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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자살 사건

last modified: 2017-12-29 11:06:3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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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자연 (1980년 1월 25일-2009년 3월 7일)

Contents

1. 개요
2. 논란의 시작
2.1. 흐지부지 끝난 수사
2.2. 왜 조선일보는 격한 반응을 한 것인가?
3. 2부의 시작?
3.1. 진실
4. 사건 진행상황
5. 기타 사건/사고

1. 개요

2009년 3월 꽃보다 남자악역 3인조 중 한 명으로 나온 신인배우 장자연이 자살한 사건. 한국 연예계판 아트비전 사건인데 사건의 규모는 그것보다 더 크다(...) 적어도 아트비전 사건에서 누가 죽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고인의 자살 이후 현재까지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정확히 밝혀진 사실만 적을 것을 당부한다. 아직 진행중인 사건이고, 거짓된 내용을 인터넷 상에 게재하다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는 만큼 본인의 의견을 사실인양 기재했다 고소당하는 사태가 없기를 바란다.

2. 논란의 시작

2009년 3월 13일, 고인이 죽기 전 남긴 문건 내용이 공개되며 룸살롱 술접대, 성상납을 강요받으며 방에 갇혀 폭행을 당해오던 것이 드러나며 논란은 시작된다.

그동안 쉬쉬하며 추측만 나돌던 연예계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유족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1] 아예 이 문서를 태워 은폐하려 했고 경찰악플과 우울증으로 단정 짓고 수사를 중지하려다 문건 내용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다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결국 관련자 9명이 기소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설이 퍼지게 된다.

2.1. 흐지부지 끝난 수사

연관자 중 모 보수 언론사 사장이나 스포츠 신문 쪽 사람[2]이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수사에 들어가게 되지만 2009년 8월 19일, 검찰은 술접대 강요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장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씨와 전 매니저 유모씨 두 명만 기소했다(...) 네티즌 반응.

장자연을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전 대표 김씨는 2011년 11월 항소심에서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유씨는 모욕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받있다.

결국 제대로 된 수사없이 유야무야 사건은 묻힌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황당한 일인데 경찰은 사건의 수사종료를 발표한 후 얼마 안 가 "장자연이 좋아서 접대하러 갔다" 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그런 결론이 나와요?

한편 같은 드라마에 참가한 김현중 등의 주연 배우들은 동료가 목숨을 잃은 민감한 시기에 제작사 측이 드라마 촬영현장 공개 행사를 강행한다며 큰 분노를 보였고 이에 제작사 측도 뒤늦게나마 행사 규모를 줄이며 급히 끝냈다.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건 뒤 드러난 마약사건이 이 사건을 덮기 위한 수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북한의 무력도발 같은 빅뉴스로 인해 역시 뻘소리가 되었다.

2.2. 왜 조선일보는 격한 반응을 한 것인가?

경찰의 어정쩡한 대응이 한창일 때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조선일보 사주의 접대의혹을 제기했고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어허허, 오햅니다라고 스포츠 조선과 조선일보를 오해한 것이라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의 어정쩡한 수사로 달아오른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되려 '너희들도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 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유명 배우인 문성근이 조선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어나자 해당 사건에 대해 조선일보와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고소를 걸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2011년 11월 30일, 조선일보 사주 성접대 의혹을 제기한 이종걸, 이정희 의원과 이를 보도한 MBC 신경민 앵커, 송재종 보도본부장을 상대로 건 민사소송 재판에서 조선일보측이 패소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종걸, 이정희 의원 상대로 패소 판결을 내린 곳은 민사 14부/MBC 상대로는 민사 25부, 각각 다른 재판부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온지라 항소를 해도 뒤집기는 힘들 거라는 예측이 많다. 해당 기사.

3. 2부의 시작?

흐지부지 사건이 마무리 된 뒤 2년이 지난 2011년 3월 6일, SBS가 단독보도로 故 장자연 씨가 직접 쓴 편지 50통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날리며 사건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카라의 해체 사태에는 네티즌의 반응이랍시고 매일같이 지면을 낭비하던 인터넷 신문 사이트들도 이번만큼은 네티즌의 반응을 올리긴 커녕 사건 자체의 보도를 꺼려하는 중이라 의혹은 깊어지고 있다.[3]

SBS측은 필적감정을 마친 것이며 분명한 진품이란 것을 주장중이나 SBS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날조된 것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어 이번에도 흐지부지 해서 묻어버리려는 음모론이 제기 되었으나 편지를 제공한 제공자와 장자연의 연관점이 없다는 점이 밝혀져 날조설이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결국 2011년 3월 16일, 국과수는 교도소에 복역중으로 과대망상 증상을 보이는 전모씨의 위작이라고 판정했다. 글씨체가 너무 다른 데다 세세하게는 종이에 남은 필압부터 우체국 소인에 이르기까지 진품으로 판정할 요소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故 장자연 편지는 교도소 수감자의 위작".

2012년 1월 5일 국정원 개입설이 손바닥TV 이상호 기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제보자 왈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생각에 증언을 결심했다" 고. 링크.

3.1. 진실

해당 수용자는 전준주라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 갇혀서 가끔 나갔다가 강간을 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으로 밖에 있던 시절이 다 합쳐서 1년이 안된다는 전과 10범의 특수강도강간범이다. 교도소에서는 적응장애, 우울증을 겪고 있어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교도관들을 괴롭히는 평범한 문제수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왕첸첸이며 홍콩의 재벌 아들 또는 2004년에 타계한 카지노계의 대부 전모씨의 아들(왕씨라며?) 돈많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식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러던중 2009년 스포츠칸에 재보하여 자신이 어렸을때 부터 장자연을 잘 알고 있으며 그녀가 자신을 의지하며 지금 힘들고 괴롭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때는 계열사인 경향신문에서 즉시 사실확인이 안된다며 잘못했다고 사과 기사를 내서 금방 끝났다.

그런데 2011년 3월 6일에 갑자기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어떻게 230페이지나 되는 위작을 만들수 있냐며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자서 일이 커진것이다.[4] 심지어 수사기관쪽에서 위작이라는 결론이 슬슬 나오고 있을 때, 팟 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가 "자신이 직접 만나 봤는데 이것은 사실이 맞으며 정황상 편지에 나온데로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씨를 강제로 붕가붕가한 것이 사실이며 어떻게 일면식도 없다는 사람이 230페이지나 글을 쓸 수 있는가. 교도소에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쓴다는게 가능한가? 편지 봉투에 우표와 소인이 없어서 위작이라고 하는데 수용자들이 돈이 없어 재벌 2세라며? 한번 썼던 우표를 때내서 다시 붙있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 하였다. 논란이 될 이야기라 추가적으로 설명이나 취재가 있을 법 했었지만, 그 이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사건을 일으킨 전준주는 아직도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에게 주진우 기자가 자신을 다시 면회오겠다고 하는데 안온다고 연락해서 빨리 오게 해달라며 징징~ 거리고 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은 할일이 없으니 편지를 많이 쓴다. 특히 펜팔하며 전국의 교도소마다 한명씩 펜팔 상대로 둔 수용자들은 하루에 열통 이상 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즉 50통이 아니라 수백통을 썼다고 해도 교도소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수용자들은 원래 범죄자들이기 때문에 편지봉투에서 우표를 때어내서 식초로 씻어 내고 재활용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재벌 2세라는 사람이 우표가 없어서 봉투에서 떼어서 붙였다는 것은 이상하다. 아마도 장자연한테 편지를 받았다면 서울 소재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기 때문에 봉투에 우표가 없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외로 전준주는 장자연이 12번이나 면회를 왔다고 했으나, 장자연이 온 면회 기록 같은 것은 없었다.

4. 사건 진행상황

2012년 1월 18일 전 대표 김씨가 배우 선미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송선미가 김씨와의 소송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기재해 기사화되도록 했다' 며 '장자연을 끌어들여 허위사실을 기재한 진술서를 작성해 장자연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 는 것이 김씨의 주장.[5] 관련기사. 이어서 2월 10일 김 대표는 송선미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사.

김씨는 이어 25일에는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씨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고 3억원 배상을 요구했다. 김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고소장에 '장자연 문건을 유서로 포장함과 동시에 그 존재를 언론에 일부러 유출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했다' 고 주장했다. 또한 '유씨의 허위 폭로로 원고의 인격과 명예신용은 극도로 훼손됐고 이 사건으로 연예종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속사 여배우를 죽인 공공의 적으로 찍혔다' 고 주장.

또한 김씨는 "유씨는 원고와 소송 중이던 탤런트 송선미와 소송을 앞두고 있었던 탤런트 이미숙을 도와 원고를 압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장자연에게 문서를 작성하게 했다" 며 "특히 유씨는 장자연의 죽음을 사적으로 이용했고 이 탓에 원고는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그 활동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고 주장했다. 기사 1, 2.

2013년 11월 20일 법원이 장자연의 문건은[6] 조작이 아니라고 하였다.기사

2014년 1월 17일 법원이 폭행사실은 인정하지만, 성상납 강요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기사

그리고 이 사건은 여느 사건들과 비슷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중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2014년 10월 12일 서울 고법 민사 재판부는 술접대 강요가 형사상으로 인정되진 않았으나 이같은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배상판결을 내렸다. #

5. 기타 사건/사고


비슷한 방식의 접대에 대한 고발이 한 미얀마 청소년에 의해 이뤄졌으며 사실 확인은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 8월 5일에 미얀마 출신 메이 타 테 아웅은 서울에서 열린 국제 미인대회에서 우승하여 왕관을 받았으나 27일에 주최측에서 갑자기 우승을 취소하였고 아웅은 왕관과 함께 잠적하였다. 주최측은 우승 취소 이유가 아웅의 솔직하지 못함(dishonesty) 때문이며, 아웅이 약 1천만원 상당의 가슴 성형을 받은 후 왕관을 갖고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웅은 기자회견을 통해 다른 주장을 했는데, 주최측에서 나이를 본래의 16세가 아닌 18세로 고칠 것을 종용했으며 우승 후 K-Pop 가수가 되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는 동안 음반 제작비용을 대려면 재계의 거물들을 접대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국내 다큐가 다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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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고 자매와 사촌 몇 명만 남은 상황이다.
  • [2] 참고로 모 보수 언론사가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했다.
  • [3] 사실 이것은 사건의 언급시 이미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조선일보라는 단어로 인해 조선일보의 광역고소에 대상이 되기 때문이라 이렇다고 한다.
  • [4] 일부 언론에는 230통이라고 되어 있는데 50통 230페이지가 맞다.
  • [5] 송선미는 김씨의 회사와 결별하며 전속 계약과 관련 한 차례 법적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송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계약을 위반한 쪽은 전 매니저" 라며 "분쟁이 세상에 알려지면 대부분 배우의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친다. 매니저가 이런 입장을 계속해서 악용해왔다" 고 밝혔다. 아울러 송선미는 드라마 '녹색마차' 제작발표회 자리에서도 김씨와 관련해 "이런 분들 때문에 연예인들이 악용 당한다. 많은 배우들이 괴로움을 당했다" 고 불만을 털어놓은 바 있다.
  • [6] 교도소의 편지가 아니라, 장자연 본인이 남긴 문건. 이것조차 조작설이 나돌았었다.