회(KOC)의 지원을 받아 유학을 갔다오기도 하였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도 참여했다.

2003년에는 골프 세미프로 라이센스를 얻기도 했고, 쇼트트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여자 아이스하키를 시작하여, 2006년 말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출전은 좌절되었다.

2010년 결혼 이후 부산에 거주하며 부산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고있으며, 이외에도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빙상발전위원회 위원 등 스포츠 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4. 주요 수상내역

4.1. 동계올림픽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1000m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3000m 계주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500m[4]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1000m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3000m 계주

4.2.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세계선수권
1993 베이징 1500m
1993 베이징 3000m
1993 베이징 개인종합
1993 베이징 3000m 계주
1994 길퍼드 3000m 계주
1995 요빅 1500m
1995 요빅 1000m
1995 요빅 3000m
1995 요빅 개인종합
1995 요빅 3000m 계주
1996 헤이그 1500m
1996 헤이그 1000m
1996 헤이그 3000m
1996 헤이그 개인종합
1997 나가노 1500m
1997 나가노 1000m
1997 나가노 3000m
1997 나가노 개인종합[5]
1997 나가노 3000m 계주
1998 비엔나 1000m
1998 비엔나 3000m
1998 비엔나 개인종합[6]
1998 비엔나 3000m 계주
팀 세계선수권
1992 노베야마
1994 캠브리지
1995 주떼미르
1996 플래시드
1997 서울
1998 보르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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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500m 최강자였으나 1500m 종목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부터 신설되어서 올림픽에서 1500m 메달은 없다.
  • [2] 일정 기간동안 세계무대를 지배한 점, 긴 선수생활과 화려한 올림픽/세계선수권 커리어, 후배들에게 끼친 영향 등을 모두 고려했을대 여제 칭호를 받을만한 유일한 여자선수이다.
  • [3] 실업팀이 없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은퇴하는 것이 당연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20대 중후반에도 선수생활이 가능해졌다.
  • [4] 이때 딴 메달이 박승희가 메달을 따기 이전까지 유일한 대한민국의 여자 500m 쇼트트랙 메달이었다. 원래는 준결승전에서 탈락하여 5-8위전으로 밀렸고, 거기서 가장 먼저 들어와서 5위가 되었는데, 결승전에서 2명이 실격을 당하는 바람에 3위가 되었다.
  • [5] 양양(A)와 공동우승.
  • [6] 왕춘루와 공동 준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